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방인 異邦人
그런데 장정들이 떼로 모여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구레나룻 장정이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레나룻은 어릴 적부터 동네에 소문난 싸움꾼이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웃 동네까지 적수가 없을 정도의 완력과 깡다구를 자랑하던 석 태란 인물이다.
생김새도 특이하다.
눈동자가 파랗다.
코는 주먹코에 머리카락도 검은색보다 금빛이 더 많아 보인다.
분명 이방인 異邦人 출신, 색목인 色目人이다.
서역 西域에서 온 것이다.
본인도 잘 모르지만, 멀지 않은 조상 중에 서역 출신이 있을 것이다.
성격도 괄괄하여 대장간 내에서도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일반 장정들 서너 명이 달려들어도 석 태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장간의 일꾼 중 7, 8명은 석태의 수하 手下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 유명한 우악스러운 석태가 쪼그마한 어린 녀석에게 단번에 내가 떨어졌으니, 모든 사람이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다.
석태의 수하 중 제일 힘이 세다는 종삼이가 먼저 선제공격한다.
이중부의 안면을 왼손으로 가격한다. 이중부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피하며 고개를 숙이는 종삼의 턱을 오른발로 차버린다. 발길질 단 한방에 종삼은 턱이 깨어졌는지“악”하더니 턱을 부여잡고 바닥에 나뒹군다.
이어 한준에게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종삼의 형인 종육이 한준의 주먹에 왼쪽 눈을 맞고는 비틀거리자 한준의 돌려차기 발길질이 종육의 목 후두부를 정확하게 가격한다. 종육은 그대로 힘없이 쓰러진다.
이중부의 기상천외 奇想天外한 복 원앙각, 삼족오 발길질에 쓰러졌던 대장간의 소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 생각도 없이 한켠에서 말없이 싸움터의 전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소년의 눈빛은 의혹과 경이 驚異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제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뒤늦게 합류한 대장간 장정들 손엔 이제 몽둥이가 들려있다.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란 걸 재차 깨닫고 몽둥이까지 동원한다.
이중부와 한준도 마음을 다잡아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길 가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싸움 구경에 신이 났다.
서너 명이 쓰러져있고 몽둥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전쟁터 같아진다.
그때 “그만”하는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넓은 공터에 울려 퍼진다.
검은 갈기의 갈색 말을 타고 나타난 한 장정이 큰소리를 지른 것이다.
“대형 大兄 오셨습니까?”
갑자기 대장간의 장정 중 태반이 고개를 숙이며, 새로 나타난 마상 馬上 위의 장정에게 공손하게 예를 표한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그제야 대장간의 군기반장 석태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석 태는 새로 나타난 마상의 장정을 보고는
“형님 오셨습니까?”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읍을 한다.
“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쌈질이냐?” 하더니 대장간의 소년을 보더니, 얼른 말에서 내려
“소공자, 괜찮아요?” 하니 '소공자 少公子'라 불린 소년은
“예 괜찮아요, 아저씨는 여긴 어쩐 일로 오셨죠?” 한다.
“지나가던 길에 이곳이 소란스러워 들러봤어요”하더니 이중부와 한준을 돌아 봤다.
그제야 서로를 마주 본 세 사람, 그러자 셋 모두가 “어…. 어~”하더니 웃는다.
말을 타고 나타난 장정은 다름 아닌 석늑이었다.
12. 석늑과 석태
알고 보니 석늑은 석태의 종형 從兄이었다. 둘은 사촌지간 四寸之間이다.
석 태가 대장간에서 일하게 된 것도 석늑의 소개로 된 것이었다.
싸움이 벌어진 연유를 이야기 듣고 석늑은 웃으며 석 태를 돌아보며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여기 이 소형제 小兄弟들은 여기에 있는 대장간 식구들 절반이 덤벼도 어찌할 수 없는 용사 勇士다, 무술의 달인 達人이다라는 말이다.”
순간, 석 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누군가, 나는 세상에 석늑 형님 빼고는 무서울 게 없는 난데, 조금 전에는 방심으로 실수를 했을 뿐인데’ 하며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는데,
“너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을 못 믿는 모양인데, 한 번 더 해 볼 거야?”하니 석 태는 “아뇨 형님이 그렇다면 그런 게 맞지요”라며 감히 도전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못한다.
그러자 석늑은 한술 더 뜬다.
“여기 소형제들은 내 재주로도 장담 못 하는 실력자들이다” 그래도 석 태는 반신반의 半信半疑한다. 본인이 알기로는 천하무적의 종형인데…. 석태의 표정을 흘깃 보더니 석늑은 한마디 더 던진다.
“너 십칠 선생님은 알고 있지?” 그러자 석태의 얼굴과 태도가 급히 존경의 표정으로 바뀌더니,
“예, 십칠 선생님, 알고 말고요”
“너 잠깐 이쪽으로 와 봐” 하더니 담장 쪽으로 종형제가 같이 가더니 석태에게 조용히 말한다.
“십칠 선생님께서 여기 소형제들을 문하 門下에 거두어들이실 의향 意向이 있는 거로 알고 있네”
“넷!” 석태는 깜짝 놀란다.
십칠 선생의 명성이 자자한바, 그 문하 門下에 입교 入校하려는 자와 자녀를 둔 수많은 부모가 십칠 선생을 모시고자 찾아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는 일화 逸話는 유명하다.
모든 지원자를 마다하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석늑만이 정식 제자가 아니라, 집사 執事의 자격으로 십칠 선생 곁에 머물고 있었다.
석늑이 십칠 선생의 집사가 되는 과정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자 받기를 거절당하고, 일 주야 一週夜를 문밖에서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장작을 패기도 하고 텃밭 일도 도와주기도 하며 한 달가량을 보냈을 때, 옆 동네에 도적 떼가 나타나 마을을 약탈하며, 부녀자 두 명을 납치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옆 동네 촌장이 십칠 선생에게 도움을 청 하고자 왔으나, 때마침 십칠 선생은 며칠간 출타 중이었다.
십칠선생은 한 번씩 출타 出他하면 사, 오개월씩 집을 비우기 예사였다.
옆 동네의 변고 소식을 듣고, 분노한 석늑은 종제인 석태를 데리고, 둘이서 도적 떼 소굴을 찾아가 도적들 5명과 사투를 벌여, 도적 떼들을 쫓아버리고 부녀자들을 무사히 귀가시켰다.
나중에 ‘고맙다’라며, 흑염소 한 마리를 사례 謝禮로 가져온, 옆 동네 촌장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십칠 선생은 석늑이 보여준 의협심 義俠心과 무용 武勇을 감안 勘案하여, 집사 執事 신분으로 집에 머물게 하였다.
그래도 석태는 그런 석륵이 부럽기 짝이 없다.
십칠 선생님을 모시고 곁에서나마, 여러 가지 학문과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선망 羨望의 대상이었다. ‘하다 보면 정식 제자나 후계자가 될 수도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런 석늑이 자신의 종형 從兄이라며 자랑하고 다니기도 하고, 자기의 수하들을 부릴 때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늘같이 우러러보는 십칠 선생께서 이제껏 마다하던 기명제자 記名弟子를 받고자 한다니 충격적인 이야기다.
또한, 그 대상이 조금 전 자신을 쓰러뜨린 꼬마들이라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다.
머릿속이 혼란스럽지만, 본인이 존경하는 종형의 표정이나 어투가 너무 진지하여 믿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 꼬마들의 능력이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물음표만 뇌리에 계속 쌓여간다.
먼 산자락에서는 이제 막 꽃을 떨군, 산 벗꽃 나무 위로 얼기설기 엮인 다래 덩굴과 노박덩굴이 서로 경쟁하듯이, 연두색 새싹들을 힘차게 토해내며 새로이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 48. 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