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결코 이론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말은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는 말입니다. 이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불량자가 된 이유이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과연 여호와를 몰랐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홉니와 비느하스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제사장입니다(1:3). 여호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인 엘리의 아들들로서 분명 엘리로부터 여호와에 대하여 배웠을 것입니다. 제사법을 비롯하여 율법에 대하여도 배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여호와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누구보다도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14-17,22-2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악행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몰랐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나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단순히 이론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경험 또는 실천과 관련된 인격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경험적, 실천적으로는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신을 알게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우리에게 우리의 무지에서 나온 이론적인 신이 참 하나님이 아니며, 또한 철학자들의 추상적인 신(神)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 하나님은 그분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아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효과는, 첫째로는 우리에게 경건과 두려움을 가르쳐 주는 것이어야 하며, 둘째로는 그의 인도함과 가르침 가운데서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한 일을 구하는 것이어야 하며, 셋째로는 그 선한 일을 이룰때에 그것을 그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하고 생명력 있는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또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의 뜻이 곧 우리의 뜻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들에게는 이런 면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그 말씀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배읍시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지를 말합니다(딤후3:16, 17).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지식은 우리를 올바르게 해줄 것입니다(히 4:12). 피상적인 신 지식만(神知識)으로는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실제적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그분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것만이 칭찬으로 이어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