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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마따나 꽃은 원래 잠깐 피었다가 진다. 그 잠깐을 연이어 집중하다 보니 주위가 온통 새파랗게 변한 줄 몰랐다. 아까시 꽃향기가 지천으로 퍼지는 사이에 일찍 피었던 매화 산수유 벚꽃 앵두는 벌써 초록빛 열매를 맺었다. 이 작은 열매들은 아직 이파리와 비슷한 초록색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남들이 보든 말든 부지런히 열매를 맺은 식물의 성실함이 대견하고 부럽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에는 꽃의 여왕 장미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초록 열매들처럼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꽃들도 등장한다. 이런 꽃들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향기도 없다. 감꽃이 대표적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감꽃을 먹었다고 들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감꽃을 얼마나 먹어야 배고픔이 사라졌을까.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가을이면 가지마다 주먹만 한 주홍빛 열매를 가득히 맺을 것이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까치밥으로 남을 귀한 감이 되겠지. 나도 그런 열매가 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분이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마 7:17)
정혜덕 작가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의 역사에는 시대를 넘어 영감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계보가 있습니다. 어린 모차르트가 유럽 각지를 여행하던 시절 런던에서 한 음악가를 만났습니다. 바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막내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였습니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그는 교향곡 작곡법을 가르치며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서른한 살의 모차르트 앞에 열일곱 살의 소년 베토벤이 나타났습니다. 아직은 거칠고 투박한 연주였지만 그의 연주를 들은 모차르트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젊은이를 주목하십시오. 곧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
한때 스승의 사랑과 격려 속에서 자란 모차르트는 이제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스승의 자격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혼자서는 꽃피우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과 진심 어린 가르침이 있을 때 비로소 활짝 피어납니다. 그렇게 피어난 사람이 다시 누군가의 스승이 될 때, 위대함은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가 돼 이어집니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간절함의 힘
조선 시대 구황촬요라는 책자가 보급됐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 정보를 담았는데 무려 851종이 수록됐습니다. 선조들은 경험을 통해 독성을 없애는 방법과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을 체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한식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한식 조리법의 시작은 굶주림이었습니다.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산에서 찾은 식물을 밥상에 올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절박함과 간절함이 찾아낸 방법이었습니다.
열두 해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그때 여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은 대부분 절박하고 그래서 간절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내 인생의 암소를 던져라
스승과 제자가 가난한 오두막에 묵었습니다. 그 집은 암소 한 마리의 우유에 의지해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스승이 제자에게 명령합니다. “저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괴로웠지만 스승의 명을 따랐습니다.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은 제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낡은 오두막 대신 풍요로운 저택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암소가 죽자 살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일이 인생 최고의 행운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암소가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이나 낡은 습관들입니다. 암소에 안주하는 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넓은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흔드는 격변의 시대, 우리가 겪는 상실과 멈춤은 어쩌면 무용한 암소를 떠나보내라는 하늘의 신호입니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진 빈자리라야 비로소 주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이 여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당당히 걸어가시길 소망합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은퇴와 소명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나는 신학교 시절 지도교수이신 캐나다의 폴 스티븐스 교수님을 생각한다. 정년을 앞둔 교수님께 나는 은퇴 이후 고민이 있으신지 넌지시 물었다. 교수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줄어들 수입이 걱정이라고. 노후자금이 중요하다는 세상 사람들의 조언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은퇴한 지 20년 넘은 지금 교수님은 은퇴 이후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계신다. 교수님은 은퇴자들을 위해 쓴 책 ‘나이듦의 신학’에서 노후는 돈이 아닌 소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소명으로 늙어가는 사람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순종이라고 하셨다. 교수님도 많이 쇠약해지셨다. 허리는 굽어지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셨다. 하지만 여전히 책을 쓰고 가르치신다.
재작년 내가 댁을 방문했을 때 교수님은 멀리서 온 제자를 위해 직접 음식과 커피를 만들어 대접하셨다.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나를 친구이자 동료로 대해 주신다. 헤어질 때 교수님은 아파트 정문에 나와 배웅하셨다. 나는 지금도 한참 동안 손을 흔들던 교수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소명은 이처럼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니시 도미누스
니시 도미누스(Nisi Dominus)는 ‘주님이 아니시면’ 혹은 ‘주님께서 하지 않으시면’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시편 127편의 첫 구절이 바로 이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솔로몬 왕은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라고 고백했습니다. 공들여 쌓아 올린 성이나 밤새워 자리를 지킨 파수꾼의 노고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모두 헛되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는 오래된 신앙 고백이 새겨져 있습니다. ‘Nisi Dominus Frustra(주님이 없으면 헛되다).’ 에든버러는 1647년부터 이 문구를 도시의 표어로 삼아 도시 건설의 근거를 하나님의 주권 위에 두었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와 게오르크 헨델 같은 음악가들도 같은 고백을 담아 작품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무언가를 세웁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의 노력과 열정보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Nisi Dominus’,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행복을 자주 접하려면?
할렐루야! 예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 17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선선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국내 허리·목 디스크 환자는 292만여 명이라고 합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2년). 척추의 신(神)이라고 하는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도 한때 허리 디스크로 오랫동안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탐독했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수술이나 힘든 운동 없이도 그의 허리 통증은 사라졌고 합니다. 정 교수는 “척추 질환은 잘못된 자세나 습관이 누적돼서 생긴 퇴행성 질환”이라며 “올바른 자세를 알고 실천하면 스스로 나아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관계주의가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적인 것 좀 갖고 와봐.” 이러면 못 가져오는데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좀 도와줘.”라고 하면, 그때 어마어마하게 창의적으로 변합니다. 심지어는 서로 밀접한 사이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남을 돕는 것, 이타성이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이타성(利他性)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어떤 일에 참여할 여지를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접근 방식을 바꾸게 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능력이 길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타적인 사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창의적인 겁니다.
이타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지금은 손해를 보겠지만, 언젠가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사소한 하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행복의 빈도가 높아집니다. 내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있지 못할 때 가볍게 훈수를 두고 가기도 합니다. 그 사람한테는 큰 게 아니지만, 나는 행복의 빈도가 높아집니다.(출처 ;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김경일 교수)
●질투와 이기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땅에 속한 것이요, 악마의 부추김입니다.[약3:15]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크리스 노블)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신(하나님)과 같은 마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방법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폭격 속에서도 영국의 왕실은 버킹엄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국왕 조지 6세는 위험에 처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수도 런던에서 의연하게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왕의 모습은 영국인들 마음에서 담대함과 용기를 끌어냈습니다. “Keep Calm And Carry On(침착함을 유지하며 하던 대로 하십시오)”이라는 당시의 구호는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던 영국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로마제국의 철학자 가이우스 무소니우스 루푸스(?~101)의 삶도 이와 같았습니다.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그는 생명의 위협에 시달렸으며 끊임없이 귀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무소니우스가 머물렀던 외딴섬 기아로스는 1970년대까지도 유배지로 유명했을 만큼 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소니우스는 언제나 꿋꿋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추방당했다고 해서 유배를 견딜 능력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 “활기차고 부지런하며 현명한 사람은 어디서든 잘 지낸다.”
옛 그리스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훈련으로 공개적으로 매를 맞곤 했습니다. 얻어맞는 일은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를 못 견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치욕이었을 뿐입니다. 무소니우스는 자신에게 닥친 재앙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합니다. 화(禍)는 누구에게나 닥치곤 한다. 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를 씩씩하게 이겨내며 당당하게 맞선다면 사람들은 되레 나에게 존경을 보낼 터다. 그러니 한숨을 내쉬지도, 원망하지도 말라.
심지어 무소니우스는 모욕을 안긴 자들에 대한 복수도 꿈꾸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는 짐승이나 하는 짓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앙갚음했다고 상대가 잘못을 깨달을 리 없습니다. 자신이 힘이 약해서 당했을 뿐이라 생각해서, 또다시 나에게 보복할 결심만 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잘못을 품을 만큼 훌륭하고 좋은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되려 애써 보라는 겁니다. 큰마음으로 너른 아량을 베풀 때 비로소 정의가 세워지며 평화도 자리 잡습니다.
지혜, 용기, 절제, 정의. 이는 무소니우스가 따르는 스토아 철학이 앞세우는 네 가지 주요 덕목(사주덕:四主德)입니다. 그는 귀양지에서도 이러한 덕들을 꾸준히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의 생활 규칙은 구체적이면서도 섬세했습니다. 예컨대, 절제를 기르기 위해서는 식습관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다른 유혹들은 어쩌다 한 번 찾아들지만, 음식의 유혹은 끼니때마다 꾸준히 맞닥뜨리게 되는 탓입니다. 건강이 아닌 혀에 끌리는 음식을 골랐다면, 쾌락에 고개 숙일수록 입맛은 달고 짠맛에 더더욱 이끌립니다. 그러니 담백한 음식에 익숙해지도록 꾸준히 의식적으로 식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세간살이를 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구하는지, 사용하기 좋은지, 튼튼해서 오래 쓰는지만을 잣대로 삼아 물건을 구하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나 보기 좋고 비싼지 등등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일단 탐욕에 불이 붙으면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치는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다는 갈망을 일으킵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할 테고, 그러면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재산을 모으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게 됩니다. 정의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허세 가득한 삶을 위해 이웃이나 친구에게 베풀 것도 아끼게 될 터입니다. 따라서, 무소니우스는 욕심에 흔들리지 않도록 평생, 매 순간 마음을 다스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고생하여 선(善)을 이루면 고생이 지나간 후 선은 남습니다. 그러나 수치스럽게 즐기며 지내다 보면 즐거움은 지나간 후 수치만 남습니다.” 무소니우스의 명언입니다. 그는 귀양지에서나 수도 로마에서나 바지런히 일하며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무소니우스는 노후 준비는 결코 재산을 모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라고 말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움과 우울, 불안에 젖은 노인들이 주변에 적지 않았던 탓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 말은 통할 듯싶습니다. 젊을 때부터 꾸준히 인내와 정의, 용기와 절제를 정신에 심는 나날을 이어간 이들은 다릅니다. 그렇게 다져진 단단한 영혼은 청춘이 사라져도, 지위와 권위가 없어져도 ‘과거의 훈련들이 모든 것들에 대한 치료제’가 되어 인생을 견실하게 붙들어 줄 테니 말입니다.
무소니우스는 여든 살에 가까운 천수(天壽)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하곤 했습니다. 적개심과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진정한 친구가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이해심 깊고 성실하며 밝고 따뜻한 이에게는 좀처럼 적이 없습니다. 무소니우스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신과 같은 마음’을 갖춘 자라고 추켜세웁니다. 그만큼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라는 뜻이겠습니다. 무소니우스는 ‘로마의 소크라테스’라 불렸던 사람입니다. 무소니우스의 삶을 살펴보며, 우리는 신과 같은 마음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안광복의 주말의 철학]에서,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물맷돌)
사랑과 감사의 달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조금 버겁다. 어린이와 어버이와 선생님과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에 감사하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기에 ‘러브 이즈 머니’ 법칙은 자본주의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도 이미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카네이션과 학교에서 만든 집안일 돕기와 안마 쿠폰을 함께 건넸다. 그러므로 이미 충분히 어른인 중년의 아주머니가 말로 때우거나 감사 카드만 달랑 쓰면 나잇값도 못 하는 사람이 된다. 쌈짓돈이라도 풀거나 주식을 팔아서라도 온 세상 가득히 사랑이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1인 가구가 36%나 되는데도 공식적인 싱글의 날은 없다. 영국은 3월 11일을 싱글의 날로 제정했다고 하는데 자신을 싱글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류애의 형태로 모든 이에게 골고루 미칠 수 있도록 싱글의 날을 5월에 제정하면 어떨까. 누군가의 딸이요 아들이지만 자녀도 배우자도 없는, 그래서 사랑을 줄 의무만 있고 받을 권리는 없는 싱글들을 격려하자. 예수님도 싱글이셨다.
정혜덕 작가
어머니 사랑, 그 위대한 힘
1940년대 심리학자 르네 스피츠 박사는 “깨끗한 침대와 충분한 음식, 정기적인 의료 검진까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보육원에서 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답은 뜻밖의 곳에 있었다. 같은 시기 여성 교도소 부속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했다. 두 집단의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아이를 안아주는 어머니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보육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의 아이를 돌봤다. 젖병은 제시간에 물렸지만 눈을 맞추고 볼을 비벼줄 시간은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91명의 아이 가운데 35명이 2년 안에 숨졌고 살아남은 아이들 역시 성장 발달이 멈추고 표정을 잃었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지금, 아이들 방에는 장난감이 넘치고 영양제도 종류별로 갖춰져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아이와 마지막으로 눈을 맞춘 것이 언제인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를 꼭 안아준 적은 언제였는가. 어머니의 사랑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아이가 울 때 달려가 안아주는 것, 이유 없이 볼에 입을 맞추는 것, 잠들기 전 등을 토닥이는 그 손길이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무모한 사람들
주후 3세기 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로마시에서는 하루 5000명이 죽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병든 사람을 내쫓고 시신을 방치한 채 도망갔습니다.
이때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아누스는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감염된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파라볼라노이’,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때로 무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결코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새번역) 무모해 보이는 우리의 섬김이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다르게 사는 길 말해주기
미국 민권운동의 거목 제임스 로슨(1928~2024) 목사는 평생 비폭력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그 길을 걷게 한 건 10살 무렵 어머니가 건넨 짧은 한마디였습니다.
어린 시절 로슨은 자신을 검둥이라 놀리는 백인 아이를 주먹으로 때려주고 돌아왔습니다. 무용담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습니다. “네가 그 아이를 때려서 세상이 달라졌니. 미운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다르게 만드는 길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날 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말없이 우셨고, 그 뒷모습은 아들의 심장에 깊이 박혔습니다. 로슨은 그때부터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었고, 그 끝은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사회 변화의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부모의 한마디는 자녀 인생에 심기는 씨앗입니다. 세상이 아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더 높은 길’을 몸소 보여주는 부모의 가르침이 자녀를 거목으로 키워냅니다. 자녀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사는 법을 전하는 복된 부모가 되길 소망합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살아야 할 이유
오랜 투병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삶의 끈을 놓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집안에 찾아온 또 다른 우환 앞에서 깊이 좌절했다. 가족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가장으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현실에 무너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쓸모없어진 삶을 거두어 가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덤덤하게 이어지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대화 중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친구에게 해줄 한 말씀을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지금까지 정말 애썼어. 더 견디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이제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자. 다만 가족과 나를 위해 하루만 더 살아줘. 비록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하루라도 더 너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나의 마지막 문장으로 대화가 끝났다. 네가 살아서 숨 쉬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야. 몇 달이 흘러, 어제 친구와 통화했다. 그는 사랑 때문에 오늘도 고통의 산을 넘고 있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즐거운 편지
황동규 시인은 열여덟 살에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썼습니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해가 지고 바람이 불듯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는 조용한 고백입니다. 시인은 한 가지 약속을 남깁니다. 언젠가 그대가 가장 힘든 날을 만날 때 오래도록 쌓아온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부르겠노라고. 표가 나지 않아도 일상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그 사소함 안에 참된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5월입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가 오가고 가족을 향한 마음의 표현들이 조심스레 전해지는 계절입니다. 차마 고백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따뜻한 모습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된 사랑은 기다림이고 한결같음입니다. 서로를 향해 오래도록 써 내려온 즐거운 편지와도 같습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진짜 우리 엄마 맞나?
할렐루야! 2026년 부활절 후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 11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교차가 심합니다. 아침저녁에는 아직 춘래불사춘입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배우 전원주가 치매 초기 진단 사실을 고백해서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29일 방송된 어느 방송에 전원주가 출연해 자신의 근황과 솔직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이날 전원주는 30년 전 이사했던 동네를 다시 찾으며 긴 연기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그는 “64년 동안 연기를 했지만, 얼굴이 이래서 식모 역할만 했다”고 웃으며 “그래도 광고를 찍으면서 돈을 좀 벌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다가 시끄럽게 웃으면 그때 알아본다”고 덧붙였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 어느 날 아침, 엄마는 새빨간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쓴 채 우산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 기이한 모습 앞에 내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잔인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마귀할멈’…순간적으로 치민 혐오와 공포 뒤로,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왔습니다. 저 붉은 비옷은 어쩌면 이 비정한 세상을 떠나 당신만의 본향으로 돌아가려는 영혼이 차려입은, 가장 화려한 외출복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그 붉은 소매를 가만히 붙잡았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평온하게 보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약과 주사는 엄마를 낫게 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엄마를 더 평온하게 멀어지게 하기 위한 이별의 준비였음을, 나는 그 빨간 비옷 앞에서 겨우 이해했습니다. 엄마는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고, 저는 그 거대한 퇴장을 뒤따라갈 힘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엄마였나’하는 생각이 스칠 때마다 마음은 더 어지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기이한 행동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한 사람의 눈물겨운 몸짓이었습니다. 엄마는 저를 떠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기 세계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시간과,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토록 애타게 감천 외가로 가려는 마음은 무엇일까? 돌아가신 부모님과 어린 시절의 형제들이 북적이던 그곳을 찾는 마음은 결코 단순한 망상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엄마가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왔던 무거운 책임감의 흔적일지로 모릅니다. 사람은 삶이 고달프거나 현재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자신이 가장 온전하게 사랑받고 보호받았던 시절로 돌아가려 합니다. 엄마에게 그곳은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하던 공간이자, 풍파에 깎이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엄마의 시계는 이제 제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길 위에서 엄마가 부디 아픈 기억은 흘려보내고, 오직 사랑받았던 기억들만 차곡차곡 챙겨 가길 빌어봅니다. 엄마가 그토록 향하고자 했던 곳은 과거라는 시간이 아니라, 누구의 엄마도 아닌 오직 ‘나’로 온전해질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였습니다.(출처; 혜화동 한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작가)
●아이들도 '엄마 최고' 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남편도 아내를 아낌없이 칭찬하지.[잠31:28]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의 상태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쉽게 빚을 수 없는 예술 작품이다.(루스벨트)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에서 '눈치'는 미덕인가, 비밀경찰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은 중동 사태 때문에 너무 바쁩니다. 최근엔 휴전 과정이 시작되면서 심리적 여유조차 없어졌습니다. 나는 전쟁 초기부터 다수의 예상과 달리 이것이 오래갈 전쟁이라고 말했지만, 그때는 엄청 신경이 쓰였습니다. 취재한 내용을 비관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눈치껏 낙관적으로 전해야 하나? 당시 이 눈치라는 것이 ‘독재정권의 비밀경찰’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눈치에 대해 좀 더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눈치’를 처음 알게 된 건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KTX를 타고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이라 객차에서 좀 큰 소리로 신나게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카이스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튀르키예 선배가 제지했습니다. “야, 너 눈치도 없어? 기차 좀 봐봐. 다들 조용하잖아. 너만 소리가 커!” 당시 처음 접한 ‘눈치’는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일종의 배려 제도로 받아들였습니다. 들어가 있는 환경을 잘 살펴보고, 그곳의 기본값을 파악해 본인의 자세도 그렇게 맞추는 일이 결국 사회를 배려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눈치 있게 움직이면 사회적 갈등도 없어질 거라고 믿었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만 있는 이 눈치 문화를 국제적으로 아주 열렬하게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것의 어두운 면도 깨달았습니다. 최근에는 ‘눈치’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이른바 혁명이 터지고 난 뒤에 도덕성을 감시하는 비밀경찰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나라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 대화하다가 예민한 주제가 나오면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현장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한국은 그런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와 자유가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그 고급스러운 도덕관과 선의가 때로는 억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혹은 사회를 지나치게 배려하려고 하다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눈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눈치를 어느 정도 보면서 살아야 할까요? 눈치 안 보고 살면 무례한 사람이고,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지나치게 눈치 보고 살면 사회 분위기가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감시 사회가 되고….
어설프지만 내가 세운 기준은 이렇습니다. 개인적인 것은 눈치 때문에 희생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기차에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저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눈치 때문에 사회적 이득이나 타인의 편의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기자로서 사회적 이익을 위한 중요 정보는 눈치 보지 말고 공유하는 것이 맞습니다. 눈치 보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확한 기준이 뭔지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독자들에게 조언하자면, 상황을 눈치껏 구분해서 눈치를 좀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원고를 거의 마감 직전에 전달했기에 이번에는 눈치가 많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일찍 보내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출처 ; [알파고의 지식램프]에서, 알파고 시나씨 프리랜서 기자)
(물맷돌)
주의 어린 양
추운 날은 가고 더운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나날, 교회 성가대는 주일 아침에 열일한다. 부활절은 지났고 성령강림절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일 수도 있는데 6월에 교구 성가제가 있어서 평소보다 연습량이 두 배로 늘었다.
성공회 성가 623장 ‘주의 어린양’을 맹렬히 연습했다. “주의 어린 양/ 바라보아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어린양 보라.”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4성부로 화성을 넣지 않고 오직 하나의 멜로디, 유니슨으로 노래했다. 단순한 가사를 돌림노래처럼 주고받으면 되는데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주의 어린양’을 ‘쭈의 어린양’으로 발음하니 지휘자님이 노래를 중단시키셨다. 우리 눈앞에 눈처럼 하얀 어린 양이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 양을 째려보지 말고 부드럽게 바라보라고. 그 코칭에 잠자던 상상력이 발동해서였을까. 훨씬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상상력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오늘의 현대 과학 문명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그 상상력은 ‘범용 인공지능’(AGI)마저 출현시킬 거라고 한다.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흐름을 돌이킬 수 없다면 거룩한 상상력이나마 보존하고 싶다.
정혜덕 작가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삶
프랑스 파리의 한 은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직원 채용을 하던 날, 한 소녀가 찾아와 간절히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은행장은 빈자리가 없다며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소녀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작은 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소녀는 허리를 굽혀 그 핀을 주웠습니다. 그러고는 옷자락으로 정성껏 닦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나가려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은행장은 다급히 소녀를 불러 세웠습니다. “핀 하나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우리 은행 일을 맡겨도 되겠소.”
그는 그날부터 은행원이 됐습니다. 핀 한 개는 아무 값어치도 없는 물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는 그 사람의 전부가 담기기도 합니다.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곧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쓸 돈과 아낄 돈을 구별하고 해야 할 말과 삼켜야 할 말을 분별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 것. 이 작은 충성이 쌓여 한 사람의 성품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됩니다.(눅 16:10)
김민철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밧줄에 묶인 코끼리
오래전 의료선교팀과 네팔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저녁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숙소 옆 마당에 코끼리 한 마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끊어질 것 같은 줄에 묶여 꼼짝 않는 코끼리가 신기해 현지 가이드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가이드는 “어렸을 때 줄을 끊으려다 실패한 코끼리는 커서도 줄을 끊을 생각을 못 하고 그대로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끼리를 묶고 있는 것은 어쩌면 줄이 아니라 실패의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끼리를 보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실패, 과거의 상처, 과거의 습관에 묶여서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어, 내가 그렇지”라며 여전히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인해 판단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새번역)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마음의 안전지대 넓히기
최근 암벽등반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를 보며 도전을 받았습니다. 밧줄 없이 맨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의 910m 수직 절벽을 오르는 알렉스 호놀드의 모습은 경이로웠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같은 코스를 50회 이상 오르며 모든 동작을 몸에 새겼습니다. 그는 “불안감을 이기려면 두려워하지 않을 때까지 동작을 반복해 마음의 안전지대를 넓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앙의 원리와 닮았습니다. 절벽 같은 현실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영적 담력은 어디서 올까요. 성경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읽어내는 일상의 부단한 연마가 쌓일 때 위기의 순간 거룩한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도 일상에서 경건을 연습하며 두려움을 넘어 마음의 안전지대를 넓혀가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작은 교회 결혼식
지난 주말 한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평소 오십여명 모이는 예배당이 신랑 신부 가족과 친척, 교인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정면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렸다. 조용하고 경건했지만 즐거웠다. 성도들의 찬양은 마치 천국의 소리 같았다. 예식 후에도 여운이 짙었다. 목사님 앞에 선 신랑 신부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혼인서약은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고백처럼 들렸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하객들도 예배에 스며들었다. 이 결혼식을 위해 목사님과 성도들은 오래전부터 신랑 신부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하객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참 따뜻하고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언제부턴가 성도들에게도 화려하고 편리한 예식장이 익숙한 선택이 됐다. 예식은 빨리 끝내야 하는 통과의례 혹은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주례 없는 결혼식도 많다. 결혼식이 가벼워지고 있다. 이날 결혼한 신랑 신부는 거룩한 예배로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부부로서 첫출발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구별된 장소에서 드린 겸손한 결혼예배는 사랑과 기쁨과 감사로 충만했다. 이렇게 예쁜 신혼부부를 축복하소서.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꽃 피는 사막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극도로 메마른 대지에서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몇 년에 한 번 드물게 비가 내리거나 짙은 바다 안개가 사막을 감쌀 때면 대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깨어납니다. 황량한 땅 곳곳에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올라 사막 전체가 꽃 물결로 뒤덮이는 겁니다. 스페인어로 데시에르토 플로리도(Desierto Florido), 즉 꽃 피는 사막이라고 불립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풍경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사 35:1) 삶이 때로는 아타카마 사막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메마른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씨앗이 단 한 줄기 빗방울에 깨어나듯,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혹 지금 나의 삶이 사막처럼 메말라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단비를 기대하십시오. 가장 완전하신 그분의 때에 반드시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