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마르타
아람어로 '안주인'이라는 뜻을 지닌 ‘마르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여동생이자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마리아’의 언니로, 루카복음과 요한복음은 그녀를 포함한 3남매의 행적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에 살면서 주로 집안일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예수님의 친구이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이들로, 예수님께서는 종종 이들 3남매의 집을 방문하여 머물곤 하셨습니다.
루카복음은 그녀를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번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신 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바삐 움직이던 그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 10, 40).” 하고 말하자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 41~42).”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보통 활동적이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을 때 그녀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도 이틀이나 더 머무르시다 베타니아 마을의 그녀 집으로 가시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마중을 나갔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 21~23).”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도 그녀는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 27)라며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를 통해 차츰 완전한 신앙 고백으로 나아간 참된 제자의 모범이었던 것입니다. 성녀 마르타는 집사, 요리사, 영양사, 주부, 호텔 경영자, 가정부, 여관 주인, 세탁업자, 집안 돌보미, 미혼 여성 등의 수호천사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 성녀 마리아
마르타의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바삐 시중들던 언니 마르타와 달리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조용히 앉아있던 인물입니다, 또한, 앓던 오빠가 죽은 뒤 나흘이 지나 예수님께서 오실 때, 마중을 나갔던 언니와 달리 집안에서 사람들과 앉아 위로받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언니의 전갈을 받고서야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며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 32).”라고 하소연하듯 울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라자로를 소생시키기 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26)라고 선포하신 다음, 마리아와 언니 그리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덤의 돌을 치운 후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라는 말씀으로 죽었던 라자로를 되살리시게 됩니다. 이 일로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의회를 소집하여 예수님뿐만 아니라 오빠인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하게 됩니다(요한 11, 53 : 12, 10).
이후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라자로가 되살아난 베타니아로 가셨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리게 되는데, 이를 본 ‘유다 이스카리옷’이 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지 않느냐며 빈정거리듯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미리 언급하셨던 것입니다(요한 12, 7~8).
◆ 성 라자로
라자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로 그의 이름은 유대인의 이름인 ‘엘르아자르’가 그리스어화 된 이름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와 두 여동생은 모두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로, 예수님께서는 종종 그의 집을 방문하여 머무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그가 중병에 걸리게 되자 동생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음을 알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요한 11, 4).”라고 말씀하시며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습니다.
그사이 라자로는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잠들었다며 제자들과 함께 그가 죽어 묻힌 유다의 베타니아로 돌아오시게 됩니다. 당시 유다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적대적이어서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었는데, 이를 의식해선지 ‘쌍둥이’라고 불리는 제자 토마스가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 16).”라며 결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라.” 하시고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 하시니 죽었던 라자로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걸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11, 44).
이후 그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서 열린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 참석해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어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한 12, 2), 그 외에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에서 소생한 그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교회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동생들과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을 떠나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 지방에 도착해 그 지방에 복음을 전했다고 하며, 또 다른 전승으로는 그가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에 머물며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이렇듯 세 남매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것 말고는 모두 전승으로만 남아 있는데, 중세의 프랑스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르타는 어느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히던 ‘타라스크’라는 괴물을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려 얌전하게 길들였고, 이후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마을 이름도 ‘타라스콩’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 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았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으며 부활의 첫 목격자로서의 증인이 된 인물로 이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로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새롭게 개정된 “로마 순교록”에서는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와 죽음에서 소생한 성 라자로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면서 기존의 로마 보편 전례력 7월 29일에 기념하던 ‘성녀 마르타 기념일’을 대체하기로 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 확정했습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으며, 성 라자로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며 기념해 왔었습니다.
이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하여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