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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전문번역가가 되었나? (에세르님의 제안에 대한 답1)
(추리, 미스터리 소설 등을 번역한 뒤의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는 에세르님의 제안에 답하기 위해 5년쯤 전에 이 카페에 올렸던 "전문번역가라는 직업"이란 글을 다시 올립니다. 제가 어쩌다 전문번역가가 되었고, 또 어떤 오류들을 범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바탕 이야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전문번역가는 번역을 해주고 번역료 받아 먹고사는 사람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소설가는 대개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거나 출판사에서 편집 따위를 병행하며 먹고살지만, 전문번역가는 오로지 번역만 해서 먹고산다. 그 말은 곧 소설만 써서는 먹고살기 어렵지만, 번역만 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60대 중반을 넘어서자 번역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싫증도 났다. 대충 계산해 보니 번역을 그만둬도 죽을 때까지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25년 동안 해오던 번역을 그만두기로 했다. 용돈이 궁해지면 슬그머니 또 집어들 것 같아서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해 아예 은퇴선언을 해버렸다.
번역 일을 하기 전에는 나도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착실히 했다. 그런데 10년쯤 머슴살이를 하고 나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이유보다 그만둬야 할 이유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멀쩡하게 잘 출근했다가 사표 던지고 귀가했더니 아내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그때 일을 들추며 원망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사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깜냥을 잘 알기에 그 이후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 조직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기껏해야 차장 진급해서 한두 해쯤 더 버티다 밀려났을 것이다. 그리곤 먹고살기 위해 구멍가게라도 열었다가 십중팔구 퇴직금까지 홀라당 날려버렸겠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사표를 던진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짓이었다. 퇴직 후 나는 전문번역가가 되어 25년 동안 백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먹고살았다. 저축은 못 했지만 직장생활 10년 동안 모은 재산을 까먹지 않았으니 현상유지는 한 셈 아닌가? 하긴 한 걸음도 못 나갔으니 결국 후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땅에서 번역으로 돈을 벌긴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가뭄에 콩 나듯 돈을 좀 번 사람도 있지만, 그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도 훨씬 낮을 것이다. 그래도 이 나라 소설가들의 평균 연봉보다는 번역가들의 평균 연봉이 훨씬 높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요즘 소설가들은 소설을 써도 실어줄 지면이 없고 출판해줄 출판사도 없는 형편이다. 상업성 있는 몇몇 소설가들의 작품만 출간되곤 했는데, 그들마저도 표절사건으로 더 이상 쓰기도 염치없게 되어버렸다.
도토리 키 재기 같지만, 그래도 번역가가 소설가보다는 벌어먹고 살기가 좀 낫다. 지난 25년 동안 번역만 해온 나도 돈은 못 벌었지만 먹고는 살았다. 몸은 약간 고달팠지만 대신 속이 편했으니 불만은 없다. 눈치 봐야 할 상사가 있나,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나. 나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미뤄 놨다 한꺼번에 하고 몸살만 된통 앓으면 되었다.
보통 책 한 권 번역하는데 짧게는 두어 달, 길게는 서너 달이 걸린다. 끝날 때까진 외출할 일도 거의 없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다. 단순하고 쉽게 살아지는데 복잡하고 어렵게 못 살아 안달할 이유는 없잖은가? 나의 행복은 현실보다 내가 번역하는 소설 속에 있었다. 그러니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어려운 때를 대비한답시고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번역가로 살아온 25년 세월 어디쯤에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현실과 픽션 세계를 맞바꾼 듯하다. 현실은 대충대충 살고 픽션 속에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런 내가 부럽다고 말한 친구들도 있었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떠나 픽션 속에서 살 수 있으니 너야말로 행복한 놈이 아니냐고 했다.
곤궁한 나를 위로하려는 말이겠지만 나는 듣기 싫지 않았다. 안 할 말로 돈 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소설을 쓰느라고 뼈 깎고 피 말리는 소설가들이 지금도 부지기수 아닌가? 그에 비해 나는 세계적 거장들이 몇 년씩이나 걸려 써놓은 역작들만 골라 우리말로 옮기며 맨 먼저 읽는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가히 신선놀음이었다.
재능이 없어 소설가가 될 수 없었던 나에게 전문번역가는 즐겁고 신나는 직업이었다. 작가처럼 뼈 깎고 피 말릴 일도 없었고, 접장처럼 돌 깨느라 속 썩일 일도 없었고, 월급쟁이처럼 손 비빌 일도 없었다. 출근이 있나, 퇴근이 있나, 근무시간이 있나, 명예퇴직이란 게 있나.
은퇴마저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에 했다. 그만두라 압력 넣은 사람도 없었고, 이제 그만 오라는 출판사도 없었다.
60대 중반을 넘어서자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어깨 근육도 뻣뻣해져왔다. 번역을 그만두라는 신호 같았다. 또 남의 글만 옮길 게 아니라, 이젠 내 글도 좀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꽤 행복한 남자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직업을 용하게도 찾아내어 마음껏 누렸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나의 꿈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다. 큰돈을 벌어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었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자원의 한계를 너무 잘 알았던 나는 가망 없는 꿈을 추구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적당히 게으르게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한 최소한의 재물만 모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취직 잘 되는 명문대 경영학과 나와서 직장생활 10년 견뎌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번역을 25년쯤 하고 나니 내 문장력도 꽤 좋아졌다. 덕분에 첫 번째 수필집인 <하찌의 육아일기>와 첫 번째 동화집 <배꼽마당 아이들>을 쓸 수 있었다. 번역가에서 수필가로, 다시 동화작가로 변신한 셈이다. 월급쟁이 때보다는 번역가 시절이 더 행복했고, 번역가 시절보다는 수필가 내지 동화작가인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그러고 보니 난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가끔 젊음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대로 곱다시 늙어가다가 글이라도 잘 풀려 수필집이나 한 권 더 내게 된다면 더 이상 욕심낼 것도 없지 싶다. 인생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 실패하고 슬퍼하기보다는 조금 낮게 잡아 달성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나는 어쩌다 전문번역가가 되었나? (에세르님의 제안에 대한 답2)
자, 이젠 털어놔야겠죠? 앞에서도 잠시 설명했듯이, 번역을 시작하기 전엔 저도 한 10년쯤 직장생활 착실히 했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우전자라는 회사에서 판매촉진부 과장까지 했죠. 그런데 월급쟁이 10년을 하고 나니 한계가 오더라고요. 더 올라갈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어느날 출근 잘 했다가 사표 제출하고 귀가했습니다. 그 동안 조그마한 아파트도 하나 장만하고 약간의 저축과 퇴직금도 나올 테니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죠 뭐.
뭘 하면 좋을까 하고 빈둥대고 있는데, 출판사 다니던 동생이 할리퀸 소설을 한 권 던져주며 번역해 보라고 했습니다. 하이틴들이 읽는 로맨스니까 쉽다는 거예요. 게다가 200자 원고지로 300매쯤 되는 소설을 200매쯤으로 줄여서 번역해 달라는 거 있죠? 누워서 떡먹기였죠. 왜냐하면 번역하다가 막히는 부분은 미련없이 빼버리면 되니까요. 앞뒤로 얘기만 통하면 되거던요.
번역을 본 편집자가 아주 마음에 들어했어요. 문장이 매끈해서 손볼 데가 없다면서 곧장 다음 작품을 건네줬죠. 그런 식으로 작업한 할리퀸이 아무 스무 권쯤 될 거예요. 그러자 주드 데브루나 주디스 맥노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데브루의 '가슴에 핀 붉은 장미'는 그 당시 대히트였죠. 10만부 가량이나 팔렸다고 하더군요. ^^
그런 과정을 거친 뒤 맨 처음 접하게 된 추리물이 바로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었습니다. 제 인터넷 아이디 '아이라 카이'도 거기서 따왔죠. 경상도 사투리로 '아니라니까'라는 뜻도 되고요.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바둑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거던요. 씨 유-^^
나는 어쩌다 전문번역가가 되었나? (에세르님의 제안에 대한 답3)
소설 '양들의 침묵'이 영화의 힘을 받아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하긴 영화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작고하신 소설가 겸 번역가인 이윤기 씨가 번역했는데, 한 보름 정도밖에 안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설적인 인물이죠.
암튼 소설 '양들의 침묵'으로 재미를 본 고려원은 작가의 전 작품인 '레드 드래건'을 저한테 맡겼습니다. 이 작품 번역을 끝낸 후의 행복감에 대해 나는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도 가감없이 늘어놓았습니다. 가슴 가득히 느낀 행복감 어쩌구 저쩌구. '양들의 침묵'만큼은 아니지만 '레드 드래건'도 술술 잘 팔려나갔습니다. 재미를 붙인 출판사는 해리스의 처녀작인 '검은 일요일'도 저한테 던져주었습니다. 나중에 번역하게 된 '한니발'까지, 저는 해리스의 소설을 무려 네 권이나 번역했지만 총 판매부수는 그 전부를 합쳐도 '양들의 침묵' 한 권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해리스의 작품이 '검은 일요일' '레드 드레건' '양들의 침묵' '한니발' 순으로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의 입맛에 따라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
나는 어쩌다 전문번역가가 되었나? (에세르님의 제안에 대한 답4)
자, 이제 에세르님이 기대하고 고대하시는 '오역'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해볼까요?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모든 전문번역가는 필연적으로 오역을 할 수밖에 없으며, 오역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번역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죠. 이 세상 대부분의 작가들은 책을 한 권 쓰기 위해 짧게는 몇 달 동안, 길게는 몇 년을 걸쳐 연구하고 조사하고 기획을 합니다. 그런데 전문번역가는 사전 한 권 달랑 들고 그런 책을 서너 달만에 번역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먹고살 수가 있으니까. 작가들은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지만, 번역가들은 1년에 그런 책을 최소한 대여섯 권은 번역해야 겨우 생계유지가 됩니다. 거기다가 언어의 장벽이란 게 있고, 개인의 역량과 한계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역경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번역가들의 실수를 비웃거나 비난해서는 안 돼요. 궁휼히 여겨야 합니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다빈치 코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이 작품은 번역자가 사전에 계약하지도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원서를 구입하여 번역한 다음 출판사에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낸다고 들었는데, 내가 이미 번역을 다했으니 이 원고로 출판하면 어떠냐?" 했던 것이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전문번역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방법을 고려해볼 가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되겠다 싶은 책을 미리 구입하여 선수를 치는 것이죠. 문장에 왠만큼 자신이 있다면 승률이 높습니다. 스릴러처럼 출판에 시각을 다투는 작품들은 말이죠. 암튼 다빈치 코드의 역자는 그런 방법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출판사는 여름 시장에 작품을 빨리 내놓고 싶었고, 원고를 검토한 결과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죠.
그런데 무난하지가 않았습니다. 한두 차례, 혹은 서너 차례 오역을 지적하는 걸로 넘어가질 않았던 거죠. 마침내는 신문에까지 오역 문제가 올라오자 출판사는 계속 침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느날 출판사 편집자가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어요. 다빈치 코드의 오역 부분을 좀 잡아주지 않겠느냐는 거였죠. 그런데 원고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두 군데, 혹은 서너 군데에 손을 대면 다른 문장들도 다 손을 대야 합니다. 결국 처음부터 모조리 새로 번역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시간과 노력이 들게 됩니다. 그러자면 칠팔백 만원의 비용이 들죠.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일이백 만원 정도로 마무리짓고 싶어 했습니다. 번역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일이백 만원 어치만 고쳐주고 말아야지 어쩝니까? 마음 같아서는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모조리 바꾸고 싶었지만 출판사나 번역계의 현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지른 오역은 그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한니발' 말이에요. 여름 시장에 내놔야 하니까 한 달 안에 번역해 내라고 했어요. 하긴 이윤기 씨는 '양들의 침묵'을 보름만에 번역했다니까, 한 달이면 꽤 넉넉한 편이죠. 그런데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붙잡고 씨름하는 스타일이라 시간이 태부족했습니다. 못하겠다고 나자빠질 수도 없고요. 생각다못한 나는 원서를 삼등분하여 다른 두 번역가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나중에 번역원고를 받으면 내가 최종적으로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습니다. 원고가 다 들어오긴 했는데, 꼼꼼히 들여다보며 앞뒤를 짜맞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여름 시장에 빨리 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충 앞뒤만 맞춰 출간을 했는데, 여기저기 말썽이 생겨났죠.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해선 안 되는 거였어요. 그간 마음고생을 좀 했는데, 다행히도 이번에 재출간 되면서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되어 얼마나 홀가분한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 끝. 에세르님 안녕.
첫댓글 Proud Mary!
물레방아 인생~ 멋지게 사셨네요^^
https://youtu.be/_ErUVbyAZ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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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악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풍님 불러 밥이라도 같이 묵어야 되는데, 요놈의 코로나가 수그러들 줄을 모르네요.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언제든 반갑게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