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15~16세기 독일의 실존 인물인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에 영감을 얻어 60여 년에 걸쳐 완성한 <파우스트>(1부: 마르그리트, 2부: 헬레네)는 원초적 본능의 자아와 초월적 자아의 충동, 현세적 향락과 자연 탐구, 고대 그리스에 대한 동경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괴테의 <파우스트>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부조니의 <파우스트 박사>,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등 여러 오페라 작품들을 낳았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1859년 발표된 구노의 <파우스트>로, 이는 괴테 원작 중 1부인 ‘파우스트와 마르그리트’의 내용을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괴테의 원작을 바탕으로 창작된 오페라
파우스트는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여러 학문을 통하여 우주의 지배 원리를 깨닫지만, 백발의 노인이 된 후, 이러한 학문들의 부질없음에 회의를 느끼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때 나타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에게 ‘젊음과 영혼의 거래’를 제안한다. 순결한 처녀 마르그리트와의 아름다운 사랑과 악마의 유혹에 갈등하는 파우스트. 그는 완전성을 추구하며 노력하지만 불가능에 절망하여 방황하는 모순된 인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메피스토펠레스는 고통과 삶의 의미를 부정하고, 본능만으로 현세를 살아가고자 하는 파괴적 존재로, 부정과 불신, 회의와 소멸 등을 상징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마르그리트와 파우스트의 만남.
이 둘의 대립 가운데,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마르그리트는 파우스트와의 순수한 사랑의 결과로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 여성의 자기 파괴적인 헌신과 인내, 그리고 무한한 희생을 대표하는 그녀는 파우스트를 성적 향락에 빠뜨리기 위한 대상으로 악마에게 이용당하지만, 순결하고 신성한 그녀의 순수함으로 천상의 구원을 받게 된다.
1막: 파우스트의 서재
파우스트는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을 섭렵하지만, 백발의 노인이 된 후, 이러한 학문들의 부질없음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공허해! 내가 던진 모든 질문들이’). 이때 나타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에게 젊음과 영혼의 거래를 제안한다.
2막: 성문 앞의 시장 거리
화려하고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 마르그리트의 오빠 발랑탱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자신의 동생을 친구 시에벨에게 부탁한다(‘고향을 떠나며’). 이때 메피스토펠레스가 세상은 황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금송아지의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여 마르그리트에 관한 불길한 예언을 한다. ‘가벼운 산들바람처럼’ 합창이 울리는 가운데 마르그리트를 기다리는 파우스트.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퉁명스러운 반응이 되돌아올 뿐이다.
3막: 마르그리트의 집 정원
한편, 마르그리트를 흠모하는 시에벨은 악마의 불길한 예언을 걱정하며 그녀에게 전할 꽃을 어루만지며 ‘꽃의 노래’를 부른다. 이후 등장한 파우스트는 그녀의 집 앞에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정결한 집’을 부르며,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보석 상자를 그녀의 집 앞에 두고 사라진다. 마르그리트는 물레 앞에 앉아 실을 감으며 ‘물레의 노래’와 함께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를 떠올린다. 이때 꽃과 보석 상자를 발견한 그녀는 ‘보석의 노래’를 부르며 보석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이때 나타난 파우스트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오! 사랑의 밤이여!’를 노래하며 사랑을 약속한다.
4막: 마르그리트의 방
파우스트의 아이를 임신한 마르그리트. 전쟁에서 돌아온 발랑탱은 여동생의 순결을 앗아간 파우스트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악마의 합창을 뒤로, 마르그리트는 죄의식에 쓰러지고 만다.
5막: 발프르기스의 밤
마녀들이 하르츠 산맥 브로켄 산정에 모여 축제를 펼친다. 악마들의 합창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녀들이 요염한 춤으로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누비아 여인의 춤’, ‘클레오파트라와 금잔’, ‘트로이의 여인들’ 등 아름답고 경쾌한 7곡의 발레곡이 파우스트를 도취시키는 가운데, 마르그리트의 환상이 나타난다. 오빠의 죽음과 파우스트의 배신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아기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 마르그리트. 파우스트는 감옥으로 그녀를 찾아가 함께 즐거웠던 옛날을 회상하며 2중창을 부른다. 발푸르기스의 밤의 한 장면. 하늘의 구원을 바라는 마르그리트.
새벽이 다가오고 탈출을 재촉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하늘의 구원을 바라며 죽어가는 마르그리트. 그리고 파우스트가 장중하게 ‘천사는 순수하며 찬란하도다’를 부른다. 아름다운 선율 뒤로 마르그르트가 숨을 거두고, 천사들에 의해 그녀의 영혼이 구원되는 가운데 파우스트도 자신을 반성하며 천상으로 구원되어 올라간다.
Michel Plasson/Théâtre Antique, Orange 2008 - Gounod, Faust Faust: Roberto Alagna Méphistophélès: René Pape Marguerite: Inva Mula Valentin: Jean-François Lapointe Wagner: Nicolas Testé Siébel: Xavier Mas Choeurs de L'Opéra d'Avignon, de Toulon, de Nice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Conductor: Michel Plasson Théâtre Antique, Orange, France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의 서정극 파우스트
이탈리아 오페라의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구노의 <파우스트>는 비제의 <카르멘>과 함께 가장 자주 공연되는 대표적 오페라의 하나이다. 가령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1883년 이래 750여 회나 공연할 만큼 파우스트를 사랑해 왔다. 1859년 프랑스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초연된 구노의 파우스트는 비록 초연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몇 번의 개정 작업을 통해 1869년 파리 오페라하우스(Le Palais Garnier)에서 재공연되었을 때는 1막 마지막의 왈츠 장면, 2막 거리의 축제 장면, 5막 발푸르기스의 향연 등에 화려한 발레 장면을 보강하여 ‘그랜드 오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리하여 1893년 구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무려 1천 회나 거듭되는 놀라운 공연 기록을 남겼으며, 그 후 인기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왜?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까?
파우스트는 단순히 젊음을 얻으려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까.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는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 온 시간을 역류시키려는 작업이다. 지난 한두 세기를 통해, 인간은 더욱 안락해지고, 더욱 큰 쾌락을 즐기기 위해 자원을 고갈시키고, 소비가 미덕이라고 외치면서 게걸스럽게 자연을 갉아먹고, 인간 홀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어 왔다. 카슨(Raechel Carson)이 피를 토하면서 봄의 침묵(Silent Spring)을 경고했는데도 자연은 대량 멸종(mass extinction)의 막다른 골목으로 휘몰리고 있다. ▶마르그리트와 파우스트의 사랑.
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시간을 설령 후세를 팔아서라도 누군들 되돌리고 싶지 않을 것인가? 이 시간을 되돌려 새롭게 얻은 삶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비극을 다시 되풀이할지도 모르고 우리의 구원일 수도 있는 마르그리트를 무참히 짓밟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여전히 시간을 되돌려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모두 파우스트적인 절박한 상황에 휘몰려 있다.
귀와 눈을 현혹시키는 유려한 아리아와 발레 장면
<파우스트>는 카루소의 데뷔 음반을 장식했던 ‘정결한 집’과 같은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노래가 있는가 하면, 조상의 영원한 영광을 노래하는 ‘병사들의 합창’을 비롯해서 성 체칠리아 미사곡을 연상시키는 장중한 합창이 무대의 열기를 더욱 끓어오르게 하고, 휘황한 색채와 육체의 율동이 물결치는 발레 장면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그지없이 청순한 여인으로 그려지면서도 탐욕 앞에서는 눈이 흐려져 ‘마르그리트, 너마저!’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보석의 노래’도 우리를 사로잡지만, 베이스의 저력을 한껏 뽐내는 ‘금송아지의 노래’도 극적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우아함과 섬세함이 살며시 나풀거리는 반음계의 교태스러움과 뒤섞이기도 하고, 육감적이고 세속적인 관능미가 종교적인 숭고함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렇듯 상반되는 여러 세계가 뒤엉키다가 마침내는 영롱한 하프와 함께 울리는 천상의 합창이 구원의 빛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글쓴이 : 이순열(음악평론가) 자 료 : 국립오페라단 제공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3.1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