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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Rouen)
루앙은 파리 서북쪽으로 약 100 km 떨어진 센(Seine)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시가지는 센강을 기준으로
우안의 구 시가지와 좌안의 신 시가지로 나뉜다. 좌안 지역은 2차 대전 당시 거의 파괴 되었다가
복구되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 중에 잔 다르크가 화형 당한 도시이다.
-루앙시 전경(구글사진)-
**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루앙은 전선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루앙을 더욱 황폐하게 하였으며
1944년 캐나다 군이 루앙을 해방시켰을 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재건은 예전의 루앙을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며 길의 폭도 예전과 똑같이 만들고 보도와 몇 백년 된 옛 건물들도 복원 해 놓았다.
루앙항은 바다가 아님에도 항구로 유명하다 , 파리에서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을
분해하여 기차로 싣고 와서 미국으로 보낸 항구가 바로 이곳 루앙이다.
오늘날 루앙에는 11만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노르망디 지방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루앙 시가-
** 구시가지 초입이다.
-잔 다르크(Jeanne d'Arc ; 1412~1431) 기념성당-
**고古 건물 가운데 독특하게 생긴 현대식 건물이다. 1979년 5월 27일 준공되었다.
잔 다르크(Fr.어 : Jeanne d'Arc,1412,1,6~1431.5.30) 또는 성녀 요안나 아르크(Latin어 : Sancta Ioanna de Arc)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이자 로마 가톨릭의 성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성인의 이름을 라틴어로 표기함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도 요안나라는 세례명을 쓴다. 잔(Jeanne)은 미국식으로는 존(John)이고 한국에서는
요한 또는 요안, 스페인어 권에서는 후안(Juan)이다. 여성 명사는 'a' 가 붙어 '요안나'가 된다.
-본당 지붕과 연결된 긴 덮개 지붕-
**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대칭이거나 같은 모양이 없는 본당 지붕은 남쪽으로 길게 지붕이 연장되어 있다.
마치 배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이 보인다. 지붕 밑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그늘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고
석관처럼 보이거나 성벽같이 보이는 단순한 모양의 흰색, 사암 조형물이 놓여있다.
-성당 지붕 뒤로 보이는 화형 장소에 세워진 높다란 십자가-
프랑스 동북부 지방 '동레미(Domremy)'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 참전하여 괴멸의 처지에 놓인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고 실지를 회복하였으며 지금까지 공식적인
대관식을 한적이 없던 프랑스에 왕세자 였던 샤를 7세가 정식 국왕으로 대관식을 치룰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정치적 이해 관계와 내부 권력 다틈으로 반대파인 부르고뉴 사람들에게
마지막 전투에서 사로잡혀 현상금과 교환하여 잉글랜드 측에 넘겨진다. 3개월에 걸친 마녀 사냥
종교 재판과 시민 재판으로 프랑스를 구한 영웅은 말뚝에 묶인채 산채로 화형 당한다.
1431년 5월 30일, 19세의 영웅의 시신은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도록
세 번의 화형을 집행하고 유골은 센강에 뿌려졌다.
-잔 다르크에 바치는 헌시-
**길게 뻗은 일주(一柱)지붕 밑에는 길고 거대한 기념비가 있다. 마치 담벽 같이 보인다.
이 비碑에 새겨진 글(전 문화부장관/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의 글).
오 잔느, 무덤도 없이 형체도 없이,
그대는 아는가 영웅들의 무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는것을....
O Jeanne, Sans Sepulcre et Sans Portrait
Toi qui savais que le tombeau des heros est le coeur des vivants....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전하는 멧세지-
** 잔 다르크 기념성당 벽에 걸려있는 명문의 내용은
"1979년 5월 27일 이곳에 기념 성당을 준공하고, 1990년 의회의 결정에 따라
잔 다르크에 감사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비유 마쉐 광장(Place du Vieux Marche= Place of old market)-
** 교회 앞에는 정리되지 않은 듯한 돌무더기의 건물 기초가 남아있다.
생 소뵈르(Saint-Sauveur)교회의 건물터이다. 이곳은 지난날 장터(Marche=market)였다.
-비유 마쉐 광장(Place du Vieux Marche)에 남아 있는 교회 건물터-
** 성당 앞 거리에는 전통적인 노르망디 반 목조 건물이 늘어서 있다. 성당을 포함한 주변 대지는
거의 다 옛날 시장터이고 성당에 인접 해 북쪽은 현재도 수산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성 잔다르크(Saint Jeanne d'Arc) 교회 뒷뜰에 서 있는 십자가-
-화형대를 대신하여 서 있는 십자가와 화형모습 그림-
**정말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잔 다르크"의 화형 장면과
비슷한 그림이다(구글그림 편집).'잉그리드 버그만'이 단발머리로 17세의 소녀역을 하지만
얼굴은 중년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잔 다르크가 209일 간의 영국군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오를레앙 성을 구출하였으며 먼 훗날 오를레앙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미시시피강 하구에
정착하여 '새로운 오를레앙(뉴올리언스= New Orleans)를 건설한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도 했었다.
-십자가 앞에 조성된 화단-
-성당 출입구-
-성당 내부-
**성당 천정은 뒤집어 놓은 배의 형상이며 신자 석은 제대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성당은 1979년에 지어진 것이지만 13조의 아름다운 르네상스식의 스테인드 그라스는
예전의 생 뱅생(Saint Vincent)에서 철거해 온 것으로 16세기
스테인드 그라스 장인들의 작품이다.
-제대 주변 모습-
** 장방형의 제대 뒤, 정 중앙에 이 성당에서 가장 굵은 기둥이 지붕을 버티고 있다.
-성당 내부 전경-
** 사진의 맨 오른편 코너(3시 방향)에 실물대의 동상이 서 있다(다음 사진).
이 성당은 2002년 10월 30일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성녀 잔 다르크의 동상-
** 1999년에 세워진 고뇌하는 모습의 가냘픈 여인상 주변에는 아름다운 촛불 봉헌대가 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일자무식의 시골 소녀가 달변으로 왕을 설득하고 한번도 승리가 무언지를 모르는 군대를 이끌고
209일 간 영국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오를레앙 성을 구출하고 이어서 무적의 기사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여
고통받던 프랑스 국민을 해방하고 국왕의 대관식을 주도한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시기와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교황 갈리스토 3세로부터 위임받은 종교 재판소는 잔 다르크가
무죄라고 판결하고 그녀를 순교자로 선포하였다. 그녀는 1909년 시복, 1920년 시성되었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 된다.
-루앙 대성당 가는길-
** 성 잔 다르크 교회에서는 남동쪽으로 거의 일직선 골목길을 따라 약 500 m 가면 대성당을 만나게 된다.
-대성당 가는 길에 만나는 아취와 시계탑-
** 대 시계의 거리(그호 오홀로쥬 가街 ; Rue Gros-Horloge)로 명명된 골목길에
버티고 섰는 아취 위에 아름다운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대 시계( Le Gros-Horloge)-
** 고딕 양식의 종루와 르네상스 양식의 눈금반, 바늘이 시침 하나 뿐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시계로 19세기부터 작동되고 있다.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골목길-
** 잔 다르크 기념 교회에서 대성당을 향하는 골목길은 반 목조 가옥들이 늘어선 루앙의 최대 번화가이다.
거의 일직선 골목이어서 대성당의 첨탑이 등대처럼 보인다.
-루앙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Rouen)-
** 서쪽을 향한 정면의 모습이다.
-루앙 대성당 전경(2컷 이어붙임)-
** 역사적인 도시 루앙의 중심에 위치한 루앙 대성당은 고딕 예술의 발전 모습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몇 세기를 지나며 파괴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계속 변화하며 살아있는 건축물로 남아 있다.
1063년에 세운 로마네스크식 성당 위에 1200년 경에 공사를 시작했다. 13세기까지
본당을 중심으로한 원형이 완성되었고 이 후 1544년에 준공되기까지 여러번
증.수축하여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딕의 각 양식을 고루 갖추게 되었다.
-전면 상세-
** 전체길이 135 m, 천정 높이 28 m, 종탑은 82 m와 77 m 두 채이고 82 m 종탑에는 잔 다르크라고 불리는
9,500 kg 의 종이 있다. 첨탑은 151 m 로 프랑스의 성당 첨탑 가운데 가장 높다.
창문은 13~16세기 스테인드 그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모네의 그림과 실사-
** 햇빛에 따라 흰색, 황금색, 갈색, 푸른색, 오렌지색으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이 하늘의 빛갈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 중 일부-
** 1894년 경에 그려진 작품으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892년 모네는
대성당 건너편에 있는 포목점 윗층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2월부터 4월까지 2개월 동안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으며, 이듬해에는 조금 떨어진 다른 방에서 작업을 하였다. 1895년 5월에는
루앙 대성당 연작 중 20점을 뒤랑 뤼엘의 화랑에 전시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1점에 1만 5000프랑이라는
비싼 가격에 팔렸다. 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시점을 두고 비스듬한 구도로 성당의 남서 쪽 장면을 그렸다.
(네이버 백과에서 발췌)
-대성당 내부 # 1-
-대성당 내부 # 2-
** 성당의 가장 동쪽 끝 부분(유럽의 대성당들은 평면도가 십자가 형태임으로 십자가의 머리부분)
-대성당 내부 # 3-
** 사암 원반을 쌓아 올려 만든 기둥의 원반의 두께는 대체로 얇고 일정하지가 않다.
공사의 신속성과 작업의 용이성을 감안하면 두께를 두껍고 일정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원반을 앏게하여 작업양이 많아지고 작업 또한 어렵지만 각기 다르게 만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대성당 내부 # 4-
** 경건하게 보이는 촛불이 거리로 나오면 떼거지가 되는것인가?
-구 시가지 풍경 # 1-
** 구 시가지를 순회하는 꼬마 관광열차를 이용하면 손쉽게 시간을 절약하며 관광할 수가 있다.
-구 시가지 풍경 # 2-
-구 시가지 풍경 # 3 -
-센(Seine)강-
쥬미에쥬 수도원(Abbaye de Jumieges)
쥬미에쥬 수도원은 654년 성 필리베르(Saint Philibert)신부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790년 페쇄되기까지
노르망디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베네딕틴 수도원이었다. 혁명 당시에 국가재산으로 팔렸으며
혁명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채석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25년 간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겨우 살아 남아 있는 1/3 정도의 잔해 뿐이다.
수도원은 루앙 서쪽 28 km 지점, 센(Seine)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수위들의 숙소(porter's lodge) 또는 수도원 입구-
**쥬미에쥬 수도원 입구이며 초기에 '수위들의 숙소'로 부르던 건물이다.
건물 앞 광장에는 식물의 줄기로 엮은 배가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 입구의 내부-
** 네오 고딕 양식의 건물이며 오른편에 매표소와 출입구가 있다.
-성당과 수도원 조감도-
**1678년 쥬미에쥬의 Gallicanum 수도원(왼편이 북쪽이다).
-위의 조감도를 기초로 재 구성한 개념도-
**1678년 경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붉은 색으로 칠한 부분이 오늘날 남아서 보이는 잔해이다.
⓵. 회랑의 지붕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지금도 경탄스러운 노트르-담 성당
⓶. 로마네스크 건축의 걸작인 성 베드로 성당.
⓷. 지붕이 완전히 없어진 회랑 ⓸. 승려들의 생활 관련시설
⓹.1670년 경 건설된 카롤링 르네상스 시대 양식이 남아있는 수도원장 숙소
-보수 중인 수도원 건물-
**현대의 어떤 역사학자는 "프랑스에서 가장 경이로운 유적"이라고 기술하였고, 바이런(Byron),
라마르땡(Lamartine) 기타 여러 예술가와 문인들의 뒤를 이어 1835년 이곳을 방문한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투르뉘(Tournus)보다 더 정교하다고" 술회 하였다.
필자 註 : 투르뉘(Tournus) 수도원은 브르고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수도원으로 1000~1019 년에 완공되었다.
-수도원 성당 노트르-담의 두 탑-
** 11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정면과 현관(Facade & Porch,파사드 와 포취)은 순수하고
매력적이며 초기의 목재 첨탑을 가진 46 m 높이의 두개의 탑이 양측에 붙어있다. 박공벽과
고미 다락이 있는 거대한 현관은 로마네스크 시대 이전의 전통이 남아 있는것이다.
-수도원 성당 중앙 홀(동쪽 제대 방향)-
** 중앙홀 신도석 궁형 천정의 높이는 3층으로 25 m 로 당시의 노르망디에서 가장 높다.
-수도원 성당 중앙 홀(서쪽 입구 방향)-
** 노트르-담 수도원 성당은 전형적인 노르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040~1067년에 세워졌으며
거대한 규모와 균형미를 갖춘 건물이다.(중앙홀의 서쪽 입구 방향)
-수도원 성당의 개념도(윗 사진)-
** [1],중앙홀 신도석 옆의 대형 회랑. {2} 트리뷴(Tribune:바실리카식 교회의 2층 행정관석 또는 주교座.
[3}, 상부 유리창, [4], 성가대석 옆 위쪽으로는 회랑의 탑 높이와 같은
46 m 의 십자가 양 날개쪽, 익랑翼廊을 밝히는 등탑燈塔이 있다.
13-16세기의 채색이 복도나 기둥머리에서 발견된다.
-부속 건물의 잔해-
페캉(Fecamp)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주, 알바트르(Albatre) 해안의 주요 항구이자 아름다운 해안가 휴양지이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과 다양한 전시관, 역사 건축물 등을 고루 갖춘 관광지로 명성을 얻고있다.
페캉은 신석기 시대와 고대 갈로 로만(Gallo-Roman) 시대의 유적지가 발굴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쥬미에쥬로부터 약 1시간 30분 소요의 거리이다.
-트리니테 수도원 교회(Eglise abbatiale de la Trinite)-
**수도원은 7세기에 세워졌으나 바이킹의 침략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11세기 초 베네딕틴 수도회의 주도로 페허 위에 새로운 수도원이 세워졌다.
12세기 말에 트리니테 수도원 교회(Eglise abbatiale de la Trinite)가
추가로 들어섰다.
-페허의 성터(Ruines du chateau ducal)-
** 수도원 성당 앞 길 건너에 있는 노르망디 령 최초 공작이 거주하던 거성居城의 폐허가 남아 있다.
-성당 내부-
** 신자석 중간에는 홍보용 걸개 그림이 세워져 있다.
-제대 앞-
-성당 내부-
** 중세 시대에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아리마테아 요셉(Joseph of Arimathea)이
예수의 피가 묻은 나뭇가지를 페캉 해안으로 가져와 씻었다는 전설이 입소문을 타면서
순례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Naver)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보혈 함(The Tabernacle of Precious Blood)-
**또 다른 전설에는 그리스도의 핏 방울이 기적적으로 페캉에 전해졌는데 이 보혈은 11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귀중한 순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흰 대리석의 보혈함은 1507년 제노아의 조각가
지롤라모 비스카르도(Girolamo Viscardo)가 제작한 것이다. 그는 15세기 피렌체의 보혈 함에서
영감을 얻어 수직적 배치로 그렸다. 그림들은 문에는 십자가 刑, 그리스도의 보혈을 담는 천사들,
부활, 지붕의 삼각형 박공에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가 그려져있다.(성당내 걸개 그림에서 발췌)
- 페깡 항구(요트 전용 내항)-
**16 세기에 르 아부르(Le Havre)와 경쟁하면서 페깡은 한동안 뉴펀드랜드의 대구잡이 항으로 명성을 날렸고
1973년에는 프랑스 4대 어항이자 최고의 대구잡이 항이었다. 오늘날 쇠잔한 원양 어업은 관광업이 대신한다.
-외항(소형 보트용)-
**외항의 오른편(사진의 3시 방향)에는 갑문이 있다. 대서양의 간만의 차이가 커서
항구에는 갑문이 필요하고 항내도 갑문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갈 해변-
-해 변-
-갑문이 있는 항구 북쪽 해안-
** 외해에서 선박이 입항하고 있다.
-해변에서 본 항구쪽의 풍경-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