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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2022.10.02 / 이사야 33장 2절
“야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이사야 33장 2절)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고백대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전 여러분과 함께 이사야 33장 2절의 말씀을 가지고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세상 사람들은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삽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하루 한 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난 코로나 3년 지나온 이 모든 날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런던에서 3년마다 유럽 선교사 대회를 여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이번에 5년 만에 열렸습니다. 갔는데 그냥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 흘리고 기도하면서 눈물 흘리고 말씀 들으면서 눈물 흘리고 3년 동안 예배를 제대로 못 보다가 이제 완전히 저기는 실내에서도 마스크에서 해방되어서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 가지고 보조 의자를 다 넣고 뒤에 복도에도 다 앉고 은혜의 잔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연말쯤 되면 마스크를 벗고 내년에는 저렇게 은혜의 축제로 예배드릴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45년부터 695년까지 약 오십 년 동안 유다 왕 웃시야로부터 북왕국 이스라엘 멸망 후까지 사역했던 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그들이 당할 환난에 대해서 계속 예언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렇게 저들이 외쳤지만 우상숭배에 빠진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삶이 어려워지고 그 환경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절망으로 뒤덮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둘러싸여 동서남북 그 어디를 바라봐도 희망이 없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1.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그가 바라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셨느냐?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33장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기만 하면 우리 그 문제에서 건져주시고,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 가운데 환난 가운데 육신의 질병 가운데 헤어나올 수 없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희망이 있는 것은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절망의 자리에 처해 있는 우리를 돌보시고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병들어 누워있는 우리를 어루만져 그 병에서 일어나 건강하게 만들어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 왕국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눈물로 기도한 그 기도의 내용이 예레미야애가서에 나옵니다. 애가서 3장 19절 20절 22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여서 우리가 진멸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보시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그 은혜가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인자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을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긍휼히 여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시편 103편 13절 14절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늘 부모가 자녀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 같이 특별히 자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플 때 고난당할 때 부모의 마음이 녹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 그러한 애끓는 마음으로 자녀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지 같은 존재임을 알면서도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딴 길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환난의 때에 문제를 만났을 때 환난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절망에 처했을 때 환경을 바라보면 더 절망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을 의지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등을 돌려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주님을 앙망하는 신앙
이사야는 주님을 앙망하는 신앙에 대해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33장 2절입니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내가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이사야 26장 8절, 9절입니다.
야훼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은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사모합니다. 이 밤에 절망의 밤에, 고통의 밤에 환난의 밤에, 문제의 밤에, 내가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의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김현승 시인이 네 살 때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여러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가 네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때 그 슬픔을 믿음으로 이겨내면서 시를 썼습니다.
그 제목이 ‘눈물’입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아들을 통해서 내게 웃음을 만들어주신 다음에 다시 나에게 눈물을 지어주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눈물은 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흐르는 모든 눈물을 귀히 보시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는 다시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 이 땅에서는 우리가 아파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답답해서 울고 상처받아 울고 외로워서 울고 슬퍼서 울고 우리가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이 모든 눈물은 귀한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고귀한 눈물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에서 흘리는 감격의 눈물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눈물이 우리 앞을 가린다고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복음성가 ‘내 사랑하는 그 이름’ 2절에 보면.
<복음성가 : 내 사랑하는 그 이름>
2절 내 눈물 씻어주시는
예수 복된 예수
후렴 아 귀하다 그의 이름
갈보리 산의 어린양
귀한 생명 버리셨네
예수 복된 예수
할렐루야!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주님만 바라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의 새 힘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절망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주님을 앙망하고 바라볼 때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3.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
이사야 33장 2절은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33장 2절입니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 힘의 근원이 되시고 환난 때 구원이 되소서. 주님의 은혜가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23절입니다.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아무리 절망이 깊은 밤을 지났다고 할지라도 아침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새롭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이 우리를 영원히 붙잡을 수 없습니다. 절망은 지나가는 밤입니다. 밤이 지나면 희망의 새벽은 밝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팔은 주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불평꾼들이에요. 왜냐하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애굽에서 건져주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는데 입만 열면 불평을 했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한참 가다가 또. “고기가 먹고 싶어요. 내가 노예로 살 때는 그래도 가끔 고기도 먹었는데 주인집에서 고기 구우면 그래도 굽다 탄 거라도 얻어먹었는데 이 광야 길에서 도대체 먹을 거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내가 뭐 고기 한 번 못 먹고 이 밤낮 만나만 가지고 이렇게 인생을 살아야 되겠습니까?” 불평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여러분 한심한 사람들이라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감사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속에 살고 있는데 너무나 쉽게 불평하고 너무너무 쉽게 남 탓하고 너무나 늘 문제만 얘기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지 회개해야 됩니다. 주여 넘치는 감사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저들이 또 저렇게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들에게 한 달 동안 아주 고기를 질리게 먹게 해주겠다. 이제 너무 고기가 많아서 이제 고기를 보기도 싫어할 정도로 내가 고기를 너희에게 공급해주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 지금 남자 어른만 60만 명이고 다 합해서 200만 명이 넘는데 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1장 23절입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야훼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개역한글 성경에는 ‘야훼의 손이 짧아졌느냐?’ 새번역 성경에는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하나님의 손이 짧아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그 능력의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능히 강한 손과 편 팔로 우리를 돌보시며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해방시켜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팔로 역사해 주셔서 바다에서 바람 불게 하니까 메추라기 떼가 쏟아지는데 막 살이 통통히 찐 메추라기들이 막 쏟아집니다. 성경을 보면 하루길 거리에 메추라기가 쌓였다고 그랬습니다. 1km 반경 안에 메추라기가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그것이 2피트 90cm가 쌓였습니다. 그냥 고기 고기로 뒤덮였습니다. 뭐 구워먹고 삶아 먹고 지져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요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쬐끄맣게 있다 없는 그런 은혜가 아니라 예수님 믿은 것부터가 엄청난 은혜입니다. 기적적인 기적입니다. 그 은혜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적이고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예기치 못한 환난이 다가와서 사고로 온몸이 마비가 되어 누워 있어야만 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도 은혜에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온몸이 사고로 전신 마비가 돼서 29년 동안 누워있던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윤석언씨인데요.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1991년 23세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 29년 동안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전신 장애로 살다가 2020년 9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갔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선교사를 꿈꾸면서 미국 에버렛칼리지에 다니다가 3년 재학 중인 그때 찬양대 연습을 하러 청년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던 중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이 차선을 이쪽 차선을 넘어와서 덮치는 바람에 그 사고로 대형 사고가 나서 그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갔고 뇌출혈과 중추신경 손상으로 혼수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깨어날 확률이 없다고 장례를 준비하러 오겠습니다. 40일 동안 혼수상태로 누워있었는데 40일 만에 그가 정신이 돌아옵니다. 의사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때 MRI 뇌를 찍은 사진을 보면 온 뇌가 피로 완전히 덮여 있어서 하얗게 뇌가 찍혔는데 40일 만에 그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눈은 떴지만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마비된 상태로 그가 눈을 뜨게 됐고 말을 처음할 수 있기까지는 2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는 완전히 병상에서 식물인간이 되어서 그냥 눈만 끔뻑끔뻑하는 그런 모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자리에서 그 죽음의 자리에서 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심장이 약해져서 늘 저혈압으로 인해서 두통과 어지러움이 그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눈만 뜨면 감사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기도로 감사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매일의 삶이 죽음과 싸우는 삶이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서 그나마 의학적인 발달로 인해서 특수 안경을 만들었는데 특수 안경을 만들어서 이 안경이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판을 찍을 수가 있게 됐습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대로 눈이 멈추면 글자 자판을 찍어가지고 그래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시도 쓰고 시집도 내고 또 2011년 경희사이버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면서 성적우수장학생으로 졸업을 하고 대학을 마친 후 신학을 공부합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 듣고 그가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또 일어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2001년에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라고 하는 시집을 냅니다. 이 시집에는 신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 60편의 아름다운 시가 담겨 있습니다. 메릴랜드 콜롬비아시에서 그가 한 요양원에 지내면서 2015년 LA에 있는 월드미션대학교에 온라인으로 석사과정을 입학해서 2020년 6월 6일 월드미션대학교에서 총장 특별상을 받으며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출석하던 벧엘교회에서는 그를 문서 선교사로 불렀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온라인 선교사역 문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그는 천국에 갑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 스물세 살까지 그냥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달려가던 그가 불의의 사고로 완전히 온몸이 마비된 장애인이 됐지만 그때로부터 그의 감사는 시작됩니다. 죽음과 싸우면서 매일 매일 감사하고 감사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그가 많은 간증을 통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책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었지만, 내일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자고 나면 내일이겠지 하면서도 오늘이었습니다. 무거운 손, 마음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나는 내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이제 나는 손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이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닌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어떤 절망 가운데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듯이 긴 긴 환난의 밤이 지나고 나면 광명의 새벽이 희망의 새벽이 기적의 새벽이 여러분에게 밝아 올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찬송가 419장 우리가 믿음의 고백으로 찬양합니다. 주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은혜의 날개 아래에서 내가 평안히 쉬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찬송을 통해서 우리에게 큰 위로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찬송가 419장 (통 478) :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1절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2절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 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3절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은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여러분을 품으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주님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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