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대🌺 |
✿1539년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 시인, 성리학자, 교육자, 화가 이산해(李山海) 출생
이산해 (李山海 1539∼1609)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본관은 한산(韓山).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급제,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 뒤 부수찬·병조좌랑 등을 거쳐 사헌부집의·동부승지·대사성 등을 지냈다.
이산해(李山海, 1539년 7월 20일 ~ 1609년 음력 8월 23일)는 조선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 시인이며 성리학자, 교육자, 화가이다. 당적은 동인, 북인에 속했으며 당의 주요 수뇌부이자 전략가였다. 본관은 한산, 자(字)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죽피옹(竹皮翁)·시촌거사(枾村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李塏)의 종고손이 된다.
관직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조선 명종 때부터 광해군 때까지 벼슬을 한 조선시대 학자,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친 당대의 세도가이자 문장가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서훈되고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문장력을 인정받아 명종의 명을 받아서 경복궁 대액을 썼던 그는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우의정에 올랐다. 기축옥사 무렵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며, 1590년에는 광국공신 3등으로 책록되어 아성부원군에 책봉되었다. 기축옥사의 참혹함을 보고 서인에게 원한을 품고 서인 공격의 선봉장이 된다.
1591년 세자 책봉파문(건저문제)로 실각한 정철과 서인의 처벌을 놓고 동인이 내부의 여론이 나뉘었을 때는 정철을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으며, 남인과 북인으로 갈릴 때에는 북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1590년과 1591년, 1592년, 1599년과 1602년 세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다. 화가 이산보의 사촌 형이며, 토정비결의 저자인 문신 겸 역술인 이지함은 그의 숙부이기도 했다. 토정 이지함, 남명 조식의 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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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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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광무 황제, 강제로 황제 자리를 물려줌-순종(純宗) 즉위.
제27대 순종(純宗, 1874~1926)
1907년 7월20일 광무 황제, 강제로 황제 자리를 물려줌-순종(純宗) 즉위. 순종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왕입니다. 묘호는 순종이고, 시호는 효황제입니다. 생일인 3월 25일은 대한제국 때 '건원절'이라는 이름의 국가 경축일이었습니다. 1907년(융희 원년) 8월 7일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황제 탄신경절을 건원절로 개칭하자고 상소해 이를 윤허하였으며, 다음해인 1908년(융희 2년) 음력 2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3월 25일로 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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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한ㆍ중 연합군, 羅南 72연대 대파 🌲48년 국회,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선출 (24일 취임). 🌲50년 공산군, 대전 점령, 딘 소장 납치 🌳65년 박정희 대통령·박순천 민중당대표 회담 🌲68년 정보부, 추자도 간첩사건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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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미국 아폴로 11호 암스트롱 인류최초 달착륙
미국 아폴로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0일 바위로 뒤덮인 달의 `고요한 바다` 표면에 인류최초로 발을 내디뎠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1호 발사와 함께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순간이었다. 소련은 그동안 첫 유인우주선 발사, 첫 지구궤도 선회, 첫 우주유영 등에서 미국을 앞서 나갔다.
아폴로11호 착륙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달 착륙선 이글은 암스트롱과 올드린을 태워 모선 콜롬비아를 떠났고, 함께 출발한 콜린스는 달 주위를 110km 상공에서 계속 돌았다. 마침내 달 착륙선의 해치가 열렸고 인류최초로 달에 내린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자욱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도약"이라고 감회를 표현했다. 18분 늦게 달에 착륙한 올드린은 첫 발을 내디면서 "아름답군, 아름다워, 멋진 황량함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진의 주인공은 올드린이 차지했다. 암스트롱만이 카메라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 31분을 달에 체류하며 예정대로 임무를 모두 마친 이들은 달을 떠나 모선인 콜롬비아호와 도킹하고 지구로 귀환해 하와이 남서쪽 1500km에 위치한 태평양에 무사히 착륙했다.
왼쪽부터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콜롬비아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착륙선 이글호 조종사 버즈 올드린. NASA 제공
17일 발사된 이래 119시간 18분이 소요됐고 120만km의 우주여행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비행사들을 직접 환영하기 위해 항공모함 호네트에 타고 있었으나 유리창 너머에서만 이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비행사들은 엄격한 검역으로 3주간 격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검역이 끝난 후 뉴욕과 시카고에서는 국가적인 영웅을 환영하는데 어울리는 퍼레이드를 벌였고 전 미국은 열광했다. 이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시작으로 1972년 12월 17호까지 다섯번 달착륙에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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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년 신민당 전당대회(당수 김홍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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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브루스 리(이소룡) 사망
‘드래곤 위기일발’ 촬영중 타이의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브루스 리(왼쪽)와 감독 로우 페이.
불세출의 쿵푸 스타 브루스 리(32)가 애인인 여배우 베티 팅 베이의 맨션에서 쓰러져 홍콩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73년 7월 20일 사망했다.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영화계 흑막에 의한 암살’, ‘뇌수종·가슴통증 때문에 마셨던 진통제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 ‘애인 베티 팅 베이와 성관계 중 돌연사’ 등 여러 설이 있다.
그는 그때까지 당시 미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액션으로 미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인 그는 홍콩으로 돌아와 홍콩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누리며 영화회사인 골든 하베스트사와 계약한 후 1971년 홍콩 골든하베스타사(社) 제작의 ‘당산대형(唐山大兄)’에 출연하면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진부하고 유치했지만 빛나는 그의 육체미가 영화의 성공에 한 몫을 담당했다.
‘비폭력 맹세를 하고 꾹 참아오지만, 악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결국 철봉을 휘두른다’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받아야하는 갖가지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실력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계속해서 그는 ‘정무문(精武門)’ ‘용쟁호투(龍爭虎鬪)’ 등의 영화를 통해 중국인의 강한 이미지를 서양인들에게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날 돌연 요절한 것이다. 액션 배우가 된 그의 아들 브랜든 리마저 1993년 ‘The Crow’ 촬영 중 실탄이 장착된 줄 모르고 연기하다 발생한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이후 ‘저주받은 부자(父子)’라고 불리워지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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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미국 무인우주선 바이킹1호 화성 연착 성공
바이킹 1호에 의해 최초로 촬영된 화성의 표면. 생물체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미국 NASA의 무인우주선 바이킹1호가 1976년 7월 20일 11개월간의 비행 끝에 화성 크리세 플래니티아(황금의 땅)에 연착륙하는데 성공, 지구의 사막 지형과 놀랍도록 유사한 바위투성이의 화성표면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화성의 신비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착륙 25초 후부터 화성표면 사진촬영에 들어갔고 19분 만에 지구로 첫신호를 보냈다.
우주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화성탐사를 진행해왔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사진촬영, 토양분석, 기상관측, 그리고 최대의 관심사인 ‘화성에는 지금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했었는가’의 조사를 목적으로 약 1년 전 2대의 무인탐사기를 쏘아올렸다.
착륙후 주변풍경 관찰과 기상관측, 그리고 대기와 토양 분석 등의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생명활동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화성표면이 바위투성이의 검붉은 사막으로 구성되어있고, 토양 분석 결과 희박하게나마 수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 생명체의 4대 요소인 질소 산소 수소 탄소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약 1개월 후 다시 발사된 ‘바이킹2호’가 지진계 고장으로 지진관측의 임무를 다 하지 못한 ‘바이킹1호’를 대신함으로써 화성이 지구보다 내부의 활동이 적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 바이킹계획의 성공으로 지구에 보내진 방대한 사진과 데이터가 화성의 지도작성과 지질학, 기상학 등의 연구에 크게 공헌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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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고리원전 1호기 준공식
경남 양산군 고리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원전 1호기`.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 1호기가 7년 7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1978년 7월 20일 준공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력발전소 보유국이 됐다.
당시 원자력 1호기의 시설용량은 58만7천kw로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 6백59만kw의 9%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외자 8백40억원 등 총 1천5백60억원의 공사비가 든 고리원전 1호기는 발전 시설용량 58만7천kw의 가압경수로형으로서 당시 국내 기술이 전무해 미국의 웰코사가 전반적인 건설책임을 지고 원자로 설비와 연료공급을 맡았고 영국에 제너럴일렉트릭사가 터빈 발전기 공급과 토건공사의 감독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현대와 동아건설이 원자로와 터빈 공사에 하도급업체로 참가했다.
세계각국이 급증하는 전력의 공급선을 공해가 비교적 적은 핵에너지에서 찾기 시작한 것은 고리원전 1호기 준공일로부터 불과 20여년전의 일이었다. 1956년 9월, 영국의 칼더홀 원자력발전소가 세계최초의 상업발전을 시작한 이래 각국은 다투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에너지자원이 부족하기만 했던 우리나라도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1962년 원자력발전소 건설구상을 하기 시작, 1971년 고리원전 1호기를 착공, 7년 7개월 만인 1978년 오늘 그동안의 온갖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준공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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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김진호,세계궁도선수권대회 5개의 금메달-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여자 부문 6개의 금메달 중 5개 🌲79년 카터 미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문제를 1981년에 재검토 발표 🌲81년 한국·인도네시아, 건설협력협정에 합의 🌲84년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 필리핀의 도전자 데빌로스에 7회 KO승,4차 방어 🌲84년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국내 최대의 부처 진신 사리 3과 발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