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합니다. 소확행(小確幸)의 출처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에서 나온 말입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합니다. 일본의 '소확행(小確幸)’,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등은 모두 비슷한 의미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한다고 합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일과 삶의 균형과 조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뜻이랍니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표현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지난 화요일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서울 어느 대학의 한 의대생이 이별을 통보한 자기 여친을 칼로 찔러서 잔인하게 죽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었다. 수능 만점이 어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점수인가? 이 청년은 정말 죽으라고 공부했을 것이고 부모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그런데 무엇이 그를 이렇게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분명 그도 행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밤잠 설쳐가면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미처 졸업도 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가진 게 적어서 혹은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환경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가져도 그리고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참된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말씀하셨다.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행복을 가져오는 나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실체는 행복일 텐데 그 행복이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이미 와 있는 행복을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서 삼만리를 헤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해 불행하게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생각하고 정신없이 돈을 벌어 보지만 그 돈을 벌다가 행복해질 기회를 다 놓치고 만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더 나은 연봉을 받으면 행복할 그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마저 착각에 불과하다. 사람은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습관이지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다. 행복할 조건이 갖추어지면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으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일해도 행복하게 하고 놀아도 즐겁게 노는 사람이 있고 놀아도 짜증 내며 노는 사람이 있고 일할 때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있다. 불행은 바로 그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해도 불행감에 휩싸여 살게 된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 아닌 사람에게 그때 거기에도 천국은 없을 것이다. 천국은 마음에 먼저 오고 행복도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오는 세계에서 행복할 것이란 기대는 접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