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표류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인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에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며 생각했다.
⠀선생님, 저는 2022년의 사람입니다.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죄책감 없이 여성을 폭행하고 성을 착취하고 죽이면서도 자신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인 남성의 인정과 허락을 통과한 여성만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도구로만 여기며 모든 사회 문제를 이성의 잘못으로 뒤집어씌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이 아닌 소수자들은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희생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선생님.
⠀자, 이제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남성의 로맨스를 써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 그림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떠오르는 장면은 있었으나 그건 로맨스가 아니었다.
⠀여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생각할 때 지금의 나를 엄습하는 단어는 가스라이팅, 스토킹 범죄, 그루밍 범죄, 데이트 폭력, 교제 살인,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이십 대 여성 자살률……. 여자와 남자의 로맨스에는 위험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분노하는 남자들 중에는 자기 가족이나 이성 연인에게 ‘늦은 밤에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또한 자기 아닌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밤에 혼자 다니는 여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
⠀물론 위험하지 않은 남자도 있다. 아주 많을 것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불법촬영을 하지 않으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시도하지 않고 이별 후 상대를 스토킹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근데 이런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도 많은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있어, 라고 안도할 일인가.
⠀나는 ‘N번방 참여자 26만 명’이란 문장을 잊을 수가 없다. 26만이란 숫자를…… 잊을 수가 없다. 정규를 남자로 설정한다면, 지금 나의 상태로 쓸 수 있는 장르는 범죄나 스릴러뿐이다.
⠀하지만 나는 로맨스를 쓰고 싶었다. 사랑이란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에 대해 쓰고 싶었다. 『해가 지는 곳으로』를 쓸 때가 떠올랐다. 도리와 지나의 사랑을 쓰면서 나는 사랑의 온기를,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 다시 기대고 싶었다.
모두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 실린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
에서 발췌했어
본문은 에세이 아주 일부분일 뿐이야
이런 마음으로 그려낸 소설과 더 긴 에세이 원문은
책을 통해서 만나 보길
첫댓글 나 방금 구의 증명 구매했는데..!
다른 책들도 다 읽어보고싶다
최진영 작가님 너무 좋아 구의증명도 좋았는데 다른 것도 읽어봐야지
한줄한줄 읽을때마다 왜이렇게 슬퍼지지...... 최진영 작가님 진짜 좋아하는데 여시가 알려준 책도 읽어봐야겠다 고마워ㅜㅜ
나 진짜 내가되는 꿈 읽으몀서 오열.. 왜그랬는지 몰라
해가 지는 곳으로로 입덕해서 나온 소설 전부 다 읽음ㅠㅠ…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진짜 추천해…
33 … ㅠㅠ 이 책 완전 추천 .. 엄청 빨리 읽음 ㅠ 흡입력 대박이야
해가 지는 곳으로 너무 좋아
내 최애 작가 .. ㅠ
잘 읽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