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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유자적 등산여행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길라잡이
임실여행을 다녀와서
2011년 5월 15일, 유유자적여행자클럽 제25차 정기여행의 목적지인 전라북도 임실을 향해 참가자 45명은 7시 20분, 부산진역을 출발하였습니다. 부산에서 임실까지는 먼 거리이지만 요즘은 고속도로로 계속 연결하여 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는 편입니다.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간 고속도로-88올림픽고속도로-전주・광양간 고속도로를 연결하여 가도 되고, 남해고속도로 순천분기점에서 전주・광양간 고속도로로 접속하여 가도 되는데 우리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진주 2터널 약간 못 미친 지점에서 수박을 싣고 가던 화물차가 사고를 내어 도로에 수박을 쏟아놓는 바람에 25분간 교통 정체의 고통을 겪은 후 09시 문산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광양IC를 지나 순천분기점에서 전주・광양간 고속도로로 접속, 10:45 오수 IC를 통과, 임실 땅에 닿았습니다. 임실이란 곳은 산속에 옹기종기 묻혀 있는 시골마을들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인구가 3만 명밖에 되지 않으며, 해발고도가 최저 110m, 임실 읍내가 247m 높이의 중산간 지역으로, 전북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2도 가량 낮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미리 듣고 갔기 때문인지 우선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와서 보니 임실은 온통 산과 강으로만 이뤄진 땅이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자연에 묻혀 있는 알짜배기 슬로시티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임실에서 태어나 임실에서 자라고 임실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자신의 고향 임실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습니다.
"푸른 하늘/ 그 아래 청산/ 강이 있어 바라보고/ 그 강언덕 산자락에/ 사람들이 모여/ 물 나고 빛 좋은 곳 터를 잡아/ 영차영차 집을 짓고/ 힘써 논과 밭을 만들고/ 철따라 꽃피고 지고/ 씨 뿌려 거두는 것 같이/ 자식들을 늘려/ 동네를 이루어 살았으니/ 그게 몸과 마음 둘 땅이었더라."(김용택 '섬진강 13'중 부분)
우리가 임실여행의 들머리로 삼은 곳은 오수였습니다. 오수면사무소 인근 시장통 내에 있는 원동산공원에서 강명자 해설사님을 만나 임실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느티나무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공원 안에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어느 장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만취한 주인을 구한 후 주인 옆에서 숨을 거둔 충견을 기린 오수의견상(獒樹義犬像)과 의견비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충견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곳 임실의 의견이었습니다. 길라잡이도 초등학교 때 오수의견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임실군에서는 이 오수의견을 모토로 매년 의견문화제를 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국내 애견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0분여 오수의견을 기리는 현장에서 머문 후 임실을 남북으로 내달리는 1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향했습니다. 강명자 해설사님의 승용차를 뒤따라가며 20여분 후 임실읍의 성가리 백로서식지에 도착했습니다.(11:50) 도내에서 유일한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성가리 주민들은 마을 뒷산을 뒤덮은 백로의 오고 감을 통해 계절을 안다고 합니다.
3월~4월경 이곳에 도착해 소나무나 상수리나무에 나뭇가지를 주워 접시모양의 둥지를 틀고, 4-5월경에 3-5개의 알을 낳고 연못, 논, 강가에서 물고기나 개구리를 잡아먹으면서 살다가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되면 다시 동남아시아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아예 텃새로 변신해 겨울을 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관찰된 서식 종은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해오라기, 황로 등 다섯 종이라 합니다.
여름 철새인 백로는 강가, 저수지, 얕은 바닷가에서 생활합니다. 임실은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먹이를 구하기 수월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서식지 주변의 개발로 인해 논이나 습지가 줄어들면서 백로가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차츰 사라지자 백로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빈 둥지가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서식지 주변 일대가 배설물로 인해 초토화되어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자기방어의 수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로는 위험을 느낄 때에 강산성 배설물을 마구 갈긴다고 합니다. 배설물의 강한 독성 탓으로 둥지를 튼 나무는 보통 1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며, 하층식생도 주로 산성 토양을 잘 견디는 미국자리공이나 환삼덩굴, 개망초 등이라 합니다.
백로는 사람이 사는 곳에 터전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고, 백로가 서식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습지와 하천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임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청정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체수가 자꾸 줄어든다는 말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12시 03분 백로서식지를 뒤로 하고 주변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신선과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사선대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회원님들의 요청에 의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임실치즈를 구입하기 위해 5분 거리에 있는 임실치즈농협에 들렀습니다. 이곳에는 임실치즈유가공공장이 함께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회원님들이 치즈 구입하는 걸 보고 임실치즈의 명성을 실감했습니다.
임실은 국내 최초로 치즈공장이 세워진 한국 치즈의 본산입니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가 1964년 산간벽지 임실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산양 두 마리를 기른 것이 첫 계기입니다. 산양의 수가 차츰 늘고 우유 재고가 넘치자 신부님은 프랑스 등의 공장을 찾아다니며 치즈 생산기술을 배워 농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지 신부는 1967년 첫 치즈공장을 설립했고, 1981년 협동조합 형태로 바뀐 뒤 2000년 임실치즈농협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 토종 치즈산업은 이제 정부 주도로 임실 치즈밸리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20분간의 쇼핑시간을 가진 후 사선대공원에 도착하니 12시 37분이었습니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전의 상류 물길인 오원천이 흐르고 주변에 울창한 송림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누드사진촬영대회가 열리고 있어 많은 남자 회원님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점심시간이어서 대회 장면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득한 옛날 진안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 운수산의 두 신선이 이곳 강가에 모여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까마귀 떼와 어울려 노닐었는데 이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네 선녀들도 내려와 함께 놀았다는 전설에 따라 이곳을 사선대(四仙臺)라 하고 까마귀와 놀던 강이라 하여 오원강(烏院江)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해설사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이곳은 임실 주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임실을 찾는 많은 탐방객들의 관광명소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공원이었습니다. 오원천 건너편에는 조각공원과 주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운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탐방을 생략하고 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13시 사선대를 떠나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의 석등 다음으로 큰 석등이라는 용암리 석등(보물 제 267호)에 도착하니 13시 15분이었습니다. 옥정호로 흘러들기 직전의 섬진강 물길이 지나는 신평면 용암리에는 원래 중기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옛 중기사 경내를 환히 밝혔을 이 석등은 높이가 무려 5.18m나 돼 웬만한 시골집의 지붕보다 더 높은지라 마을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큰 덩치가 머쓱하지 않게 몸체의 조각도 화려하고 섬세해서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상륜부가 없어진 것이 안타까웠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편이었습니다.
13:22 용암리 석등을 출발, 죽치령을 넘으니 2009년 9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장진영을 기리는 기념관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13:30) 이 기념관은 아버지 장길남(78)씨가 생전에 병으로 고생했던 딸을 편히 쉬도록 하기 위해 공기 좋은 이곳 산골마을에 마련했다고 합니다.
전시관(240㎡)에는 고인의 일기장과 의상, 장식품 등 각종 유품과 영화인생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진 영화관련 자료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장씨가 오랜 기간 어려운 학생을 도운 뜻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한 장학재단 사무실도 기념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공부방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마을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고 했습니다.
13:40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국사봉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임실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옥정호입니다. 옥정호는 1926년 처음 만들 땐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쓰는 정도였지만 1965년 다목적댐으로 탈바꿈하면서 주변 들판을 적시고 전기도 만들고 식수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인 셈인데, 이제는 임실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부상했습니다.
전국 어느 호수보다 아름답다는 옥정호는 그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데, 옥정호 아름다움의 백미는 가을 새벽녘의 물안개 풍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옥정호의 매력을 잘 감상할 수 있고 물안개 사진 촬영 포인트로 적격인 곳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이곳 전망대와 국사봉 정상(475m)이라고 합니다.
국사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산길을 20여 분 더 올라야 하고 거기에서 다시 30여 분을 더 걸어 오르면 오봉산 정상(513m)인데, 옥정호의 풍경이 가장 돋보이는 곳이라 합니다. 해설사님은 국사봉 정상에서 보는 옥정호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시간이 없어 이곳 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운암면 입석리와 용운리 사이의 호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유려한 곡선미와 호수에 떠 있는 두 개의 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아주 작고 또 하나는 아주 길고 넓었습니다. ‘외안날’이라 불리는 그 섬은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붕어섬이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다 합니다.
아흔 살이 넘은 박대서 할아버지가 뭍과 섬을 오가며 이곳 ‘육지 속의 섬’에 밭을 일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옥정호를 정원 삼아 살면서 조그만 조각배로 뭍을 오가는 불편을 감수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 있을 할아버지의 모습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한때 세상을 놀라게 했던 서진룸싸롱 사건의 주범이 숨어 있다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는 국사봉에 올라 옥정호의 물안개 풍경에 대한 취재를 한 후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습니다. “ .... 국사봉의 전망은 수묵화에 가깝다. 아침 동녘으로 해가 뜨면 하늘은 색을 얻고 붉어지나 출렁이는 산의 흐름은 여전히 검다. 가까워서 까만 산등성이가 옅은 농담(濃淡)으로 멀어질 뿐이다.
사이사이, 옥정호에서 발원한 물안개가 하얀 여백으로 풍경을 완성한다. 이때, 물안개의 힘은 구체(具體)를 지우는 데 있다. 호수를 지우고 붕어섬을 지우고 길을 지운다. 간혹 지우지 못하는 그 자체로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늘 안개가 지우는 대상이 다르니, 옥정호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수묵화다.”
전망대를 출발하자 옥정호의 호반드라이브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길 모롱이를 돌아설 적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광들이 변화무쌍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댐으로 생긴 호수가 한둘이 아니지만 이처럼 포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인가 하나 없는 길가에 모텔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지에 있는 모텔이지만 이곳의 모텔은 불황을 모른다고 합니다.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찍기 위해 전국의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라 합니다. 14시 25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강진면사무소 앞에 있는 다슬기탕 전문식당 성원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본래 예정했던 시간보다 1시간 30분 이상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여러 번 끓이게 되어 국이 퍼지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는 주인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슬기탕은 맛이 있었습니다. 위장병에 좋고 숙취, 신경통, 빈혈에도 효과가 있으며 간에도 좋아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그만입니다.
다슬기는 표준어이며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또는 올뱅이, 강원도에서는 골부리, 전라도에서는 고당이, 경상도에서는 고디라고 부릅니다. 발라낸 다슬기 살을 삶으면 밝은 초록색을 띱니다. 다슬기 살과 잘게 썬 양파ㆍ애호박ㆍ늙은 호박 따위 각종 채소와 다진 마늘 조금을 넣어 펄펄 끓으면 수제비를 뜯어 넣고 어슷 썬 청ㆍ홍고추를 얹으면 다슬기탕 완성입니다.
40분간 섬진강 다슬기탕 맛 기행을 즐긴 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도중 김용택 시인이 한때 근무했던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15시 17분, 시인의 생가마을인 진메에 도착했습니다. 강을 감싸고 있는 둔덕 같은 장산(長山)이 강물에 비친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마을 앞산의 모습이 옆으로 길게 뻗어 있어 순우리말로 '긴메'[長山]인데, 전라도식 발음으로 '진메'가 되었다 합니다. 시인은 '섬진강 15'에서 진메마을과 그 주변의 자연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마을 바로 옆에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주무대인 회문산이 우뚝 서 있어, 한국전쟁 당시 좌우익 투쟁의 역사가 잠시 떠올랐습니다. 마을에는 마침 김용택 시인의 사촌동생인 김도수 씨가 머물고 있어 170살쯤 먹었다는 정자나무 아래에 앉아 진메마을과 섬진강에 얽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에 들렀습니다. 집에는 홀로 사시는 시인의 어머니 박덕선 할머니도 계시지 않았지만 모든 곳이 다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활짝 열려 있는 서재 안 서가에는 시인이 애독했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서재에는 '觀瀾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그 음과 뜻을 몰라 궁금해 하는 회원님들이 많았습니다.
‘관란헌(觀瀾軒)’의 ‘觀瀾’은 <맹자>에 나오는 ‘觀水有術 必觀其瀾’(관수유술 필관기란ㆍ물을 바라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치는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의 ‘必觀其瀾’을 줄인 말입니다. 옛 사람들은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인생살이의 여러 가지와 견주어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급류를 탔을 때, 파란을 만났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두고 ‘必觀其瀾’을 교훈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관란서원(書院), 관란정(亭), 관란재(齋), 관란헌(軒), 관란문집(文集), 관란유고(遺稿) 등 생활 주변 곳곳에 ‘觀瀾’의 이름을 붙여 놓고 인생의 파란만장(波瀾萬丈)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김용택 시인이 서재의 이름을 관란헌(觀瀾軒)으로 지은 것도 옛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앞강의 흐름을 보면서 물의 본성(순리성)을 깨치고 그걸 인생의 교훈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지요. 더 자세한 내용은 우리 카페의 '회장 인사'코너에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입니다’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진메마을에서 40분을 머문 후 천담마을까지의 걷기여행에 나섰습니다. 장산리(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라 해서 첫 글자 한 자씩을 따서 '걷고 싶은 길 장천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 진메에서 지금은 문을 닫은 덕치초등학교 천담분교까지의 이 길을 김용택 시인은 걸어서 출퇴근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시인의 길'이라 하고, 시인은 '언제 걸어도 새롭고 경이로운 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3.8km 되는 이 길은 섬진강 500리길 중에서 유일하게 자연 그대로의 흙길입니다. 군도로 계획돼 군에서 포장을 하려고 했지만 시인과 마을 사람들이 반대해 지금처럼 유지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말했습니다. "당시 강물은 그대로 먹었을 정도로 깨끗했으며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았습니다. 청둥오리떼와 수달도 친구였고 산딸기도 많아 도시락에 가득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자연에 대한 애착은 그때 싹이 튼 것 같습니다."
이곳 섬진강 상류의 강물은 모래 대신 거친 바위를 감싸 안으며 흘렀고, 천담마을 쪽으로 걸어갈수록 길은 섬진강 따라 깊어졌습니다. 깊어지되 늘 볕이 들어 외진 곳을 향한다는 느낌 없이 여유롭고 따스한 분위기였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가는 실핏줄 같은 줄기가 만들어낸 '마르지 않을 강물'은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진메마을에서 출발하여 58분이 소요된, 16시 55분 천담마을에 도착했습니다. 5분간의 휴식을 취한 후 대기해 있던 버스를 타고 구담마을로 향했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섬진강 기행'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므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온다. 모든 길은 그 위를 오가는 사람이 주인이어서 이 강가 마을 사람들의 결혼도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가 길을 오가며 이루어졌다 ... 천담마을 앞에서 섬진강은 커다랗게 굽이치면서 방향을 틀어 구담, 싸리재, 장구목, 북대미 같은 작고 오래 된 마을 옆을 흐른다."
10분 후 구담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수백 년은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 있었습니다. 구담마을 당산터라는 그 언덕배기로 오르는 초입에는 정자 하나가 서 있고, 느티나무 아래에는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예술감독으로 유명한 이광모 감독이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인, 안성기, 배유정 등이 출연했던 영화였습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쪽에 데크 전망대를 가설해 놓아 섬진강이 크게 휘돌아가는 지점에 터 잡고 있는 회룡마을의 모습과 지금껏 흘러온 섬진강과 앞으로 굽이치며 나아가는 섬진강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으로 임실여행의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어 모두들 흐뭇해했습니다.
장산마을(진메)에서 출발하여 천담마을-구담마을을 거쳐 회룡마을까지는 총 7.2km로 약 2시간이 소요되는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더 와서 유유자적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담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걷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강물은 구례와 하동을 거쳐 광양의 망덕포구에 이르러 바다와 만날 것입니다. 그 여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옛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17시 40분, 구담마을을 출발하여 귀로에 올랐습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도로 정체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기름값이 한창 오를 당시에는 차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더니 요즘은 다시 정체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름값이 엄청나게 비싼데도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 되면 집을 비우고 산으로 들로 떠나는지? 멈춰서기를 거듭하는 버스 안에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비우고 피서를 떠나 도시 전체가 텅 비게 됩니다. 그래서 ‘비어 있다’는 뜻의 베이컨트(vacant)에서 바캉스(vacance)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은 마음의 자유를 얻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삶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마음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집을 비우고 떠난다고 해서 다 여행이 아닙니다. 여행의 참의미는 마음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한 미움과 욕심을 모두 버리고 여유를 찾는 데 있습니다.
불교 수행법의 하나인 만행(萬行)도 일종의 여행입니다. 그런 수행자들의 편력을 구름과 물에 비유하여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합니다. 구름처럼 떠도는 것, 물처럼 흐른다는 것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 머무름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집착심을 경계하여 길을 떠나는 것 자체가 바로 수행의 방편인 것입니다.
우리 여행자클럽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이란 이름은 속된 일에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을 편히 지냄을 이르는 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구름처럼, 물처럼 자유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자는 것입니다. 여행의 진수는 자유에 있습니다. 아무 데도 걸림이 없이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에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행동을 즐기면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그래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낯선 나'를 만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M.프루스트)
이제 곧 여름의 시작인 6월이 옵니다. 6월의 셋째 일요일엔 강원도 영월로 갈 예정입니다. 강원도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코스입니다. 단종 임금의 슬픈 역사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의 현장도 찾아갑니다. 여행 당일의 우리 삶이 한 편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공사다망하실 터인데도 불구하고 임실여행에 동참해 주신 45명의 유유자적님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6월 19일 영월여행 때 다시 길동무가 되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항상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즐거운 나날을 누리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