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3주일 나해
레너드 라루 선장의 위대한 항해
저는 작년 2023년 미국을 방문, 5월 7일 일요일에 뉴저지주의 뉴톤 성 베네딕도 바오로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수도원 구내에 있던 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마리너스 수사님의 묘지를 방문,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님에 얽힌 얘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십여 년 전도 더 되던 해에 1,3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을 감동의 눈물바다로 만든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에 흥남부두 철수 작전이 등장합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는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철수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가 정박 해 있었습니다. 정원 60명에 승조원을 제외하고 남은 자리는 고작 13명뿐. 부두에 떼를 지어 있는 피난민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이 배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태우라고 명령합니다. 16시간의 긴 탑승 끝에 정원의 230배나 되는 무려 14,000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는 마침내 3일간의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해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12월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의 라루 선장은 그 후 4년 뒤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여 마리너스 수사로써 미국의 뉴튼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평생을 수도생활에 정진하다가 2001년 10월 14일 87세의 일기로 선종했습니다. 40여 년간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동료 수사들에게 내색조차 하지 않아 그런 기적과도 같은 선행을 행한 줄도 모를 정도로 겸손했다는 마리너스 수사는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2015년 4월 12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대구주보 5면]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면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마르 13.24-32)은 세상의 종말을 언급하면서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그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연중시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주어짐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다니엘 예언서의 묵시 문학적 가르침은 “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다니 12,2)는 언급에서 더욱 뚜렷이 밝혀집니다. 흑백의 논리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말씀은 짐짓 섬뜩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나리라. 하늘처럼 빛날 것이다.”(다니 12,3)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사명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밝혀줍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십자가 위의 희생 제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셨다면, 우리는 날마다 죄를 씻기 위해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그분과 함께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마지막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을 떳떳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뽑힌 이들의 대열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을 떳떳이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비우고 변해야 하겠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생적이고도 영웅적인 모습은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가를 잘 말해 줍니다. 한국 동란의 마지막 배가 철수하는 흥남부두의 그 혼란 속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을 기꺼이 도왔던 그 넉넉함에서 참된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 그 마음은 영원히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라는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확신을 갖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은 진정 주님의 축복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