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갈아입을 때마다
꿈꾸는 것 하나 있습니다
어항 속 물고기처럼 한번
투명하게 살아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저 작은
몸짓의 진실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실핏줄 같은 창자 다 드러내 보이고도
부끄럽지 않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한번 갇혀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중앙일보/시(詩)와 사색』2024.07.20. -
냄비 뚜껑처럼 동그란 물건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제도용 컴퍼스가 있으면 더 좋았습니다. 원을 그린 후 1부터 12까지 숫자를 채운 뒤 구획을 나누면 완성입니다. 이름도 찬란한 생활계획표.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을 표기했고 밤 열 시부터 오전 여덟 시까지는 꿈나라였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 한 시간쯤은 공부라 적었고 두 시간쯤은 독서라 적었습니다.
물론 계획표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지킨 계획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시간. 자유시간만큼은 무엇을 해도 어긋남이 없었으니까요. 어릴 적의 여름날처럼 우리가 저마다 계획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 어느 하나쯤, 투명하고도 분명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