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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이란 윤회와 고통(불행)의 원인인
탐욕과 분노, 無知의 세가지 독이 소멸된 것을 말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열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분노가 영원히 다하고, 무지가 영원히 다한 것이니, 일체의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을 열반이라고 이름한다.'
<잡아함 卷18>)
사람은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다른 사물들을 접하면서, 감각적 느낌으로 좋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엔 탐욕을 갖고 집착하고, 나쁘거나 그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엔 분노와 원망이 생겨 번뇌망상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불교에선 이런 탐욕과 분노심이 모두 사라져서 번뇌망상이 없는 無心(空心)의 경지에 도달하여 청정심(淸靜心)을 회복한 것을 <마음의 해탈>이라 하고
잠겨 있던 지혜와 혜안(천안, 천목)이 열려 우주의 실상을 보고 진리를 깨달아 무지(어리석음)가 소멸된 것을 <지혜의 해탈>, 즉 깨달음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깨달음이 열린 사람을 각자(覺者)라고 칭하는데 불가에서는 그 경지를 아라한, 보살, 부처 등으로 나누고 도가에서는 진인이라 부르는데, 깨달음의 경지가 아주 높은 각자를 대각자라 합니다.
깨달음은 끝이 없다고 말하며 층차가 있기에 깨달은 성자들마다 지혜와 법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과 대학생, 대학원생의 지식과 능력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0의 시각을 가진 사람보다 2.0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더 멀리 더 미세하게 보듯이,
우주의 실상도 자기가 깨달은 경지까지만 볼 수 있기에, 깨달음의 경지가 낮은 사람은 우주의 진리를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로의 가르침과 법력(신통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누가 더 높게 깨달았는지 파악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석가모니불께서 말씀하신 말법시기라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선지자 노릇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범람하여 사람들이 진짜 正法을 수련하는 것을 모두 교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을 영적 스승으로 삼는다면,
이는 마치 서울에 가보지 못한 소경에게 의지하여 서울가는 길을 동반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탈을 위한 기본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 먼저 깨달음(해탈)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윤회의 고해에서 해탈하려는 강한 소망이 있어야만 삿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정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하다가 중도포기하거나,
하는 둥 마는 둥 하기 마련입니다.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이 正覺을 이룬 대각자와 正法을 인연해야 합니다.
正覺을 이루지 못한 스승은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기에 제자들이 正覺을 이루도록 이끌 수 없고,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부분까지만 이끌 수 밖에 없으며, 만약 그릇된 스승을 만나면 몸과 마음을 망치거나 사기를 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깨달음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기본조건으로써 正覺을 이룬 대각자와 바른 가르침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가짜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제도할 수 없는 이유를 李洪志 사부님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금세기에 생긴 종교, 어찌 금세기뿐이겠는가, 몇 세기 전에 세계 각지에 수많은 새로운 교가 생겨났으며, 이런 대다수는 모두 가짜에 속한다. 대각자들이 사람을 제도함에 모두 자신의 천국이 있는데, 석가모니ㆍ아미타불ㆍ대일여래 등등, 이런 여래불 그들은 사람을 제도함에 모두 자신이 주재(主持)하는 세계가 있다. 우리 이 은하계에는 이런 세계가 백여 개 있으며, 우리 法輪大法 역시 法輪世界가 있다. 일부 가짜 법문이 사람을 제도한다는데 어디로 제도하는가? 그것은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그것이 말한 것은 法이 아니다." (전법륜)
이와 같이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조차도 윤회계인 삼계를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천국세계가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을 삼계를 초월한 천국세계로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正覺을 성취한 스승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도의 성자 마하르쉬의 가르침을 보면 아주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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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합니까?" 하고 어느 방문객이 질문했다.
마하르쉬 : 그렇지요. 스승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은 가르침, 설법, 명상 등의 결과라기 보다는 스승의 은총(축복)의 결과입니다. 가르침이나 설법 따위는 2차적인 보조수단에 불과하지만, 은총은 1차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입니다."
방문객 : 깨달음을 얻는 방편들은 어떤 것입니까?
마하르쉬 : 경전과 깨달은 영혼들이 일러주는 가르침입니다.
방문객 : 그 가르침이 강의, 설법, 명상 등의 형태일 수도 있습니까?
마하르쉬 :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모두 2차적인 방편일 뿐이고, 본질적인 것은 스승의 은총입니다. 신의 은총은 깨달음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은총은 참된 구도자나 요기, 즉 자유를 향한 길위에서 끊임없이 열심히 노력해온 수행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옮긴이 주 - 도가에서도 하늘과 스승의 도움없이는 道를 이룰 수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正覺을 이뤄 지혜와 법력을 겸비한 대각자를 인연하지 않으면 어느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의 깨달음은 아마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게 정진하는 사람들에게 스승의 은총이 함께하는 것이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요행심리로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질문 : 적합한 스승을 어떻게 판정할 수 있습니까? 스승의 참모습은 무엇입니까?
마하르쉬 : 그대의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그대에게 적합한 스승입니다.
어떤 사람이 스승이며 그의 참된 형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평온함, 인내, 관용, 자비의 미덕을 갖추고 맨눈만으로도 자석처럼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만물에 대해 평등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큰 덕을 갖춘 사람(大德之師)이 진정한 스승입니다.
문의 : 우리가 진인으로부터 받는 은총은 우리의 운명의 일부분입니까? 진인이 어떤 은총을 내려서 우리의 業의 일부를 업애주거나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줄 수도 있습니까?
마하르쉬의 제자 스와미: 진인의 은총은 우리의 발현업(금생에 겪어야할 업)의 강도를 줄여줍니다. 비록 은총이 업을 바꾸지는 못한다 해도, 그 강도를 줄여주는 겁니다. 스승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은 큰 나무의 그늘 아래 있는 것과 약간 비슷합니다. 햇볕 아래 있던 사람이 나무 밑에서 쉬면, 그의 더위가 약간 완화되겠지요.
(옮긴이주 ㅡ 대각자는 도력(초능력)으로 제자들의 업력(흑색물질)을 없애 병을 낫게 하거나 마음을 정화시켜 줄 수도 있는데 도력이 높을수록 그 위력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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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스승과 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실천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스승과 진리를 인연하더라도 스승의 가르침을 믿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우며 또한 본인이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않는데 저절로 번뇌망상이 영구적으로 사라져 해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正法을 인연하여 스승으로 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면, 먼저 그 가르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승은 동쪽으로 가라고 말했는데,
그는 엉뚱하게 서쪽으로 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스승으로 부터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배웠다 하더라도 그 자신의 편견과 無知, 私心에 의해 스승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깨달음은 커녕 아무 것도 얻지 못하거나 사잇길로 빠져 헛고생할 수 있고, 마음이 악한 사람은 이 때문에 도리어 스승을 비방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똑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젖소는 유유를 만들고 독사는 독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
비이성적인 맹신과 邪見은 마땅히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의 여러 대각자들이 말한 해탈의 기본원리는 모두 같은데, 수행방편들은 왜 서로 다를까요?
대각자들은 지혜롭습니다. 만약 구구단을 막 외운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친다면 우리는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적분을 마스터한 대학생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도 어리석긴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제자들의 근기에 맞게 적합한 방편을 제시하고 가르치는데,
이를 두고 대기설법이라 합니다.
도가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스승이 제자의 근기를 보고 골라서 도맥을 전수했습니다.
석가모니불은 중근기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팔정도 즉 계율, 선정,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법을 가르쳤고, 그 결과 역대로 지혜와 도력이 높은 유명한 고승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계정혜 수행법은 온전히 전해내려오지 못했고, 지금은 고승을 찾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르쉬는 진아탐구의 방법을 제시한 걸로 유명한데, 그것은 業이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은 소수의 상근기들에게 적합한 방법이었으며, 진아탐구의 방법을 통해 해탈한 제자가 극소수 나왔다고 합니다.
진아탐구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의 방법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나는 누구인가?' 라고 반문하여 그 생각의 근원을 주시하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번뇌망상이 없는 삼매(무념무상)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이 가르친 알아차림을 통한 마음챙김(正念, 위빠사나) 역시 진아탐구법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이와 같은 직지인심의 마음챙김은 마음이 고도로 순수해지면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나, 마음이 불순하여 번뇌가 많은 중하근기의 중생들은 노력해도 잘 되지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마하르쉬는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먼저 진아탐구법을 알려줬고, 그 방법을 해내지 못하면 그 사람에 맞게 다른 방편들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의 28대 조사이자 중국불교의 1대조사인 달마대사가 창립한 선종의 수행법인 간화선 역시 마음을 관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한 방법인데, 이것도 마음이 순화된 상근기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번뇌가 많은 일반적인 중하근기들이 해내기는 어려운 방법이며 아시다시피 선종의 법맥은 6대 혜능에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도가의 정통 단전호흡 수련 역시 의식이 밖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몸안으로 들고 나가는 호흡에 의념을 집중하여 삼매에 들고자 하는 것으로 호흡법은 중근기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수련법입니다.
하지만 보통 근기의 사람들이 사회생활하면서 한 두시간 수련하여 丹을 형성하고 소주천 대주천을 통해 심신을 고도로 정화하고, 法身을 만들어 득도를 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기에, 시중에는 심신건강 회복을 위한 양생법 차원만 보급하였고, 고층차 경지의 수련법은 상근기의 제자만 골라서 산중에서 단독으로 전수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단전호흡을 통해 도를 이루겠다는 욕심은 버리는게 좋으며, 대다수는 돈벌이 삼아서 이것 저것 짜깁기하여 전하는 그릇된 단체들이 많습니다.
염송은 진아탐구나 간화선, 단전호흡 등과 같은 수행방편들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기에 근기가 비교적 낮은 사람들에게는 神佛의 명호를 염하는 염송을 권했습니다.
염송을 하는 동안에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염송에 의식을 집중해서 잡념을 없애고 삼매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무 수행조차 안하는 일반사람들에겐 행복하게 살려면 죄짓지 말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선행을 많이 쌓으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삼매에 도달하면 어떤 효과가 있기에, 대각자들은 선정(명상)을 가르쳤을까요?
먼저 그릇이 비어야 물건을 담을 수 있으며, 빈 공간이 있어야 들어갈 곳이 있는 법이니,
사람도 번뇌망상이 사라진 空心이 되어야 우주의식(우주에너지)이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모든 욕망과 집착심을 내려놓고 精神을 통일하여
아무 번뇌망상이 없는 無念無想의 상태로 마음이 고요해지면 우주의 眞氣를 받아 마음이 밝아짐으로 비로소 본성(우주특성)과 합일되어,
자비, 眞心, 평화, 행복감 등이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의 근본이니
만약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을 등한시하고 주문, 호흡, 참선, 명상 등의 방편에만 매달리면
번뇌망상으로부터 해탈할 수 없으며, 만약 욕심을 갖고 道를 얻고자 한다면 사잇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道家에서는 無心이라야 道를 얻는다(無心得道)라고 하였으며, 佛家에서는 마음이 空해야 함(空心合道)을 주장하고,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한 자라야 天主를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과거에 지은 죄(業)의 소멸을 위해 원수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심과 공심이란 일체의 번뇌가 모두 사라진 청정심을 말하는 것이지, 마음이 공허(허무)한 상태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석가모니불도 금강경에서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音)로써 나를 구하는 자들은 邪道를 가는 사람들이니 결코 如來를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마음을 밖으로 향하여 욕심을 추구함으로 인해 邪道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수련을 하여 초능력을 얻어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고자 하거나,
욕심으로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거나 혹은 여러 번거러움이나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니 마땅히 깨달은 스승과 正法을 인연하여 올바르게 수련해야 할 것입니다.
正法을 인연하여 수련을 올바르게 하면 몸에서 아주 끈적끈적한 땀이 나거나, 설사나 방귀, 트림 등이 나오는데, 이것은 고에너지가 몸 속의 병을 일으키는 邪氣와 濁氣(業)를 땀이나 설사, 방귀 등을 통해 물리적으로 배출시키는 현상입니다.
즉, 나쁜 물질을 배출시켜 몸을 건강한 상태로 정화시키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몸의 탁기를 배출하고 나면 기혈순환이 잘되어 몸이 한층 가볍고 마음은 경쾌해집니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의 눈물이 나거나,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恨)가 눈물을 통해 해소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業이 녹는다라고 말하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이 맑게 정화되어 한층 밝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밝고 건강해지면 부정적 마음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만사에 불평불만을 표출하다가 타인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등의 좋은 사람으로 점차 거듭나게 됩니다.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수련을 한 이후로 마음이 변하여 화를 잘 내지 않는다면 곧 분노로 인한 業을 계속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에 의해서도 삼매의 효과가 밝졌는데 번뇌망상이 사라진 무념무상의 상태(삼매)에서나 깊은 숙면 중에 잘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란 물질은 기분을 유쾌하게 하고, 어떤 욕구실현을 통해 얻는 상대적 만족감이 아닌 절대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활력을 생기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켜 업무능률을 올리고,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 자살충동, 강박장애, 공황장애, 정서불안,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명상(선정)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때문에 석가모니불도 제자들에게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통해 지혜를 계발하는 계정혜 수행을 가르쳤는데, 석가모니불은 자신이 가르친 계정혜 수행법이 세월이 흐르면서 온전히 전해내려오지 않고, 말법시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55권 <월장분(月藏分)>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만약 내가 세상에 있을 때는 법을 들은 모든 성문들은, 계구족(戒具足 계를 잘 지키며), 사구족(버림을 잘 지키며), 문구족, 정구족, 혜구족, 해탈구족, 해탈지견구족하여, 나의 正法이 세상에서 활짝 타오를 것이다..... 나의 법에서 해탈한 듯이 견고할 것이다.
다음 오백년에는 나의 법 중에서 선정에 들고, 삼매에 드는 사람이 견고할 것이다.
다음 오백년에는 경을 많이 읽고 경을 많이 듣는 사람이 견고할 것이다.
다음 오백년은 나의 법을 배우는 사람 중에 탑과 절을 많이 짓는 사람이 견고할 것이다.
다음 오백년은 나의 법에서 다투며 법이 사라지며 견고함이 없어질 것이다.
청정한 사람들아 알지어다! 이때 이후 나의 법을 배우는 사람은 비록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었지만 戒를 파괴하며 法이 없는 듯이 행동하며 이름만 비구라 하리라.”
위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이 열반한 후 1,500년 이후에는 불교가 말법시기로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현재는 바로 “戒를 파괴하며 法이 없는 듯이 행동하며 이름만 비구라 하리라”는 시기로서, 불교 중에는 석가모니불이 남긴 계정혜 수행법을 참답게 가르치는 깨달은 스승이 없어서 승려들 조차 해탈하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말법시기에 미래불이 다시 출현하여 진리를 전한다고 하였는데, 그 복덕으로 우담바라가 핀다고 합니다.
《혜림음의(慧琳音義)》에는 “우담바라 꽃은 상서롭고 신령한 느낌을 주는데 하늘의 꽃이며 인간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만약 여래가 세상에 나오고 금륜왕이 세간에 나타나면 큰 복덕과 감화로 비로소 이 꽃이 나타난다.(優曇婆羅花爲祥瑞靈異之所感,乃天花,爲世間所無,若如來下生、金輪王出現世間,以大福德力故,感得此花現)”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현대사회에 대각자가 출현하여 진리를 가르친다면 우리에게 어떤 방편을 가르쳐야 이 시대적 상황에 적합할까요?
현대인들은 業이 많아서 육체의 질병들이 많기에 불교처럼 마음만 닦는 방법만 가르쳐서는 질병이 많은 사람들을 해탈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몸이 건강한 근기 좋은 사람들만 골라서 가르친다면 그건 사람을 골라서 가르치는 것이니, 병든 사람들도 다같이 제도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더불어 닦는 방편을 제시해 줘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원시불교처럼 제자들을 출가시켜 가르친다면 많은 사람을 제도하기가 어려울테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련해 나갈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야 하겠지요.
아울러 상근기나 중근기 모두에게 적합한 보편적인 방편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며, 진아탐구법처럼 마음이 고도로 순화된 소수의 상근기에게만 적합하고 대다수의 중근기 사람들이 실천하기 힘든 방편을 가르쳐선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말고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게 진리를 전함에 댓가를 바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사회에는 깨달음이나 명상, 호흡, 마음수련 등을 내세워서 돈벌이를 하는 난잡한 수행단체가 부지기수인데, 고층차 경지에 도달하기 까지의 체계적인 이론도 없고 바른 가르침 또한 아닌 곳이 대부분이라서 수련자들에게 상기증, 기체, 빙의, 정신이상, 금전갈취 등의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무도 이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기에, 아무데나 찾아가서 함부로 수련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 가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곳이 正法(正道)인지를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석가모니불은 열반하시기 전에 이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하나 남겨주었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 법을 전할 시에도 인도에는 상류 기득권층인 바라문들이 믿던 바라문교를 비롯한 6개의 수행단체(六師外道)가 있었는데, 수밧다라는 구도자가 어떤 곳이 바른 곳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결국 석가모니불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자 석가모니불은 수밧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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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수밧다여, 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팔정도)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서는 사문들이 텅 비어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사문이란 아라한, 아나함, 사다함, 수다원 경지의 수행자를 말한다)
(출처 - 마하빠리닙바나경, 대반열반경, D16, 각묵스님역)
(참고) 사문의 구분과 해탈을 가로막는 10가지 족쇄
1. 아라한(解脫者) - 달마대사는 아라한 경지라 한다.
그들은 짐을 내려놓았으며 진정한 목적지에 도달했고, 아래의 10가지 족쇄가 소멸되었으며
궁극적 지혜로 해탈에 도달했다. 그들은 방일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할 일을 다했다. 그들은 더 이상 부주의해질 수 없다.
2. 아나함(不還子) - 윤회하지 않고 천상계에 태어남
다섯 가지 낮은 족쇄(1~5번)를 제거하여 청정한 거처에 태어날 비구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3. 사다함(一來者)
세 가지 낮은 족쇄(1~3번)를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진 비구들이다. 그들은 한번만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끝내 버릴 것이다.
4. 수다원(흐름에 든 자)
세 가지 족쇄(1~3번)를 제거하여 흐름에 든 예류 비구들이 있으니, 그들은 지옥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해탈을 가로막는 10가지 족쇄
(1) 나는 육체라는 견해(有身見)
(2) 정법(정도)에 대한 의심
(3) 찬송, 종교의식, 제사가 열반으로 이끈다는 믿음
(4) 갈망 또는 탐욕
(5) 미움이나 혐오
(6) 순수한 물질적 존재나 비물질적 존재에 대한 욕심(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집착)
(7) 자만심이나 자부심
(8) 나태, 무감각, 졸음(혼침), 둔한 마음
(9) 들뜨고 동요된 마음
(10) 무지(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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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란 바른견해(正見), 바른사유(正思維), 바른말(正語), 바른행위(正業), 바른생활(正命), 바른정진(正精進), 바른마음(正念), 바른선정(正定)을 말하는데 이는 계ㆍ정ㆍ혜 수행법을 8가지로 세분화 해놓은 것입니다.
<참고> 석가모니불이 남긴 계정혜 수행법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콜리성 북쪽의 한 나무 아래 머무르시며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戒)을 지니고 선정(禪定)을 닦으며 지혜(慧)를 구하여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
계, 정, 혜가 있으면 덕이 크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라.
또 세 가지 허물(탐진치)이 떠나면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이 몸으로 삼매(三昧)을 얻고자 하면 부지런히 깨닫기를 구해
이 생이 다하도록 청정한 道에 들어가라.
마땅히 실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 뒤에 다시 윤회(輪廻)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난다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요긴함을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계를 지니고 선정을 닦아서 지혜를 깨달으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가 드날리게 될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 계행(戒行)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禪定)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慧)가 밝아지리니, 이를테면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닦으면 도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고,
일심으로 부지런히 닦으면 이 생을 마친 후에는 청정한 데에 들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면 스스로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나지 않는 줄을 알아라.
만약 계정혜의 행을 갖추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문득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들의 세상을 보게 되고, 온갖 중생들의 생각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돌자갈의 모양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밝으므로 보고자 하는 것이 다 나타난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치 물이 흐리면 그 속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을 깨끗이 지니지 못하면 세상에 나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보고 말하는 것은 제자들이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제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생각을 잡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도를 스스로 얻을 것이다. 여래는 청정함을 가장 즐거워 한다."
- 장아함경 -
(참고) 마하르쉬의 가르침
"참나의 본성인 지극한 행복과 평안은,
私心(이기심)이 없는 선행을 통해 정화된 마음과
꾸준한 명상에 의해서 미묘해지고 고요히 안정된 마음안에서만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해탈합니다."
私心이 없는 선행은 마음을 정화하며,
청정심(淸淨心)을 갖게 해준다. 이 청정한 마음이 결국 우리를 해탈에 이르게 한다.
위와 같이 석가모니불은 어떤 법이든 그 속에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들이 배출되나, 팔정도가 없으면 사문들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팔정도는 과거의 모든 부처들이 걸었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전생에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팔정도)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 올바른 선정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이다."
(나가라경-Nagarasutta-도시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65(7-5),전재성님역)
팔정도(계정혜)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정혜 중에 어느 하나가 빠지면 마치 중간에 다리가 빠진 사다리와 같아서 제대로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계정혜를 함께 닦지 않는 단체는 사문들이 텅비어 있고, 오직 계정혜를 함께 닦고 있는 당시의 석가모니불의 제자들중에서만 고층차 경지의 사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계정혜는 해탈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에 계정혜(팔정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수행법이든 그 속에 계정혜의 원리가 담긴 실천적 수행법이 없으면 깨달음에 근접한 고층자 경지의 사문도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의 제자들이 고층차 경지에 도달하여 그분들의 가르침이 正法임이 실증된 것처럼, 깨달음을 내세우는 여러 수련단체 중에서 어떤 곳이 正法인지를 볼려면 그 단체에 고층차 경지의 수련자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면 될 것입니다.
설령 자신들의 방법이 최상의 정법이라 주장하고, 하는 말들이 겉으로 보기에 좋은 말 같고 일부분이 사실과 부합하고 이치에 맞는 듯 해도, 그것이 현실 속에서 사실로 증명되지 않으면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기에 사람을 해탈시킬 수 없습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본인이 20여년 전부터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접하고 그 단체를 주의깊게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성명쌍수의 佛法(法輪大法)을 전하는 李洪志 대사의 제자들 중에 고층차 경지에 도달한 제자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法輪大法의 가르침엔 계정혜의 원리 뿐만 아니라, 유불선 三敎의 이치를 다 포함하고 덮고 있는 大法이기 때문에 지혜와 도력을 갖춘 제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들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고, 설령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깨달음을 성취한 대각자를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고,
대각자를 만나도 믿음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지혜롭게 진가를 잘 분별하시고, 대각자와 正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무 때나 자주 오는게 아니니,
사람 몸을 얻었을 때 그 기연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해탈의 큰 소망을 품은 분들이라면
正法을 인연하여 꼭 해탈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