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 / 최미숙
올 한 해도 끝나간다. 머리 쥐어짜며 썼던 2학기 글쓰기 수업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1~2주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이 터져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뻔했는데 그나마 모두의 노력으로 조금씩 안정돼 간다.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그들이 우리 아들과 딸, 또 내 동료고 후배와 선배여서 자랑스럽다.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현실이, 또 그런 나라에 산다는 게 뿌듯하고 그저 고맙기만 한 요즈음이다.
정년퇴직하고 맞이한 첫해, 괜찮은 1년이었는지 묻는다. 이제는 아픈 곳도 하나씩 생기고, 얼굴과 입가에 깊게 자리한 주름이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 아닌가. 가끔 살아온 햇수를 의식하며 놀라기도 하고, 늙으면 좋은 게 하나도 없다던 엄마 말이 새록새록 떠오르지만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스스로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수밖에. 가 버린 세월은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벌써 4년, 쓸수록 는다고 하는데 반대로 자꾸만 움츠러든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주저하게 된다. 이번 주도 글 올릴 날이 다가오는데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핑곗거리를 찾아 미루고 미뤘다. 아침 운동과 시설 아이들 가르치는 것 외에 특별한 일이 없어 시간은 충분했는데도 혼란스러운 시국을 탓하며 국회 상임위 현안 질의 유튜브 동영상 보느라 여러 날을 허비했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으면 게으른 행태가 용서될 것 같아 남은 시간은 책을 들고 누워 지냈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맴도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부담만 가득 안은 채 1주일을 넘겼다. 도움이라도 얻고자 동화책을 잔뜩 쌓아 놓고 한 권 한 권 읽었지만 주인공의 활약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면 좋을지 여전히 막막하고 답답하다.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자조했다.
일요일 아침, 마음먹고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다시 계엄 관련 국방위 현안 질의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저녁이 다 되도록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은 꼭 하는 강박이 있어 어떻게든 정해진 시간까지 한 편은 완성할 것이라 스스로를 믿는다. 박경리 선생처럼 장편 소설 쓰는 작가들이 위대해 보였다.
멋모르고 친구 따라 글쓰기에 발을 담그고 여기까지 왔다. 글 수준이야 어떻든 나름 성실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데에 무게를 둔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며 몇 년 동안 공 들이다 보면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 쥐어짤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래도 가는 데까지는 가 봐야지.
참으로 어설픈 글로 한 해를 마친다. 만족하지 않지만 결코 헛된 시간은 없다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아무리 힘들다고 아우성쳐도 내년에도 노트북 들고 지면을 채우고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