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7일은 일요일이었다. 기상청 관측 기록에 따르면 그날 최고기온은 8.8℃. 전날 보다 4℃ 오른 기온이 봄을 부르고 있었다. 오후 5시 29분, 3.9kg 우량아 이동민씨가 태어났다. 둘째 동민씨를 임신했음을 안 뒤, 엄마 최행숙(현재 63)씨는 내심 아들이길 바랐다고 했다.
"애 아빠가 장남이라... 그때만 해도 아들을 낳아야 될 거 같았거든요. 병원에서 아들이라 소리를 들은 날 첫째를 잃어버렸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우리 딸 양말 하나 사줘야겠다 하고는 업고 있던 딸을 잠시 내려 놨는데 계산 하는 사이에 사라진 거예요. 오후 내내 찾아 헤맸는데 병원에 올라가서 놀고 있는 거 있죠. 딸이 친화력이 좋아서."
동민씨와 21개월 차이가 난다는 누나 이지수(34)씨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엄마를 슬쩍 흘겨봤다.
"아이고, 지금 생각하면 아들, 장손 그게 뭐라고 싶죠. 첫째는 딸 낳기를 바랐죠. 누나는 활발하고 동민이는 순하고 그랬어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꼼지락 꼼지락 순하더라고요."
그러자 이내 누나는 "맞아, 엄마가 (태동 때문에) 배가 간지럽다고 했어"라며 맞장구를 친다. 자그마한 엄마 뱃속에 우량아가 있으니 배는 산만했고 "뒤로 넘어갈 거 같다고 사람들이 놀라곤 했다"면서 엄마도 슬몃 웃었다.
동민씨가 태어난 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동민씨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장손이 태어났으니,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셨단다. 전주 이씨 항렬 돌림자 '동(東)'에 백성 '민(民)'을 넣어 지어준 이름. 엄마는 "편하게 살으라고 그리 지었는데, 너무 편하게 지었나 싶어요"라며 후회했다.
"처음 동민이를 품에 안았을 때 잘생겼다, 듬직하구나 그랬죠... 어어... 많이 좋았어요. 그냥 행복했죠 뭐... 이렇게 짧게 살 줄 알았겠어요, 그때는..."
이태원 참사로 잃은 아들을 31년 전 처음 마주한 그 순간을 얘기하며, 엄마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투닥 거리며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던 누나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뒤편에 앉아 얘기를 듣고만 있던 아버지 이성기(65)씨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동민씨가 없는 첫 설날을 지나 온 1월 28일, 남겨진 세 가족은 소리 없이 울었다.
항상 '네'만 하던 순한 아이 9살 동민이의 편지 "아이스크림 사달라 해서 죄송해요"
"동민이는 자라면서 항상 '네'만 했던 아이에요."
인터뷰에 앞서 <오마이뉴스>에 사연을 적어 보낸 엄마는 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다가도 심부름을 시키면 "더 필요한 건 없어?"라며 마트를 다녀오던 아이였다고 했다. 유치원 때 외삼촌이 사준 장총 장난감이 위험해 보여 반품해도 "네, 다음에 사주세요"라며 떼쓰지 않았다고 한다. 갖고 싶어하던 로봇 장난감을 "다음에 사줄게"해도, "네" 하던 아들이었다고 했다. 동민씨가 9살이던 해, 5월 6일 부모님께 적은 편지에도 그 성품이 묻어난다.
"어머니 가게를 하시느라 힘드시죠.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라서 죄송해요. 아버지 회사를 다니시느라 힘드시죠. 집으로 돌아 오시면 안마를 해드릴게요. 어머니 아버지 어린이날 선물 고맙습니다." -1999년 5월 6일 목요일 이동민 올림- . . . 전문출처 참조
첫댓글 ㅜㅜㅜㅠ
장가가면 쓰려고 쿠폰가지고있으샸다는거 너무 슬프다...
저렇게 귀한 자식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냐고,,
너무 슬퍼서 안 울수가 없다 맘이 넘 아파
아 아침부터 회사에서 혼자 눈물참음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