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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란 무엇인가? - 시에 나타난 사상 / 이종수 (시인)
시를 배우고 쓰면서 다시 한 번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시를 쓰는 각자의 삶이 독자와 만나는 귀중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는 독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시는 어둠 속을 걸으며 인간의 심장을, 여인의 눈길을, 거리의 낯선 사람들,
해가 지는 석양 무렵이나 별이 빛나는 한밤중에 최소한 한 줄의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대면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그 거리, 읽은 모든 것, 배운 모든 것은 다 그 만큼의 보람이 있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 사이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모래에서, 그 산림에 수천 년 동안 떨어진 낙엽에서 우리의 것을 집어들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만든 것을 부드럽게 집어 들도록... 오직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고...
그것들 속에 시는 살 것이다.
- 파블로 네루다, <시는 직업이다>, <<추억>>
시란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큰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시 독자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때, 시가 가져야 할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렵기만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들이 넘쳐난다는데 쉬운 시란 어떤 시일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기후변화다 구제역이다 해서 지구의 위기로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시와 연결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바로 지금이 인류가 풍요로움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또는 풍요를 대가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자동인간으로 살아가느냐 중에서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와 있는 때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두 가능성 중에서 양자택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기회를 놓치고
인류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 시기를 놓치면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로서나 또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의 일원으로서나 바로 지금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 하는 가장 어려운 때에 놓여 있는 것이다.
프롬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며,
삶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란, 죽음에 대한 사랑과 대립되고 자아도취와 대립되는 사랑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가슴 아파 하고 다른 사람의 친절한 시선, 새의 노래, 풀밭의 푸르름에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어떠한 각성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삶에 무관심하게 되면 이미 그가 선을 선택하리라는 희망은 없다고 했다.
시가 바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을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 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흐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 박경리, <여행>
대하소설 <토지>로 알려진 박경리 선생의 시를 보면 인간의 내면에서 싹 트는 무한한 상상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파블로 네루다가 말했던 것과 일치한다.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그것을 잡아당겨 늘이고 탐구하고, 그것의 머리칼과 배를 찔러 보면서
살다 보면 그것과의 친근감이 당신의 천성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어를 마치 소매가 달려 있고, 기운 자국이 나 있고, 피와 땀이 묻은 옷이나 몸의 피부처럼 사용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언어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 모국어, 시를 통해 자기를 구현하려는 시인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시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제한 없이, 한 방에 머물러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뻗어 나가려는 경향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어떤 먼 문화의 틀을 바탕으로 궤도를 설정하지 않은 채 나의 제한된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란 바로 내면을 떠나 거침없는 세계를 넘나드는 여행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시행이 짧아야 하는지 길어야 하는지, 좁아야 하는지 넓어야 하는지 또는 더 노란색이어야 하는지
더 빨간색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 시행을 쓰는 시인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숨결과 피, 자기의 지혜와 무지로 그것을 결정하고, 바로 이것이 시라는 빵에 들어가는 재료들이다.
현실주의자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리고 오직 현실주의적이기만 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단지 비현실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슬픈 일이다.
모든 것이 이성적인 시인은 모든 얼간이들까지도 다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지독히 슬픈 일이다.
시인의 직업은 어느 정도 남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남녀 시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얼마 지나면 우리 모두 시인처럼 보일 것이고,
독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독자를 찾기 위해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거나 우주선을 타고 하늘을 도는 탐험을 해야 할 것이다.
시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부름받은 것으로, 바로 거기에서 예배의식, 시편, 그리고 종교의 내용이 나왔다.
시인은 자연 현상에 직면하였고, 초기에는 부름받은 자기의 직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를 제사장이라고 불렀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대 시인은 자기의 시를 방어하기 위해 거리에서 대중들 사이에서 얻은 옷을 입는다.
오늘날의 사회적 시인은 아직도 초기의 제사장 계열의 일원이다.
옛날에 그는 어둠과 결탁했지만 이제 그는 빛과 결탁해야 한다.”(위의 책, 파블로 네루다)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물신숭배로서 어지러운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나는 어떤 언어, 어떤 형식 그리고 어떤 창조적 수단으로든 시인이 자기의 개성에 이른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철저한 독창성은 현재적 발명품이고 부정 선거이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언어의 또는 세계의 계관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선거인단을 찾으러 날뛰는데, 그 왕자에 경쟁자가 될 만큼 가까이 온 사람들을 향해
욕을 퍼붓는 것을 일삼음으로써 시는 익살극으로 변해 버린다.
자신의 내적 기준을 지탱하는 것과 자연, 문화 그리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삶이 부여하는 새로운 추가적
재료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시인에게서 가장 좋은 성과를 끄집어내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하다.
시인은 자기 작품에 스며드는 자기의 감정을 엄격한 손길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시인은 말하자면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주머니에 예비물자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첫째, 기존의 시 형식들, 단어들, 소리들 또는 벌처럼 윙윙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을 예비해 놓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재빨리 낚아채서 자기 주머니에 넣어 놓아야 한다.
마야코프스키는 항상 뒤져 볼 수 있는 작은 공책을 지니고 다녔다.
내 작품 상당 부분에서 나는, 시인은 주어진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공동체 전체로서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고대의 거의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요청에 응해 씌어졌다.
<농경가>는 로마 농촌의 농업을 위한 선전물이었다.
시인은 대학 또는 노동조합, 숙련 노동자나 전문직 종사자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자유는 단순히 이것 때문에 잃은 것이 아니다.
신비스러운 영감과 신과 시인과의 교통은 이기심에 의한 발명품이다.
가장 위대한 창의력이 발산되는 순간, 그 산물은 시인이 읽은 책이나 외적 압력의 영향이 스며 있는,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네루다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선택처럼 이 시대의 시인들에게 강조한다.
“그 선택은 장미 정원은 절대 아니다. 잔혹하고 부정의한 전쟁들, 끊임없는 압박, 돈의 공격성, 모든 부정의가
매일 매일 더욱 강력하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온갖 유희를 미끼로 유혹하는 체제까지.
오늘날의 시인은 그의 고뇌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주의로 도피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이성의 꿈속으로 도피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의 자생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에 매료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들은 오늘날과 같은 교전적인 세상에서 이러한 경험을 항상 탄압과 불모의 고뇌로 이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직관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곧 그가 칠레 민중과 민족을 위해 걸었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대의를 부둥켜안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회의주의의 참호를 고집하는
개인주의적 자부심에서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 말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의 길은 중심의 외로움이자 비워둠으로써 숱한 목숨을 피워내는 자리이다.
치열한 중심의 괴로움과 함께 오는 밤을 새롭게 채우는 일인 것이다.
장황한 말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깨닫는 탁마 작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 하렸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하늘과 땅이 맞물리는 지평선에는
가고 싶은 보고 싶은 것들도
한꺼번에 맞물려 가물거릴지,
문득 그 지평선에 가고 싶었다
만경강 건너 지평선이 보인다는
심포 횟집을 찾아간다 눈이 내린다
눈이 쉽게 멎을 것 같지 않다
들마을 주막에 차를 세운다
뜨거운 바지락 국물이 목에는 시원하다
주막집 내외는 마주 앉아서
담배 내기 화투를 치고 있다
되창문을 열고 내다본다
보이는 건 들판 가득 눈보라뿐
하늘도 땅도 안 보이는 눈보라뿐
지평선을 보이지 않는다
아줌마, 얼마나 더 가야 지평선이 나와요
여그가 바로 지평선이어라우
여그는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어라우
바람 들옹게 되창문이나 좀 닫으쇼잉
그렇구나 이 세상에는 천지사방
지평선 아닌 데가 없겠구나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눈 감아도 떠도 다 가물거리겠구나
문 닫는 것도 잊어버리고
넋 놓고 눈보라를 바라본다
이 세상 천지사방에
눈이 멎을 것 같지 않다
- 정양, <지평선>
올라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없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 천양희, <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옛날의 그 집>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핵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 문정희, <늙은 꽃>
* 이종수 시인
1966년 전남 벌교 출생, 충주대 국문과 졸업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 『달함지』, 그림시집 『안녕 나의 별』
산문집 『요놈이 커서 무엇이 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