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날아온 르기오스, 그는 날개를 접고 말했다.
“여긴 너무 춥군.”
그리곤 다리를 벌려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모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럼 우선 순서대로 해결해야지.
난 검을 소리없이 빼 들고 르기오스의 날개 뒤로 돌아섰다.
“르기오스, 날개를 펴라. 승부다.”
그는 짐작하고 있었던지 곧장 말을 이었다.
“헬피온. 그대의 검이 내 가슴을 찌르면 가장 고통스러운 건 자신일 텐데.”
난 알고있었다.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운명 이였고 <미래를 보는 자>인 내겐 과정일 따름 이였다.
“나의 죽음 뒤를 볼 수는 없겠지. 하지만 궁금하다.”
검을 쥔 두 손은 빨리 찌르라고 말했다. 찔러버리고 다음 상대를 찾아라.
상대의 말을 듣지 마라.
“르기오스 죽다, 크레시오 죽다, 드 피어스 죽다……”
르기오스의 날개가 느리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자의 입에서
가혹하게 친구들의 죽음이 예언되고 있었다.
“시리스 죽다, 알피기오 죽다, 유키올 죽다……”
긴 검신 또한 가늘게 떨고 있었다. 친구의 죽음을 예언하는 나 또한
몇 번이고 보아왔던 미래가 아니던가.
“우라미… , 그에게 헬피온 죽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는가?”
“자네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것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 일을 계속 해나갈 텐가?”
“날개를 펴라”
그의 날개는 가늘게 떨다가 느리고 유연하게 펼쳐졌다.
***2
“헬피온 이게 무슨 짓인가?”
나의 고통은 온 몸을 휘감아 육체 어딘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뚫고 지나갔다
지독한 슬픔 속에 오직 이 일을 어서 끝내자는 생각만이 들었다.
난 검을 꼬나쥐고 그들 중 하나를 베었다. 고통보다 당황한 표정의 시신을
바라보며 나도 곧 그들을 따라갈 거라 느꼈다.
`자네는 마치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생각을 읽는 자> 유키올. 타인과 말하지 않고 대화하는 자.
너가 어떻게 느끼는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이것은 운명이고 뒤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자네는 친구를 죽이며 이유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고맙게도 아직도 날 친구로 여기고 있었군.”
난 또 한명을 베었다. 남은 세 명.
“제발 싸우는 이유를 말하게. 미래를 보았는가?”
난 언제나 보고 있다. 알피기오, 우리들 가운데 제일 강한 자.
그는 무기도 들지 않고 쓰러졌다. 그는 천국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다.
“헬피온 자네는 부당한 죽음으로 우리를 천국에 도달하게 만들 생각 이였군.”
그를 베고 나자 살아있는 두 영혼은 잠시 멍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을 읽는 자>유키올. 생각을 읽기에, 생각 속에 말하기에, 타인과 말하지 않고
대화하는 자. 그가 최초로 내뱉은 말을 들은 우리들은 아름답게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젠 너를 죽이면 끝난다.”
“더더욱 죽을 수 없어. 헬피온 너 혼자 업을 쌓게 할 순 없어.”
난 그를 찔러 나갔다. 유키올이 소리를 내면서 가지 비밀을 말할 가치가 있었을까?
우라미, 너도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으면 좋으련만.
그의 커다란 도끼가 나의 어깨를 후려쳤다.
왼팔 어깨는 아무런 통증도 없이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육체의 고통쯤은 존재하고
있는 고통에 가려 느끼지도 못했다. 그의 도끼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가슴을 파고 머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것이 최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우라미……”
***3
“우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말이 안돼.”
“너도 날개가 있잖아.”
“미래를 보는 것은 그것과는 달라. 고대사에서 미래를 보는 자가 미래에서 있을 일을 그대로 실천한다는 얘기.”
“그게 뭐? 모순된다고?”
“맞아.”
“어째서?”
“영혼에는 자의지가 있어.”
“그런데.”
“미래의 자신의 행동을 봤다면……”
“보았다면?”
“그대로 안 할 수도 있어야지.”
그렇다. 나는 어쩌면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나른함 속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과거를 본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깨어나라.”
눈꺼풀 사이로 사제복을 입은 천사 하나가 보였다.
엉거주춤 일어서자 천사는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어느 방향으로 선을 그으며 걸어갔다.
조용히 따라가면서 이곳에는 바닥도 하늘도 없는 것을 보았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 하늘 한가운데인지도 모르겠다.
난 최상의 장소라도 지옥을 생각했는데.
점점 빛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안내하던 천사가 빛에 휩싸여 사라졌고
나도 휩싸여 온통 빛만이 존재했다.
‘헬피온, 그대의 영혼을 판결하노라.’
제게 지옥을 내리소서.
‘친구들을 부당히 죽여 그들을 천국에 들이려 한 죄’
제게 지옥을.
‘승천.’
승천?
‘천상의 법을 사사로이 이용한 죄.’
…?
‘친구들의 연 옥 행.’
왜!
‘너 자신에게 물어봐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두 천사가 날 잡아 하늘로 올라갔다.
난 나에게 고개 돌릴 수 없었다. 난, 나의 의지는 이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왜 신은 그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나에게 지옥을, 부당한 죽음을 당한 친구들에겐 천국을 주지 않는가? 어째서 그 반대인가? 이 하찮은 나라는 영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죄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 난 너무나 슬퍼서 친구들을 죽일 때보다 슬퍼서 어느새 천국에서 가장 큰 소리로 울고있는 자신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천국의 그 평화롭고 행복하게 아름다운 시민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지낼 뻔 한 친구들을 상상하다 절망에 빠졌다. 그때 나를 잡고 끌고 왔던 천사 하나가 내게 말했다.
‘친구들에게 천국을 주기 위해 그들을 부당하게 죽였다지?’
“그러나…… 그들은 연옥에 있습니다.”
‘어쨌든 너는 성스러운 천국의 일원으로 이곳에서 영생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가장 슬픈 자일 것입니다.”
‘슬픔도 잊혀질 것이다. 이곳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성스러운 신의 정원.’
“세상에서 하나뿐인 성스러운 장소에서 저는 하나 뿐인 슬픈 자입니다. 아직도 울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감옥 속에 홀로 된 것 보다 더 고독할 것 입니다 천사여 저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천사는 시간이 없는 천국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너는 미래를 보는 자 아니냐? 천국에서 무엇을 할지는 옛날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