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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라는 뜻으로, 중국이 하나의 국가 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모두 인정한다는 방식을 말한다. 이 정책은 1997년 중국에 귀속된 홍콩과 1999년 귀속된 마카오에 적용되고 있다.
一 : 한 일(一/0)
國 : 나라 국(囗/8)
兩 : 두 량(入/6)
制 : 제도 제(刂/6)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허용한다는 뜻으로, 중국이 하나의 국가 안에 두 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방식을 말한다.
즉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를 공존시키는 방식으로, 중국의 홍콩, 마카오 통치원칙이자 대만 통일원칙이다. 이 정책은 현재 1997년 중국에 귀속된 홍콩과 1999년 귀속된 마카오에 적용되고 있다.
이 제도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난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개를 병행할 수 있다'는 개혁·개방논리로 제시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1982년 9월 덩샤오핑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홍콩 주권 반환 회담을 하면서 일국양제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홍콩의 주권 회복과 동시에 중국 대륙의 사회주의를 홍콩에 강요하지 않겠다는 제의를 대처 총리가 받아들이면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도록 결정됐다. 이에 일국양제는 선전 등 경제특구와 19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 때 본격 적용돼 홍콩의 통치원칙이 되었다.
홍콩 특별행정구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제5조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영국식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일국양제는 이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가 1999년 중국으로 주권이 귀속될 때도 적용됐다. 이에 마카오 역시 홍콩처럼 독자적인 행정, 입법, 사법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1971년 이후 대만 통일원칙을 일국양제를 기반으로 한 대만독립(臺獨) 반대, 외세 간섭 배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대만을 일국양제 하의 지방정부로 간주하고, 양안 간의 교류 확대와 대만의 국제적 고립 유도를 통한 흡수통일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
사전적 의미는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체제를 공존시키는 것을 말하며, 중국의 홍콩과 마카오 통치 원칙이며 대만 통일 원칙을 의미한다.
중국의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국가로,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가의 주체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이고, 대만은 자치권을 갖는 지방정부라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체제
홍콩, 마카오, 대만에 대한 중국의 통일원칙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1978년 12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전체회의의 줄임말)에서,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개혁개방 논리를 제시하면서, 대만 문제 해결과 관련해 일국양제 개념을 처음으로 밝혔다.
당시 덩샤오핑은 통일된 후에도 대만의 현실을 존중해, 그 정치와 경제 체제를 인정하고 그동안 투자된 외국 자본도 보호하겠다고 공표했다.
1979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대만 동포에게 알리는 글(告臺灣同胞書)'에서 일국양제의 개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통일정책을 발표했다.
공식적인 용어로서 '일국양제'는 1982년 덩샤오핑이 '일개국가, 양종제도(一個國家, 兩種制度;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체제)'라는 설명과 함께 처음 거론했다.
그리고 1984년 홍콩과 마카오, 대만에 대한 중국의 분단 상황 관리제도 및 통일원칙으로 공식 천명되었다. 1993년 발표된 '통일백서'에서, '하나의 중국, 두 가지 제도의 공존, 고도의 자치권 실행, 평화적 대화'라는 일국양제의 세부원칙을 밝혔다.
이후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개의치 않겠다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을 합리화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용어인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처럼,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다면 홍콩, 마카오, 대만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통일정책을 추진했다.
일국양제가 통일원칙으로 본격 적용된 것은,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되면서다. 당시 중국은 홍콩을 특별행정구로 지정하면서, 최소한 50년 동안 중화인민공화국과 별도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로써 일국양제는 중국의 홍콩 통치원칙이 되었다.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가 반환될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었다.
대만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따라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독립을 반대한다. 오히려 중국 대륙과 대만의 양안(兩岸) 간 교류 확대와 대만의 국제적 고립 유도를 통한 흡수통일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만에 대한 분단관리 정책 및 통일원칙으로 인식되고 있다.
◼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 실험, 무늬만 일국양제와 항인치항
1982~1984년 중국 공산당 정권과 영국은 홍콩 반환에 앞선 협상에서 일국양제 원칙에 합의했다.
홍콩이 반환되어 중국의 일부가 되더라도 정치적으로 공산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50년 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합의의 핵심은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는 뜻의 '항인치항(港人治港)', 즉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1997년 주권이 반환된 후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과 행정부, 법원을 보유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처음 약속과 달리, 중국 공산당 정부는 홍콩 행정장관 및 입법원 선거에 개입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친중파(親中派)를 심는 등 내정에 간섭했다. 기존의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항인치항'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다.
행정장관의 경우,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출방식이 친중파가 당선되기에 용이한 구조였다. 그래서 홍콩의 야당 세력인 민주파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꾸준히 요구했고, 2017년부터 홍콩특별행정구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2014년 중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홍콩 구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2017년에 실시될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을 추천하면, 홍콩 구민은 이중 한 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접선거는 보장하지만, 후보는 중국 공산당이 선호하는 사람만 허가하겠다는 의미였다.
홍콩 구민들의 우산혁명,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한 직선제를 보장하라!'
2014년 9월, 분노한 홍콩 구민들이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시위를 일으켰다. 그런데 홍콩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분노가 확산되어, 무려 18만 명의 성난 군중이 거리로 나서 우산을 펼쳐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대규모 시위를 '우산혁명'이라 부른다. '햇볕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면 마땅히 우산을 펼쳐 하늘을 막겠다'는 뜻이 담긴 비유적 표현으로, 친중파만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제한한 것에 저항한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서구 민주주의에 익숙해 있던 홍콩 구민들은, 과거에 비해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다.
그들은 빈번하게 대규모 시위를 통해, 입후보자 자격 제한이 없는 완전한 행정장관 자유직선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일국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원칙일 뿐, 정치체제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강경한 입장은, 홍콩의 민주화 움직임이 소득수준이 높아진 중국 본토의 다른 도시로 도미노처럼 번져나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위협하거나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된 마카오도 일국양제의 적용을 받는다.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별개의 체제가 보장되지만, 실질적으로 친중파 행정장관이 지배하며, 중국 공산당 정부의 간섭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커져, 2014년 마카오 반환 후 최대 인원인 2만 명이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중국이 홍콩과 마카오에 일국양제를 적용한 것은 대만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통일 이후에도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 중국 주도의 흡수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 양안관계의 변화, 중국의 일국양제와 대만의 통독논쟁
중국의 대륙과 대만은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927년부터 1936년까지를 제1차 국공내전, 1946년부터 1949년까지를 제2차 국공내전으로 구분한다)에서 패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분리됐다.
이후 대륙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자국의 일부로 간주해, 무력을 통한 흡수통일을 추진했다. 반면 대만을 지배한 중화민국은 철저한 반공(反共) 정책을 취하며 대륙 수복을 통한 통일을 외치고, 대륙의 정권과는 접촉, 협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삼불(三不) 정책을 고수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후 대륙의 태도가 급변했다. 1979년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우(通郵)의 삼통(三通)과, 경제, 문화, 체육, 과학기술 교류의 사류(四流)를 제시했다.
1981년에는 대만에 자본주의 및 군대 유지 등 고도의 자치권 부여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평화통일 9개 방안을 제의했고, 1982년에는 중국 신(新) 헌법에 '특별행정구' 설치 조항을 신설하고, 일국양제 통일방식을 제의했다. 중국의 이런 양안(兩岸) 관계2) 개선 정책에 힘입어 다방면에서 교류가 활성화됐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세력이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양안통일과 대만독립 논쟁, 즉 ‘통독(統獨) 논쟁’으로 갈등·대립하면서, 양안관계는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통독논쟁의 근원은 1949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패퇴해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들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고급 관리직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부터 거주해온 본성인(本省人)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탄압했다.
특히 1947년 2․28사건에서 국민당 군(軍)은 약 3만 명에 달하는 본성인을 학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 정부는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계엄령은 1987년에야 해제됐다.
이런 이유로 대만 사람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임을 거부하고, 대륙에서 세워진 '중화민국'을 외래 정권으로 인식했다. 바로 이 점이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야기한 것이다.
대만 자이시에 있는 2․28사건 기념비
947년 2월, 중화민국 정부 관료의 폭압에 항의하는 본성인들을 국민당 군이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계엄령으로 철저하게 숨겨졌다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된 후에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기념공원 사업 등이 진행되었다. 대만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통독논쟁의 근원이 되는 문제 중 하나다.
◼ 대만 최초의 본성인 총통 등장과 함께 무너진 '하나의 중국' 원칙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대륙 회복을 통한 재통일을 주장했다. 또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강력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때문에 본성인의 불만은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다.
그런데 1988년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갑자기 사망해, 당시 부총통이던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직을 승계했다. 국민당 정권 최초로 본성인 총통이 등장한 것이다.
이후 양안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본성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자신감을 얻은 리덩후이는, 양안이 두 개의 동등한 정치실체라고 하면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고, 대만의 독자적인 주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응해 중국은 1996년 실시된 대만 총통 선거 때 리덩후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대만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오히려 리덩후이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대만의 첫 민선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1999년 리덩후이는 중국과 대만이 독립된 두 국가라는 양국론(兩國論)을 주장해 중국과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는 국민당의 기본 목표인 양안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며, 통일을 내세워 일당독재를 정당화했던 통치원리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2000년에는 본성인 출신 천수이볜(陳水扁) 민주진보당(약칭 민진당) 후보가 총통에 당선됨에 따라, 국민당의 반세기 집권이 종식되고 대만 최초로 평화적인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천수이볜은 '하나의 중국' 원칙 대신 독립국가 노선을 강조하는, 소위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창했다. 그리고 대만은 중국과 무관하다면서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대만 본토인의 단결을 주장했다.
이렇게 본성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일련의 탈(脫) 중국화 운동은 중국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2005년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만의 독립운동을 국가분열주의 책동으로 규정하고, 대만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했다. 대만해협에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 2월 28일 2․28기념관에서 연설하는 천수이볜 당시 총통
2000년 민진당 후보로 총통에 당선되어 대만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천수이볜은, 대만은 중국과 무관하다면서 대만 본토인의 단결을 주장했다.
대만인 59%의 정체성 인식, '대만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의 강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천수이볜은 독립 행보를 가속화해, 양안 간 정치·군사적 긴장관계는 계속되었다. 반면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의견이 일치하는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2008년 친중국 성향의 마잉주(馬英九)가 총통으로 당선되어, 국민당이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양안 간 협력이 다시 강화됐다.
같은 해 국민당은 '통일하지 않고(不統), 독립하지 않으며(不獨),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不武)'는 신삼불(新三不) 정책을 내놓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했다. 마잉주는 중국 대륙과 정치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교류협력을 확대했다.
2012년 마잉주가 연임에 성공한 후 경제와 민간을 중심으로 양안 교류는 더욱 활성화됐다. 하지만 마잉주의 연임은, 대만 경제가 갈수록 침체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기대한 대만인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대만독립에 대한 여론이 약화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대만은 1992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국립정치대학교 산하 선거연구센터에 위탁해, 매년 1만 명을 표본으로 '대만인 정체성 조사'를 해왔다.
2007년까지는 스스로를 '대만인이며 동시에 중국인'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대만인'이라고만 응답한 수가 더 늘어나, 2010년 이후에는 줄곧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조사 결과, '대만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다'고 답한 사람이 59.0%로 다수가 됐다. '대만인이기도 하고 중국인이기도 하다'고, 복수 정체성을 지지한 사람은 33.7%로 줄었고, '중국인일 뿐 대만인이 아니다'고 답한 사람은 3.3%로 대폭 감소했다.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
최근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독립노선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돼, 다시 정권이 교체됐다. 동시에 실시된 총선에서도 민진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차이잉원은 부친 쪽 조상은 청나라 시절 대만으로 이주해온 본성인이며, 할머니는 원주민인 고산족 중 하나인 파이완족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대만에서 중국과의 통합을 거부하며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정권이 재집권한 것에 대해, 중국 공산당 정부는 독립을 추구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다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이 향후 민진당 정부를 압박하는 강경책을 다시 취할지, 아니면 민진당 정부와 대만 주민을 회유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평화공세를 펼지는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더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대만에서 일련의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것은, 양대 진영으로 나뉜 대만의 정치세력 구조가 고착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대만에서는 양안통일을 지지하는 외성인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진영을 '범람연맹',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본성인과 민진당을 중심으로 한 진영을 '범록연맹(泛綠聯盟)'이라고 부른다.
대만 사회에서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응답한 비율과, 독립된 주권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대만인은, 어느 진영에 속하든 상관없이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며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다. 급격한 독립 또는 통일이 동반할 엄청난 혼란을 어느 쪽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안의 복잡미묘한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굳이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독립할 만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실제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강경책과 유화책의 수위를 조절하며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일국양제(一國兩制)
2020년 5월 28일 중국 인민대표자대회에서 ‘홍콩보안법’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써 홍콩이 전 세계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흔히 홍콩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도 홍콩(Hongkong)으로 부르는데, 한자 표기로는 향항(香港)이다. '향을 수출하는 항구'라는 뜻과 '물맛이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 있다. 향항의 광동화(廣東話) 발음이 홍콩이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 155년 동안 영국이 통치하다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했다. 면적은 약 1100㎢로 우리 남한 영토의 100분의 1정도에 해당되고, 인구는 750만 정도이다. 그런데 세계 3대 금융 중심, 무역중심, 교통중심, 과학기술 중심으로 성장했다.
1997년 반환할 시기가 다가오자, 영국은 자기들의 통치지역으로 세계적인 도시가 된 홍콩을 돌려주기가 싫었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국력 차이가 워낙 커 영국이 중국 정부의 의사를 거부할 형편이 못 되었다.
그 이전에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鄧小平)이 '일국량제(一國兩制)'라는 기발한 착상을 해 영국의 걱정을 불식시켜 주었다. '중국에 돌아와도 향후 50년 동안 중앙정부에서는 외교와 국방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지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자유로운 홍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많은 홍콩 주민들이 '일국량제? 과연?'하면서, 중국정부가 의심스러워 서방세계로 이민을 갔다.
중국에 돌아온 이후 일국량제 하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자유가 보장되니, 홍콩 주민들이 중국 중앙정부를 비난하는 신문, 저서, 단체 결성, 집회 등을 계속하자 중국 정부에서는 골치가 아팠다.
홍콩만 그런 것이 아니고 홍콩을 잘못 다스리면 대만, 나아가 중국 본토도 중국 공산당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으므로, 홍콩에 반드시 재갈을 채워야할 필요가 있었다.
홍콩도 2003년부터 홍콩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 하다가 이번에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에 의거해서 중국 중앙정부에서 홍콩에 정보기관을 세워 모든 주민들의 언행을 감시할 수 있고, 홍콩주민을 체포해서 대륙으로 구인해 갈 수도 있고, 각종 선거에도 개입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홍콩주민들의 자유를 억압하여 중국 본토의 백성들과 같이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거의 다 반발하고 있고, 홍콩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특별지위를 박탈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교역이 많은 홍콩이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해지고, 미국 등 서방세계와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면 우리나라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진다. 국제관계를 예의주시하여 우리나라 경제에 손실이 가지 않는 가장 적절한 통상외교가 필요한 때이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음(亡國之音), 국권피탈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경술국치(庚戌國恥),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사이가 썩 친밀하여 가깝게 지내는 나라 또는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은 나라를 이르는 말을 형제지국(兄弟之國) 등에 쓰인다.
▶️ 兩(두 량/양, 냥 냥/양)은 ❶상형문자로 両(량), 两(량)은 통자(通字), 两(량)은 간자(簡字), 刄(량)은 동자(同字)이다. 저울추 두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둘', '한쌍'을 뜻한다. 兩(량)은 무게의 단위이며 나중에 돈의 단위에도 쓰고 또 둘, 쌍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兩자는 '둘'이나 '짝', '무게의 단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동안 兩자는 저울추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했었다. 兩자가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兩자의 금문을 보면 이것은 마차를 끌던 말의 등에 씌우던 '멍에'와 '고삐 고리'를 함께 그린 것이었다. 두 개의 멍에가 있다는 것은 말 두 필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兩자는 본래 '쌍'이나 '짝'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지만, 후에 저울을 닮았다 하여 무게의 단위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兩(량/양, 냥/양)은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양쪽의 옆면을 양측(兩側), 관련이 있는 두 쪽의 사물이나 사람을 양자(兩者), 앞면과 뒷면의 두 면 또는 사물의 양쪽의 면을 양면(兩面),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을 양인(兩人), 두 쪽이 다 큰 것을 양대(兩大), 남성과 여성 또는 암컷과 수컷의 양쪽의 성을 양성(兩性), 북극과 남극이나 양극과 음극 또는 서로 반대되는 양쪽 극단을 양극(兩極), 동물이 물 속이나 땅 위의 다 삶을 양서(兩棲), 두 마리의 범 또는 역량이 비슷한 같은 두 용자를 비유하는 말을 양호(兩虎), 두 집안을 일컫는 말을 양가(兩家),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움을 양난(兩難), 둘로 나눔을 양분(兩分),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는 논설이나 의논을 양론(兩論), 좌우의 두 어깨를 양견(兩肩), 좌우의 두 눈썹을 양미(兩眉),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쓸 두 벌의 이부자리를 양금(兩衾), 양면을 갈아 조개의 다문 입 모양으로 세운 날을 양인(兩刃), 한글과 한문을 양서(兩書),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친(兩親), 장기에서 말 하나를 죽이고 상대방의 말 둘을 잡는 수 또는 그렇게 잡는 일이나 한꺼번에 둘을 잡는 일을 양득(兩得),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한다는 말을 양과분비(兩寡分悲),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림을 일컫는 말을 양자택일(兩者擇一), 남자와 여자가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 없이 동등하게 받는 대우를 일컫는 말을 양성평등(兩性平等), 용과 범이 서로 친다는 뜻으로 강자끼리 승부를 다툼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양웅상쟁(兩雄相爭), 두 마리의 봉황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함께 영달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양봉제비(兩鳳齊飛), 좌우 양쪽에 날이 있어 양쪽을 다 쓸 수 있는 칼이라는 뜻으로 쓰기에 따라 이롭게도 되고 해롭게도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양인지검(兩刃之劍), 콩알 두 개로 귀를 막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것이 큰 지장을 초래함을 이르는 말을 양두색이(兩豆塞耳),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두 아이가 시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이르는 말을 양소무시(兩小無猜), 양편의 의견을 듣고 시비를 공평하게 판단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양편공사(兩便公事), 가난한 두 사람이 함께 모인다는 뜻으로 일이 잘 되지 않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양궁상합(兩窮相合), 양쪽에 다 이유가 있어서 시비를 가리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양시쌍비(兩是雙非),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다툰다는 뜻으로 힘센 두 영웅 또는 두 나라가 서로 싸움을 이르는 말을 양호상투(兩虎相鬪), 장기에서 두 개의 장기 짝이 한꺼번에 장을 부르는 말밭에 놓이게 된 관계 또는 하나의 표적에 대하여 두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감을 일컫는 말을 양수겸장(兩手兼將) 등에 쓰인다.
▶️ 制(절제할 제/지을 제)는 ❶회의문자로 製(제)의 간자(簡字)이다. 刀(도; 날붙이)와 未(미; 작은 나뭇가지가 뻗은 나무의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날붙이로 나무의 가지를 쳐서 깨끗이 하다, 베다, 만들다, 누르다, 규칙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制자는 '절제하다'나 '억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制자는 未(아닐 미)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未자는 木(나무 목)자에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본래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뜻했었다. 이렇게 가지가 풍성한 나무를 그린 未자에 刀자를 결합한 制자는 나무의 가지를 다듬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나무의 가지를 치는 것은 모양을 다듬거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制자는 나무가 마음대로 가지를 뻗어 나가지 못하도록 다듬는다는 의미에서 '절제하다'나 '억제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뜻이 확대되어 지금은 '법도'나 '규정'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制(제)는 (1)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방법(方法)이나 형태(形態)나 제도(制度)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제도(制度) 등의 뜻으로 ①절제(節制)하다 ②억제(抑制)하다 ③금(禁)하다 ④마름질하다 ⑤짓다 ⑥만들다 ⑦맡다 ⑧바로잡다 ⑨법도(法度) ⑩규정(規定) ⑪천자(天子)의 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제정된 법규나 나라의 법칙을 제도(制度), 정해진 한계 또는 한계를 정함을 제한(制限), 법령이나 규칙 위반자에게 가하여지는 불이익 또는 징벌을 이름을 제재(制裁), 제도 등을 만들어서 정함을 제정(制定), 사물의 성립에 필요한 조건이나 규정을 제약(制約), 통제하여 복종시킴 또는 기계나 설비 등을 목적에 알맞도록 조절함을 제어(制御), 하려고 하는 일을 말리어서 못하게 함을 제지(制止), 운동을 제지함 또는 속력을 떨어뜨림을 제동(制動), 헌법을 제정함을 제헌(制憲), 위력이나 위엄으로 남을 눌러서 통제함을 제압(制壓), 경기 따위에서 우승함을 제패(制覇), 어떤 범위 밖에 두어 한데 셈 치지 아니함을 제외(制外), 끌어 당기어 자유로운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함을 견제(牽制), 어떤 일을 법이나 규정으로 제한하거나 금하는 것을 규제(規制), 위력을 써서 남의 자유 의사를 누르고 무리하게 행함을 강제(强制), 억눌러 제지함을 억제(抑制), 일정한 방침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것을 제한이나 지도함을 통제(統制), 세무에 관한 제도를 세제(稅制),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알맞게 조절함으로 방종하지 아니하도록 자기의 욕망을 이성으로써 제어함을 절제(節制), 선수를 써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먼저 상대방의 행동을 견제함을 선제(先制), 학교 또는 교육에 관한 제도와 그에 관한 규정을 학제(學制),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독을 없애는 데 다른 독을 쓴다는 뜻으로 악인을 물리치는 데 다른 악인으로써 한다는 말을 이독제독(以毒制毒),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약한 것을 보이고 적의 허술한 틈을 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능제강(柔能制剛),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한다는 말을 이이제이(以夷制夷), 자기자신의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율기제행(律己制行), 시대의 변함을 따라 그때 알맞도록 해야한다는 말을 인시제의(因時制宜)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