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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유머게시판 스크랩 임진왜란 이후 영웅에게 일어난일
racoon 추천 1 조회 493 21.01.20 09:41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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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1.20 10:06

    첫댓글 그놈의 신분.....ㅅㅂ 그리 신분높은 관원 나으리가 나가서 싸우지...의병 일으킨 분들도 있지만....참...

  • 21.01.20 10:43

    선조 말기면 오히려 전쟁에서 자유로운 관료들이 없을 걸요??

  • 21.01.20 10:19

    조선시대 가문들 90%가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가문출신

    경향사족이라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죠.

    정충신도 보면은 기구한 인생을 살기도 했지요.

  • 21.01.20 10:41

    머 유로파에도 적긴 했지만, 사실 신분은 명분이고 정치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초반 내용은 다르게 생각하는게, 일단 실록을 찾아봤는데 선조 때 사헌부가 신분으로 태클을 걸긴 하지만 선조가 끝까지 윤허하지 않고 쉴드를 치는 장면은 일단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더 생각해보면 이것도 결국 선조가 자기 편을 유지하기 위한 vs 왕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헌부 간 정치싸움으로 보이네요.

    북방으로 가는 것도 당시 정세를 생각해보면서 이후 기사들(제주에서 진상한 전마에 적합한 아마 한 필을 내주었다, 노모를 보고 북방으로 가게 해주었다, 임란 때 전공이 있던 자들에게 취품했다)을 보면 선조도 나름대로 대우를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그만큼 믿으니까 모종의 연락을 통해 북방으로 보내도록 했을 수도 있다고 보이고요. 당시 조선 변경이 평화로웠던 것도 아니고, 조정에 불만이 있는 자나 신뢰하기 힘든 자를 변경으로 보내는 건 정치, 전략적으로나 나쁜 수니까요

  • 21.01.20 10:42

    나중에 파직되긴 하는데, 이것도 멋대로 역의 말을 타게 한 것 때문이고(선조 37년 5월 15일), 그에 따른 유형도 노모가 위중하니 미루거나(37년 6월 2일), 결국 광해군 때 이르러 복직되어 길주 목사로 부임하게 됩니다.(광해군 1년 3월 3일, 7년 4월 17일)

    인조 때 사직 거부하고 나중에 역적으로 몬 거는 사료를 찾지는 못하지만, 킹리적 갓심을 발휘해보면 광해군 당시 나름 논상도 받고 했기 때문에 광해군파로 분류되어 숙청당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1) 한명련은 나름 보상을 받았으며, 2) 선조 이후 승승장구했고, 3) 당시 사헌부가 유교꼰대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정치적 싸움이 핵심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사학 관련 학부생 나부랭이지만 그 사학과 특인 '과연 그럴까?' 의심이 발동해서 한번 찾아보고 생각한 바를 적어봤습니다. ㅎㅎㅎㅎㅎㅎ

  • 21.01.20 11:10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의 횡포로 나라 망치는 일은 어찌 그리 똑소리가 나도록 닮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아쉬운 조선의 영웅들이여.....늘 건강하시길....

  • 그 나폴레옹도 출신덕에 수없이 까였습니다. 조선 사대부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시대의 한계일 뿐이죠. 흔한 조선까의 협잡 게시물로 보입니다요.

  • 21.01.20 22:05

    그놈의 신분 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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