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 임희구
구원할 것도 없는 망망한 집에
단골인 집사님이 찾아왔다
책장의 책을 뒤적인다
불교에 관한 책이 있냐고 묻는다
커피 한 잔 타드릴까요?
어제 전도하러 간 집에서 노스님을 만났단다
성경을 참 잘 알더란다
적을 알고 싸워야 적을 이길 수 있으니
불교서적 있으면 몇 권 빌려달란다
불교에 관해 뭘 좀 알고 얘기를 해야
스님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겠단다
모처럼 강적을 만났다는 듯
집사님 힘이 넘친다 커피 탈
맹물이 팔팔 끓는다
―시집『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 전당,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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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살아가노라면 유유상종이란 말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호인 모임이 그렇고, 종교 집회가 그렇습니다
원래가 편 가르기를 잘하는 민족이어서 그럴까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습니다
내로라하는 선지자들의 집단인 정치판을 보노라면 '내 편' 아니면 모두가 '적'입니다
위 시에서는 집사님과 스님이 '적'으로 만났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태'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40여년 전 안동에서 대학을 다닐 때 그 지역 스님, 신부, 목사님들의 정기적 만남을
목격하고 참관도 하였습니다만, 그네들은 서로의 종교를 적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존중하고 격려하고 고유 행사에도 동참하였지요
자기 종교에, 믿음에 확신을 가지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만...
'적'으로 돌리지 않아야 할 삶의 현장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달전에 펴내 읽어주십사고 돌렸던 '백팔배를 올립니다'가
우리 집안 장로님들께 어떻게 읽혔을까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