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왜, 대한민국 정치가 왜 그러나요. 안 그래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천안함 용사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기탁한 성금 1억898만8000원으로 마련한 `3.26 기관총`의 기증식이 2011년 3월 25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영주함에서 열렸다. 윤청자 여사가 영주함에 설치된 `3.26 기관총`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천안함 46용사' 중 1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79) 여사가 제1 야당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인사의 '천안함 자폭' 발언을 듣고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여사는 5일 언론사와 통화에서 “위로는 못해줄 망정, 그런 식으로 몰고 가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끝내 울음을 터뜨린 윤 여사는 “나라 지키다 간 애들을 왜 아직도 그렇게 매도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며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래경의 지난 2월 10일 페이스북 게시물.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이래경 페이스북 캡처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당 쇄신을 목표로 하는 혁신기구 위원장에 이래경을 선임했다.
이래경은 지난 2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 이번에는 중국의 기상측정용 비행기구를 마치 외계인 침공처럼 엄청난 국가 위협으로 과장해 연일 대서특필하고, 골 빈 한국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기 바쁘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을 ‘미국 패권 세력이 조작한 자폭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민 상사의 형 민광기(53)씨는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다 희생한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제1야당의 주요 직위에 임명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이건 정쟁이 아니라 이적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씨는 “정부 입장을 신뢰한다는 이재명의 말에도 진심을 느끼기 어렵다”며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다는 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씨와의 일문일답.
오늘(5일) 논란에 대해 결과적으로 이 대표가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고 입장을 냈다.
“문재인이 ‘정부 발표와 입장이 같다’는 식으로 말한 게 떠올랐다. 그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고 싶다. 정부 입장이라고 얼버무리는 건가. 대한민국 정부, 우리나라가 천안함을 북한에 의한 폭침으로 사실 규명을 했다고 확실하게 말해달라.”
문재인은 2021년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 피격이)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해 달라”는 윤 여사의 질문에 “북한 소행이라는 게 정부 입장 아닙니까”라고 답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민씨는 “이재명이 오늘 천안함 피격 사건을 ‘천안함 사건’이라고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닌가 싶다”며 “천안함 피격을 ‘사건’이라고 말한 건 이를 일반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걸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이래경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건 그나마 다행 아닌가.
“단순히 사의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일이 반복되니 본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이 이러하니까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걸로 보인다. 민주당은 사의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자폭설’ 같은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런 논란이 왜 자꾸 되풀이 되는 것 같나.
“(이래경 같은) 그런 인사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돼 있고 이들의 지지를 받으니 민주당이 오늘과 같은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을 지키다 희생한 분들의 명예도 못 지키는 게 과연 할 일인가.”
이래경은 사의를 표명하면서도 “사인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 사회의 현재 처한 상황을 압축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소견”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개인 의견을 전제로 천안함 피격에 관해 원래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 3월 24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제2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고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 여사와 손자 경준군이 천안함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권칠승 (민주당)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원래 함장은 배에서 내리면 안 되지 않느냐”며 “무슨 낯짝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부하를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래경 임명을 놓고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현충일 선물 잘 받았다. 오늘까지 입장 밝혀주시고 연락 바란다”며 “해촉 등 조치 연락이 없으면 내일 현충일 행사 마치고 천안함 유족, 생존 장병들이 찾아뵙겠다”고 이재명을 향해 발언한 데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민씨는 “지금도 음모론을 추종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국회 안팎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해군 출신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은 민·관·군 합동위가 구성돼 백서를 냈고 감수도 마친 사안”이라며 “과학자들이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과학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난 사안을 사상의 자유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