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지난연말부터 연초까지 큰건 하나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잘 마무리하고 연휴 즐긴 후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무실에 나왔답니다.
오프모임에 참가하지도 못하는 불성실 회원이지만
가끔 카페에 들러 이곳저곳 둘러보는 정말 쬐~끔 자그마한 애정만은 지니고 있는 회원이랍니다. ^^;
운영진 분들이 꼬박꼬박 보내주시는 문자와 쪽지에 보답하고자
먹고살기 급급한 직장인으로써 시간이 잘 맞지않아 오프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대신 뭔가 글이라도 올려야 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박이 밀려오네요.
그래서 지난해 다녀온 경주여행기를 올릴까 합니다.
일상을 끄적거리며 남기는것을 좋아해서
여행 다녀온 후 정리해 둔 글을 제 최측근들이 열명남짓 모여있는 카페에 한번 올리고
이곳에도 남깁니다.
변변찮은 글 몇번에 걸쳐 올리는것도 주제넘는 짓 같아서 한번에 모아서 올립니다.
조금 길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시작~! =^^=
-------------------------------------------------------------------------------
Part. 1 첫날
홀로 경주여행을 다녀왔답니다.
내내 망설이다가 그냥 확 질러버렸죠.
2박3일간의 일정이라 나름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먹은것이니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없이...
경주여행이라 하면, 최근에 1박2일 때문에 유명해져서 인지 스템프 여행을 많이 떠올리더군요.
하지만 뭐에 얽매이는걸 싫어하는 저의 습성상,
돌아댕기며 스템프를 찍거나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말그대로 그냥 돌아댕기기...
출발해서 눈에 띄는곳, 당장에 가고싶어지는 곳, 그때 기분에 맞게 움직이기.
한동안 잠잠했던 유랑벽이 도지면 안되는데... ㅜㅜ
원래 계획은 제가 뻥뚫린 밤길을 달리는 새벽드라이브를 즐기는 관계로
목요일 새벽에 출발하고 싶었으나,
수요일 10시까지 사무실에 있었답니다.
때문에 피곤하여 새벽 기상을 할 수 없었답니다. ㅠ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보문단지 내에 있는 "경주0000호텔"
제 불꽃 검색결과 성수기인데도 숙박비도 싸고, 시설도 괜찮다 판단하여 정했답니다.
2박에 16만원!!
호텔 치고는 싸더군요.
현지에 가서 숙소를 알아보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숙소만은 미리 정하고 내려갔죠.
도착해보니 나름 괜찮더군요.
혼자 간 여행에 더블베드 하나와 싱글베드 하나가 놓여 있어서
어느 침대에서 잘까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렇게 우선 방에 짐을 풀고 무작정 관광지도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관광안내소를 찾았답니다.
경주는 나름 관광도시이니 관광안내소는 널렸을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며...
역시 보문단지내에 숙소 바로 옆에 떡하니 있더군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산하기 그지없고, 두명의 여성 직원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제가 들어가니
두분이 벌떡 일어나서 제가 잠시 뻘줌했다는...
관광지도와 안내책자를 받을수 있을까요?
물으니 한보따리를 주더군요.
그래서 이왕 사람도 없으니 데스크에 쫙~ 펼쳐놓고 골랐답니다.
가장 상세한 지도 한장과 제일 두꺼운 안내책자 한권,
그리고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양동마을 안내책자 하나.
그렇게 세가지를 집어들고 우선 불국사를 가보자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었죠
여기서 불국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죠?
차로 20분정도 가시면 되요.
걸어서는 얼마나 걸리죠?
걸어서는 못가요.
순간... 차로는 가는데 걸어서는 왜 못가는지 잠시 생각했답니다.
이분이 걸어서는 너무 멀다는 의미를 못간다고 표현했구나 싶었죠.
그래서 아주아주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차로 20분이면 걸어서 두시간 안에는 가겠죠? 수고하세요~
하고 지도를 챙겨 나왔답니다.
그런데 막상 가려하니, 2박 3일의 일정을 너무 지쳐서 시작하면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결국 호텔 주차장에 있던 차에 올랐답니다.
순간 관광안내소에서 있던 직원을 속인것 같다는 느낌이 살짝 들더군요.
불국사...
언젠가 가본것도 같은데, 왜 기억이 안날까...
네비게이션을 찍고 도착!!
생각보다 입구가 허름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정문이 아니더라는...
아무튼 입장료를 내고 나무사이 왠지 억지스러워 보이는 길을 휘적휘적 걸어올라갔답니다.
억지스럽다는 느낌은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너무 잘 닦여진 길이 자연스럽지가 않아서였답니다.
차라리 흙길이었다면 좋을것을...
그래도 나무사이로 흘러내려오는 빛들이 사람손 닿아있는 너무 깨끗한길에 밝은 무늬 새겨주는것 같아 좋더군요.
여기저기 둘러보니 주중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아... 새벽에 오는건데... 싶더라구요.
제가 원래 사람들 모이는곳을 싫어해서리...
왠지 어딘가에서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싶을때, 사람들이 많으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제일 싫어하는 소스가 얹어있는것 같은 느낌...
위에것을 싹 걷어버리고 내가 좋아하는것을 콕 찍어 먹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
그래도 서울보다는 낫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둘러봤답니다.
그런데 제 눈에 확 띄는것들이 모조리 처마였다는...
규칙적인 조형미...
역시 저는 뭔가 반듯한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 지나갈때를 기다려 한장한장 찍어봤답니다.
처마들이 어찌나 규칙적이면서도 예뻐보이던지...
그리고 개울가 옆에 있는 이끼낀 돌들과 건물사이의 돌담을 보니 버티고 있던 세월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불규칙함이 어울려 반듯함을 만들고, 반듯함이 어울려 세월을 이겨낸것 같은 생각에 잠시 멍하니 바라봤답니다.
그렇게 불국사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도망치던 노비가 목을 축이기 위해 애용하던 초록색 음료를 한병 사서 목을 축였답니다
차에 올라 어딜갈까 생각하다가
옆자리에 놓여있는 양동마을 책자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 가자...
세계문화유산이 어떤지 구경해보자...
멀지 않더군요.
차로 약 40분...
마을 초입에서부터 경찰아저씨들이 교통 통제를 하시더군요.
마을 안으로는 차가 못들어가게...
그래서 임시 주차장인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하고 다시 배낭을 매고 마을로 올라갔답니다.
눈에 보이는 마을전경은...
그냥 시골마을...
쬐끔 실망했습니다.
어렸을적 보던 저희 고향동네랑 별로 다를바 없다는 생각에...
그래도 이제는 초가집들과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것을 보기가 쉽지 않죠.
딱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대로변에 사람들 많은곳을 지나쳐 이리저리 골목을 휘젓고 다녔죠.
그런데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어서인지 건물안으로는 구경할 수 없더군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를 연달아 외치며 이집저집 구경다녔죠.
사람이 살고 있지만 주인이 없는 집에 불쑥 들어가는것은 실례이기에
주민이 대청마루에 나와있는 몇 집을 양해를 얻어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집 안은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진...
순간...
내가 무엇을 기대했던가.
옛날 그대로의 집이 현재 남아있을까?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는것을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사람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았을것 같은 골목길을 구경하고
제일 높아보이는 언덕에 올라 마을 전경을 바라보았답니다.
속안이 어떻게 채워져있을 지언정
겉으로라도 남아있는 옛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내려오는길...
배가 고프더군요.
하긴 오후 4시가 넘었는데 하루종일 먹은것이라곤 그 노비음료 한병 뿐이니...
(아.. 여기서 알려드리자면 저 음료는 추노의 장혁이 광고하던 스포츠음료.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친절한 새그늘... )
그래서 마을에 음식 파는곳이 없나 찾아보니 한옥집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더군요.
현대식 건물이었다면 아마도 고픈배를 참더라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마당에는 자그마한 꽃들을 키우고, 한옥구조상 안채로 보이는 널찍한 건물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이더군요.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여기저기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혼자온 사람은 저 뿐인듯...
그런곳에서는 된장찌개를 먹어줘야죠.
그리고 파전도 하나...
주문을 하며 혼자왔으니 가격은 제대로 지불할테니 양을 좀 적게 해달라 부탁했습니다.
배부른것도 좋지만 너무 과하면 맛을 음미할 수 없으니...
주문받는 아가씨, 저와 시선을 마주하고 살짝 웃으며 "네..."하고 갑니다.
그래서 나온 음식... 된장찌게...
표현하자면...
쥑입니다. 이 감정은 표준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ㅠㅠ
굵은 멸치가 들어가 있고, 호박과 야채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매콤한 고추가 국물을 얼큰하게 달궈놓은...
그 국물 한수저에 하얀 두부 한조각을 떠먹는 기분이란...
제 경주에서의 첫 끼니는 대성공 이었답니다.
파전은 뭐 그닥 서울에서 먹는 일반 음식과 다를 바 없었기에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된장찌개는... 정말... 좋습니다.
행복한 식사는 마음을 달구는것 같네요.
하루종일 땡볕에 그을린 피부와 온도를 맞추려는 듯...
배불리 먹고 보니 손님들이 다 나가고 저밖에 없네요.
그래서 짐짓 여유부려 봅니다.
행복한 기분 느끼며 마당바라보고 한동안 미소띈 얼굴로 삐딱하게 벽에 기대어 앉아 여유를 즐겨봅니다.
제가 지나왔던 골목길..... 마을 어귀를 떠올리며...
누구와 동행하여 억지로 느낌을 대화하지 않아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구나...
사람사는 집이야 어딘들 다르랴마는 마을이 지닌 분위기와 향취는 묵혀놓은 술마냥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것이구나...
그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다가 명함 한장 받고 가게를 나섭니다.
얼마나 시간이 오래되었는지, 주차장에 차도 없고, 땀 삐질삐질 흘리며 안내하던 경찰들도 없네요.
고생하는것 같아 음료수 한병씩 사드리려 했는데...
차를 빼려는 순간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양동초등학교 전경...
지붕이 한옥 양식이더군요.
안에 들어가보고 싶지만, 아까 양동마을 집 안을 구경하며 느낀 실망감이 떠올라
똑같은 기분 느낄까봐 발길 돌렸답니다.
그렇게 차에 오르니 해가 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죠.
텅빈 방, 보문호수에 비치는 화려한 조명들...
땀에젖은 몸 씻기 전에 잠시 하루를 되씹어봅니다.
달달한 엿 한조각 집어물어 끈적끈적 달라붙은 달콤함처럼... 그렇게 하루가 느껴집니다.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 씻고나와 가방에 들어있는 책한권 꺼냅니다.
제 하루를 올곧이 선량한 느낌에 파묻고 싶어 작은 스텐드 하나 켜고 캄캄한 방 한구석에서
커피한잔과 담배를 꺼내어 놓고, 그렇게 읽어내려갑니다.
이렇게 경주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답니다.
Part. 2 생각
제가 이번 여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어른 한명이요... 랍니다.
어디를 가던 표를 사야 했기에 매표소에서 내뱉는 말.
순간 떠오르는, 내가 어른이구나... 게다가 한명이구나...
대학생도 일반표를 구입해야하니, 대학때부터 이미 어른 한명을 외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왜 대학생 한명이라는 말로 나를 표현했을까?
그런데 이제는 정말 어른 한명이네요.
너무 더운 날씨에 돌아다닌 관계로, 이따금 한자리에 머물러 땀을 식힐때 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더군요.
나는 어른 값어치를 지불하는 만큼 어른 노릇을 하고 있을까...
남들과 사회는 모두 내게 어른이 되었으니,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하라는데
정작 나는 그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돈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나이를 많이 먹음이 서러워서도 아니라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바뀜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수용하게 되는것 같아
그만큼의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른 노릇하며 살아야, 어른값 지불하는것 만큼 손해보며 살지 않겠다... 그런 생각...
Part. 3 사람구경
제가 안압지에 주차를 하고 종일 돌아다녔던 날...
한참을 걷다 넓게 자리잡은 연꽃무리에 시선이 머무네요.
배고파서인지 저 연꽃잎 따다, 연잎밥 해먹으면 맛있겠다 생각이 들때쯤,
여기 저기 사람들이 보이네요.
저 작은 꼬마의 손은 V를 그리는 듯...
그래 연꽃보다는 니가 더 예쁘다... 내 딸이라도 연꽃 안찍고 내 딸 얼굴만 찍을테다. ^^
엄마 손 잡고가는 아이 고개가 까딱거리네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엄마가 묶어준 양갈래 머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걸 보니 참...
이리저리 아이들 모습 둘러보다 눈에 들어오는 두사람...
모자지간 같네요.
생김새도 비슷하고, 위에 딸 손잡고 가던 모습같이 두 모자 손 꼭 잡고, 길 끝까지 천천히 걸어가는걸
한참 보았답니다.
할아버지 모습과 며느리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요.
왜??? 라는 이유 따지기 전에 그냥 보기 좋습니다.
연꽃 구경하다 사람 구경했네요.
아니 사람 구경한게 아니라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 구경했네요.
함께라는건 좋은것 같습니다.
혼자 있는 사람, 혼자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한숨섞인 미소 주는걸 보니...
연꽃보다 백만배쯤 좋은 구경 했습니다. ^^
Part. 4 먹거리
무작정 여행의 특성상 원래 먹거리 검색은 잘 하지 않지만,
여행가서는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는 앞방 성격까칠한 동생의 조언때문에 검색해 봤답니다.
그래서 찾아낸것이
"00갈비"와 "00김밥"
사람들 왁자지껄 모일만한 장소는 배제하고 골목길에 숨어있을법한 곳만 추린거랍니다.
먼저 "00갈비"
희안하게 갈비찜 위에 백설기가 뿌려져 있더군요.
무슨 대회에서 상을 탓다는데, 기름기 없는 고기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양념이 잘 배인 맛깔난 갈비찜을 생각했답니다.
결과는???
뭔 기름기가 그리도 많은지...
느끼해서 죽는줄 알았습니다.
경상도 음식 다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허기진 배 부여잡고 반만 간신히 먹었네요.
그것도 고기보다는 아래 깔린 고구마 위주로...
그냥 말 그대로 백설기 뿌려진 겁나게 느끼한 갈비찜입니다.
기름기 좋아하시는분 드셔보시길... ㅠㅠ
두번째는 "00김밥"
이곳이 끌린 이유는 골목에 있는 허름한 집이라는 장소적 특이성과
40년을 이어온 김밥집이라는 의아함...
보통 김밥이라 함은 몇십년을 이어가기에는 음식의 독립성이 약하다 싶은 느낌...
경주여행 2틀째 한참을 돌아다니다 정말 우연찮게 들렸습니다.
미리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찾아간게 아니라 이리저리 골목길 돌아다니다 제앞에
골목 어귀에서 떡하니 나타나지 뭡니까
그냥 시골 조그마한 슈퍼...
경주 교동 본점이라 써있는데, 지점은 없고 저곳 딱 한군데 랍니다.
시골길 걸어가다 나오는 전방처럼 정말 허름합니다.
손님도 없습니다. 하긴 늦은 오후였으니...
김밥 두줄이 담긴 도시락 한개가 2,400원 입니다.
먹다가 중간에 찍었네요.
증말, 진짜루 맛있습니다.
제가 먹어본 김밥중 단연 으뜸입니다.
계란지단이 반 이상에 단무지 조금, 우엉 조금...
근데 맛있습니다.
제가 경주에 다시 가게 된다면 30%이상은 저 김밥을 먹기 위해서일겁니다.
마침 주인아주머니 혼자 계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네요.
혼자 가게에 걸터앉아 김밥 집어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와 얘기 나누기...
제가 여행을 하며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요새는 그럴 기회도 별로 없죠. 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앉아 먹을 만한 곳이 없더군요.
그렇게 도시락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일어났답니다.
Part. 5 마지막날
경주에서 출발하는 날...
저는 이번에는 차를 몰고 다시 김밥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주를 떠나는 날 제 머리에는 온통 김밥 생각 뿐이었으므로...
차를 가지고 가다가 먼발치에 주차하고 걸어들어갔습니다.
왠지 차를 몰고 찾아가면 아주머니와 거리감이 느껴질듯해서
일부러 주차한 후 배낭매고 모자 눌러쓰고 들어갑니다.
다시 들르니 아주머니가 알아봐 주시네요.
하긴 꾀죄죄한 몰골로 연이틀을 찾아가니...
마침 따님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여자분이 김밥을 말고 있네요.
하루에 몇번이나 만드세요?
뭐 그때그때 만들어요. 떨어지면...
그날은 할아버지도 슈퍼안에 있는 방 턱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지켜보고 계십니다.
도시락 세개주세요.
나무젓가락을 세개 넣으십니다.
젓가락은 하나만 넣으세요. 제가 다 먹을꺼거든요. ^^
잠깐 웃으시더니 단무지도 챙겨주십니다.
그렇게 도시락 세개를 깜장 비닐봉투에 담아 돌아나옵니다.
언젠가 다시 경주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다시 들르겠다는 인사와 함께...
올라오는 길은 그리 차가 막히지 않더군요. 김밥집에서 집까지 딱 세시간 사십분 걸렸습니다.
과속은 절대 안하고...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김밥을 꺼냈습니다.
냉장고에서 저희 엄니가 가져다 주신 열무김치도 꺼냅니다.
감동입니다. ㅠㅠ
아... 울 엄니께서 이번 열무김치는 좀 더 맵게 담그셨네요.
그래서 더 좋네요.
아무래도 엄니가 네가 김밥과 함께 먹을줄 알고 맵게 해주셨다 싶네요.
혼자서 분당 내방 한가운데 앉아 그렇게 경주를 맛보았답니다.
경주... 김밥은 정말 참... 맛있습니다... ^^
Part. 6 기억하고 싶은...
경주의 마지막 기록을 김밥으로 할까 이곳으로 할까 좀 망설였네요.
하지만 여행의 백미는 여유이므로 먹거리를 제치고 이곳을 마지막으로 선정했습니다.
"0000 커피"
이곳저곳 구경하다 커피가 땡겨서 무작정 들어간 집.
왜 가게를 큰길가 인도도 없는곳에 열었는지...
한적한 길이지만 차만 쌩쌩 지나가고, 걷는 사람은 거의 없는 한길가...
묵는곳이 호텔이었던 관계로 제가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한잔도 먹을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캔커피를 사다 마셨는데, 그것으로는 달래지 못하는 갈증이란...
무작정 길가를 걸어가다 보니 왼편에 큰 꽃밭이 나오더군요.
한여름 땡볕에서 그늘하나 없는 꽃밭을 세네시간쯤 걸었을 무렵
엄청나게 다가오는 갈증...
챙겨간 생수병은 어느새 비워져 있고...
그러다 찾아낸곳이 이곳이랍니다.
"0000커피"
겉에서 보기에는 시골 다방으로 오해할법도 한데,
안에 들어가보니 의외로 잘 꾸며놓으셨네요.
한쪽 귀퉁이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앉아 냉커피를 외칩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 보다는 냉커피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왜일까...
벽에 붙은 메모들을 보아하니, 나름 손님이 많나 봅니다.
그런데 왜이리 한산할까...
그렇게 한참을 앉아 달아오른 몸을 식힌 후, 책을 펼칩니다.
설렘... 아침에 저 책을 챙겨오고 싶더라니... 이곳에 오기위해 그랬던가 보네요.
아주머니... 혼자 오셨어요? 이제야 물어보네요.
네...
나와 동갑또래나 되었을까...
아니면 저보다 어릴수도 있겠습니다.
경주에 처음왔는데, 쉴곳으로 참 좋은곳 제가 잘 찾아 들어왔네요. ^^
아주머니 살짝 웃으십니다.
이런저런 얘기 나눠보니, 나이와 맞지 않게 벌써 애가 둘이라네요.
둘 다 남자애들인데 정신없어 죽겠답니다.
경주 토박이로 어느한곳 돌아다닐 새 없이 어린나이에 결혼해서
애를 일찍 낳았다 합니다.
애엄마 같지 않으세요.
접대성 멘트 아닙니다. 저는 아주머니는 작업하지 않거든요.
(저 바람둥이 아닙니다. -.- 작업이라는 단어는 혼자사는 혼기 꽉찬 총각에게는 관심의 표현이라는 순수한 뜻으로 해석해 주시길...)
진짜루 그래 보였습니다. -.-
이상하게도 저는 아이얘기가 나오면 대화가 길어집니다.
아주머니 손에 들린 책을 보며, 애들 책을 어떻게 읽히는지 물어보고
아들 두녀석이면 정말 힘드시겠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죠? 하니
저녁에 많이 온다네요.
그때서야 메모지를 좀 읽어보니...
온갖 커플들의 낯간지러운 글들...
솔로들의 푸념...
하나씩 읽어보며 아주머니와 한참을 이런 저런 얘기로 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느순간... 손님이 들어오네요.
아주머니 친구들인가 봅니다. 순간 아주머니 부산스러워 지시더군요.
저는 조용히 책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렇게 한참을 책을 보다 조용히 일어납니다.
나가는 길에... 뒤돌아 봅니다.
내가 경주에 와서 제일 큰 여유 남겨두고 온 집 잠깐 바라보며...
쿠키도 먹어볼걸....
나오는 길에 여기에서도 주인아주머니께
제가 몇년후 다시 경주에 올지 모르지만, 꼭 다시 들를께요.
이렇게 미련스럽게 미련 남기는건, 내 스스로에게 했던 말 같네요.
시간이 얼마 지났을지 모르지만, 어딘가 다시 찾아갔을때
예전에 내가 찾아간 추억 반드시 생각해내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미리 말해놓는 것이랍니다.
여행...
구경하는것 맛보는것 경험하는것 모두 좋지만...
낯선 길, 낯선 지역, 처음가는 여행은 설레임이 우선이지만,
언젠가 시간이 되면 내 추억을 밟아보는 것이 우선일 날이 올 수 있으니...
그때 대비해서 이렇게 미련 남겨두는게 내 앞날을 기약하는 것일 수도 있는것 같네요.
언젠가 저자리에서 저렇게 채워진 커피잔앞에 다시 앉아보고 싶네요.
이상~! 끝!!! =^^=
PS : 이 글을 "장면 그리고 이끌림^^"에 넣을지 "자유게시판"에 넣을지 약간 고민했네요.
그러나 한장면씩 넣기에는 제 열손가락이 너무 지칠것 같은 느낌에 자유게시판에 올립니다.
책에 대한 글을 올리고는 싶지만 우선 눈에 띄는것이 이 글이라 먼저 올리네요.
그리고 혹시 상업적인 글로 오해하실까봐 음식이름과 책제목, 상호 등을
지우고 올릴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것들을 지우니 영 문맥이 맞지 않아서 그냥 올렸습니다.
운영자님 보시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수정하여 다시 올리겠습니다.
토론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댓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여유되는대로 카페 글들 읽어보고 있습니다.
제게 좋은 글들 보여주시는 님들께 감사드리며,
그에 보답한다 생각하며 제 좋은 흔적만 골라서 가끔 올리겠습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구요.
이 글을 보시는 설날 고생하신 주부님들께 고생하셨다는 말 전해드립니다.
어머님께, 혹은 아내분에게, 혹은 며느님께 고생했다는 한마디 말이나
그것도 힘드시다면 한번 안아주시거나 손한번 꼭 잡아주세요.
이상 혼자사는 세월이 길어져 집안살림의 어려움 절감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아무래도 안될것 같아 상호와 음식이름 등을 가리고 다시 올립니다.
반드시 알고싶으신 분들은 쪽지주시면 알려드릴께요. ^^;)
|
첫댓글 홀로 경주여행을 다녀오셨다는 첫 구절부터 확 저의 구미를 땡겨주시네요. 제가 요즘 너무너무너무 간절히 하고 싶어서요..ㅎㅎ 저도 목적지 없이 맘내키는대로 발길 떨어지는대로 돌아다니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더군다나 김밥.. 정말 너무 먹어보고 싶습니다. (두어시간 전에 남편이 치킨사다주랴? 물어본걸 냉철히 거절했는데.. 급 배고파져요ㅠㅠ) 냉커피도..
혼자 간 여행에 침대 두개.. 예전 전 그 두개의 침대가 어찌나 좋던지요.. 두 개의 침대사이를 점프하면서 놀고.. 여기 누웠다 저기 누웠다.. 글 읽는 내내 대리만족 제대로 하고 갑니다. 아..그런데 저는 사진이 대부분 깨져서 안보이네요.. 사진도 정말 기대되어요..
에구... 방금 사진 수정했답니다.
남편분이랑 손 꼭잡고 한번 다녀오세요. ^^
사진도 정말 잘봤습니다.. 시골마을이 어찌나 예쁘고 정겹던지요.. 김밥과 냉커피에서는 할말을 잃었습니다(주로 먹는거에 감동받는 저;;;) 그러잖아도 애가 슬슬 커가고 강원도쪽은 이제 많이 가봐서 경주를 좀 가봐야것다 하고 있었는데.. 올해 꼭 가보고 싶네요.. 저 김밥집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런때가 오면 제가 쪽지로 위치좀 부탁드릴께요~ㅎㅎ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혼자 여행가는 일이 없어졌네요;; 이젠 어딜가든 여자친구랑 같이 다녀서...(^^::)
혼자 대충 짐 싸들고 히치하이킹도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재워달라기도 하고 하는 재미를 .... 언제 다시 느낄수 있을런지.. 더 늙으면 못할텐데...... 봄 되면 가까운 일본에라도 무전여행 한 번 다녀올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ㅋ
눈녹으면 저도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리고 혼자하지 못하시는 아쉬움 보다는 여자친구랑 함께하는 행복에 만족해 주세요. 저는 부러울 따름이니... ^^;
우와~ 여행기 정말 잘봤습니다
초등학교때 이후로 경주에 가본적이 없는데..-_-;;;
조만간 시간내서 꼭 가봐야겠네요 ㅎㅎㅎ
여행가고싶따~!!
많이 길어서 조금씩 보고 있어요.. 그런데 새벽의 과속운전 주의하시고요.. ^^ 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저도 예전에 피를 본적이 있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