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에 쓴 글입니다. 우리네 삶과 권력에 대한 회한이 묻어있는 글입니다. 다시 읽어봅니다. -필자 | |
합장! (천지 기운을 모아서!) 재배!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정에!) 맞절! (우리 모두에게! 우리 모두 서로가 상주이고 문상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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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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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이런 일을 당할라고 그리 오래 몸이 아팠는지...
아들 챙겨준다고 서울 가서 해준 것도 없이 근 열흘을 잠만 자다 겨우 내려와 막 몸을 추스리려는 참에 이런 폭탄을 맞았구나.
마음이 질정없이 넋을 놓고 있는 바람에 여기 집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집안팎이고 꼴이 꼴이 아니다. 말 못 하는 짐승들이 무슨 죄라고... 산 목숨은 또 살아야지 하고 기운을 내서 편지를 쓴다.
혼자서 조용히 추모를 하겠다는 너에게 '그래 니 알아서 해라'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니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엄마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어나 앉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날 얘기부터 해야겠다.
엄마는 그때 무주에 살고 있으면서 진도에 집을 지으러 왔다갔다 할 때였다. 엄마 주민등록은 무주로 되어 있고 아저씨 주민등록은 진도로 되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무렵 투표 같은 건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기뻐한 한편 이제 세상은 이념과 정치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에 골로 가게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돈'이 필요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지 않으면 역사상 그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죽음이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기를 맞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시라고 생각하고 꼭 투표를 해야겠다는 아저씨와 함께 진도에 와서 아저씨 몫 투표를 하고 나니 오전 1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막상 투표를 포기하고 나니 엄마의 생각은 생각이고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는 엄마가 차가 없이 버스로 다닐 때라 진도에서 무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갈아타고 어쩌고 해서 시간이 일곱 시간 이상 걸렸다.
그때부터 뛰기 시작했다. 면사무소 투표소를 나와 읍으로, 읍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다시 무주 가는 버스를 탔을 때는 무주 진도리 푸른꿈 고등학교 투표소까지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투표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도 6시 마감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광주에서 무주 가는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무주 안성 진도리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데 마감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예에에? 아이고-- 이거 큰일났네."
하시더니 그 기사 아저씨는 핸들을 고쳐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장수 장계읍에 들어서자 5시 35분이 넘어 있었다. 기사 아저씨는 버스를 장계 파출소 앞에 세웠다.
"이 방법이 젤로 빠를 것이요. 따라 오쇼."
하더니 파출소로 들어가 경찰차를 대달라고 급하게 말했다. 근무중이던 경찰 분들은 너무나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이고, 투표함 걷으러 경찰차가 다 나가버려서 한 대도 없네... 이 일을 어쩌나... 어이! 김 순경! 김 순경! 어서 택시 불러! 택시!"
1분도 안 되어 택시가 왔다. 택시 기사도 얘기를 듣고서는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버스 기사도, 순경들도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양반이 대통령 되야제라.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 좀 살 만하제라. 어서 가쇼. 어서!"
투표소에 도착하니 6시 1분 전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투표를 했고 도저히 마음이 진정이 안 되어 장터 국밥집으로 갔다. 그때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을 때라 선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처음엔 불안했다. 저녁 여덟 시, 아홉 시 넘어가면서... 국밥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도 울었다. 감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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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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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이 서른 일곱이 되도록 엄마가 투표에서 찍은 사람이 당선된 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이 살았다. 끈질긴 열패감 속에서 젊은날이 다 갔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을 때 처음으로 그 원을 풀었고, 노무현이 당선되었을 때는 권위와 돈과 패거리 작당과 야비함과 죽임이 이기는 세상에 대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승리였다.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 속에 있는 그 열망의 상징이자 집합체였다.
그리고 5년이 갔다. 엄마로서는 천추에 한이 맺히는 5년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의 집합체였던 노무현은 초기부터 몇 놈만 잘 먹고 잘 살잘자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눈 감기고 미혹시키는 무리들에게 정면으로 도전을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5년 혹은 10년 동안 그전 세상에서는 꿈도 못 꾼 혜택을 보고 살았다. 군청에 들어가도 경찰서에 들어가도 그전처럼 주눅들지 않았고, 공무원이고 경찰이고 민원을 제일 무서워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폼이라도 잡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다. 주변에서 어쩔 수 없는 장애나 늙음으로 안타까운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이 나라 덕을 보고 사는 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아서 마음이 좋았다.
그런데도 천추에 한이 맺힌다고 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자신들의 온갖 욕망으로 말아먹어 버린 점이다. 지금 야당이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은 이미 '돈'과 '권력'의 맛을 보면서 사람들의 열망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 노무현 대통령... 휴우!... 엄마는 그렇게 훌륭한 정치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돈'과 '욕망'의 시대로 치닫는 데 제동을 걸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추긴 실수가 가장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결과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찍을 만한 다른 사람을 찾지 못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돈'과 '욕망'의 결합체인 지금의 대통령을 찍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지금 대통령처럼 '성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을 찍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의 집합체였던 노무현이 죽었다. 사람들 가슴 속에 있던 진정성, 정의, 탈 권위, 인간다움... 그런 것들이 자살 혹은 타살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리 슬피 울지 않을 수 없다.
아들아!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
새벽 잠결에 "죽었다!" 소리가 들리는데 밑도 끝도 없이 '쥐새끼가 죽었다고?' 하며 일어났다. 아무 근거도 없이 첫 느낌이 쥐새끼가 죽었다는 거였다. 곧바로 죽은 것이 쥐새끼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느낌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살다 보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기 의지가 아니라 다른 상징 혹은 다른 기운으로 들게 되는 경험이 때때로 있어서 더욱 그렇다.
엄마는 그때 박 대통령을 위한 추모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통령이 죽었다고 울고 불고 하는 사람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째려 보았다. 물론 어리고 젊은 기운에 그렇게 몰인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들아!
엄마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싫다. 잘살게 해준다는 대통령도 싫다.
아직 대통령이 필요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인간이 돈만으로는 살 수 없고, 명예나 정의나 정당한 권리도 필요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도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 지혜도 영혼의 안녕도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징검다리 하나를 단단히 놓아준 우리의 상징이었다.
아들아!
엄마가 꿈꾸는 대통령, 아니 대통령 이름조차 알 필요가 없는 그런 세상이 언제나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들아! 지금 엄마는 두렵다. 지금까지 사람들 마음 속 선(善)의 상징이었던 대통령이 악(惡)의 상징인 대통령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차렸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선의 의지가 도로 살아나고 있다. 악에 대항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피를 흘리고 죽어갈지 엄마는 두렵다. 선에 대한 의지가 강할수록 그 희생은 클 것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지금 대통령 마스크에 그대로 하얀 분칠만 하면 텔레비전에서 저승사자로 나오는 인물과 꼭 같다고... 엄마는 지금 대통령 얼굴이 어디 가서 실컷 얻어터져서 눈탱이고 광대뼈고 퉁퉁 부어터진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느낌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가 보더라.
아들아!
여기 진도에도 분향소가 차려졌다. 내일은 장날이니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다. 엄마도 장에 나가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엎드려 절을 해야겠다. 3.1운동 때에도 그랬고 지난 1987년 6월에도 그랬다. 전국 곳곳에서, 시골 장터에까지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이 그런 때다.
그리고 모래 저녁에는 씻김굿을 한단다. 진도 씻김굿 말이다. 망자의 한을 씻겨주는...
굿은 무당만 하는 게 아니라 모인 사람 모두의 기운이 모아지는 것이다. 엄마는 내일 모레 사이 곰곰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 한 몸, 내 한 기운으로 어떻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혼을 씻겨드릴 수 있을 것인지. 그 길이 무엇인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엄마가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절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 영혼은 죽어 그 영혼 그대로이고, 살아 못 푼 것은 죽어서라도 푸는 것이 사람이더라.
엄마 생각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 넋이 그냥 그대로 고이 잠들 리 없다. 그분 넋은 죽어서도 똑같은 꿈을 꿀 것이고 그 꿈이 모이는 쪽으로 오실 것이다. 그 어떤 넋보다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그리고 그분 넋은 이 세상이 그 꿈을 이룰 때까지 여전히 '투사의 넋'으로 삶과 죽음을 넘어 종횡무진 활약할 것이다.
아들아!
부탁한다. 분향소에 가거라. 가능하면 장례식에 나가거라. 가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크나큰 징검다리 하나를 놓았던 분, 지금도 놓고 있는 분, 이제는 죽음으로 단단히 새 세상의 징검다리를 놓을 분에게 절을 올려라.
그리고 사람들의 눈물을 보아라. 그 사람들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아라. 그리고 이 다음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해보거라. 아들아!
장진희 (무주에서 7년동안 농사짓고, 진도로 옮겨와 텃밭을 일구며 섬마을에서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과 필리핀 등 국제결혼한 엄마들과 그 자녀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