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자라목에서 잤다. 조금 일찍 일어났으면 멋진 해맞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금오산 향일암(金鰲山向日庵 ) / 전통사찰
-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644년(신라 선덕여왕 13) 원효(元曉, 617~686)가 창건하여 원통암(圓通庵)다.
958년(고려 광종 9)에 윤필(輪弼)이 중창한 뒤 금오암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1849년(헌종 13) 무렵에 현 위치로 옮기고 책륙암(冊六庵)으로 개칭.
근대에 경봉(鏡峰, 1892~1982)이 절 뒷산에 있는 바위가 거북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영구암(靈龜庵)이라 하였다.
향일암으로 개칭한 것은 최근이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조금 고침)
향일암 홈페이지 내용이다.
윤필(潤筆)대사 / 백과사전엔 윤필(輪弼)
광종 9년(950) / 백과사전엔 958년(고려 광종 9), 홈페이지 950년 틀린 것이다.
조선 숙종 41년(1715)에 돌산 주민들이 논과 밭을 시주하여 인묵 대사께서 관음전 아래에 대웅전을 짓고 금불상을 조성 봉안.
해를 향하는 암자, 대일여래(비로자나불)께 귀의한다는 뜻의 <향일암>으로 개명하였다.
1949년에 편찬된 '여수지'에 따르면 이렇다.
<백 년 전에 지금 이곳으로 옮겨 건축하고 기해년에 이름을 향일암(向日庵)으로 바꾸었다.
암자가 바위 끝에 붙었고 계단 앞은 벼랑인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향일(向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향일암 홈페이지 향일암 역사 기록은 모순을 안고 있다. 향일암이란 이름이 1715년에 중창한 후 생겼거나, 1849년에 절을 옮기고 생겼거나, 알 수가 없다.향일암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곳에 몇 번이나 왔는지 모른다. 경치를 보기 위해서다. 금오산도 서너 번 올랐는지 모르겠다.향일암 해넘이 봤어도 해맞이한 경험은 없지만 이곳 경치는 일품이다.
들어갈 때 돌아서 갔다. 이 계단은 나올 때 이용할 것이다.
자라목 부분, 금오산 정상이 자라등에 해당된다.
해탈문 입구, 큰 바위들이 서로 의지하여 여러 동굴을 만든 곳이다.
천수관음전
멀리 보이는 곳은 경남 남해군이다.
고목, 팽나무.
비밀의 길, 예전에도 이 길이 있었나?
어느 반석인가 모르겠지만 그 반석에서 원효가 좌선을 하였다고 한다.
요석공주와 관계, 파계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창건이 644년이면 원효 나이 27세다.
관음전
삼성각
바다를 향하는 거북이들.
천왕산 은적사(天王山隱寂寺) / 전통사찰, 전남 문화유산자료
- 전남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암자이다.
임진왜란 때 폐허, 1656년과 1777년 중창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때 다시 폐허, 근래 불사하였다.
유물로는 1656년 다시 지을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목조불상과 1918년에 조성된 후불탱, 칠성탱, 산신탱 등이 있다.
(인터넷 찾아보기와 절 입구에 있는 은적암 설명서를 참조하여 편집)
한 바퀴 돌고나니 절에서 일하는 분이 나온다. 오늘 주지가 외출 중이라 차를 대접할 수 없다고 한다.
극락전과 관명루 문을 닫는다. 볼 일이 있어 나가는 길이라 하여 나도 같이 나왔다.
극락전에 후불탱, 칠성탱, 산신탱이 있을 것인데 볼 수 없었다.
일주문
은적사사적기
작은 계곡 건너에 절이 있다.
좁은 공간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극락전
관명루
칠성각
요사
관명루
은적암 편액
돌산향교 / 전남 문화유산자료
- 전남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풍화루
명륜당
대성전
도로에 큰 이정표가 있다. 지장대사(절이름) / 불교 성지
절 앞까지 갔지만 절엔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다. 멀리 여수(여천) 구경을 할 수 있어 좋다.
용월사 / 전통사찰이 아님,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용월사 대웅전이 유형문화유산이라고 내가 가진 여수시 관광지도에 메모되어 있어 이 절을 찾았다.
용월사는 남해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해운대 해동 용궁사가 생각이 났다.
동굴 안으로 용이 들어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