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후반 멕시코에서 일어난 에스파냐 정복자들과 아즈텍인 사이 끔찍한 학살 사건에 관한 퍼즐 조각을 과학자들이 맞춰냈다.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 연구진은 2019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한 마을유적지에서 아즈텍인의 에스파냐 포로 학살 증거를 발견했다. 당시 아즈텍 주민은 이들 포로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에스파냐의 아즈텍왕국 정복자인 에르난 코르테스(1504∼1547)가 줄테펙(Zultepec)이라는 이름의 이 마을에 대해 보복 공격을 명령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는 코르테스의 병사들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즈텍 주민들의 유해다.
연구진에 따르면, 아즈텍인이 제물을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테코아케(Tecoaque)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1520년 쿠바에서 출발한 에스파냐 선단을 습격해 에스파냐 남성 15명과 여성 50명, 아이 10명 등을 포로로 붙잡았다. 이중에는 쿠바 출신 에스파냐 병사 몇십 명과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은 아즈텍 인근 부족 출신 병사 몇백 명도 있었다.
연구진은 이 유적에서 발굴된 유해를 조사해 이들 포로가 문이 없는 감방에 감금된 채 살이 찌도록 사육됐고 인신공양 제물로 바쳐졌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발굴된 포로 유골들은 찢겨져 있고 뼈에서는 살이 제거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테코아케 주민들은 천천히 몇 달 동안 이들 포로를 인신공양하고 잡아먹었는데 그중에는 아이와 여성 그리고 임신부까지 있었으며 이들의 두개골은 전리품처럼 장식되기까지 했다.
이런 학살 사건으로부터 8개월쯤 뒤인 1521년 초 에르난 코르테스는 에스파냐 선단이 포로로 잡혀 학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부관 곤살로 데산도발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서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테코아케 주민들 역시 코르테스의 보복 공격을 미리 알아챈 것으로 나타났다. 유적에서 주민들이 인신공양한 포로의 뼈 등 모든 흔적을 우물에 던져 증거를 은폐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테코아케 주민은 마을 중앙에 방어책까지 마련하며 대비했지만, 1521년 3월 에스파냐 측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이 습격에서 일부 아즈텍 남성 전사는 도주하는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전사는 물론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유적에서 발굴된 흔적은 최소 12명의 성인 여성이 5, 6세 아이 10명을 보호하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방안에 남겨진 유골 흔적은 이곳에 숨었던 여성과 아이들 역시 죽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즈텍 사원들은 불에 타 사라졌고 조각상들의 목은 모두 절단됐다.
몇 달 뒤 에스파냐군은 동맹 부족과 함께 아즈텍왕국의 수도 테노치틀란을 함락했고 이후 목테수마 2세의 죽음으로 이 왕국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즈텍 문명은 결국 전쟁과 유럽인이 들여온 천연두로 인한 인구 감소 탓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연구를 주도한 고고학자 엔리케 마르티네스 박사는 테코아케 유적은 아즈텍 역사에서 에스파냐에 대한 저항과 왕국 붕괴의 시작을 나타나내는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https://news.v.daum.net/v/20210125160609350
첫댓글 어휴 인신공양 문명이 멸망 당해야할 이유죠
인신공양에서 자유로운 전근대 문명은 생각보다 없고, 우리 생각보다 오래 갔습니다 인신공양이란 게. 불과 옆나라에서 메이지 시대까지 애들 갖다 버리고 그랬거든요. 쟤내가 적을 만들고 다녀서 업보를 제대로 맞은 것도 맞긴 합니다만, 망할 망한 애들이었다...그러기는 좀 그래요.
솔직히 인권이란 개념이 보편화되기 이전 시기까지는, 많이 불쾌하고 혐오스럽더라도 어느 정도는 시대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프라이징너글맨 그래도 아즈텍은 선넘었잖아요... 살을 찌워 잡아 먹는 건 인간을 짐승으로 밖에 안본건데...
인신공양이 있다는거 이해하죠 신라도 성벽 쌓을때 아이들을 성에 묻고 그러기도 한거 이해합니다.
근데 사람을 살찌워서 잡아먹은건 와... 이건 쫌...
@BACCANO 일단은 저 연구진의 말도 더 찾아봐야 알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그냥 포로들 굶어 죽지 않게 밥 준 걸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네요. 가디언지의 해당 기사를 보니까 저 말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Members of the captured convoy were held prisoner in door-less cells, where they were fed over six months, the experts said.인데, 'fed'라는 말밖에 없었거든요.
일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즈텍을 무조건 문화상대주의의 입장으로 보고 무조건 착한 애들이다! 라는 건 아닙니다. 당대 코르테즈도 놀랐듯이 와...선넘네 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다만 쟤내가 무슨 싸이코패스 집단도 아니고, 쟤낸 또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 라고 한번 저런 행위들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거에요. 솔직히 요즘 역덕계에서 아즈텍은 무슨 악의 제국마냥 얘기되고 이거 반박하려니까 식인종이랑 한패지 소리에 별별 이상한 말들 다 나오더라고요.
@서프라이징너글맨 무슨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분명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것도 맞죠 하지만 먹을게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인신공양을 위해 사람을 사냥을 위해 꽃전쟁을 벌인건 멸망당했어야할 문명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어요...
ㄴ그런 문명은 세상에 없음
@BACCANO 그땐 인권이 없었을 때니까요. 역사 덕질의 맹점이 지금 관점으로 그때 사람에 감정이 이입만 된다는 건데 명심하셔야 할 건 그때는 진짜 신분제가 어느 사회에나 당연하게 여겨질 때였고, 모든 사람의 평등과 기본권 소유의 전파는 불과 백 년도 안되었다는 거에요. 그리고 꽃 전쟁이라는 것도 신화적 요소, 정치적 목적 등이 다분히 섞인 전쟁이지 막 사람 잡아먹자고 싸이코패스들이 벌이는 사냥, 가두리 양식의 개념은 또 아니에요. 그냥 저게 오늘날 멕시코 지역에서는 그게 정치였고, 사회체제인 거였어요.
그래서 어머머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죽여! 하고 막 엄청 이입하진 않다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한 역사가 생각보다 더 잔혹한 면이 많거든요. 그래서 역사 접할 때 마음을 굳게 먹고, 과연 기록에서 이랬다고 실제로 이랬을까? 하는 비판의식도 한번 가지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