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神話)의 인물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
4. 서산방조제(瑞山防潮堤) 정주영 공법(工法)
정주영 공법(서산만) /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시위 / 나의 금강산 관광 1, 2(1999년)
▶2번째 사진: 누운 사람 김대중•김영삼
또 한 가지 놀라운 이야기는 서산만(瑞山灣) 방조제(防潮堤) 공사이다. 서산만 방조제 공사는 서산 A지구 방조제로 간월호(看月湖)가 생겼고, 서산 B지구 방조제로 부남호가 생겼는데 새로이 간척(干拓)된 땅은 어마어마하여 여의도 면적의 40배나 된다고 한다. 1974년, 극동건설(極東建設)이 충남 아산(牙山)에 아산만(牙山灣) 방조제를 건설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충남 홍성(洪城)에 서산(瑞山)방조제를 쌓는데 1982년에 서산 B지구가, 1984년에 서산 A지구가 완공된다.
이 서산방조제는 정주영의 작품인데 이곳은 간만(干滿)의 차가 심하고 물살이 거세다 보니 만(灣)을 막으려고 물속에 돌을 쌓으면 물살에 휩쓸려가서 도저히 공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듣고 정주영이 현장을 살핀 후 마침 고철로 쓰려고 수입해온 길이 332m, 22만 6천 톤 대형유조선이 울산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이 유조선을 끌고 와서 물을 채워 바닥에 갈아앉히고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을 때 돌을 집어넣고 살펴보았더니 거센 조수가 몰려와도 돌이 떠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공사에 박차를 가하여 돌을 쌓아 올리고 난 다음 배를 다시 띄워 울산으로 돌려보내고 완공했는데 공사비를 예상했던 것보다 290억 원이나 절감했다고 한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공법으로, ‘정주영 공법’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5. 정주영의 아산병원(峨山病院) 설립
정주영의 호(號) 아산(峨山)은 고향이었던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아산(峨山)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낙후된 의료시설을 혁명을 일으킨 계기 중의 한 가지가 정주영이 전국에 걸쳐 설립한 아산병원(峨山病院)이라고 할 것이다. 처음부터 아산병원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2002년, 아산사회복지재단(峨山社會福祉財團) 이사장인 정주영의 아들 정몽준(鄭夢準)이 병원들의 명칭을 아버지의 호(號)를 붙여 아산병원(峨山病院)으로 통일하였다.
처음 병원을 개원하면서 정주영이 내 건 슬로건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정주영의 병원 개원을 보면 78. 7월 전북 정읍(井邑), 78년 11월 전남 보성(寶城), 79. 3월 경북 영덕(盈德)요양병원, 79년 충남 보령(保寧), 80년 8월 서울 용산 금강(錦江), 89년 6월 서울 용산, 96년 11월 강원 강릉(江陵) 등 병원을 설립하였고 2030년까지 인천 청라 아산병원도 개원할 계획인데 8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이라고 한다.
그 훨씬 이전, 1963년부터 시작된 서독 광부 진출은 총 8천여 명이 진출하여 우리나라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고, 1966년도부터 간호사도 서독(西獨)으로 진출하는데 총 1만여 명이 진출하였다.
처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초청했던 서독은 한국인들의 성실성과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는데 박정희는 이곳에서 자동차전용도로(아우토반, Autobahn)를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 또한 정주영 회장과 손을 맞잡고 이루어 낸 최고의 쾌거이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권들은 쓸데도 없는, 차도 없는 나라에서 고속도로가 웬 말이냐며 반대시위를 벌이고는 했는데 박 대통령과 정주영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밀어붙이는데 우리나라 현대화의 출발이다.
위의 사진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앞에 드러누운 두 사람이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 김영삼’이다.
6. 금강산(金剛山) 관광 성사(成事)
정주영은 1974년부터 불기 시작한 중동 붐(Boom)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또 현대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인 포니(Pony)를 생산하였으니 박정희(朴正熙)와 함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신화(神話)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주영은 1992년에는 제14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김영삼에 밀려 낙마했고, 김대중 시절이었던 1998년 6월과 10월에 소 1,001마리를 끌고 직접 판문점 통과하는데 어릴 때 아버지의 소를 판 돈을 들고 집을 나온 반성이었을까....
그리고 바로 그해 김정일을 설득하여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 정주영의 은덕으로 나는 금강산 만물상을 비롯하여 두루 관광하는 복이 있었다.
7. 옥스퍼드(Oxford) 경영학 박사(^^) 정주영
정주영은 학력은 비록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생전에 그가 성취한 신화에 가까운 성공담(成功談)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에서도 영국 바클레이즈(Barclays) 은행에서 차관(借款)을 받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정주영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무작정 베클레이즈 부총재를 찾아가서 사업계획서를 내밀자 해외 담당 부총재가 정주영에게 물었다.
‘당신의 전공은 경영학(經營學)입니까, 공학(工學)입니까?’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정주영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는데 마침 바로 전날 옥스퍼드(Oxford) 대학에 가서 졸업식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어제 옥스퍼드에 가서 사업계획서를 보여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주더군요.’
곧바로 농담을 알아챈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 경영학박사도 이런 계획서는 만들지 못할 겁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Humor)군요.. 허허’
‘즉시 수출신용보증국(ECGD)으로 가서 신청하세요. 통과하실 겁니다.’
정주영은 경희대, 충남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고려대, 한국체대 등 7곳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철학, 경영학, 공학.... 등등 각 분야에서 받았으니 팔방미인(?)이라고 해야 하나....
정주영은 한창때 키가 175cm, 체중이 70kg 정도로 나하고 얼추 비슷하였으니 멋있었겠다. ㅎㅎ
정주영은 슬하에는 정몽구, 정몽준 등 8남 1녀를 두었고 2001년 향년 86세로 영면(永眠)하였다.
8남의 사진을 올려본다. 딸 이름은 정지선
정몽필(1934~1982:48세 卒) / 정몽구(1938~) / 정몽근(1942~) / 정몽우(1945~1990:45세 卒)
정몽헌(1948~2003:54세 卒) / 정몽준(1951~) / 정몽윤(1955~) / 정몽일(1959~)
※장남 정몽필은 교통사고로 사망 ※4남 정몽우는 정신병으로 시달리다 음독자살
※5남 정몽헌은 2003년 불법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하여 12층에서 투신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