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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농구 게시판 정보 결코 조동우를 이충희와 바꾸지 않겠다.
우주소년 추천 0 조회 2,234 09.03.29 08:35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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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3.29 10:33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전 어릴때 무티에추란 이름도 모르고 무지하게 큰 선수네~~반칙이다~~ 이러며 봤던 기억이 있네요. 무티에추가 지금 온다면 어느 정도 할까요? 키가 무려 238이라니.

  • 작성자 09.03.29 11:19

    당시의 무티에추는 굳이 센타 세계랭킹을 매겨보자면 랭킹 5위안에는 들어갈 겁니다. 아시아에는 그 선수를 막을 선수는 당시에 일본의 오카야마(228)정도입니다.79년 ABC결승에서 중국의 무티에추와 일본의 오카야마가 맞대결을 펼치는데 한국 경기가 아니므로 중계가 되지 않았습니다.무티에추의 중국이 오카야마의 일본을 10점 이상차로 이긴 것으로 보아 무티에추의 기량이 더 좋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의 무티에추를 지금의 서장훈,김주성 앞에 데리고 와서 맞대결을 하라고 하면 무티에추는 아무 것도 못할 것입니다.키는 크지만 느렸고 야오밍처럼 출중한 기량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09.03.30 11:27

    서장훈과 김주성의 스피드 앞에 무티에추는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여러분들 90년대의 북한의 이명훈(234)을 아실 것입니다. 두 선수를 굳이 비교하자면 무티에추가 이명훈보다 기량이 약간 더 좋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 09.03.29 10:41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 올드팬의 생생한 기록은 참 찾아보기 힘드네요^^

  • 작성자 09.03.29 10:59

    kr3456님! 위의 제 이메일로 연락처를 남겨주세요.제가 전에 약속드린 것이 있어서요.

  • 09.03.29 11:40

    86 아시아 게임 중국전때 허재가 5분만에 부상으로 코트에 나간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죠. 허재만 있었어도..

  • 작성자 09.03.29 11:42

    그것을 기억하시는군요.맞습니다.

  • 09.03.29 12:55

    조동우선수가 간염이었나요. 하여간 그것때문에 전성기가 짧았죠. 한국선수중 공식 경기중 첫 덩크슛을 한 선수로도 기억되는데요.

  • 09.03.29 15:44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선수네요.............. 조동기는 아는데...........;;;;;;;;;; 글보면 김유택정도 되는거 같은데....... 아쉽네요.............................................

  • 09.03.29 22:45

    저두 조동기인줄... 기아에서 뛰던.. 예전에 꼬마때 애들이랑 농구할때 이충희~~ 이러면서 슛던지던게 생각나네요.. 허재-이충희-김유택 <--요라인 무섭네요 ㅎ 이문규와 조동우는 본적이.. ^^;

  • 09.03.30 09:52

    전통의 라이벌이었던 현대의 박종천 이장수 이문규 등의 인사이드 라인업과 삼성의 임정명 조동우 안준호 등의 농대 초창기 경기들이 생각나는군요. 인사이드에서는 확실히 조동우의 삼성이 우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종천이 194 정도의 신장으로 조동우와 매치업이 되었지만 부상이 잦았고 이문규 이장수 등은 조동우에 비해 신장이나 파워에서 밀렸던 것 같구요. 외곽에서도 박수교 이원우 이충희 대 신동찬 김현준 박인규의 대결이 불꽃 튀었었죠.

  • 작성자 09.03.30 11:23

    개인적으로도 그 시절이 기아,삼성,현대의 3강 시대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 09.03.30 23:54

    무태추와 오카야마의 83년 ABC 대결은 우리나라 TV에서 중계했습니다. 둘다 기동력이 무지 떨어지는 선수였죠. 물론 40분 내내 뛰지 못하고요. 무태추는 당시 서서 덩크슛하는 선수였지만 기술이나 다른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자 농구의 진월방을 박찬숙이 충분히 막았듯이 서장훈이 10년만 일찍 나왔으면 막았을 듯...

  • 09.03.31 00:02

    86년 아시안 게임은 아마 조동우가 있으면 이겼을 지도 모릅니다. 중국 센터진의 높이가 낮았으니까요. 제 기억으로는 왕리빈과 송타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둘다 크기 보다는 빠르고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였죠. 외곽도 갖춘... 당시 결승전은 직접가서 봤는데 마지막 3점차일 때 김현준에게 2명, 이충희에게 3명이 붙었는데 왜 인사이드더 2명을 넣었으며 당시 슛감각이 가장 좋았던 이민현이 아웃오브바운드를 나갔는지가 의문입니다.

  • 09.04.11 02:44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당시 왕리빈 선수와 조동우 선수 간의 기량차는 상당했었습니다. 중국팀에서 왕리빈을 효과적으로 활용을 못한 탓이지, 개인기량으로만 따진다면 90년대까지의 중국(중공) 팀 빅맨들 중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88 올림픽 때는 김유택 선수가 이 선수를 상대로 참 잘해줬어요. 오히려 김유택같이 스피드와 유연성이 좋은 선수가 왕리빈에게 상성을 보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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