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想, 산냐)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며
저는 한 달 전쯤부터 인식(想, 산냐)에 대해 조금씩 생각했습니다. 동영상 법문 등을 들으며 어떤 것을 인식이라 하는지 이해하려고 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조금 정리해놓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삼켜버림 경(S22:79)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인식이라 부르는가?
인식한다고 해서 인식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인식하는가? 푸른 것도 인식하고 노란 것도 인식하고 빨간 것도 인식하고 흰 것도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인식한다고 해서 인식이라 한다.“
1. 저의 생각
유아에게 푸른색을 보여주며 ‘이것은 푸른색이란다.’하고 가르칩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가르치다보면 어느새 유아는 색종이에서 푸른색도 알아내고 버스에서 푸른색도 알아내고 엄마 옷에서 푸른색도 알아내고 과자봉지에서도 푸른색을 알아냅니다. ... 이렇게 유아는 어떤 것에서도 푸른색이라면 그것을 푸른색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나무로 인식하고 바위를 바위로 인식하고, 강아지를 강아지로 인식하고 고양이를 고양이로 인식하고, 연필을 연필이라고 인식하고 책가방을 책가방으로 인식하고, 텔레비전을 텔레비전으로 인식하고 휴대폰을 휴대폰으로 인식하고 컴퓨터를 컴퓨터로 인식하고, 자동차를 자동차로 인식하고 버스를 버스로 인식하고, 유치원을 유치원으로 인식하고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인식하였습니다. ...)
1-2. 저의 생각 (책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 우리가 누구를 보게 되면 안식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아, 김철수다.’라고 압니다. 왜냐하면 이미 저런 모습은 김철수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누구인지를 압니다. ‘아, 김철수다.’라고. 왜냐하면 이미 저런 목소리는 김철수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을 봅니다. 그러면 안식이 계속 일어납니다. “나무꾼이 산속으로 들어가 큰 소나무를 보았습니다.”라는 글귀를 눈으로 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내용을 압니다. 이미 어릴 때부터 나무꾼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산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크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소나무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취착의 양상 경(S22:5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인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에 대한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이라 한다. ... (이하 생략)
▢ 동영상 법문에서 저는 이런 취지로 들었습니다.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볼 때마다 몸에 감촉할 때마다 마노로 법을 식별할 때마다 - 그 보는 것을 새기고 듣는 것을 새기고 냄새 맡는 것을 새기고 맛보는 것을 새기고 감촉하는 것을 새기고 법을 분별하여 아는 것을 새기는 성품의 법이 일어나는 데 그것이 인식입니다. ...”
(동영상 법문에서는 ‘인식하다’를 : 비유하면 마치 사진 찍어놓듯이, 마치 기록해 놓듯이, 마치 기억해놓듯이, 그렇게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맛볼 때마다 감촉할 때마다 법을 식별할 때마다) 새기는 성품으로 인식을 설명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식할 때에는 그것이 바르든 그르든 상관없이 새기는 성품이 인식할 뿐이라고 하십니다.)
2. 저의 생각
우리가 어제의 일을, 과거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인식이 (마치 사진 찍어놓듯이, 마치 기록해 놓듯이) 눈으로 볼 때마다 귀로 들을 때마다 ... 그 형색들을, 그 소리들을 ... 인식해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래서 저는 ‘입력 - (저장) - 출력’에서 입력을 담당하는 것은 아마 인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어떤 카페의 자료에서 조금 발췌합니다.
(27강)
saññā 산냐(인식, 想)
1. 語義
푸른색 등으로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sañjanāti) ‘인식’(saññā)이라고 한다.)
2. 특징 등의 네 가지
(1) 특징: 인식하여 아는 것
(2) 역할: 다시 알기 위해 표상을 만드는 것
(3) 나타남: 표상에 따라 이해하려 함
(4) 가까운 원인: 드러난 대상
◊-1. 어떤 카페의 어떤 분의 답글에서 인용합니다. (제가 기호 등을 변형했음)
“saññā의 뜻을 분석해보면 saṃ + √ñā, 즉 함께 모아서(saṃ) 아는(√ñā) 작용인데
비슷한 것들(특징)끼리 모아서 하나의 개념으로 아는 작용을 말합니다
가령 실제로 '푸른색'이라는 건 없지만 우리가 '파랗다' 또는 '푸르다'라고 유사하게 보이는 것을
뭉뚱그려 하나의 개념으로 아는 것이지요
(무지개가 본래 7가지 색이 아니지만 우리가 7가지 색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삼켜버림 경(S22:79)에서 '알음알이(윈냐나)'의 작용 예시로는 '쓴 것, 매운 것, 단 것' 등 직접적인 미각을 드는 반면
'인식(산냐)'의 작용 예시로는 좀 더 간접적인 시각 표현(푸른색, 노란색 등)을 드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요
(물론 '쓴 것, 매운 것, 단 것'으로 아는 작용에도 산냐가 당연히 함께하기는 합니다.)
... (일부 생략)
'기억'은 기본적으로 인식(산냐)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https://cafe.naver.com/theravadabuddhists/700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하면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유사한) 인상(impression, 빨리어로는 nimitta)[= 표상, 개념]으로
남겨두고 새겨두게 되지요
그러면 또한 나중에 그와 유사한 것을 경험했을 때 ('함께 모아서 아는' 작용으로)
'이것은 저번에 보았던 그것이구나'라는 식으로 알게 됩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산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구나.'라고 다시 인식할 수 있는 원인이 될 표상을 만드는(nimitta-karaṇa) 역할을 한다. 목수들이 목재 등에 표시하는 것처럼."
- '아비담마 길라잡이' 산냐에 대한 설명 中 , 초기불전연구원
...
"인식의 원인(sañjānana-hetu)이 되기 때문에 '표상(nimitta)'이라 한다."(DA.ii.500)
- S51:20. 분석 경 각주 中, 초기불전연구원 역
(상윳따니까야 6권 129쪽)
3. 저의 생각
저는 표상을 우선 : 위의 어떤 분의 설명처럼 이해하겠습니다.
또는 여섯 대상이나 경험한 것을 마음속에서 이름 지어서•개념화하여 알아 놓는 것이라고 우선 생각해놓겠습니다.
4. 인식의 전도
* 이 부분은 제가 정리할 힘이 없어서 넘어가겠습니다.
* 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이고 부정이라는 바른 인식을 하지 않고,
오온에 대해 항상하고 즐거움이고 나의 자아이고 깨끗하다는 그릇된 인식 등이 여기(인식의 전도)에 해당합니다.
첫댓글 saññā의 sam은 '모으다'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같음', '동일함'이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도 있지 싶습니다.
봄봄이 不貳過님께 이렇게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납득시킬 수[saññāpetuṃ] 없다라고 표현되지 싶습니다.
예, 봄봄님.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제가 봄봄님과 의견이 다른 부분이 100개 중에서 1~10개 정도라면 제가 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차이가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에서는 오온에서 정신의 어떤 성품을 인식(想, 산냐)이라고 정의하셨고 용례를 보이시는지 경전을 읽을 때 해당부분이 나오면 다시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想(saññā)’은 심행(心行)의 내용이고,
‘思(cetana)’는 의행(意行)의 내용이며,
‘名色(nāma-rūpa)과 識(viññāṇa)’은 신행(身行)의 내용임.
@아위자 추가로 ........ ‘vitakka(心)와 vicāra(意)’는 어행(語行)의 내용.
@아위자
참고로 ..............
[오온(五蘊)=名色(nāma-rūpa)],
[오취온(五取蘊)=명신(名身)+색신(色身)]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處(āyatana)가 名色(nāma-rūpa).
그래서 .......... 수행자는 <명색>에 의존하여 사유하면 안 됨.
‘정견[=사성제에 대한 앎과 봄(ñāṇa-dassana, 智見)에 의존하여 시유]’하여야 됨.
예, 아위자님.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도 몇 번 들려주셨는데, 제가 잘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그 말씀들을 들려주셨는데, 다시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신행(身行)의 연기과정>은 .......... 알아듣거나 이해하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
<육내입처[=명색]와 육외입처[=명색]을 조건으로 육식(身)이 集한다.> 거든요................. 그래서 ‘sati
sati āyatane(處에 대한 사띠가 있을 때.......)’라고 부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임.
예, 아위자님.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생각해야 할 내용이 많아졌네요. ‘다섯 감각기능(五根)이 마노(意)에 의지한다, 마노는 사띠에 의지한다.’ 등에 대해서, 감각장소(處)에 대해서, 기능(根)의 단속(제어)에 대해서, 연기에서 ‘무명 – 행 – 식 - ...’에서 행(行)에 대해서, 오온과 오취온의 차이에 대해서, 명색(名色)에 대해서, 신(身)에 대해서(身-예전에 동국역경원의 잡아함경 한글대장경을 읽을 때 자주 보았던 용어), ...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