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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반문명주의자? 자연주의자? 그동안 우리가 알던 ‘노자’는 잊어라!
《노자》는 생존과 승리를 위한 제왕학 책이자 병법서다!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의 쾌도난마 《노자》 강의!
흔히 ‘노자(老子)’라고 하면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 도가(道家) 등을 떠올린다. 그래서 문명 이전의 소박한 삶을 추구하거나 기존의 문명 질서에 얽매이지 말라고 주장하는 반문명주의자 혹은 자연주의자로 많이 읽혀왔고, 나아가 유가적 국가 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자유방임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노자’의 모습을 잊으라고 말한다. 원시적 공동체, 목가적 공동체를 노래하고 무정부주의적 정치사상을 담은 철학이 아니라, 전쟁이 일상처럼 벌어지던 시기에 전장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승리를 꾀하고자 하는 병법서로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생존과 승리의 주체는 왕과 장수들이다. 한마디로 《노자》는 왕을 위한 제왕학서이자 장수를 위한 병법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병법서로서 《노자》 읽기를 시도한다. 그래야만 《노자》의 진짜 목소리와 색깔, 《노자》의 진면목, 《노자》 텍스트에 일관된 문제의식과 치열함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 그만큼 《노자》는 투지가 넘치는 책이고, 어떻게든 최강자가 되려는 치열함이 엿보이는 책이며, 실리와 성공,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지혜를 주문하는 책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 책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를 통해 치밀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전쟁의 시기, 살아남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
저돌적인 젊은 동양철학자로서 제자백가 사상의 진수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온 저자 임건순이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에 이어 두 번째 선보이는 병법 해설서. (‘제자백가 아카이브’ 시리즈의 3번재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상이 되는 텍스트가 흔히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라니!
저자는 그간 한국의 학계에서는 《노자》를 제자백가의 다른 텍스트와 연결 지어 해석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단순히 도가(道家)라는 한 학파의 틀로만 읽고 해석해왔음을 비판한다. 그러나 《노자》 안에 담긴 뜻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노자》를 외딴 섬으로 놓고 읽지 말고 《관자》, 《손자병법》, 《삼략》, 《여씨춘추》, 《한비자》, 《순자》 등 다른 텍스트와 함께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텍스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병가(兵家) 또는 그와 밀접하게 관련된 책인데, 특히 노자는 손자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노자는 손자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손자의 지혜를 빌려 궁중 사회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덕목과 자세, 전술을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손자의 영향을 진하게 받아서인지 불태(不殆)를 말했고, 함부로 몸을 움직이거나 싸움을 걸지 말라고 하며 부쟁(不爭)을 말했습니다. 손자가 그리도 강조한 무(無)도 강조했고, 손자가 찬양한 물도 찬양했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 다들 아시죠? 사실 노자 이전에 손자가 먼저 한 말입니다.” - 본문 22~23쪽
《노자》의 시대적 배경은 전쟁이 밥 먹듯 일어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노자 역시 한 나라가 삽시간에 멸망하고 수십만의 군대가 생매장당하던 그 살벌하던 시대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주나라 왕실 도서관장이라는 직분을 이용해 여러 병법서와 역사서에 담긴 교훈, 경험, 지혜의 정수를 모아 운문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노자》라는 것이다.
“한국을 제외한 일본과 중국, 서양에서는 《노자》를 병가 사상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분이 적지 않죠. 그분들 생각은 그렇습니다. 전쟁이 일상화된 시기에 전쟁터에서 배운 교훈과 경험, 지혜가 《노자》라는 책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입니다. 《노자》 텍스트가 만들어진 전쟁의 시대는 단순히 말하면 그냥 병법의 시대일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 특히 전국시대에는 무수히 많은 병법서가 등장했지요. (중략) 《노자》도 그 병법의 시대에 만들어진 텍스트입니다. 병법서와 같은 시대적 환경을 뒤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병법서답게 《노자》는 단순히 생에 대한 집착만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집착, 최강을 추구하는 의식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승리를 추구하는 의식만 보이는 게 아니라 승리를 위한 수단과 방법도 제시하는데, 정말 전형적인 전국시대적인 텍스트지요.” - 본문 33~34쪽
전국시대라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노자는 《노자》 5장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 즉 천지는 어질지 않고 만물을 그저 짚으로 만든 강아지 인형처럼 여긴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동정심과 연민 따위는 없는 자연(自然)을 닮으라고 한 것으로 해석하며, 전쟁의 시기에 부질없는 도덕과 윤리에 집착하지 말고 본원적 생명력, 과거 태초에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본능적인 촉과 감각, 직관력을 가지고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이겨야 한다는 말로 해석한다. 그런 지점에서 노자가 말한 도(道)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 유가의 것과 상당히 다르다.
“노자의 도(道)는 그의 성인(聖人) 개념, 덕(德) 개념과 마찬가지로 윤리나 도덕과 상관없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경쟁에서 이기게 해주는 것이며, 조직과 국가를 살아남게 해주는 것입니다. 실용적인 것이며 실리와 직결되는 것으로, 옳으니까 따르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따르는 사람에게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이익을 주는 것이니 따라야 하는 것이죠. 오기와 손빈이 말했던 도도 그런 실리적이고 공리적인 것이었죠.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고 전략을 달성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병가 사상가인 그들에게 도는 도덕적 질서와 거리가 먼 것이었는데, 노자도 마찬가지죠. 노자에게 도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목적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용적 수단입니다.” - 본문 180쪽
https://www.youtube.com/watch?v=0Dg5n-KBKWU
손자의 제자 노자, 《노자》는 분명 병법서다!
병법서로서 《노자》를 다시 읽다 보면 많은 부분이 새롭게 보인다. 《노자》 47장에서 노자는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천도를 안다.”라고 했는데, 이는 전장의 작전 회의실에서 승부를 결정짓고자 치밀하게 준비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은 작전 회의실 안에서 전쟁 현장의 정보와 조건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창문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천도를 안다는 것은 파악한 정보와 조건을 바탕으로 작전 회의실 안에서 필승의 계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른바 전쟁터와 떨어진 그 공간에서 승산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작전 회의실에서 전쟁터 상황을 꿰고 최적의 전략과 전술을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노자》 47장의 요지입니다. 노자도 손자처럼 계(計)와 지(知)를 강조한 것이죠.” - 본문 98~99쪽
《노자》 1장의 첫 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恒道), 즉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도라 할 수 없고,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면 영원한 이름이 될 수 없다.”고 한 말 역시 다르게 해석된다.
“노자는 도(道)라고 한다면 도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라는 것은 유형화하거나 공식화하거나 이렇다고 한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며, 그러면 도라고 할 수 없답니다. 무엇 하나를 딱 집어 도라고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방식과 원칙은 도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하나의 방식과 전술을 공식처럼 따르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에 집착하면, 그 원칙은 절대로 승리로 인도하는 전술,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어쩌면 단순한 말이고 상식적인 말입니다. 하나의 방식을 승리의 방정식이라고 생각해 집착하지 마라, 하나의 전술을 공식으로 생각한 나머지 그것에 나를 고정시키지 말라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항상 변하거나 새로운 전술로 싸울 준비를 하라는 말입니다. 공식처럼 언제나 통하는 작전과 전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 본문 178~179쪽
중국인의 삶에 녹아 있는 실용주의 정신, 《노자》의 병법
노자는 불태(不殆), 즉 지지 않을 것을 주창한 손자의 계승자답게 전쟁은 신중해야 하며, 늘 앞일을 대비해 준비하고, 승리하고 나서는 교만하지 말 것이며, 이름을 날리지 않고 조용히 처신할 것 등 다양한 병법의 기초를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적이 약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승리한 당태종 이세민, 미방의 배신에 대처하지 않은 관우, 왕놀이 하다가 토사구팽당한 한신, 숱한 패배에도 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유비?사마의?마오쩌둥의 고사 등을 예로 들며, 과거 중국인들의 삶에서 《노자》의 병법이 어떻게 적용되어 왔고 이것이 중국인의 행동 양식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바람이 불어오면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앞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바람 앞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숨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어떤 일의 전조일지 읽어야 하지요. 바람의 머리에 자신을 마주하면 안 됩니다. 열린 환경에 자신을 노출하지 말고 나를 꽁꽁 숨긴 뒤에 다가올 변화의 흐름과 양상을 읽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떤 흐름이 전개될까 감지하고, 또 어떻게 처신하고 몸을 두어 사건의 흐름과 전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할지 따져야 하지요. 그래야 손자가 중시한 그 세(勢)를 만들고 장악할 수 있겠습니다. 함부로 바람의 머리 앞에 서려 한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사실 앞서 불여수중(不如守中)이라고 노자의 중용, 중국인의 중용을 말할 때 한 이야기지요.” - 본문 316쪽
예부터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우리에게 병법서로서의 《노자》 읽기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형성하게 해준다. 저자는 이 《노자》를 제대로 이해해야 중국인의 노회함과 그들의 실리주의를 꿸 수 있기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병법서로서의 《노자》 읽기는 비단 중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회사, 지역, 국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경쟁이 벌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늘 자신의 의도와 패를 철저히 숨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중모색하며 승리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라고 하는 《노자》의 고요한 외침은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