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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2013.사화집 [☆심상문학 4☆]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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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문학]
심상문학회 2013. 사화집 4 / 심상사(2013.07.04) /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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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박동규(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올해도 심상문학 사화집 4를 발간하게 되었다. 해마다 심상문학회원들이 결집된 의지로 사화집을 엮어내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발표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화집을 통해서 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들의 모임을 알린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 시의 심상문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며 또 서로 시를 통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끼리 격려하는 그런 의미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시인이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이 시인은 혼자 고적한 마을에서 시를 쓰며 지내고 있는데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시를 향한 의지 때문에 생활에서 소외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격리되어진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사연이 담겨있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시를 쓰며 살아가는 집단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참이다. 무엇보다도 생활영역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버거운 짐이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시를 쓰는 마음에 담겨진 진실함이 바로 생활영역 안에 들어있는 삶의 행태와 충돌하게 되고 이 충돌은 바로 스스로를 좌절의 길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해도 살아지지 않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인으로서의 갈등은 바로 시가 세상에 존재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항상 자아와 타자 사이의 거리의 측정은 바로 자아의 정립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과제이듯이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서 있는 곳과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가를 묻는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바로 이 진실성에 대한 목마름을 통해서 진실한 삶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의지와 감정의 정수를 담아내는 것이라 하겠다. 또 시인 스스로가 인간존재의 가장 바닥에 놓여진 생명가치에 대한 회의와 그 의미의 추구는 바로 오늘날처럼 기능적이고 상업적인 관계 위에서 인간의 가치가 한정되어지는 일을 바라보면서 이를 극복하고 사람다운 삶의 세계와 그 세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진실함이 의미를 어떻게 세워가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시인들이 짊어진 짐인 동시에 시를 써야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 시각에서의 시인들의 시작의 의미들을 우리가 공동으로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심상문학회 회원들이 이 사화집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내고자 하는 뜻이다.
심상문학은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회원들끼리의 소통의 문제다. 이 소통은 작품을 통한 서로의 관계를 엮어낼 수 있게 하는 일이고 둘째는 회원들이 순수한 시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일들을 공동으로 대처해나가고 이를 극복해가는 시적 변용의 형식을 서로 나누어가며 짊어지고자 하는 의지이다. 이 공동의 대응양식은 바로 정치적이거나 세속적인 목적이 아니라 시가 어떻게 발전해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들은 서로의 시작법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 영향은 바로 발전의 성장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셋째는 심상 시인은 수직적 조직보다는 수평적 조직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보다 더 공고히 하고자 한다. 이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 협력하여 시를 창조하고 시를 선양시켜 나아가는 하나의 공동적 동지로서의 의미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흔히들 말하는 어떤 부류의 특징성이라든가 어떤 집단의 성향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각기 개성적인 시가 마치 여러 꽃들이 피어나 아름다운 여러 꽃밭을 이루듯이 그렇게 하나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자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화집은 함께 하는 심상문학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하나의 꽃밭을 이루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년을 약속한다.
심상문학회 이사장 박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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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친밀하고도 먼 바다를 사유하다
― 제35회 해변시인학교 사화집 출간에 부쳐
송민호(단국대 교수)
매년 이 때가 되면 심상 해변시인학교를 떠난다. 시인학교도 올해로 벌써 35해가 되었다. 비록 그 모든 순간을 한결같이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35회라는 숫자가 갖는 아득한 깊이는 그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해변으로 떠나는 여정은 머리 보다는 몸의 감각이 먼저 느끼는 것이다. 늘 추상화된 바다를 머릿속에 넣어두고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 때 만큼은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나는 바다의 전형화된 개념을 떠올리기 보다는 뺨에 닿는 눅지근한 공기의 느낌과 입안에 도는 미묘한 짠 내음을 통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때가 되면 나도 시(詩)를 생각하곤 한다.
이쯤에 이르게 되면 나에게 있어서 바다라는 공간(space)은 더 이상 3차원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높은 차원의 추상적인 사유에 의거하여 재구축된 개념적인 공간도 아니다. 중국계 미국 지리학자 이푸투안(Yi-Fu Tuan)이 『공간과 장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낮은 차원의 감각들 특히 시각과 촉각의 공간화를 통해 공간을 인식하고 이후 여타의 감각(미각, 후각, 피부감각, 청각)들, 공간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감각까지도 일깨우고 활성화하여 그것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럴 때 바다는나에게 친밀한 장소(Place)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바다는 매년 반복되는 특별한 기억으로서, 시를 통해 풍요해진 감각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해변시인학교를 갈 무렵이 되면 늘 내가 바다 바람과 소금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날만큼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해변시인학교를 갈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 창틀 너머에서, 컴퓨터 모니터 너머에서,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바다를 발견하는 것이다.
반가운 우리 글자(시)를 보아!
그래, 나는 시인이다
내가 시인이면 이 시를 읽는 여러분도 시인이다
여러분이 시인이 아니면 나도 시인이 아니다
말미암아 이 시도 시가 아니다
- 박만진, 「주먹이 운다」
박만진 시인은 자신의 손 안에서 글자를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그것이 ‘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자신이 시인임을 발견한다. 시인의 창조적인 비약은 시인과 독자의 경계마저 넘어선다. 논리가 매개가 된 모순 논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직관과 확신이 시인에게는 존재한다. 누구나 손바닥을 갖고 있고 손 안에 글자를 갖고 있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 우리는 시인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시가 전염되는 종류의 대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아마 그가 손 안에서 발견한 것이 바다였다고 할지라도 별로 상관은 없었을 터이다. 우리는 누구나 머릿속에, 온 몸의 감각 속에 바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기하는것 자체는 퍽 시적이다. 바다를 떠올리는 사소한 순간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사유가, 기억이, 감각이 시가 되는 순간 바다는 비로소 생기 넘치는 시가 된다.
소금에 절여지기 전 새우들은
그대로 바다다
쓰라림에 몸 담그기 전
그 캄캄함에 마음 담그기 전
아직 그들은 살아있다
새우젓이 되기 전
그 깊은 미망 속으로 침잠하기 전
반짝 빛나는 생명력
벅찬 아름다움
온 존재 속으로 방부의 시간이 스며들기 전
한 번은 그렇게 반짝일 일이다
- 김지윤,「바로 그 때」
감지윤 시인은 존재에 방부의 시간이 스며들기 전 그것이 반짝이는 생명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에 주목한다. 바다를 생각하는 시인의 감각 역시 그렇게 반짝이고 있다. 시인은 소금기를 먹어 깊은 미망으로 사라지는 바다가 마지막으로 빛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숨이 다하기 전 바다가 온 존재를 다해 토해내는 생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만, 이러한 시인의 빛나는 감각에 대해 나는 약간의 반대의 뜻을 전한다. 나는 죽음이 결코 미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다는 소금기를 먹어 방부의 멈춰진 시간 속으로 박제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타의 감각 속에서 보다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파리의 시인이었던 보들레르(C.Baudelaire)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에 지쳐 폐허처럼 되어 버린 도시 속에서 단일한 시공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원초의 상징을 수집해내고자 했던 것처럼, 시인은 현실적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어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상징들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는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고 언제나 생생하게 경험되는 대상이 된다.
남은 일몰의 짧은 시간
빗장 열고 봄을 찾아
해를 따라 해바라기 되면
하늘엔 초롱초롱한 별
나의 별은 새벽별
세상의 아침을 깨우고 싶다
- 이경,「일몰의 시간」
이경 시인의 ‘시간’은 어떠할까. 그는 삶과 죽음이 직선적인 시간 속에 놓여 있어 한 번 죽으면 되돌릴 수 없는 1차원으로 흐르고 있는, 따라서 이곳과 저곳이라는 공간마저 뚜렷하게 구분되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난 다른 시간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해가 샛별이 되고, 샛별이 금방 해가 되어 버리는 일몰이라는 시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적 변형(metamorphosis)의 상상력 속에서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일몰과 일출 사이는 사실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 시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시가 되는 것처럼, 시 속에서는 저녁별이 곧 새벽별이 되어 버리고 저녁은 아침이 된다. 이러한 순환적 시간성 속에서 더 이상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지고 만다. 내가 마주선 바다와 나 사이의 경계가 그것을 떠올리는 생생한 감각적 기억 속에서 무화되어 한 없이 친밀한 공간이 되는 것처럼 시는 고정적인 시공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전이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멈추어
처마끝 풍경을 건드린다
이승 끝자락에서 꿈인 듯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
아이들은 잘있느냐
밥은 꼭꼭 잘 챙겨 먹어라
작은딸에게 들려주는 아버지 말들
안기고 싶은 서러움이 파도에 밀려온다
법당 앞 돌계단 옆에 서있는 꽃들이
울지 말고 뛰어가 아버지께 매달리라 한다
그리움이 정동진 바다를 온통 덮으며 넘실댄다
영원의 이별은 잡을 수가 없다
- 배혜옥,「바다가 보이는 산사에서」
하지만, 바다가 어디 그리 녹록하랴. 마치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듯, 시를 통해 한 없이 친밀한 장소로 감각되고 사유되었던 바다는 사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담보하고 있는, 나에게는 머나먼 타자다. 친밀한 바다를 향해 한 없이 달려드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실재뿐이기 때문이다. 배혜옥이 바다에서 이미 떠나간 아버지의 말들을 듣는 것은 바다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한 없이 친절한 태도로 여기 존재하는 주체를 부르고 있으나 그리움만으로 넘지 못할 물리적인 경계가 그곳에 존재한다. 그 그리움에 비애가 섞여 있는 것은 이 바다가 갖고 있는 어쩌지 못할 경계 때문이다.
매년 해변시인학교를 갈 무렵이 되면 바다를 생각하고 시를 생각하며, 하루만큼은 시인이 되었던 내가 다시 짐을 챙겨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바다가 한 없이 친밀하고도 머나먼 대상이기 때문이다. 바다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만큼, 나의 언어와 시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 역시 명확하고, 시인과 나 사이의 경계 역시 분명하다. 그것은 바다가 갖고 있는 사유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는 물질성 때문이다. 바다는 시로서 살 수 있는 하루를 허여하였으되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하랴. 집을 나간 고양이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않으면 안 된다. 마음속에 바다를 품고 있기만 한다면 시는 언제나 자신의 품 한쪽을 기꺼이 내어줄 것임을 잊지 않고 또 다시 시가 찾아올 때까지는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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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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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풀꽃
우당 김지향
도심지에서는
몸이 가루가 되어 날리는 햇빛
변두리에 와서 성한 몸이 된다
뜨겁게 살아도
가루가 되지 않는 법을
뜨겁게 배우는 변두리의 풀곷들
약하고 작은
변두리 풀꽃 속에 살고 있는
굵은 힘줄을 불붙이는 법을
가을의 햇빛에게 배운 풀꽃은
죽도록 떠나지 않는
가을을 갖고 싶어
늙지도 않는다
주먹이 운다
박만진
다섯 손가락 풀고 왼손 손바닥 줄무늬를 본다
길흉화복의 재물 금 운명 금을 읽으려는 것이 아니다
반가운 우리 글자(시)를 보아!
그래, 나는 시인이다
내가 시인이면 이 시를 읽는 여러분도 시인이다
여러분이 시인이 아니면 나도 시인이 아니다
말미암아 이 시도 시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길흉화복이 정해져 있다면
손바닥 줄무늬인 손금이 사람 사람마다의 지도인 셈으로
모두 팔자소관이겠지만
어쩌다가 손금을 보게 될 때에
재물 금이며 운명 금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나는
뚜렷한 글씨(시)를 읽곤 좋은 시를 써야겠다고 작심하고
다섯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가는 불끈 쥔다
주먹이다
바로말로 시쳇말과 다른 의미의 주먹이 운다
그 이름
박지영
운명은 번개가 번득이듯 온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문 두드리고 정중하게
들어가도 될까요 하고 묻지 않았다
어느 날처럼
소매 끝을 스쳐지나가 버리지만
그게 운명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그 이름도 그랬다 별 생각 없이 들었는데
내 가슴에 박힐 줄 몰랐다
그 이름에서 벗어나는데 한 생이 걸렸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름이
사람들에게는 식당 이름이고 병원 이름이지만
난 종종 그 이름 때문에 당황했다
골목 끝에 운명 같았던 이름의
꽃집이 들어서고
빵 가게가 문을 열고
정육점이 내걸려도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름의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를 무심히 물어뜯는 날도 오리라
굴참나무 편지 - G에게
우당 김지향
아아, 당신, 날마다 갖다버리는 햇빛만큼, 어둑어둑한 굴참나무를 기억하시는지요? 나는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에 서 있던 옹이가 펑 뚫린 굴피 집에 들어와 산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내 곁에는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이 뜨거운 화염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먼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글욕이었을까요 마을의 굴다리를 지나 쫓기듯이 뛰어가는 군화 발소리를 재갈을 물리는 비명 같았지요 종종 마을과 조선소를 이어주던 어둡고 하천 냄새나는 공굴 속에서 듣던, 산사 종소리에 새삼 목젖 당겨 아릿합니다… 때 묻은 잎사귀와 마른 뿌리로 견디는 세상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러나 견디는 일에 너무나 익숙한 이 굴참나무. 아무 생각 없이 뒤통수에다 던져대는 돌멩이들이 곧 쓰러질 텅 빈 이 몸둥이를 꽉꽉 채워주고 있습니다 툭툭 피가 터져 사방팔방 굴러다니는 돌멩이들 언제 잠깨었는지 일제히 새가 되어 창공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저들이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 편에 오른 손을 번쩍 든 당신은 아직 무사하겠지요?
소외지대
윤강로
창마다
하나씩 불이 꺼진다
한 때 눈짓이었던 불빛
오가는 목소리였던 불빛
다 꺼지고
아무도 없는 황폐한 시간
빈 길에서.
깊은 천둥소리 멀리 울고
어디랄 것 없이
번개치는데
죄진 일 없어도 불빛 끄는 거리
내가 뭐랬나
괜히 캄캄하다.
모란이 피었습니다
이희정
땅도 없는 회분 흙에 모란이 피었습니다
자그마치 다섯 송이가 높고 낮게 피었습니다
떠난 사람의 얼굴보다 빈혈과 협잡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6월에 피어야할 흰 모란꽃이 한 달 더 일찍 핀 이유가
나를 위로하는 틈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눈물자락의 나비는 곧 시체가 될 터이지만
점점 잃어가며 날개를 퍼득이고 있지만
그곳에는 음영의 달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달 속으로 힘겨운 호흡은
잠시 숨는 또 하나의 얼굴입니다
부드럽고 거친 호흡이 불가촉천민의 모습 같지만
한 송이씩 뚝뚝 지워질 때마다
오월에 유월이 아쉬웠습니다
두 분 소나무 - 산행 76
임지현
흐리멍텅한 정신
똑 부러지지 못한 마음에
호통을 친다
이 무지랭이들아
바람 없이도 흔들거린 것들아
올 곧은 심지로
단단하게 서보라 이르신다
몇 백년 동안 틈틈이
죽지 하나씩 내주시면서 군위군 위천마을
南天古宅 어른 두 분
청청하게 눈 부릅뜬 기개 앞에
압도되는 사람들
그리움이 눈물 많은 날은 - 波浪島
한기팔
그리움이
눈물 많은 날은
있는 듯
없는 듯
보일듯
안 보일 듯
바다는 없고
파도만 있는
숨겨놓은
애인 같은
섬 하나
오, 거기
눈물 비친
사랑
하나
▲ 충남 서천군 [蒜艾齋]에 세워진 박목월 선생님의 시비 [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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