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통신, 2017, 12 (1)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먹었더니(맛닭꼬, 10,900원) 더부룩해져서, 옳다구나 하고 산책을 나갔지. 요즘은 수영하는 대신에 주로 산책을 하네. 오늘은 수영도 했지만. 참, 삼례 수영장에 바뀐 것이 하나 있어. 입장권 파는 자동판매기가 들어왔네. “왜 이런 것을 들여놓았지요?” 데스크에 앉아서 내가 내미는 표를 받으면서 — 그 전에는 내가 내미는 돈(1700원)을 받았던 거지 -- 담당 직원이 순순히 대답하더라고. “글쎄요, 뭔가가 발각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언제부터인가 데스크의 직원들이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더라고. 한 5, 6년 된 것 같아.
나는 영수증 발급을 요청했지. 요청하면 주기는 하더라고. 수영을 끝낸 후 사우나실 안에서 몸을 녹이면서 대도 노래방 박사장에게 말을 했지. “이게 말이 됩니까? 관청에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다니. 정부시책하고도 어긋나고 말이야.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전주 시내 어떤 시장에서는,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가게를 신고하면 상인회에서 벌금을 매긴다고 하잖아요.” 박사장은, 자기가 군수의 중학교 선배라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기도 해서, 사우나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누구든 붙들고 사회비리에 대하여 열을 내면서 고발하고 그 해결책에 대하여 연설하는 사람이니, 내가 상대를 제대로 고른 셈이야. 그러나 의외로 박사장은 시큰둥해하더라고.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는 삼례 수영장을 이용하는 교수 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였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던 것이야. 그러나 이 사람도 시큰둥해 하더라고. 마치 “서로 믿고 살아야지, 그런 것을 의심하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아요.” 하는 식의 반응이었어. 나는 더 열이 나서 “아니, 누가 꼭 상대를 의심해서 영수증 발급을 요청하는 거예요? 돈 빌릴 때 차용증을 써 주는 것이 꼭 의심을 해서 그러는 겁니까? 예의잖아요, 예의. 관례고. 조선 시대의 그 점잖은 양반들도 계모임을 할 때 돈 관리를 얼마나 엄격하고 공개적으로 했는데요?”라고 말하였지만, 나도 오래가지 못했어. 열을 낸 것은 한 동안이고 나도 곧 시들해졌어. 영수증 발급을 요청하는 것도 몇 번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지. “영수증 주세요.”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투지가 사라지더라고. 얼굴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영수증은, 발급을 요청하면 발급해드립니다”라고 써서 데스크에 세워놓았던 안내문도 슬그머니 사라졌고, 삼례 사람은 그 누구도 영수증을 받지 못했어. 한 5, 6 년 그랬던 거라니까. 그러다가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완전한 마을은 아니야.
그래서 그렇겠지만, 삼례 시장 재개발 사업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아. 우리 아파트에서 나와서 3, 4분 걸으면 삼례 시장이 나와. 지금도 여전히 장이 서지만, 시장통 일부는 공사중이야. 숙원사업이었던 거지. 특히 여름이면 지나가기가 힘든 곳이었는데, 닭장 때문에 그랬던 거야. 닭장 안에 산 닭을 짐짝처럼 쌓아놓은 가게가 대여섯 개 나란히 있었지. 건물도 너무 낡았고. 그러나 계획대로라면 겨울이 오기 전에 완공되었어야 하는 거야. 군청의 지원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군청과 상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야. 상인들 사이에 내분이 있는 거고 상인들 중 일부가 욕심을 부리는 거래. 회원 상인 중 두 사람인가가 불만을 가지고 소송을 걸었대나 어떻게 했대나. 그래서 공사가 한 동안 중단되었던 거지. 소송을 건 쪽이 욕심꾸러기인지, 그 맞은 편 쪽이 욕심꾸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발소에서 졸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이상으로 기억나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어. 그 전 상인 회장이 상인들을 설득해서, 20년 동안 묵혀있던 사업을 마침내 성사시킨 것이라는군. 그 사람의 공로가 크다는 거야. 그런데 요번 선거에서 상인들은 그 회장을 배신했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신문을 보던 한 손님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 사람을 내치고 수선집 여사장을 회장으로 뽑아줬다네. (그런데, 다른 손님 하나는 이 신임 회장 편을 들더라고.) “뽑힐 만하니까 뽑힌 거제. 내보낼 만하니까 내보낸 거이고.” 누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인들이 둘로 갈라진 것은 분명해. 이권이 생기면, 멀쩡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가봐.
이 공사로 상인들이 이익을 얻게 된 것도 분명해. 공사가 재개되어 내년 봄이면 완공되는데, 기존 상인들한테는 유리한 조건으로 분양을 해준다는 거야.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10만원씩만 내면 된대. 가게를 소유하였던 사람들한테는 10평짜리를 내주고, 세입자는 5평짜리를 내주고 말이야.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아. 분양받은 것을 자식이나 다른 가족한테는 물려줄 수 있게 되어있으나, 남한테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있대. 자기가 고령으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으면 군에 반납을 해야 한 대. 전매를 막기 위한 장치라는 거지. 이발소의 손님들은 하나같이 군의 정책을 지지하더라고. 시장 주변의 삼례 사람들은 시장 상인들의 행태를 주시하면서, 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는 눈치야. 완전한 마을을 만드는 것은 관청이나 정부가 아닌가봐.
벌써 7, 8년은 지난 일이야. 도로 확장을 할 때였는데, 도로 한 가운데에 낡은 집 한 채가, 마치 바다 한 가운데의 섬처럼 동그마니 남아있었어. 코믹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공공장소에 등장한 포르노 같았다고나 할까. 우체국 사거리에서 톨게이트 쪽 방향으로 잠깐 가면 나왔지. 최소한 1년은 버텼을 걸. 물론 집주인이 보상금액에 만족하지 못했던 거지. 짜증도 나고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집 안쪽을 들여다 본 적도 있어. 사람은 살지 않더라고. 유리문 안쪽에는 플래카드도 여러 개 붙어있었고, 또 만장처럼 세워놓은 깃발들도 여러 개 있었어. “삼례에 민주주의는 죽었느냐?” “서민을 착취하는 OO는 물러가라” 이런 내용들이었지.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런 종류의 일들이 우리 마을에서 계속 일어났을 꺼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거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3층까지 올라간 삼례 시장 재개발 공사장을 오른 쪽에 두고 길 건너편으로 걷다가, 삼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네. 삼례 사거리라는 것은 우체국이 있는 옛날 삼례 사거리가 아니고, 6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큰 사거리를 말하는 거야. 한 코너에 롯데리아가 들어선 곳이지. 며칠 전에는 롯데리아 옆에 구멍가게만한 이마트가 생겼더라고. 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10분 쯤 걸으면 삼례문화예술촌하고 삼례역이 나오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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