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포스팅한 최후의 카운트다운이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극장이나 비디오가 아닌 TV 방영을 통해 더 큰 존재감을 남긴 영화들이 몇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하는 웨스트월드라는 영화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명절 특선 대작까지는 되지 못하고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날에 살짝 방영되어 못 보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보신 분들에겐 2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잔상이 남겨진 문제작이죠.
로마시대, 중세시대, 서부개척시대를 똑같이 재현해 놓은 사막 위의 최첨단 테마파크 델로스(DELOS)가 작품의 무대입니다. 과학기술이 계속 발전해 나가면, 언젠가는 단순 놀이 공원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후와 지형 및 환경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하이테크놀러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영화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재미있는 설정은, 이러한 자연 환경만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법제, 기술력, 서비스 수준까지도 모두 해당 시대의 기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과 이를 수행하는 대역(사이보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죠.
때문에 여행자들은 이 문명의 이기가 복원해 놓은 과거의 시대에 뿅~! 하고 등장하여 단순히 관람자로서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회 속에 살아있는 한명의 자아로서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테마파크의 최대 메리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완벽할 것으로 믿었던 컴퓨터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건맨(율 브린너 분)이 폭주하게 되고(어린 시절 저 영화 처음 볼 당시 율 브린너의 눈에서 광선이 나갈 것만 같은 살 떨리는 포스를 느낌;;;;;) 그로인해 웨스트월드는 붕괴되어 버리죠.
그런데 여기까지의 내용을 다시 복기해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쥬라기 공원 입니다.
대상이 서부시대 총잡이에서 쥬라기 시대 공룡으로 바뀌었을 뿐, 두 작품은 모두 최첨단 기술력으로 과거를 재현해 내지만 결국 테크놀러지를 너무 맹신한 나머지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기본구조가 상당히 흡사하죠.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클라이튼이 바로 웨스트월드의 원작자 겸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이력을 조사하다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발견하게 되는 대목들이 참 많아서 순간순간 허걱(!)하게 되는데요.
미국을 대표하는 흥행 작가 중 한명이라는 대표 프로필 외에 특히 영화감독으로의 외도(?) 흔적에서 깜짝 놀래키는 타이틀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중학교 때 유선방송에서 갑자기 해줘서 봐버린 미래 경찰(원제: Runaway)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메이저 영화와 마이너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그럼에도 주연은 당시 잘 나가던 톰 셀릭) 제작비 추정 안되는 SF 영화였죠;;;;;;;
영화는 시종일관 블레이드 런너 분위기 내려고 구리게 찍은 티가 나는데, 너무 오바한 나머지 B급 분위기 물씬 풍기다가도 사이보그 벌레들 나오는 장면에서는 당시로선 상당히 디테일한 로봇들이 나와서 보는 내내 헷갈렸고(특히 로봇을 조종해 범죄를 저지르는 설정이 상당히 쇼킹!)
무엇보다 메이저계 감독들에서는 볼 수 없는 해괴한 앵글과 커트 감각 때문에 어린시절 유선방송에서 단 한번 시청한 영화임에도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수년 뒤(쥬라기 공원 소설이 국내에 소개된 뒤) 비디오를 구하게 되어 크레딧을 살펴보니... 헉! 각본/감독 마이클 클라이튼!
처음엔 잠시 이름을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이후 마이클 클라이튼의 과거 이력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보면서 그 천재성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미래 경찰과 함께 어린시절의 영감을 자극했던 또 한편의 SF 영화 웨스트월드까지 보태져서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본인의 작가적 상상력을 펼쳤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기존 과학계가 그의 작품들에게 상당히 삐딱한 시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역시 너무 많은 영역에 손을 담그는 과정에서 게임 회사(EIDOS) 하나 말아먹고 그 여파로 영화 타임라인까지 실패하는 악재를 겪었지만.. ㅠ.ㅜ
웨스트월드에서부터 터미널맨, 코마(로빈 쿡 원작), 대열차강도, 콩고, 스피어, 쥬라기 공원, 떠오르는 태양, 트위스터, 프레이, ER 등 … 수많은 화제작들의 원작 혹은 제작 스탭으로서 기량을 발휘해 오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는 앞으로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적으로 웨스트월드의 국내 비디오 출시명은 이색지대(때문에 이 제목으로 검색해야 나옴;;;;)이고.. 후에 속편 퓨처월드가 나왔었다는 소식은 접했었는데, 아쉽게도 이건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