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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선한 장로교회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이렇게 주일날 함께 예배하고 또 말씀으로 교제하게 된 것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기드온 찬양대 찬양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날 복된 날 주의 전에 나와 죄 성우를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살아나는 가족이 병에 쓰러지기도 하고 또 잘 나가던 사업가 일에 갑자기 어려움이 닥쳐와서 난감한 처지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내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을 때도 있죠.
예를 들어서 옆집에서 불이 났는데 그 불이 내가 사는 집까지 번져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때에는 왜 내 삶 속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그래도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왜 내 삶 속에 이런 시련이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때로는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오늘 빌립보서 말씀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마침내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두신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고 나의 당한 일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고 고백하는 한 신앙의 선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죠. 바울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의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고백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귀한 깨달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은 그의 삶 속에서 참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가 당한 그 수많은 일들 속에서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은 나의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라 하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당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빌립보서 전체를 읽어보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나의 당한 일이란 그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아무런 죄도 없이 로마의 감옥에 쇠사슬에 묶인 채로 2년이라는 세월을 고통 가운데서 재판을 받습니다. 바울은 그 로마의 감옥에서 지금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로마서 빌립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거죠. 그러므로 바울이 당한 나의 말하고 있는 나의 당한 일이란 그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히기 전에 이미 가이사라에서 2년 동안 갇혀서 재판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권자였던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를 해서 이제 지금은 로마로까지 와서 지금 2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은 가이사라엘부터 시작해서 약 4년이 넘는 시간을 감옥에 갇히거나 혹은 온갖 종류의 고생을 했죠.
아마도 바울은 이 기간 동안 매우 답답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시련을 겪게 하시는 걸까 단 한 순간이라도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부자연스러운 몸으로 갇히게 되었으니 바울은 참 그때 답답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귀한 고백을 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뒤늦게 자신의 지금까지 당한 일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 진전이라는 말이 재미있는 말인데 프로코페라는 말이에요.
근데 이 나무를 찍어가면서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그런 단어입니다. 이 말은 주로 군대에서 공병대가 앞장서 나아가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놓거나 혹은 다리를 놓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바울 당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로마의 군대는 항상 이렇게 어디를 가든지 공병대가 먼저 나아가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도로를 닦았는데 그렇게 뚫린 길로 로마의 전차가 지나가면 그 땅은 로마의 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그때 생겼다고 그러죠.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로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빌립보 교인들이요. 여러분들이 로마의 길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걱정하고 있는 그 일 때문에 즉 내가 지금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오히려 복음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됐습니다. 바울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즉 내가 감옥에 갇히게 되므로 한 번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곳에 복음을 위한 큰 길이 열리게 되었고 복음의 새로운 영지가 새로운 영토가 확보되었습니다는 거예요.
그러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새로운 영지는 어디입니까?
바울은 13절에서 그 새로운 영지가 어디인가를 이렇게 밝힙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 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 그랬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새로운 영지는 로마 권력의 중심부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바울은 지금 시위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시위대는 로마 황제의 경호를 맡은 로마의 최정예 부대 친위 부대를 말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황제인 시위대는 이제 황제를 보호하는 일종의 친위부대이죠. 이 시위대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로마의 유력한 집안의 자식들이었고, 로마 정신에 투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였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일반 로마 군인들보다 봉급이 2배 3배 더 많이 받았던 그런 부대였는데 그들은 로마 말하자면 정치의 핵심이고 로마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 즉 황제 숭배를 지키는 데 있어서도 철옹성 같은 벽을 쌓고 있었던 로마의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로마 후기 시대에 가면 이 시위대 출신 장군들이 황제에 오르기도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바로 그들 가운데 지금 바울이 들어가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메인 매였다 그랬는데 이 단어는 참 중요한데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지금 로마를 지키고 있던 로마의 감옥에 들어가게 돼서 그 시위대 군인들과 함께 지금 매여 있다 묶여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매여 있다고 하는 이 말씀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매였다라고 하는 이 말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그 로마의 정신으로 투철한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은 중죄수를 가둘 때에는 간수 두 사람이 죄수 양쪽에 각각 함께 묶여 있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또 두 명의 사람이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4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는데 하루에 4교대 했대요. 그러면 4 4 16 24시간 동안 16명의 로마 시위대 군인들이 지금 바울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중에 8명은 바울과 함국에 묶여 있어요. 그거 같이 지키고 있는 거죠.
그러면 바울은 처음에는 시위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나중에는 한 오두막집에 사도행전 28장 보면 이제 나와서 연금 상태에 있죠. 그때도 시위대 군인과 함께 같이 묶여 있는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2년의 세월 동안 재판을 받아요.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 바울이 뭘 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어요.
그렇다면 그가 감옥에 갇혀서 시위대 군인들과 함께 묶여 있을 때에 바울이 뭘 했을까요? 그가 시위대 군인들에게 얘들아 우리 심심한데 내가 수수께끼 낼 테니까 너희들이 한번 맞춰볼래 그랬을까요? 바울이 뭘 했을까요?
바울은 당연히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겠죠. 사실 바울에게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성경에 보면 언제 어디서나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어요. 그러므로 그는 바로 로마의 중심부에 들어가서 그 로마를 움직이던 사람들, 로마의 정신이요 로마의 사상을 대표하던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됐던 겁니다.
간수들은 바울과 함께 묶여 있는 처지라 아마도 꼼짝없이 바울이 전하는 바 복음을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하루에 지금 16명이 지키고 있는데 그중에 8명은 같이 묶여 있어요. 도망도 못 가 바울이 하는 얘기를 다 들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시위대 군인들은 그 당시 로마를 대표하던 젊고 똑똑한 친구들이었어요.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이 잡범이 아니라 일종의 양심수라고 하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걔들 가운데는 분명히 바울이 말하는 것에 귀담아들었던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죠.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대로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바울이 아무리 로마의 시민권자라고 해도 황궁 앞에 안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황제가 거처하고 있는 황궁 안에 아무나 못 들어가죠. 더더군다나 황제의 최측근에서 황제를 지키던 시위대 군인들을 만난다. 그거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므로 바울이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거는 정말 그 당시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걸 뒤늦게 깨달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 거예요. 복음의 진전이 나의 매임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에 나타났다.
무슨 얘기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에 뭐가 나타났다 복음의 진전이 나타나게 되었다.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에 복음의 진전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뭐예요?
복음을 시위대 군인들에게 전했다. 그 말이죠. 그렇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 복음의 진전이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타났다고 그랬어요.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타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이었고, 또 하나는 황제의 친인척들을 포함한 로마의 고관 대작들을 이야기해요.
먼저 사도행전 28장 17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그때 시위대 감옥에서 이제 밖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연금 상태 한 집에 오두막집에 연금 상태로 있는데 그 당시에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 중에 높은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사도행전 28장 18절 17절 보면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당시 로마에 있던 해당 지도자들을 말하는 거죠. 그 해당 지도자들을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했다 그랬어요. 사도행전 28장 23절 24절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약속 날짜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바울이 지금 우거하고 있는 그 오두막 집에 연금 상태로 있는 집에 많이 왔다.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 회당 지도자들이 왔다. 그 말이죠. 그때 바울이 뭘 했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설교했다는 거예요.
무엇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예언서 구약의 율법사와 예언서를 가지고 거기에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라고 설교했다. 그 말이에요. 너희들이 예수를 믿어야 된다고 권했다는 거죠.
그랬더니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나타났대요.
누굽니까?
이들이 유대교 지도자들이에요. 로마에 있던 유대교의 높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 듣고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또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기타 모든 사람들 가운데는 그 당시 로마에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죠. 그다음에 바울이 말한 기타 여러 사람들 가운데는 로마의 고관 대작들, 특별히 황제의 친인척들이 포함돼 있었어요.
바울은 이때 묶인 상태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동시에 로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어요. 그리고 로마 법정은 피고가 자신을 변론할 수 있는 기회도 줬다.
그래요. 로마가 인류에게 남긴 세 가지 선물이 있는데 인류 문명의 세 가지 선물 가운데 하나가 로마 법전입니다. 법이 발달했어요.
그러니 법정에서 바울이 무슨 말로 자신을 변론했을까요?
야 바울아 니가 한번 니 자신을 변론해 봐. 그랬을 때 바울이 뭐라 그랬을까요?
여러분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날 풀어주세요.
바울은 그랬을까요? 아니죠. 바울은 더욱더 소리를 옆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했을 겁니다. 그는 가이사라에서 재판받을 때에도 보면 아그리바 왕과 베스도 청독 앞에서 재판을 받는데 그때 바울이 에스토 총독이 바울한테 이야기합니다.
야 바울아 니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니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니가 돌았구나 그랬어. 니가 미쳤구나 그랬더니 바울이 아니요. 난 미친 게 아닙니다. 나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28장 26장 29절 보면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길 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지금 결박되고 묶여 있는 거 이외에는 여러분 모두가 다 나처럼 어떻게 해야 된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됩니다고 설교했다.
그 말이에요. 바울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했죠.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이 고백대로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과 체험을 다 해서 로마 법정에서 생명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겁니다.
결국 그 결과 복음이 온 시위대안과 로마의 고관 대작들에게까지 전파되었어요. 다시 말해서 로마의 심장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을 통해 아주 담대하게 전파되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야사에 의하면 비록 정산은 아니지만 야사에 의하면 그때 로마 법정에서 재판받는 바울의 그 비범한 모습을 눈여겨 본 많은 귀족들이 나중에 로마의 감옥에, 그리고 바울이 후에 거쳐가고 있는 오두막집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옛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처럼 로마의 고관들이 밤중에 바울을 찾아와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더 자세히 듣기를 원했다는 거예요. 그때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에 구원을 얻으리라 담대히 외쳤겠죠.
그리고 바울의 이런 모습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두 절을 장식하고 있어요. 바울이 그 2년 동안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받으면서 오두막집에 있으면서 뭘 했나 성경은 분명히 기록합니다. 28장 30절, 31절 바울이 온 이태를 2년을 자기 새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바울은 2년 동안 재판받으면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로마의 고관들이 가정에 가서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전하고, 이렇게 해서 전파된 복음이 로마의 황궁과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우리는 복음이 로마의 황궁에까지 퍼진 증거를 빌립보서 마지막 장에서 또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21절, 22절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었어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무난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무난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아멘 자 보세요. 바울이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편지를 다 쓰고 나서 이제 마지막으로 문안 인사합니다.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는데 뭐라고 이야기하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 빌립보 교인 여러분들에게 문안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빌립보 교인들, 여러분에게 무난하고 모든 성도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너희에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 여러분에게 무난하되 지금 우리들 가운데 로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누가 있다고요?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바울이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로마 교회 성도들 가운데 가이사 황제의 집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이에요. 황제의 친인척들이 바울이 순교하기 전에 이미 복음을 통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전해 듣고 로마 교회 성도들이 돼 있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우리는 바울의 고백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이미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나의 당한 일, 즉 바울이 지금까지 당한 일 뒤에 숨어 있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그 섭리는 바로 바울의 쇠사슬의 매임이 결과적으로 복음의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죠. 감옥에 있으면서 시위대 군인들과 유대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고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황제의 법정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면서 야 그렇구나. 내가 감옥에서 몇 년을 지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 때문에 4년이 넘는 세월을 나로 하여금 감옥에서 갇히게 하고 그리고 온갖 고생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었구나.
바울은 그거를 깨달은 거예요. 자기의 그 고통스러운 환경 뒤에 숨겨져 있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그의 인생 말년에 마침내 깨닫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그를 향해 걱정하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그 귀한 섭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그 12절, 13절을 풀어서 보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당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에는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나에 당한 그 일 때문에 복음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된 겁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메임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로마의 가장 중심부인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과 황제의 친 친척들에게도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14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로마의 감옥 안에서조차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걸 보고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갖는 거예요.
그래서 14절 보세요. 로마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그래서 이제는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다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깨달음을 바울은 그의 또 다른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도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의 유언과도 같은 편지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서신입니다. 그래서 이게 유언과도 같은 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디모데후서 2장 9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9절 복음을 인하여 복음 때문에 내가 죄인과 같이 메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나는 복음을 전하느라고 죄인처럼 매여 있었는데 그런데 그 결과 어떻게 됐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더 널리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내가 비록 감옥에 갇히는 그런 고난과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었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더 전파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처음에는 이 고통과 이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너무나 답답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그런 엄청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거를 그가 깨달았던 거죠.
바리소한 장로교 성도 여러분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이 귀한 진리에 비추어서 이제 저와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이켜볼까요?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어서 답답해하고 실망스러운 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도무지 왜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 그 답답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속상해하는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어요.
또 내 능력과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한숨 짓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의 가족에 병든 분이 있기 때문에 혹은 학업 문제 때문에 속상해하고, 일터에서 직장 동료들과의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한 가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역경 뒤에 숨어 계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저는 믿기는 우리 삶의 환경과 여건이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복음의 놀라운 진전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반드시 당신의 때가 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당하고 있는 그 순간은 모를 수 있어요. 아니 대부분의 우리는 어떤 어려운 환경과 역경 속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해서 사실은 어려운 경우가 많죠.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몰라도 좋아요. 지금 다 알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죠. 다만 내가 당하는 일, 내가 당하는 고난과 실패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일진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일진데, 거기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더 높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결국에는 당신께서만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만 이루어질 것이니까.
여기 호주 교도소에서 일어난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이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서 감옥조차 하나님의 나라로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한 호주 시드니 어노인턴 교회 담임 목사님인 윤치영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윤 목사님은 전도사 때부터 호주에서 사역을 시작했어요.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그런 은사가 있어서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가 계속 성장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심을 가지고 돌보던 한 고3짜리 여학생 때문에 당시 전도사였던 윤 목사님은 교도소에 가게 됩니다. 이 여학생은 남자친구와 문란한 생활을 하고 부모에게조차 폭력을 가하던 그런 상처가 많은 학생이었어요. 부모님이 연락을 받고 윤 전도사님이 다른 청년들과 함께 가서 이 고3짜리 여자아이를 이제 교회로 데려오려고 그랬어요.
근데 뭐 반항을 하니까 이제 떼를 쓰는 바람에 아이의 등을 몇 회 때립니다. 그리고 불량한 남자친구가 있는 뉴질랜드에 있었는데 그 뉴질랜드로 가겠다고 하는 거를 막으려고 스마트폰 하고 그리고 여권을 빼앗았어요. 물론 부모님이 그렇게 요청을 해서 이제 그 일을 한 거죠.
하지만 아이는 불만이었고 전도사님을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은 납치 집단 폭행 그리고 강도죄였어요. 다시 가출을 못하도록 여권과 지갑을 빼앗은 것은 강도죄가 적용이 되었고 전도사님이 훈계했던 훈계는 폭행으로 둔갑했습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세상법에 의하면 그런 죄목들만 가지고도 몇 년의 형량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구치소에 갇히게 됐어요. 모든 옷이 다 벗겨지고 마약 등을 몸속에 넣어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개가 냄새를 맡았다 그래요.
그런 수치는 처음이었습니다. 발가벗긴 채로 조사를 받은 거죠. 1년 이상 징역을 살면 호주에서 추방입니다. 그 처음에는 전도사님은 자신을 이런 처지에 놓이게 한 주님을 원망했다 그래요.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기도도 안 됐다고 그러죠. 아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고통 때문에 주님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요. 자신은 아이를 위해서 상담하고 도와준 것밖에 없는데 갑자기 죄인이 돼서 감옥에 갇히게 되니 그 상황이 너무나 황당스럽고 억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점점 이제 재판 날짜가 다가오는데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해 왔어요. 재판 날짜가 다가오는데 갑자기 너무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래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벽에다가 막 머리를 박고 싶은 그런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그래요. 막 멘탈이 이제 무너진 거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벽에 부딪히려고 하는 순간 자기 입에서 터져 나왔대요. 고백이 터져 나오는데요. 주님 주님 살려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대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대요. 그리고 주님께서 전도사님 머리 위에 손을 얹으셨는데 그 순간 그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과 고통이 싹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가 너에게 전할 말이 있다 말씀하셨대요. 그래서 그는 다시 주님과 대화하고 기도를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감옥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깊은 기도에 들어가게 되자 그와 함께 있던 주변의 수감자들이 갑자기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대요. 우연히 같은 방 죄수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하는 말을 전했대요. 이제 전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냥 일상 대화 속에서 그 얘기가 툭 터져 나왔대요.
그런데 그 죄수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대요. 그때부터 그는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처럼 온갖 죄를 짓고 들어온 범죄자들이 전도사님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회개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는 감옥조차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전도사님이 전도한 방법은 이거였어요. 이제 죄수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교도소에 지금 죄수가 6천 명인데 이 중에 전도사 목사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지금 당신과 한 방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셔서 날 보낸 거야 라고 하는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런 전도에 죄수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더래요.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전도사님이 수감되었던 방이 자꾸 옮겨지게 됐대요. 옮길 때마다 새로운 죄수를 만나가지고 복음을 전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윤 전도사님을 사용해서 감옥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고 계셨던 겁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대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를 어떻게 해서든지 잘 되게 도와주고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는데, 납치, 집단, 폭행, 강도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참 기가 막히고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런 고난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참 많았다는 거죠.
그러나 거기에는 윤 전도사님이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뜻이 있었던 겁니다. 즉 감옥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던 거였죠.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렇게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파리선한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삶의 어려움이 있는 곳에 두신 이유가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주어진 현장에서 비록 때로는 힘들더라도 비록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비록 지금은 왜 나를 이런 어려운 환경에 두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내 삶에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
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뜻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해져 소원을 이룬다. 바로 그 사람들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받는 자녀들이라고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가 뜻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합력하여 소원을 이룰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바이 서는 장로교 성도 여러분 지금 삶과 여러분의 일터의 현장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분이 혹시 있습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련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바울처럼 사방이 꽉꽉 막힌 것 같은 환경에서 지금 탄식하는 분이 있습니까? 학업의 현장에서 제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지금 힘들어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상황조차도 사용하셔서 오히려 복음의 진전이 되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윤치원 목사님의 그 억울한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감옥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기억하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와 또 학교와 우리가 섬기는 선한 장로교회에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우리의 삶과 학교와 일터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그 상황을 사용하셔서 복음의 큰 진보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바이 선한 장로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하시므로 여러분들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가 이곳 파리에서도 부릴 듯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