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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눅 10 : 25~37 제목 : 너도 이와 같이 하라! 19.3.31 am /진관 [성경본문]--------------------------------------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하였으니 』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자비를 베푼 자니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시니라.』 -----------------------------------------
할렐루야! 3월 마지막 주일에 예배드리러 오신 성도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서로 인사하라. <하나님은 참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ex) 얼마 전 미국 뉴욕의 지하철에서 70대 여성이 젊은 남성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지난 10일 뉴욕 브롱스크를 지나던 지하철 2호선에서 마크 고메즈(36)라는 남성이 앉아있던 78세 노인에게 난데없이 발길질을 하더니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이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트위터 등 SNS에서 퍼져 알려졌는데 그는 노인의 얼굴과 가슴, 복부를 연이어 가격했고, 고령의 할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그런데 주변승객들은 <오 안돼!> 를 연발하며 놀라움을 표했지만, 폭행을 말리려는 시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인이 폭행당하는 동안 다른 승객들이 이를 제지하지 않고 영상만 촬영한 사실에 미국의 네티즌들이 분개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해에는 관심이 없다. -70년대에 <핵가족>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부모님과 더불어 살아가던 자녀들이 결혼하면 분가하여 따로 살아가는 핵가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더니 2000년대에 들어서는 결혼을 하기 전이라도 직장을 따라 자립하고 독립하여 혼자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청년이 많아지고, 부모에게 붙어사는 캥거루족도 늘어났다. 그래서 <혼밥 혼술> 등의 프로그램이 있는가하면 <나 혼자 산다.>는 프로는 최고의 시청율을 자랑하였다. -이런 결과로 최근에 나타나는 현상이 출산율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결혼이 늦어지고, 결혼한 부부라도 아이를 낳기를 꺼려한다. 게다가 자연 독거노인도 늘어나 오늘날에는 노인 다섯 명 중에 한명은 독거노인들이라고 한다. 이제 자녀들만이 아니라 부모들도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귀찮은 존재로 여겨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싫으면 가족도 친구도 멀리하고 자신만의 안일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이웃을 위하여 살라고 하신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하였느냐?』고 하신다. 그러자 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주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면 살리라.』 하셨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잘 보이려고 묻는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니이까?』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인 강도만난 자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모든 것을 빼앗고 때려 거반 죽은 사람을 버려두고 갔다. 마침 이 길을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예를 지닌 제사장과 그 제사장을 수종들며 이익을 얻는 레위인이 지나가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제사장은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 못 본체하고 지나가 버렸다. -다음에 나타난 레위인도 강도만난 자를 보고 도망가듯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상종하지도 않았던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나귀에 태우고 주막에 데리고 와 보살펴 그 생명을 살렸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고 물으셨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신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제사장 레위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하는 자들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성도여러분은 가서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처럼 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강도 만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ex)최근에는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급증하여 그 피해액이 수천억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에‘묻지 마 폭력’으로 여러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요즘은 나쁜 이단에 의해 그 영혼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이다, -사기꾼에게 속아 물질을 빼앗기고 인생이 수렁에 던져진 사람들도 강도를 만났다. -요즘 우리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동성애를 미화하고, 이슬람을 찬양하는 것을 배우면서 순수한 영혼이 피폐해지고 있다. 앞으로 부모들이 교회가라고 하면 아이들이 고발하도록 되어 있게 하는 것이 학교 인권법인데 국회에서는 나라에서는 이런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강도 맞는다. 누구나 늙어지는 것은 피할 사람이 없고. 늙으면 어린얘기처럼 되어 진다. 그래서 종국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물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 게다가 치매라도 걸리면 욕이 다반사이다.치매에 걸리면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 법이다. 이런 부모를 섭섭해 하고 흉을 본다면 그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다.
-한 살배기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지 못한다고 야단치는 엄마가 있다면 그 엄마를 세상에서 무엇이라 하겠는가? 치매 앓은 부모의 행동에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된다. -늙으면 건강만이 아니라 세월에게 강도를 당해 건강도 총기도 다 잃어버린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병으로 건강을 잃어버린 분, 나쁜 우상으로 인해 젊은 세월을 잃어버린 분, 더군다나 사람을 잘못만나 순수하고 선한양심마저 잃어버린 분들이 많다. -이런 강도만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하신다.
◼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렇게 이와같이 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좋은 이웃만이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웃이란 사전에서는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있는 사람으로,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 이라 했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情이 많은 민족이어서 서로 이웃하여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네 속담에는 a.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고 했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먼 곳에 사는 친족보다 좋다는 뜻으로, 자주 보는 사람이 정도 많이 들고 따라서 도움을 주고받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한다. b.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 는 말도 있다./집의 가치보다 이웃의 가치를 더 쳐준다는 뜻으로,이웃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c.집을 사면 이웃을 본다고 했다./ 집을 살 때는 이웃의 인심을 봐야 한다. 이웃 때문에 유익도 있지만 피해를 입기도 하기 때문이다. d.빨래하면 이웃과 안한다.고 했다./ 빨래할 때 가까이 있으면 구정물이나 튀지 좋은 일은 없다는 말이다./이웃 일에 참견하지 말고 관여하지 말라는 말이다. e.개 잡아 먹고 동네 인심 잃고, 닭 잡아먹고 이웃인심 잃는다. 는 말도 있다./ 개를 잡아 동네에 나누어 주고, 닭을 잡아 이웃 간에 나누어 먹더라도 그 분량이 ‘많다. 적다.’ 또는 ‘주었다. 안 주었다.’ 하고 구설을 듣게 되기 쉽다는 말이다. f.이웃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는 말도 있다./ 이웃에 사는 사촌이 잘된 일에 시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이웃이란 좋은 이웃도 있는데 좋지 않는 이웃들도 많다. -그러하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는 사람들이 다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a.제사장 같은 이웃이 있다./
제사장은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a.당시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대신 제물을 드리는 사제였다. -b.백성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재판장이었다. -c.그리고 그들의 병도 진찰하여 정하거나 부정하다고 판결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가장 백성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들이었다.
그럼에도 제사장은 강도만난 자를 외면하고 달아나듯 가 버렸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몇 가지를 추리해 볼 수 있다. a.성전 예배와 의식을 고수하려 함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을 만지면 7일 동안 불결하여 성전 출입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민19:) 그러나 본문의 제사장은 강도만난 사람처럼 내려가고 있었다. -31절에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는 <올라 간다.>고 표현했다. 예루살렘이 지역적으로 높기도 하지만 그곳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ex)서울에 올라간다고 하고 다른 곳을 향하여는 내려간다고 한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간다고 할 때 <성전에 올라간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제사장은 내려가고 있었으니 그가 지나친 것은 제사 때문이 아닐 것이다. b.그렇다면 제사의식으로 지쳐 있었는지 모른다./ 짐승을 잡아야 하고 피를 받아야 하고 피를 뿌리는 제사는 제사장으로 긴장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렸는지 모른다. c.혹 레위인이 뒤에 따라오는 것을 의식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 누군가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기는 미꾸라지처럼 빠지는 이웃들도 있다. d.자기의 복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사장의 특별한 옷은 그로 하여금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제복과 같은 것이었다. 이 거룩한 옷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12:7) 하셨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보다도 귀하다. e.그러나 자신이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 모른다./ 지체하다가 강도들에게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런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열정이 식어지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웃이 있다. 제사장처럼 권위를 가지고 자기 할 일 외에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나타나지만 해가 된다고 여기는 곳에는 피해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만나면 도망가기에 급급한 이런 이웃은 좋은 이웃이 아니다.
b.레위인 같은 이웃도 있다./
-32절에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도와 성전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본래 성전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성전일도 구별하여 하였다. 성전제사를 돕는 일, 기구를 옮기는 일. 성전을 청소하는 일, 성전을 지키는 일 등을 하였다. 이 사람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도와 사무를 관장하고 협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에 따라 구제하고, 말씀도 가르치고,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本文에 나타난 레위인은 어떤 부류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성전에 계속 남아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직무를 버린 사람인지, /혹 여행을 떠난 사람인지 알바 없다. -그럼에도 그는 레위인이었다. 특권을 맡은 자들이다. 다른 사람보다 선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본문에 레위인은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물질을 내어 희생할 각오가 없었다./ 그는 무대에 서는 연극배우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예복을 입고 의식을 집행하며 상냥하게 말도 건너지만,그 속에는 사랑도 생명에 대한 애착도 없는 외식자였다. 그러나 잉거솔은 <남을 도와주는 손은 기도하는 입술보다 성스럽다.> 고 했다.
c. 사마리아 사람 같은 좋은 이웃이 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하지 못할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 무시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
a.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b.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에 있었다./ c. 업무 때문에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곧 새벽에(시내산역본에 '이튿날' 을 "그 날 새벽에"로 번역) 떠나야 할 만큼 바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살려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신다. -여러분들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하면 된다.
a.그는 보고 불쌍히 여겼다./ 어떤 사람을 돕는다고 하는 것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다.하나님은 이런 긍휼을 가진 자를 축복하신다. -출 33:19절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하셨다.(롬9:15) 주님은 산상보훈 –마 5: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했다.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긍휼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섰을 때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셔야 된다. 약2: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이런 긍휼의 복을 받기 워하신다면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b.그는 가까이 갔다./ 보고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된다. 그는 가까이 가는 행동을 취했다. <가서> 라고 하는 단어는 그가 보고만 있거나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행동해야 한다. ex) 야고보는 -약 2:15.16절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리고 17절에서는『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했다.
c.기름과 포도주를 꺼내 상처에 붓고 상처를 싸매었다./ 당시에는 기름과 포도주는 상처를 쉽게 낫게 하거나, 덜 아프도록 하는 완화제로 쓰이고 있었다.
d.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그는 주막에 데리고 들어가 곁에 앉아 밤새 간호했을 것이다. 긍휼로 그가 회복되기를 바라보는 사마리아 사람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e.돈이 더 들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돈이 더 들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한 것이다.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이 금액은 약 2개월의 숙박비에 해당한다고 했다.
▫ 이 세상에는 강도 만난 사람들이 많다. -건강에 강도만난 사람, -물질이나 인격에 강도를 만나 돌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사고나 재해를 입은 자들은 강도를 만난사람이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인지 알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다면 영혼의 강도를 만난 사람이다. -나이가 많아져서 좌우를 분별 못하는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이다. 여러분은 이런 강도만난 사람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드려 강도만나 멸망 길로 가는 우리를 구원해 주심으로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명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 하실 때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셨다.
그것은 말씀을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율법은 613가지 조항으로 되어있다. -613가지는 10계명으로 말씀한다. -10계명을 두 가지로 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가 되어야 하지만 또한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ex)그래서 히브리서기자는 -히 11장에 믿음으로 선진들이 승리했다고 말씀하시고 -히 12장에서는 인내로 승리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로 고침을 받게 하라.』 고 했다.(12:12.13) -그리고 곧 이어서 -12: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다. 성도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관교회는 강도만난 자의 주막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영혼을 교회로 데려와 치료하고 돌보아 살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 -잠언 21:13에는 『귀를 막고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했다.
-성도여러분! 선한 사마리아사람처럼 강도만난 이웃을 불쌍히 여겨 가서 감싸 치료해주고 데리고 와서 돌보아 주는 성도들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아멘
▫믿음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