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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인학(觀人學)
사람을 보는 지혜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觀 : 볼 관(見/18)
人:사람 인(人/0)
學 : 배울 학(子/13)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사람마다 선과 악의 정도도 다르지만 그 본성과 외모도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면 공자가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실수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이 잘 하는 말이 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人不可貌相).' 이것이 관인학(觀人學)의 요체다.
전국시대 대표적 유가(儒家)인 순자(荀子)는 '비상(非相)'에서 관상으로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관상술이 근거 없다고 하면서 군자가 되는 연유는 관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행실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장자(莊子)'에도 외모를 배제하고 사람을 파악하려 했던 유가학파의 흔적이 남아있다.
공자가 말한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산천보다도 험난하고 하늘을 알기보다 어렵다. 하늘에는 봄, 가을, 겨울, 여름 및 아침과 저녁의 일정한 시간의 변화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두꺼운 외모 속에 감정을 깊이 감추고 있다. 외모는 점잖아 보이면서도 내심은 교만한 자가 있고, 재주가 뛰어난데도 어리석어 보이는 자도 있다. (…) 정의를 갈구하던 사람이 도리어 정의를 불에 덴 것처럼 내팽개치기도 한다.'
뒤를 이어 외모나 인상을 배제하고 행적을 통해 사람을 관찰하는 아홉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이를 구징(九徵)이라고 한다.
후세에 오면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공자와 유사한 방법을 제시했다. 삼국이 각축하던 시대,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 통일을 꿈꾸던 제갈량에게 밑천은 사람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장수 선발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갈량은 '심서(心書)', 또는 '장원(將苑)'이라고 부르는 책에서 사람을 식별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사람마다 선과 악의 정도도 다르지만 그 본성과 외모도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외모는 온화하고 선량해 보이지만 행실이 간사한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공손해 보이지만 마음속이 기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있다.
또 겉으로는 용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도 있고,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따로 꾸미는 일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을 알아낼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어떤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물어 보고 포부와 관점을 관찰한다.
둘째, 일부러 트집을 잡아 난처하게 만들어 임기응변 능력을 관찰한다.
셋째, 어떤 책략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고 식견을 관찰한다.
넷째, 큰 재난이 닥쳐온 것을 미리 알리고 용기를 관찰한다.
다섯째, 술 마시는 기회를 이용해 크게 취하게 만든 뒤 품성을 관찰한다.
여섯째, 이익이 눈앞에 어른거리게 하고는 청렴한지 아닌지 관찰한다.
일곱째, 기한이 설정된 일을 맡기고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관찰한다.
이상이 제갈량의 '칠징(七徵)'이다. 그런데 칠징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사람을 볼 때 조심할 사항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칠류(七繆)'이다.
칠징(七徵)과 칠류(七繆)는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다고 할까. 촉한의 숙적인 위(魏)나라 사람 유소(劉劭)가 지은 '인물지(人物志)'에 나온다.
유소는 공자의 '구징'을 의식한 듯, '인물지'의 첫 편을 '구징'으로 명명했는데 인재 선발과 임용을 위해 이 책을 편찬했다.
삼국시대, 조조와 유비는 영토를 두고도 싸웠지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싸웠다.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나라가 살아남기 때문이다.
'인물지'의 내용은 이채롭다. 그중 '칠류'에서 사람을 살필 때 조심할 사항을 언급했다. 대략은 다음 같다.
첫째, 사람들의 평판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이다.
둘째, 세상일을 개인적 호오에 맞추어 보는 잘못이다.
셋째, 타인의 마음을 파악하는데 무엇을 먼저 살피고 중시해야 하는지 놓치는 잘못이다.
넷째, 자질을 평가할 때, 조숙(早熟)형 인재인지 만성(晩成)형 인재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 인재의 유형을 구별할 때, 자신과 같은 성향의 인물은 너그럽게, 다른 성향의 이들은 배척하게 되는 태도이다.
여섯째, 능력을 살필 때, 빈부귀천의 처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일곱째, 기발한 점을 평가할 때, 진짜 능력자와 사이비 능력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충고가 많다. 악인을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간혹 악인과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한 가지 장점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나와 맞아떨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친해지고 그가 악인이라는 걸 잊게 된다고 분석하는 내용이 그 하나이다.
또한 성장 환경이나 출신 배경에 눈이 가려져 잘못된 인물을 고르는 사례를 경고하기도 한다.
'인물지'에 따르면, 최고의 인물은 '평담무미(平淡無味)'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런 밋밋하고 멋대가리 없는 사람은 탁월한 안목이 없는 한, 알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을 찾아내는 일에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 이유는 세상을 편안하게 하려면 수많은 인재가 필요하지만 세상을 망치는 데는 한 사람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성인도 관인학을 보기도 한다
성인은 마음을 말하지 상(相)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인이라 해서 관인학(觀人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자(孔子)의 관인학이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생각해보고, 그렇게 한 결과로 누가 평안하게 되는지를 살핀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길 수 있겠는가?'
맹자(孟子)의 관인학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마음속의 악을 가리지 못한다. 마음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속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리오.'
장자(莊子)의 관인학이다. '먼 곳으로 사신을 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충성심을 보고, 가까이 두고 써서 공경함을 보고, 번거로운 일을 시켜 문제해결 능력을 보고, 돌발 질문을 던져 지혜를 보고,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여 믿음을 보고, 위기 상황을 알려 절개를 보고, 재물을 맡겨 청렴함을 보고, 술에 취하게 하여 절도를 보고, 이성과 함께 있게 하여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본다.'
아주 신묘하고 막힘이 없는 여섯 가지 지혜(六神通) 중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他心通)은 불타(佛陀)의 관인학이다.
이렇게 보면, '상은 마음에 귀의하고 마음은 상에 귀의한다'는 달마 조사(達磨祖師)의 이귀(二歸; 부처님과 법에 귀의) 삼매(三昧;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가 이해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동물과 식물, 생물과 광물처럼 모습과 바탕을 가진 것엔 다 상(相)이 있으니, 상을 가진 것들의 원소와 성분 및 이용 가치를 세밀히 분석하고 철저히 실험해야만 풍부하고 윤택한 삶에 도움이 될 것이고 문화에 밑천이 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조선시대 철학자의 인간 품평 방법론
대인들은 실용을 가장 중시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에게 '실용이란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참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100여 년 전의 학자에게 실용에 대해 물으려 한다. 이에 답해 줄 학자는 최고의 장서가이자 기(氣)철학의 대가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다.
최한기는 1803년(순조 3)에 아버지 최치현과 어머니 청주 한씨의 독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두툼한 시집을 낼만큼 학식이 깊었으나 최한기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최한기는 큰 집 최공현의 양자로 들어갔다. 양반의 후예이기는 했었으나, 직계 조상 중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은 낮은 양반 가문으로 추정된다.
최한기 스스로도 그리 높은 벼슬을 하지 않은 채 독서로 일생을 보냈다. 어린 시절을 고향 개성에서 보낸 그는 성장한 후 서울로 이주하여 줄곧 남대문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1851년(49세) 서울의 송현(松峴) 상동 (尙洞; 남대문 부근)으로 옮긴 그는 당호(堂號)를 기화당 (氣和堂)이라 하고 서재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최한기는 일반인들은 구하기 어렵던 중국의 새로운 서적과 서양 관계 번역서를 조선에서 가장 먼저 구입하고 열람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서점들은 일단 책을 수입하고 나면 가장 먼저 최한기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최신 서적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보이고 선별하여 구입했기 때문이다.
책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최한기였으므로 그의 서재에는 항상 당대 최고의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수많은 양서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덕무(李德懋)를 할아버지로 둔 최한기의 친구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도 최한기의 서재를 구경하고 나서는 희귀하고 중요한 서적이 정말로 많은 데 감탄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장서와 독서 결과, 최한기는 오늘날의 학문 분야로 말하자면 자연 과학에서 사회 과학 그리고 윤리 및 철학에 이르는 방대한 부문에 걸친 저술을 남긴다.
실로 천여 권에 달했다고 알려진 그의 저술 가운데 백여 권만이 현존하지만 그의 학문적 성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가운데 '기학(氣學)'은 최한기의 철학을 가장 완성된 형태로 정리한 대표작이며, '추측록(推測錄)'과 '신기통(神氣通)'을 합한 '기측체의(氣測體義)'는 칸트(Kant)의 '순수 이성 비판'에 비견할 수 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인식론적 저술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인정(人政)'은 이른바 정치, 경제, 도덕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최한기의 사회 철학을 망라하니, 칸트의 '실천 이성 비판'을 방불케 하는 각오(覺悟)를 느끼게 한다.
최한기의 학문이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 자연을 관통하는 제일적(齊一的) 질서 속에서 구축되었음은 잘 알려진 바다.
一身運化, 統民運化, 大氣(天地)運化. '운화'는 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거인 기(氣)의 자기 운동이자 세계의 존재 원리를 일컫는 최한기의 용어다.
이 가운데서도 사회의 영역을 다룬 '통민운화'야말로 최한기 학문의 핵심 의제다. 통민이라 함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의 몸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러나 자연(천지)의 세계가 아니라 이른바 인간들의 집단인 사회의 운영 원리를 말한다.
이처럼 최한기는 인간들이 빚어내는 구체적 현실 세계를 자기 학문의 근거로 삼았다. 한마디로 기(氣)의 세계다.
최한기는 현실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문제삼았다. 기존의 권위에 빠져 반성할 줄 모르는 성리학이나 경전주의 역시 현실에 어둡다는 이유로 비판되었다. 심지어 성인마저 현실 학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비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성인은 원래 천지운화를 스승으로 삼아 도학(道學)을 이루어 백성들에게 교화를 베풀고, 치안(治安)할 수 있는 자를 골라 등용하여 태평 시대를 가져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세에 성인을 배운다는 자들이 다만 성인의 행동만을 스승으로 삼고, 용인(用人)과 치안(治安)의 근본이 되는 원리는 도외시한 채 경전의 문구 해석에 집착하고 고증하는 데 빠져 천도(天道)를 해치고 성인의 학문을 어기는 데 이르렀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에게 유일한 학문의 근거 그리고 이유는 오로지 '현실'이었다. 때문에 그는 인간 생활에서 나타나는 복잡다단한 기의 세계(현실)를 추측하고 그 외연을 확장하는 일에 몰두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을 가르치는 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덕(德)이니, 성(聖)이니, 신(神)이니, 심(心)이니, 도(道)이니, 천(天)이니, 리(理)이니, 중(中)이니, 성(性)이니, 명(命)이니, 성(誠)이니, 선(善)이니, 일(一)이니, 경(敬) 등을 말했는데,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아듣게 하려는 것이었으나 도리어 시끄럽고 혼란해질 뿐이라며, 중요한 공부의 기준은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행사(行事; 최한기의 용어로 현실적 과제를 의미한다)를 기준 삼아 공부하면 허망하지 않아 착오를 쉽게 알 수 있고 모든 것이 저절로 분명해진다.
마치 길 가는 사람이 한 걸음한 걸음 전진하면서 그 길이 구부러졌는지 곧은지 돌아가는 것인지 지름길인지를 환히 분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행사를 버리고 부질없이 공부에 대해서 말한다면 우열과 시비에 한계와 기준이 없어진다.
점점 나만 옳고 남은 그르며 허(虛)한 것을 더욱 실(實)하다 하거나 실한 것은 더욱 허하게 여겨, 도리어 공부 때문에 행사에 해가 미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현실에 기초한 학문이야말로 공리공담에 빠져 '허무'로 귀착되는 학문의 오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주의는 옛 것이라고 무조건 존중하지 오늘의 것이라고 또 무조건 따라야 한다거나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정(人政) 선인문(選人門)에 이르기를, '상고의 학문은 우수하다 하고 금세의 학문은 용렬하다고 하여서는 안 된다. 또 오늘의 학문을 우수하다 하고 상고의 학문을 용렬하다고 해서도 안 된다.
상고의 학문 중에도 금세의 학문에 통할 수 있는 조짐이 있으면 우수한 것이고 금세의 학문에 통할 수 있는 조짐이 없으면 용렬한 것이다.
중고와 근고의 학문 중에도 금세의 학문에 통할 수 있고 없는 것으로 우열을 가려야 하고, 오늘의 학문 중에서도 교화의 미치는 것이 멀고 가깝고 많고 적은 것으로 우열을 가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저 옛 것이라고 숭상하고 오늘이라고 현실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잘 따져 보아 현실에 적합한 합리성을 가진 것만이 실용의 학문이고 철학이다. 그것이 성실(誠實; 진실로 실용적임)의 학문이다.
허무와 공리공담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유일의 방법을 제시한 최한기는 그렇다면 성실의 학문을 수행한 사람을 평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인간의 감정(勘定)이다.
최한기의 수많은 저작 가운데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가장 깊게 녹아든 논술로 '감평'이라는짧은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한 편의 글이 담겨 있는 '인정'은 최한기 학문의 정수가 응축된 압권이다. 글을 읽노라면 한편으로는 칸트가 떠오르고, 또 다른 한편 사회 철학자 루소(Rousseau)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Saint-Simon)이 연상되기도 한다.
심지어 근대 사회 과학의 탄생을 기초한 뒤르켐(Durkheim)이 그려지니, 이것이 필자만의 오해는 아닐 것이다.
하여튼 최한기의 평생 관심은 바로 현실의 학문이요, 따라서 현실을 추동하는 인간을 감정하는 관인학(觀人學)이 그 출발이며 완성일 수 있었다.
인정(人政) 감평(鑑評)에 이르기를,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일을 경영함에 있어, 사람을 얻어 성공하기도 하며 사람 때문에 실패하는 일도 있으니, 어찌 사람을 고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개인에게는 벗을 고르는 방법이 있으며 한 나라에는 사람을 뽑아 쓰는 제도가 있으니,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이미 알아서 상세하게 논해 왔다.
그러나 한갓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만을 논하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됨을 모르면 비록 사람을 선택하는 좋은 방법이 갖추어졌더라도 끝내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 사람됨을 안다면,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이야 일정한 규정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인품(人品)을 감별하는 것이 사람을 선택하는 급선무다'고 하였다.
최한기는 사람을 알아 보기 위해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요소를 거론한다. 첫째, 기품(氣稟). 둘째, 심덕(心德). 셋째, 체용(體容). 넷째, 문견(聞見). 다섯째 처지(處地)이다.
기품은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받는 기운인데, 사람을 관찰할 적에 모습이나 행동거지 그리고 언행을 보면 기품의 강하고 약함 그리고 청아함(淸)과 흐림(濁)을 판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마음의 덕(心德)은 성실함과 거짓됨 그리고 순수하고 잡스러운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거짓과 참됨이란 곧 학문의 허실(虛實)을, 순박이란 올바른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신기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분별하는 힘이다.
다음 용모에 대한 판단이다. 최한기는 이를 단지 외모만도, 그렇다고 마음가짐만도 아닌, 이 둘의 미묘한 결합이라고 정의한다. 앞서 말한 기품과 심덕이 빚어내는 조화의 결과라는 말이다.
이에 따라 도량이 넓고 관대한 자(厚)가 있는가 하면, 항상 눈살을 찌푸리고 냉랭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힘쓰는 자(薄)도 있다.
또 마음속에 쌓인 것이 아름다워 행동이 단아한 자(美)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행색이 괴상하고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거친 자(醜)가 있다.
문견이라 함은 지식이나 지혜다. 단지 눈으로 보고 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편벽하지 않으며 선입견으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지 않는 사람(周)이 있는가 하면, 무리 짓고 편벽을 일삼는 자(比)가 있으며, 청아한 사람이 있는데 비해, 인습에 젖어 변통이 어둡고 오직 남에게 시비하는 자(俗)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처지가 있다. 처지는 귀천(貴賤)이나 빈부(貧富)를 관찰해야 한다. 사람이 가난할 때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부한 후에 처신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며, 천할 때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귀하게 되었을 때 처신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모든 개인들이 갖춘 기본적 요소(五具)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이 현실에 처해 실제 일을 하게 될 때 발현하는 오발(五發)의 과정이 있다. 말하자면 기품이 발하게 되어 한 사람의 재주와 국량(局量)이 되는 것이 그러하다.
임기응변은 심덕에서 생기며, 풍도(風度)는 체용에서 생기며, 경륜(經綸)은 문견에서 비롯하며 마지막으로 사무를 처리하는 능력, 즉 조시(措施)는 그 사람의 처지로부터 비롯하는 법이다.
먼저 재국(才局)은 고(高), 저(低), 명(明), 암(暗)의 구분이 있다. 고명한 자는 동류보다 뛰어나고 고매한 데 반해, 저암한 자는 어두운 등불과 같다.
임기응변 역시 어질고 성실한가 하면(恕己), 남이나 추종하고 욕심나는 일에 염치불구한 자(隨人)가 있으며, 말과 행동이 시종 분명한가 하면(始終) 모든 것이 꽉 막혀 답답한 경우(限)도 있다.
풍도 역시 화락(和樂)한 자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 걱정스럽거나(憂), 쓴 것을 물고 있는 듯 말만 하면 가시를 뱉는 사람(觸)도 있다.
경륜은 세상에 통하여 모든 것이 쉽고 편하도록 대하는가 하면(通),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편벽(偏壁)도 있다.
일에 항상 근본을 생각하는 경우(擧本)가 있는가 하면, 항상 남의 것만 주워 모으고 의지하고 잡다한 것을 큰 일로 오해하는 경우(趨末)도 있다.
일하는 태도를 보면, 부리는 사람이 넉넉하여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逸)도 있지만, 게으르고 태만한 법(怠)도 있다.
최한기는 모든 인간이 지닌 오구와 현실에 처해 드러나는 오발의 열 가지 요소를 잘 헤아린다면 제대로 사람을 감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각 항목에 점수를 주어 인간형을 모두 1,024가지의 표로 계량화했다. 이 평가표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형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혹은 선생을 할 만한 자에 적합한 사람을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지, 그리고 혹자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또는 기술을 배워야 적합한지 등을 고민하고 반성하도록 유도했다.
누군가가 이 표를 보고 너무 번잡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에 최한기는 응수한다. 사람의 변화는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법, 이렇게 자세한 표를 만들어 두고, 이를 보고 세밀하게 노력해야 나은 단계로 진입할 수 있으며 좋은 사람을 감평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새봄이 되면 항상 무언가를 계획하는 법이다. 이에 최한기의 '감평' 일부를 붙여 본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인간형에 속하며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실용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 觀(볼 관)은 ❶형성문자로 覌(관), 観(관)은 통자(通字), 观(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雚(관)으로 이루어졌다. 자세히 본다는(見) 뜻이 합(合)하여 보다를 뜻한다. 늘어 놓아 보이다, 자랑스럽게 남에게 보이다, 잘 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觀자는 '보다'나 '보이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觀자는 雚(황새 관)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雚자는 隹(새 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황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雚자는 큰 눈과 눈썹이 도드라지는 황새를 잘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황새를 그린 雚자에 見자를 결합한 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觀자에는 '용모'나 '모양'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황새의 자태가 의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觀(관)은 (1)한자어로 된 어떤 명사 아래에 붙어 체계화된 견해를 뜻하는 말 (2)관괘(觀卦) (3)도교(道敎)의 사원(寺院) 등의 뜻으로 ①보다 ②보이게 하다 ③보게 하다 ④나타내다 ⑤점치다 ⑥모양 ⑦용모(容貌) ⑧생각 ⑨누각(樓閣;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⑩황새 ⑪괘(卦)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바라볼 조(眺),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남(覽),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이나 고적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자연 현상의 추이를 관측(觀測), 사물을 잘 살펴 봄을 관찰(觀察),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각도를 관점(觀點),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고 깊이 생각하는 일을 관념(觀念), 영화나 연극이나 무용 등의 무대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을 관객(觀客),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구경함을 관람(觀覽), 사물을 꿰뚫어 봄을 관철(觀徹),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음미함을 관조(觀照), 마음의 본성을 살핌을 관심(觀心), 구경하는 무리를 관중(觀衆), 사람의 상을 보고 재수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을 관상(觀相),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말을 관과지인(觀過知仁),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얼굴빛을 자세히 살펴봄을 일컫는 말을 관형찰색(觀形察色), 풍속을 자세히 살펴 봄을 이르는 말을 관풍찰속(觀風察俗),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견문이 매우 좁음을 말함 또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름을 이르는 말을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정중관천(井中觀天),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이르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學(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은 ❶회의문자로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니 배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學자는 '배우다'나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學자는 臼(절구 구)자와 宀(집 면)자, 爻(효 효)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學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宀자 위로 爻자를 감싼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爻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學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子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學(학, 교, 할)은 (1)철학 또는 전문적인 여러 과학을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체. 곧 현실의 전체 또는 그 특수한 영역 및 측면에 관하여 체계화된 지식의 계통적 인식 (2)학문(學問) 등의 뜻으로 ①배우다 ②공부하다 ③흉내내다 ④모방하다 ⑤가르침 ⑥학교(學校) ⑦학문(學問) ⑧학자(學者) ⑨학통(學統) ⑩학파(學派) 그리고 ⓐ가르치다(교) 그리고 ㉠고지새(되샛과의 새)(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학교(學校),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학문의 실력이나 역량을 학력(學力),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을 학업(學業), 학문의 사회나 학자의 사회를 학계(學界), 한 학년 동안을 규정에 따라 나눈 수업 기간을 학기(學期), 출신 학교에 따른 연고 관계를 학연(學緣), 학문의 기술 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을 학술(學術), 공부한 이력을 학력(學歷), 공부하는 데 드는 돈을 학비(學費), 배워서 얻은 지식을 학식(學識),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학생의 무리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학도(學徒),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배우지 못함이나 학문이 없음을 불학(不學),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인간이나 인생이나 세계의 지혜와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 또는 개인이 설립한 교육 기관을 사학(私學), 외국에 가서 공부함을 유학(留學),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동안 수업을 쉬는 일을 방학(放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배움을 전학(轉學), 학문에 힘써 공부함을 면학(勉學),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됨을 이르는 말을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을 학여역수(學如逆水), 외고 읽을 뿐으로 이해하려고 힘쓰지 않고 또 실천하지 못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을 기송지학(記誦之學),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널리 공부하여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함을 이르는 말을 박학독지(博學篤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