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天王峯 --조식 曺植
請看千石鐘 청간천석종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萬古天王峯 만고천왕봉
天鳴猶不鳴 천명불유명
천석으로 만든 종을 보아라
세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오히려 울지 않는다
대장부의 기상이 물씬 느껴지는 한시이다.
남명 조식이 산천재 山天齋에서 지은 시라고 한다.
산천재는 경남 산청에 있다.
조식은 진주 사람인데 왜 산청에 있을까 고민은 되지만 그냥 산청과 진주가 붙어 있으니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다..라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산천재가 있던 지리산 기슭의 덕천동이 당시에는 진주였고, 지금은 산청에 속해 있다고 한다.
결국은 둘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산청에서 더 가까우니까, 진주보다는 산청에서 보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산천재. 경남 산청 소재.
千石鐘은 천 개의 돌로 만든 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굉장히 큰 돌로 만든 종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大扣는 세게 때린다는 말이다.
아무리 세게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을만큼 큰 종이다.
성여신이 쓴 방장산 선유일기에는 이 부분이 산천재의 기둥에 쟁사두류산 爭似頭流山이라고 씌여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시의 제목은 두류산이 되는 건가? 시는 산청에서 씌였고, 두류산은 강원도에 있는 산이니, 아무래도 이 시의 제목이 두류산이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한시를 보다 보니 적혀 있는 문헌마다 조금씩 다른 곳이 참 많아서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아마도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잘못 적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잘못 기록되어 있는 시를 읽어 보는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울리지 않는다고 마지막에 끝을 낸다.
천왕봉의 굳건한 기상을 표현하면서 자신 역시 그런 굳건함을 지니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겠다니.. 참 남명 조식다운 시다.
조식 曺植 1501 (연산군 7) ~ 1572 (선조 5).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 楗仲, 호는 南冥.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조선 시대 성리학의 거두이다.
25세에 성리대전 性理大全을 읽은 후부터 성리학을 깊게 연구하여 학문이 높았으나 관직에 오르지 않았고, 관직에 제수를 받아도 곧 사퇴하여 일생동안 재야에서 지냈다.
성격이 굉장히 직선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풍을 지녀서, 형이상학적인 학풍을 지닌 이황과는 평생의 라이벌 관계였다.
특히 지금으로 따지면 독설가의 면모를 확실히 보이고 있어서, 명종을 '선왕의 어린 후사'라고 하고, 당시 실권을 쥐고 왕을 좌지우지했던 문정왕후에게는 '깊숙한 궁궐의 과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조식의 학풍은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해져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실천적인 학문을 숭상하였는데 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진주·합천 등지인 경상우도에서 일파를 이루었으며, 남명학파라고 한다.
이에 반해 이황의 학맥은 안동 등지인 경상좌도에서 일파를 이루었으며 퇴계학파라고 한다.
이후 퇴계학파가 남명학파에 비해 유명한 제자로는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정인홍 鄭仁弘과 외손자 사위인 곽재우 郭再祐가 있고 이황에게서도 배운 김면 金沔이 있는데, 세 사람의 제자는 모두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출처] 천왕봉 天王峯 조식|작성자 한담
무근 김화수 작품.(2026 부산 서예 큰마당 초대작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