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 람 료
- 수덕사 문화재관람료
개인 - 어른 2,000원 / 중,고등학생 1,5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 어른 2,000원 / 중,고등학생 1,200원 / 어린이 800원 (30명 이상)
- 길안내
-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 - 45번 국도 - 40번 국도 - 수덕사 (1시간 30분)
ㆍ천년 고찰 품은 ‘湖西의 금강산’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자리잡고 있는 덕숭산(德崇山)은 찾아가는 길부터 색다르다.
험한 산골을 넘거나 넓고 깊은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쉽게 다다를 수 있다.
가족 관광객과 나들이 산행객이 즐겨 찾는 이유다.
덕숭산은 차령산맥이 서해로 달려가다 마지막쯤에 기운을 모아 힘껏 솟구친 산이다.
해발 495로 작고 아담하지만 두루뭉술한 인근 산과는 달리 힘찬 산세를 지니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안면도와 서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울창한 숲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렸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금북정맥의 등줄기인 덕숭산의 고개는 낮은 편이라 내포지방과
서해 바닷가 사람들의 주요 내왕로 역할을 했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가장 살기좋고 인구밀도가 높았던 지역들이 덕숭산을 중심으로
위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다고 다가 아니요, 선풍(仙風)이 있어야 명산”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덕숭산은 명산이다. 이웃의 가야산(678)보다 낮은데도 수덕사라는 천년고찰의
본산이 됐기 때문이다.
덕숭산은 동쪽의 수암산부터 시작해 용봉산·홍동산·삼준산·연암산·뒷산·가야산에 이르기까지
260~678 높이의 크고 작은 산들로 빙 둘러싸인 가운데 오롯한 바위산으로 솟아 한 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덕숭산의 자랑거리는 산의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修德寺)다.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에는 우리나라 불교계 4대 총림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1308년 창건됐다. 고려말 공민왕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손꼽힌다.
건립 연대가 뚜렷해 고건축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국보 49호로 지정돼 있다.
손꼽힌다. 건립 연대가 뚜렷해 고건축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국보 49호로 지정돼 있다.
수덕사 부근 계곡을 따라가면
소림초당·향운각·금선대·견성암·
전월사·선수암·망월대·금강암·
계루암·정혜사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을 만날 수 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와
지붕과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수덕사 뒤쪽 등산
로를 오르다보면 정혜사와 견성암
등 암자가 보이는데, 옛날 경허와
만공 등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덕사는 ‘3덕(德)’이 모인 곳이기
도 하다.
산 이름 ‘덕숭’(德崇)과 절 이름
‘수덕’(修德), 마을 이름 ‘덕산’
(德山)에 ‘덕’이 들어있다.
그래서 ‘덕을 숭상한다’는 산의
의미가 절로 느껴진다.
덕숭산 정상 부근에 있는 능인
선원은 100여년전 만공 스님이
금선대라는 초가를 지은 게 시초가
됐다.
능인선원은 근대 선의 등불을 밝힌 ‘한국불교의 태산’ 경허·만공 선사와 선농일여(仙農一如)를 실천한
벽초의 선맥을 잇는 ‘선지종찰’의 대표적인 선원이다.
덕숭산은 조선시대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선(禪)을 되살려 근현대 한국불교를 개창한
경허 선사의 가르침을 잇는 곳이다.
수덕사의 산내 말사인 정혜사에는 경허의 제자인 혜월·만공 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수많은
비구·비구니들이 몰려 들기도 했다.
산의 북쪽 능선은 가야산으로 이어진다.
두 산은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과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있어 1973년 3월6일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덕산온천과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등이 가까이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돌계단·능선 따라 ‘참선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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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산행은 수덕사에서 시작된다.
수덕사 주차장을 지나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일주문에 들어선다.
왼편에는 수덕여관이 눈에 들어온다. 동양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이 살던 곳으로
유명한 수덕여관은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 화백이 생전 직접 써서 걸어놓았다는 현판과 뜰 앞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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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산행코스는 수덕사 대웅전 옆에서 정혜사까지 이어진 1020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수행·정진하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느껴볼 만하다.
처음에는 견성암을 향해 오른다. 암자의 돌담길과 헤어질 때쯤에는 오른쪽 임도로 들어선다.
그 끝에는 한적한 공터에 부도와 해태상이 서 있다. 거기서부터는 가파른 능선길이 이어진다.
10여분쯤 오르면 만공 스님(1883~1946)이 참선을 위해 거처하던 소림초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위로는 만공이 세웠다는 7.5의...
거대한 미륵불입상이 있다. 만공탑 왼편 길을 따라 100 정도 올라가면 스님들의 참선 도량인
정혜사가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정혜사 앞마당은 덕숭산 제일의 조망터로 용봉산과 수암산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해미읍내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하지만 그곳이 정상은 아니다. 정상까지는 바위와 흙으로 이뤄진 등산로가 기다리고 있다.
정혜사를 출발한 지 10여분쯤 지나면 능선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오른쪽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올라야 정상이다. 북쪽 4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우람하게 솟은
가야산의 모습과 그 오른편으로 예당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하산길은 완만해 어렵지 않다. 정상 표석에서 정확히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는 게 편하다.
중간중간에 빨간색으로 쓰인 ‘산불조심’ 깃발을 만나면 안심해도 된다
수덕사 풍경
덕숭산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는 현존하는 백제고찰의 하나로 창건에 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백제 위덕왕(威德王
AD 554-597)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수덕사는 창건 이후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 스님이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 강론을 폈으며, 고려 충렬왕(忠烈王) 34년(1308)
에는 대웅전(국보 49호)이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중수기(重修記)에 의하면, 중종(中宗)23년(1528), 영조(英祖)27년(1751)과 46년(1770), 순조(純祖)3년
(1803)에 색채보수, 부연과 풍판의 개수등 4차례 보수한 기록이 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만공스님 대에는 대웅전 전체를 해체보수하였고 이때 포벽에서는 고려,조선 양시대에 걸쳐 그려진 벽
화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벽화의 안쪽에서 발견된 고려 벽화는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공양화도(供養花圖), 수화도(樹華圖) 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오불도(五佛圖)등이 있었지만 유실되고 없으며, 현재는 그 모사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사진자료가 일부 전해지고 있다.
현재 대웅전 건물 내부 대들보에 남아있는 금룡도(金龍圖)는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있는 필치의 걸작으로 고려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산마애삼존불상 국보 제 84호
소재지 :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구
형 식 : 본존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의 3존형식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雲山面) 용현리(龍賢里)에 있는 백제 말기 마애삼존불상. 높이 본존상(本尊像) 2.8m, 보살입상(菩薩立像) 1.7m, 반가상(半跏像) 1.66m. 가야산(伽倻山) 절벽 중턱 동남단 화강석에 조각된 삼존불로, 여래입상(如來立像)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반가사유형(半跏思惟形)의 보살좌상, 오른쪽에는 보살입상이 각 1구씩 배치되어 있다.
본존은 머리에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이 있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는 작다.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눈은 행인형(杏仁形)으로 뜨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법의는 두꺼워서 거의 몸이 나타나 있지 않다. 옷주름은 앞에서 U자형이 되고 옷자락에는 Ω형 주름이 나 있다. 수인(手印)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앤다는 시무외(施無畏)와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킨다는 여원인(與願印)으로 왼손 끝 두 손가락을 꼬부리고 있다. 발 밑에는 큼직한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있고 광배 중심에는 연꽃, 주연(周緣)에는 화염문이 양각되었다.
보살입상인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은 머리에 일월식(日月飾)이 있는 높은 관을 쓰고 상호(相好)는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를 잡고 있다. 천의(天衣)는 두 팔을 거쳐 앞에서 U자형으로 늘어졌으나 교차되지는 않았다.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하체의 법의는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발 밑에는 복련연화좌가 있고 머리 뒤에는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중심에 연꽃이 있을 뿐 화염문은 없다.
좌협시보살인 반가사유상은 두 팔이 크게 손상되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상호는 원만형(圓滿形)으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상체는 나형이고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있고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주름이 나 있다. 발 밑에는 큰 꽃잎으로 나타낸 복련대좌(覆蓮臺座)가 있고 머리 뒤에 있는 큰 보주형 광배는 우협시보살의 광배 형식과 같다.
이 삼존상은 《법화경(法華經)》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 즉 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의 삼존불로서 《법화경》 사상이 백제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하는 사료이다.
---------야후 백과사전 자료 인용함-------------
산행 후 용현리(하강당마을)로 내려서니 도로에 눈이 아직도 모두 녹지 않은 상태이다. 차량이 다니기는 해도 모두 거북이 걸음이다. 마애삼존불을 관람하기 위해 북쪽으로 약 300m 이동하면 용현리 마애삼존불 전각이 보이고 안내판도 만들어 놓아 금방 알 수 있다.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방선암이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읊었다는 장소로 안내판이 있고, 바위에 방선암이라 음각이 되어 있었다.


서산마애 삼존불은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 다행이 다리가 놓여져 있고, 안내판이 잘 안내를 하기 때문에 마애불까지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백제인의 미소를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의 숫자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계단은 눈을 깨끗이 청소를 하여 한 계단 두 계단 올라가다 보면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관리사무소의 좌측편으로 불이문을 지나면 보고싶어 하던 마애불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사진으로 찍으니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각을 만들었는데 이 전각 때문에 더 훼손된다고 하여 전각을 철거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중앙에 석가여래입상이 미소를 띄고 있으며, 제화갈라보살입상과 미륵반가사유상이 좌우에 조각되어 있다.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백제인의 미소라 부른다.

덕숭산 산행 풍경
주차장에서 출발
정혜사 못미처 오른쪽으로 .
정혜사 뒷문
정상풍경
수덕사와 주차장과...
수덕사 주차장
정혜사 가는 길
정혜사 앞쪽 능선에서...
정혜사 앞쪽 능선에서 본 수덕사 전경
그리고 다시 수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