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②
토마스 선교사가 어떻게 조선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뉴대학(New College[당시 런던대학의 신학과])을 20세에 졸업하고, 24세였던 1863년 6월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였던 하노버(Hanover) 교회에서 목사가 된 후 바로 중국선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다른 교회 교인이었던 캐롤라인 고드프리(Caroline Godfrey)와 결혼을 하고 신혼인 상태에서 중국으로 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중국행 배를 탔는데 힘들고 위험한 5개월의 여행 끝에 그해 12월 중국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토마스가 본격적인 중국선교를 위해 런던선교회가 맡고 있었던 선교지 한구(漢口, 한커우)를 방문해서 3개월 정도 용무를 보는 동안 홀로 지내던 아내가 병에 걸렸고 3월 24일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토마스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4월초에 상해로 돌아왔으며, 상심이 커서 선교사 일을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상해에서 슬픈 날들을 보냈습니다. 결국 1864년 12월에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직을 그만 두고 상해 소재 스코틀랜드성서공회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1865년에 조선으로부터 온 천주교인 상인 2명을 만나게 됨으로써 조선에서 천주교가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한자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선 선교에 대한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조선어도 배우고,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서 조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그해 9월부터 토마스는 황해도 연안과 섬을 3개월간 여행하면서 조선어를 배웠고 한문으로 된 성경을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토마스는 이렇게 3개월 동안 황해도 연안 일대를 돌아보고 조선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참고도서: 오문한, 『토마스 목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