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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비고 |
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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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멸망, 5대 10국(~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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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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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공국 성립(~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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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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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 요의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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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
왕건 고려 건국(~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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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
발해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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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
신라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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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 |
고려 후삼국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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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 |
노비 안검법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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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8 |
고려 과거제도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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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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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윤(趙匡胤) 송의 건국(~1279) 가즈니 조 성립(~1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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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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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제국 탄생(~1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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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 |
전시과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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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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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북한(北漢)을 멸하고 중국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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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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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페왕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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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
강조의 정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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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
귀주대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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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 |
고려, 천리장성 축조(~1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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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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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투르크 건국(~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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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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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공 윌리엄, 잉글랜드 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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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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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의 변법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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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비고 |
1976 |
전시과 개정, 관제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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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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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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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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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몽 공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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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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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1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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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7 |
주전도감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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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
윤관 여진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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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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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금의 건국(~1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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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
이자겸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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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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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멸망, 남송 시작(~1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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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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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칠리아 왕국건설(~1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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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 |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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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 |
무신정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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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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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 막부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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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 |
최충헌의 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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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 |
만적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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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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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 칸 몽고통일(~1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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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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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헌장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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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
몽고와 통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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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
몽고의 제1차 침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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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
강화 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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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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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한국 건설(~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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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비고 |
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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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위 시대(~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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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 |
개경으로 환도, 삼별초의 대몽항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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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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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국 성립(~1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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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 |
여, 원 제1차 일본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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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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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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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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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삼부회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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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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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1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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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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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아 조 성립(~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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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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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랑스 백년전쟁(~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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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9 |
홍건적의 침입(~1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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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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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멸망, 명 건국(~1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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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 |
최영 왜구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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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 |
최무선 화통도감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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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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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 타일러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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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 |
위화도 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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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 |
박위 쓰시마 섬 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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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
고려 멸망, 조선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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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하였습니다.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 ^ 청자는 워낙 귀해서 서양에서는 같은 무게의 은과 동일한 가격으로 취급되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그만큼 귀중한 청자 - 고려청자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고려청자가 높이 평가를 받는 요인 중 하나가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려청자의 미적 평가도 대단하지만, 저는 중국 자기와는 한층 다르게 고유의 청자를 뽑아낸 고려인들의 자세에 주목하고 싶군요. 현대에서도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세계화와 정보화의 도래로 각 문화와 그로 인한 산물들을 시시때때로 접합니다.
1) 살펴 볼 수 -> 살펴볼 수 2) 뽑아 낸 -> 뽑아낸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문화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 역사에서 배울 점을 찾는 것이지요. 특색있게 고려청자를 만들어 낸 고려인들처럼 멋진 응용력과 창조력을 우리도 가져야겠네요. ^ ^
2) 배울점을 -> 배울 점을
최경희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역사를 배울 때에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문화”면에 치중하여 발표해 주신 점이 신선했습니다. 고려청자라는 것이 단지 고려 시대의 문화라는 단적인 의미 외에도 고려 시대의 사회와 문화, 대외 관계 등 여러 가지 측면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 나라의 경제, 정치, 교육이라는 면에 못지않게 문화라는 면으로도 충분히 그 나라의 시대적 상황과 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정신을 엿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던 계기였습니다.
1) 발표해주신 점이 -> 발표해 주신 점이 2) 고려시대의 문화라는 -> 고려 시대의 문화라는 3) 고려시대의 사회와 -> 고려 시대의 사회와 4) 대외관계 등 -> 대외 관계 등
수정했습니다.
고려청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려인들은 중국에서 자기와 유약을 수입하는 등의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한결 더 좋은 고려청자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고려인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해보겠다며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철저히 문을 닫고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였다면, 지금의 고려청자가 이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다른 나라의 본받을 점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태도를 피하고, 주체적으로 배워서 더 나은 우리나라의 문화로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시킬 줄 아는 고려인들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배워야겠습니다. 역사는 노력하는 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 발표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고려청자는 고려인의 삶의 자세와 정신이 그대로 묻어나있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고려인의 주체적인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려인만의 독특한 양식과 기법을 발견한 점과 중국에서 들어온 유약을 우리식에 알맞게 개발해낸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문화에는 그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유물을 통해 선조들이 갖고 있던 정신이나 자세를 파악할 줄 아는 안목을 지녀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