▣ 제목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 성경 : 디모데후서 3:14~17, 로마서 10:13~17
Ⅰ.
한국기독교(개신교)는 고종황제의 선교윤허를 받고 선교사자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선교사의 입국일(1885년4월5일)을 선교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 안 될 것은 공식적인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에 이미 한국에는 세례 받은 기독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로스판 성경으로 불리는 “예수성교전서”가 1887년에 발간되었는데, 이 성경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구약성경완간본입니다. 187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선교사로 중국에 온 로스는 중국과 조선의 중계소인 고려문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한문성경을 나누어주면서 한글성경번역사업을 시작합니다. 매킨타이어선교사와 한국인조사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 1878년 마가복음을 번역합니다. 1885년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 이미 우리말 성경번역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수정에 의해서도 성경이 번역되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수정은 임오군란(1882.6.9)의 위기에서 명성황후를 충주로 피신시켰다가 무사히 환궁하게 하는데, 그 공으로 일본 신사유람단 2진에 편승하여 박영효의 비공식수행원으로 일본행에 오릅니다. 그는 일본 농학자인 쓰다젠을 만나는데, 쓰다젠은 이수정에게 성경을 선물로 줍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 받습니다(1883.4.29). 그리고 루미쓰 선교사의 도움으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선교사가 제물포항으로 들어올 때 그 성경을 들고 들어옵니다. 이는 세계선교역사에 유래가 없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한국기독교역사는 성경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Ⅱ.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을 제정하여 지키는 것은 성경을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함입니다. 처음 성서주일예배를 드린 것은 1899년입니다. 1885년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고, 1895년 서울에 성서공회사무실을 열었는데, 1899년에 “성서공회주일”을 지킨 것은 놀라운 진전입니다. 처음에는‘성서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로 지켰으나 1900년부터는 '성서주일(Bible Sunday)'로 불리면서 점차 전국교회의 관심과 호응을 받게 되었고, 1954년부터는 전국교회가 12월 둘째 주일을 성서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성서주일을 기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다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가장 많이 팔린 책이지만,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사람보다 그저 책꽂이장식용으로 꽂아놓고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번 성서주일을 기하여 성경을 가까이하여 꾸준히 읽고, 배우고,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1997년 제22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신앙고백을 정리해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중에 네 번째 조항이 성경에 대한 고백인데,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도리와 신앙생활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가를 가르쳐줍니다. 본문 디모데후서 3장15절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구원의 책”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하는데, 그중 한 선교사가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날에 장터에서 서툰 우리말로 외칩니다. “이 약을 사십시오. 이 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이 약을 먹으면 모든 병이 치료됩니다.” 낯선 서양인이 외쳐대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그 약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서 약탕기에 담아 정성껏 잘 달였습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에 약물과 함께 건더기까지 모두 먹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소화도 안 되는 것 같고, 속이 더부룩한 것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하루를 지나보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코쟁이 서양 놈’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장날 장터로 달려갔습니다.
선교사를 보자마자 그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멱살을 잡으며, “이 놈아, 이게 무슨 만병통치약이냐? 이거 먹으니까 속만 더 아프고 쓰리기만 하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정색을 하며 물었습니다. “그 약을 어떻게 먹었소? 그 약은 먹는 법이 따로 있소. 약탕기에 달여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먹는 약이라오. 다시 사가지고 가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먹어보시오. 그러면 꼭 병이 다 나을 것이오.” 그는 미심쩍었지만 속는 셈치고 하나를 더 사가지고 집으로 가서 눈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어느 순간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 약은 다름 아니라 구약과 신약이었고, 그것을 읽으면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구원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냥 성경을 읽다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은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할 책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이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마 28:19-20). 말씀을 가르치면 말씀 자체가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요 1:14).
중국에 와 있던 로스선교사는 한국에 선교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성경을 번역하기로 마음먹고 조선에서 온 서상륜과 이응찬을 만나 집에 데리고 가서 성서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들은 로스선교사의 가르침을 받고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로스선교사의 한국어성경번역에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서상륜은 나중에 권서인으로 성경을 보급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성경을 배우면 그 속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도자 빌립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 말씀을 가르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내시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어 수레를 멈추고 세례를 받습니다. 성경을 배운 사람들은 그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놀라운 부흥을 이룬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교초기에 활동했던 권서인(勸書人)들의 공로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권서인들은 주로 성서공회나 선교회 혹은 개인 선교사와 교회에 의해 파송을 받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어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가교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활동이 워낙 왕성해서 성경은 전국 어디에나 보급되었는데, 이들은 성경 외에도 찬송가, 교리문답서, 선교달력을 “복음궤짝”이라는 상자에 넣어 짊어지고 다니면서 학교, 서당, 공동작업장, 잔칫집, 장터를 찾아다니며 팔았습니다.
선교초기에는 남녀구분이 엄격하여 권서들이 부녀자들에게 성경판매를 할 수 없어서 여성들에게 성경을 판매하며 전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부인권서들입니다. 부인권서들은 “부녀자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부엌속일지라도”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고, 남자권서들이 들어갈 수 없는 안방까지 들어가서 성경을 보급했습니다. 부인권서들은 글을 모르는 여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성경을 깨닫게 해주었기에, 이들의 노력으로 많은 부녀자들이 글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여러 곳에서 부인들의 사경회가 자주 열렸는데, 사경회에 참석한 부녀자들은 대부분 예수 믿은 후에 국문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부인권서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교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희망 없이 비참한 처지에 빠져있던 부녀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행복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들의 발걸음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발걸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즉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을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서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Ⅲ.
캐나다 선교사 푸트는 1908년 2월에 영국성서공회한국지부 총무인 밀러에게 편지를 보내 “권서제원(勸書諸員)은 단순히 복음전파인(人) 뿐만이 아니라 조선교회로 하여금 금일의 성공을 얻도록 동작한 활력입니다. 매년에 그들이 전파한 결과로 신교회(新敎會)가 창립되야(어) 처음 예배를 행할 때마다 그 봉사의 귀중한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서신은 권서들의 활동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발걸음입니까? 우리의 발도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5) 가는 곳마다 기쁘고 아름다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갈 수 없다면 선교사를 보내든지, 성경을 보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헌신을 통해 또 한 영혼이 하나님께 나와 변화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