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의 잔영
이월 넷째 수요일은 지기와 동행한 걸음을 나섰다. 일상에서 카톡으로 문자나 사진이 오가는 문우가 이른 봄 피는 야생화 탐방에 따라가겠노라는 제의가 와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탐방을 다녀온 야생화를 사진에 담아 글감으로 삼아 문학 동인 카페에 올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집도 그렇거니와 야생화도 여럿이 함께 다니면 그만큼 훼손될 자연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탐방을 나선 일행 넷은 도지사 관사 근처에서 승용차를 함께 타고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 들머리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나섰다. 나보다 열 살 더한 선배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무리한 산행이 염려스러워 조심조심 다니십사고 당부했다. 용추계곡 중간쯤에서 야생화를 완상한 후 근력이 따라 주면 진례산성 동문을 넘어 진례 평지마을로 갈까 싶었다.
용추계곡으로 드니 골짜기와 길섶의 아카시나무를 비롯한 낙엽활엽수에서는 봄이 오는 낌새가 아직 멀게 느껴졌다. 지난번 두어 차례 내렸던 비로 개울 바닥의 돌 틈으로 물이 흐르고 일부는 고여 있기도 했다. 높은 나뭇가지 끝에서는 종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겨울잠에서 깬 벌레들이 나옴에 때를 맞추어 짝짓기를 서둘려는 산새들의 대를 잇는 생존 법칙이렷다.
용추정을 지나 돌부리가 드러난 등산로를 따라가니 밤새 내려간 기온으로 서릿발이 솟은 곳을 지나기도 했다. 일행은 용추2교를 지나 나무 평상 쉼터에 배낭을 풀고 앉았다. 각자 배낭에서 꺼낸 음료와 과일을 나누어 들면서 야생화 탐방 동선을 의논했다. 나는 우곡사 갈림길 이정표에서 성내 포곡정으로 오르는 너럭바위 쉼터 못미처 우리가 탐방할 노루귀가 있는 지점이라고 안내했다.
계획대로 야생화를 탐방하고는 진례산성 동문을 넘어 평지마을로 내려가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 일정은 변경해야 할 듯했다. 선배가 예전과 다르게 무릎 관절에 불편을 느껴 가파른 비탈을 오르내리기는 무리가 되어서다. 진례산성 동문 고개 너머 평지 저수지 둘레길을 걷고 신월마을로 나가 맛집으로 알려진 중국집에서 점심으로 먹으려던 문어철판짜장은 후일 어느 날로 미루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출렁다리를 지나니 지피식물인 상록 마삭은 파릇한 잎사귀가 드러났다. 군락을 이룬 맥문동도 풋풋한 잎줄기가 싱그러웠다. 마삭과 맥문동은 바위 더미에 붙어 자라는 푸른 이끼와 함께 겨울 넘긴 청맥 삼총사였다. 용추계곡 겨울 식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동덩굴과 쥐똥나무다. 이들은 다른 낙엽활엽수와 달리 반상록성으로 푸른 잎사귀를 몇 장 달고 있었다.
용추5교에서 창원대학부터 정병산 기슭으로 난 숲속 나들이 길은 날개봉을 따라 고산 쉼터로 향했다. 우리는 야생화 관찰 포인트를 얼마 앞두고 우곡사 갈림길로 나뉘는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개울로 가지를 뻗쳐 나와 자란 생강나무는 꽃눈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도심 정원이나 거리의 조경수로 심겨 자라는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펼치고 나면 뒤이어 필 생강나무의 꽃이었다.
넷은 바위 더미 개울을 건너 가랑잎이 덮인 숲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엊그제 혼자 와서 살피고 간 노루귀는 며칠 추위에도 여린 꽃잎을 펼쳐 그대로 있었다. 그새 두 포기가 더 꽃잎을 펼쳐 세 무더기였다. 선배는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노루귀를 여러 차례 봐왔으나 나머지 둘은 실물로는 처음 보는 노루귀라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땅에 엎드려 사진에 담느라 집중했다.
검불을 이불 삼아 추위를 참아내고 밀어 올린 여린 꽃대는 보송보송한 솜털을 단 채 분홍색 꽃잎을 펼쳤다. 선발대로 먼저 핀 꽃송이 곁에는 연이어 다른 꽃대가 솟아날 자리라 발을 디디기가 조심 되었다. 이후 너럭바위 쉼터로 가 노루귀 꽃말 얘기를 나누고 다시 그 현장으로 가서 야생화 탐방 여운을 살렸다. 계곡을 빠져나오는 내내 앙증맞은 노루귀의 잔영은 머릿속에 남았다. 23,02,22
첫댓글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
첫만남의 잔영이 오래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돌 틈과 가랑잎을 비집고 피어나는 작은 풀꽃에서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 함께 느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