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 햇쑥
며칠째 아침 최저 기온이 빙점 부근 머물다 회복된 이월 넷째 목요일이다.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현관을 나서니 간밤 새벽은 약한 빗방울이 내린 듯했다. 집 앞에서 마산합포구청 맞은편으로 나가 진동으로 가는 70번대 농어촌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진북이나 진전 산골이 아닌 고성 배둔 당항포로 가기 위해서였다. 진동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고성 통영행 버스를 탔다.
창원시 경계를 벗어난 짧은 시외 구간을 달려 배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들녘을 걸어 고성 동부 체육시설을 지난 구만천이 흘러온 당항포 언저리로 갔다. 당항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호리병처럼 잘록한 바다 지형을 활용해 적을 섬멸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근래 고성 마암면과 동해면을 잇는 마동교가 댐처럼 가설되어 바닷물 일부는 민물을 채워 농업용수로 확보한 듯했다.
내가 굳이 당항포까지 멀리 나감은 봄이 오는 길목 볕이 바른 자리에 돋아 자랄 쑥을 캐기 위함이다. 겨울을 건너오면서 냉이는 캐 봤다. 한림 들녘이나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에서 캔 냉이는 우리 집 식탁에서 냉잇국이 되어 올랐고 친구와 이웃에 보내 봄내음을 나누었다. 어제는 반송 시장을 지나다가 노점상이 파는 쑥이 보여 나도 어디선가 캐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선 걸음이었다.
들녘이 끝난 구만천이 샛강으로 흘러온 당항포 어귀에는 해상 보도교 위에 거북선 모형이 설치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왜선 47척을 수장시킨 전승을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야간에 조명이 비추어질 밤이면 경관이 더 아름다울 듯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당항포 관광단지에는 고성의 명물인 공룡 발자국으로 테마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지는 못했다.
당항포는 이십여 년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포와 맞은편 고성 동해면 좌부천은 손을 뻗치면 닿은 듯한 입구에 동진대교가 놓이면서 교통이 편리해졌다. 나는 작년 봄 퇴직을 즈음해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너 동해면 지방도를 따라 당항포를 한 바퀴 두른 트레킹을 한 적 있었다. 그날 마동호 방조제를 지나다가 양지바른 자리에 자라던 쑥을 캐 왔기에 그 자리로 다시 가는 걸음이다.
마동호 제방으로 찻길을 겸해도 대형 차량은 통행이 제한되어 오가는 차들이 적은 편이었다. 제방 수문 곁으로 다가가면서 길섶에 보이는 여린 쑥을 몇 줌 캐 보았다. 마동호 제방에 이르니 둑을 경계로 바닷물과 민물로 나뉘었다. 사십 년 전 초등에서 출발한 내 교직 이력 도중에 중등으로 건너온 첫 부임지가 동해면 갯가 중학교여서 젊은 날 잠시 근무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마동호 안쪽은 고성 거류면과 마암면이 마주했다. 남파랑 구간과 겹친 둑을 따라 거류면과 동해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건너갔다. 지방도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인 동해면 내곡마을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아까 건너온 방조제의 건너편 보도를 따라가면서 길섶에 움이 터 나오는 쑥을 캐 모았다. 방조제로는 아주 드물게 차량이 지나기에 매연으로부터 오염은 염려되지 않았다.
아주 길게 느껴지는 제방 갑문으로 건너오면서 캐 모은 쑥은 양이 그리 많지 않아도 햇쑥이라 희소가치가 있었다. 마암면 간사지대교로 가는 보전마을로 가보려다가 마음을 거두고 제방 부근 쉼터에서 캔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려 정리했다. 올해 들어 처음 캔 쑥이지만 양이 적어도 손수 캐 보았음에 의미를 두었다. 생활권에서 다소 벗어난 청정 지역에 해풍을 맞으면서 자란 쑥이었다.
아까 지난 해상 보도교를 건너 당항포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둘레길 구간을 걸었다. 간척지는 모텔과 공장이 들어서고 생활 하수를 처리하는 시설물도 보였다. 벼농사만 짓는 일모작 들녘에는 한 농부가 트랙터로 봄갈이를 하고 있었다. 아까 내렸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통영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진동으로 왔다. 다시 창원의 농어촌버스로 갈아타 시내로 복귀하니 하루해가 걸렸다. 2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