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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전연구원 학림 제17기 『맛지마 니까야2』 제 1강 후기
◈ 삼귀의계와 오계
◈ 원장스님 인사말
드디어 17기 학림이 개강하였습니다.16기 학림에 동참하고 다시 등록하신 분들, 그리고 새롭게 등록한 법우님들 모두 반갑고 고맙습니다. 신축불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17기학림까지는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게 됨을 양해드립니다. 돌아오는 가을학림에는 신축불사가 끝나고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모임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우리가 맛지마 니까야를 공부하는 이유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생로병사를 겪고 있는 이 오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맛지마 니까야 『성스러운 구함경 M26』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로병사를 겪고 있으면서 또 생로병사를 가져올 그런 것만 구하고, 어떤 사람은 생로병사를 겪고 있지만, 그 생로병사의 재난을 알아서, 생로병사가 없는 열반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성스럽지 못한 구함과 성스러운 구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역시도 깨달음을 얻기 전 보살이었을 때 생로병사를 겪고 있으면서도 생로병사를 가져올 그런 것들을 구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로병사에서 재난을 알아서 열반을 구하겠다고 생각하고 출가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으십니다.
이 학림공부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생로병사를 겪고 있으면서도 또 생로병사를 가져올 그런 행위들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성스럽지 못한 구함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스러운 구함쪽으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에서 재난을 알아서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는 성스러운 구함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열 번 진행되는 학림에 가능하면 빠지지 말고 집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유익한 시간 되십시요.
◈ 제 1강 내용 요약 (각묵스님)
■ 도입
작년 11월 초순에 16기 학림이 끝나고 4개월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17기학림에서 법우님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4개월 중 두 달 동안, 11월 29일에서 1월 28일까지 60일을 치앙마이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서 못 갔는데, 저는 치앙마이에 가면 번역도 잘되고, 또 중요한 부분의 마무리는 그곳에서 해왔기 때문에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있었음에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31도까지 올라가고 좀 더운 편이었는데, 하루 두 세번씩 포행도 해가면서 지내기는 했는데, 지난 1월 28일 한국으로 오니 갑자기 영하 10도, 영하 12도까지 막 떨어지니 예전과 달리 몸이 빨리 적응을 못해서 지금까지도 조금 그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최상의 몸 상태로 학림을 시작하지 못한 점 양해드립니다.
지난 16기 학림에서는 맛지마 니까야 제 1장 『뿌리에 대한 법문품』을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1품을 구성하는 10개의 경전중에서 마지막 열 번째, 염처경 『마음챙김의 확립경M10』은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또 학림에서 이미 다루기도 해서 앞의 9개 경전을 공부하는 것으로 회향을 했습니다.
이제 17기 학림에서는 맛지마 니까야 제 2장의 『사자후품』을 공부하겠습니다. 제 2장에서는 『사자후의 짧은 경M11』을 포함하여, 『사유를 가라앉힘 경M20』까지 총 10개의 경전을 공부하겠습니다.
이번 학림에도 150여분의 많은 분이 등록을 하셨는데, 이렇게 함께 공부하게 되어서 기쁘고 또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공부할 부분을 몇 번씩 읽고 또 정리하면서 스스로 공부가 많이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위대성에 대한 감탄을 몇 번이나 하게 됩니다.
이번에 등록한 150여분중에서 처음 등록한 분들이 40여분정도 됩니다. 그동안 학림에 동참해 오신 법우님들은 많이 익숙하시겠지만 처음 오신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익숙한 법우님들은 다시 한번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초기불교에서 바라본 불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시간을 우선 가지겠습니다. 카톡으로 이미 자료를 배포하였으니 참조하시면 됩니다.
■ 초기불교에서 바라본 불교란 무엇인가
우리는 초기불교를 가지고, 부처님 원음을 가지고 불교를 공부하고 있으니,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초기불교 입장에서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교라 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비구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에는 ‘석가세존의 근본교리’를 봉체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종헌 제 1장 종명 및 종지 제 2조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바 각행원만 (自覺覺他 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그 종지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교학과 수행과 전법이 조계종의 근본 종지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2장 본종, 기원 및 사법 제 4조에는”본종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불교란 무엇인가를 다음의 다섯 가지 상식적인 질문으로 정리합니다.
1. 불교란 무엇인가?
2. 불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3. 불교의 이론은 무엇인가?
4. 불교의 실천은 무엇인가?
5. 불교의 특징은 무엇인가?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며, 불교의 목적은 행복입니다.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특히 궁극적 행복인 열반의 실현을 불교에서는 으뜸으로 추구하며 이를 위한 이론적인 측면과 실천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이론적인 측면은 나의 문제, 세상의 문제, 진리의 문제이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부처님께서는 6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蘊處界根諦緣이 바로 그것이며, 세부적으로 5蘊12處18界22根4諦12緣입니다. 각각 蘊根은 나의 문제, 處界는 세상의 문제, 諦緣은 진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성제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다루고 있고, 12연기로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蘊處界根諦緣으로 해체해서 이해하더라도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는 37보리분법의 실천수행이 필요합니다. 37보리분법은 7가지 항목으로 세분할 수 있고, 각각 四念處, 四正勤, 四如意足, 五根, 五力, 七覺支, 八正道입니다.
마지막으로 불교가 가진 특징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해체해서 보기는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그들 스스로를 위밧자와딘(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해체해서 봄으로써 법의 특상인 무상·고·무아가 드러나고, 염오가 일어나며, 이욕, 해탈, 구경해탈지로 이어집니다.
해체해서 보기는 바로 위빠사나이며, 37보리분법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로 말하면 위빠사나입니다. 위빠사나는 분리해서(Vi) 본다(passana)라는 의미이며, 여러 주석서에서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고도의 수행을 통해서 무상·고·무아에 사무치게 되면 염오가 있어납니다. 상황이나 근기에 따라서 무상 혹은 고 혹은 무아의 어느 하나라도 사무치게 되면 염오가 일어나게 됩니다. 모든 주석서에서는 염오를 높은 단계의 위빠사나라고 하며, 무상·고·무아를 고도로 통찰해 들어가면 염오(원장스님께서는 넌더리로 번역)가 일어납니다.
삼계에 대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넌더리를 치게 되면 탐욕이 빛바래게 됩니다. 이것은 이욕의 단계이며,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의 성자가 되는 그 찰라의 단계입니다. 탐욕이 빛바래면, 진정한 해탈에 이르고,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성자가 되는 경지로 설명합니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기는데, 우리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구경해탈지라고 이름하며, 반조의 지혜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해체해서 보기, 무상·고·무아, 염오, 이욕, 해탈, 구경해탈지의 여섯 단계를 통해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합니다.
1. 불교란 무엇인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시며, 성스러운 진리를 깨친 분이십니다. 부처님께서 깨친 성스러운 진리는 바로 4성제(四聖諦, cattari ariya-saccāni, four noble truths)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것을 三藏이라 하고, 경장, 율장, 논장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교의 목적과, 교학 및 수행을 중심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2. 불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행복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도 하며,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겁니다.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양한 행복을 말씀하셨는데,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궁극적 행복입니다. 금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보시와 지계, 즉 봉사와 도덕적인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에서도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이 나타납니다. 내생의 행복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며, 마찬가지로 보시와 지계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윤회를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내생에 선처(천상과 인간계)에 태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처에 태어나는 방법으로써 보시와 지계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불교의 지계 혹은 도덕은 바로 5계를 지키는 것으로 살도음망주(殺盜淫妄酒)를 금하는 겁니다. 궁극적 행복은 열반의 실현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반은 탐진치가 해소된 경지입니다. 37보리분법이나, 사마타, 위빠사나등을 통해서 한걸음씩 부처님 가르침으로 닦아나가면 열반에 이를 수 있겠다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은 주로 재가자에게 설하고, 궁극적 행복은 주로 출가자에게 설하셨습니다. 궁극적 행복의 실현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라 할만한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강경』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의 “일체중생을 모두 무여열반의 경지에들게 하는 것 (一切衆生, 我皆令入 無餘涅槃 以滅度之, te ca mayā sarve’nupadhiśeṣe nirvāṇadhātau parinirvāpayitavyāḥ)”이 보살행의 목적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반야심경』에서는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viparyāsa-atikrāntaḥ niṣṭhā-nirvāṇa-prāpta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3. 불교의 이론은 무엇인가? 5온12처18계22근4성제12연기입니다. 5온(蘊, khandha), 12처
(處, āyatana), 18계(界, dhātu), 22근(根, indriya), 4제(諦, sacca), 12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이 여섯 가지는 불교 이론의 기본 이며 『반야심경』의 핵심입니다.
4. 불교의 실천수행은 무엇인가? 37보리분법(菩提分法, 助道品,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 bodhipakkhiya-dhamm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4념처, 4정근,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의 7가지 주제 37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께서는 수행에 몰두해야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할 수 있다고 설하십니다. 7가지 주제는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즉 4념처와 4정근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를 닦음으로써 열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4념처와 4정근은 공통적으로 필요하지만, 4여의족, 혹은 5근, 혹은 5력, 혹은 7각지 혹은 8정도는 사람에 따라서 어느 하나의 수행 경로를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5. 불교의 특징은 무엇인가? 해체해서 보기입니다. 해체가 왜 중요합니까? 나를 오온으로, 세상을 십이처․십팔계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이나 고나 무아가 보이고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보면 염오, 즉 넌더리가 일어나고, 넌더리가 일어남으로 해서 탐욕이 빛을 바래고, 탐욕이 빛을 바래므로 해서 해탈하고, 해탈하므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구경 해탈지’가 생깁니다. 이를 정리하면 해체해서 보기-무상·고·무아-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여섯 단계의 가르침이 됩니다.
■ 『사자후의 짧은 경 (Cūla-sīhanāda Sutta M11)』
-사자후(sīhanāda)란 의미는 sīha(사자)-nāda(소리)의 결합어임. 주석서에 따르면 ‘다른 교설에 의해서 깨뜨려지지 않고 자신의 교설을 명쾌하게 밝히는 두려움없는 소리’ 혹은 ‘뛰어난 소리이며 우둔하지도 않고 포악하지도 않는 사자가 내는 최상의 소리’로 설명함. 부처님과 불교 교단에만 있는 뛰어난 가르침으로 마치 뭇짐승들이 사자후를 듣고 두려워하듯, 부처님의 이러한 사자후를 듣고 외도들은 두려워하고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의미임. 사자후란 수승한 소리이고, 두려움없는 소리이며, 논박할 수 없는 소리이기도 함.
-본경은 총 17개의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음
-“여기에만 [즉 불교 교단에만] 사문이 있다”고 대사자후를 설하시고 그 이유를 말씀하심. 그 당시 6사외도등 많은 사문집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교단에만 사문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선언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단,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함
-『앙굿따라 니까야』 「사자경 S22:78」에서 부처님께서 오온의 무상을 설하시자 신들조차도 두려움과 공포와 전율에 빠짐. 오온을 사성제의 입장에서 설하신 내용임. 자료집 참조
-『디가 니까야』 「대반열반경 D16」에서 어떤 법과 율에서든 8정도가 있는 곳은 네 종류의 사문이 있음을 설하심
-본경은 크게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짐
⓵여기에만 사문이 있음
⓶구경의 경지를 완성한 자가 여기에만 있음.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 갈애, 취착, 현명한자,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자,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 자의 여덟가지 구경의 경지를 완성한 자들이 여기에만 있음
⓷상견과 단견의 일어남, 사라짐, 달콤함, 재난과 벗어남의 다섯가지를 아는 자가 여기에만 있음
⓸네 가지 취착 (欲取, 見取, 戒禁取, 我語取)을 여읜 자가 여기에만 있음
⓹9지연기로 취착의 원인을 역관의 생멸문과 순관의 환멸문으로 꿰뚫어 아는 자가 여기에만 있음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
본문에 나오는 네 종류의 사문은 각각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을 의미함. 성자가 아닌 수행자는 엄밀히는 불교 교단 안에서도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사문이 아니라는 대선언이기도 함
3. “비구들이여, 여기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존자들은 무슨 근거와 무슨 힘으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다른 외도 유행승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우리에게 네 가지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바르게 보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반들이여, 우리는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행을 원만하게 갖추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호의를 가진 동료 수행자들 즉 재가자와 출가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우리에게 네 가지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바르게 보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기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우리도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스승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계행을 원만하게 갖추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행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호의를 가진 동료수행자들 즉 재가자와 출가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 깨끗한 믿음에 관한 한 그대들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특별한 점이며 무엇이 차이점이며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는 다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구경의 경지는 하나입니까, 아니면 구경의 경지는 여럿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구경의 경지는 하나이지 여럿이 아닙니다.’라고,
‘그렇다면 그 구경의 경지는 탐욕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탐욕을 여읜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탐욕을 여읜자에게 있지, 탐욕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성냄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성냄을 여읜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성냄을 여읜자에게 있지, 성냄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어리석음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어리석음을 여읜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어리석음을 여읜자에게 있지, 어리석음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갈애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갈애을 여읜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갈애을 여읜자에게 있지, 갈애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취착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취착을 여읜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취착을 여읜자에게 있지, 취착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현명한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현명하지 못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현명한 자에게 있지, 현명하지 못한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자에게 있지,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렇다면 그 구경의 경지는 사량분별을 즐기고 사량분별을 기뻐하는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분별을 기뻐하지 않는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분별을 기뻐하지 않는 자에게 있지, 사량분별을 즐기고 사량분별을 기뻐하는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6.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나니, 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존재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고 존재에 대한 견해에 압도되고 존재에 대한 견해에 빠져서 비존에 대한 견해에 저항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고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압도되고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빠져서, 존재에 대한 견해에 저항한다.”
7.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두 가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탐욕을 가진 자요, 성냄을 가진 자요, 어리석음을 가진 자요, 갈애를 가진 자요, 취착을 가진 자요, 현명하지 못한 자요,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요, 사량분별을 즐기고 사량분별을 기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8.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두 가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탐욕을 여읜 자요, 성냄을 여읜 자요, 어리석음을 여읜 자요, 갈애를 여읜 자요, 취착을 여읜 자요, 현명한 자요,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않는 자요,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분별을 기뻐하지도 않는 자이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9-17문단은 다음시간에...
◈사홍서원
◈ 감사의 글
*보리원 신축 불사가 안전하게 회향되기를 기원합니다.
*두 분 스님이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생방송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는 방송반께 감사드립니다.
*학림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학림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부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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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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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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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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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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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