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극장에서 대가야문화누리로
곽 흥 렬
얼기설기 거미줄로 뒤덮여 있던 공간이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누군가 폐교 된 초등학교를 빌려 극장으로 꾸며 놓았다. 부초처럼 타관객지를 떠도는 사람들이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길에 영화관으로 모여들었다. 대다수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개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더러 눈에 뜨인다.
영사기가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여기저기서 이게 얼마만이냐며 두 손을 부여잡은 채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들이 분주하다. 더러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축도 보인다.
왁자한 가운데 학창 시절의 동기생들과 한창 해후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찰나, 퍼뜩 눈이 떠졌다. 너무도 생생한 한바탕 꿈이었다. 대가야문화누리 개관 기념으로 상영된 추억의 명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본 감흥이 컸던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령극장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 때문일까.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그 때의 영화관 풍경을 꿈속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지난날 오일장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가 우리 지역에는 유일무이했던 고령극장에서 몇 차례 영화를 보았었다. 그 영화들이 어떠어떠한 작품이었는지는 기억의 필름을 아무리 되감아 보아도 도무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며칠씩 머물다 떠나는 가설극장에서 본 ‘성춘향’, ‘인왕산 호랑이’, ‘고교 얄개’ 같은 영화들만이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다. 이번에 본 ‘미워도 다시 한 번’도 그 가운데 한 편이다.
고령극장의 바통을 대가야문화누리가 이어받았다. 지난해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대가야문화누리는 우리 고장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마루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자칫 대도시에 견주어 따분하다 여겨질 수 있는 시골 생활에 이러한 지역민복지시설이 들어서서 다시 눈요기에의 허기를 채워 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가슴 뿌듯한 일인지 모르겠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최첨단 시설에서 문화의 혜택을 원 없이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도시 사람들의 삶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70밀리 필름의 대형 화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거기다 널찍한 실내며 입체감 있는 음향, 화려한 조명장치, 안락한 의자,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깨금발로도 건너뛸 수 있을 만큼 작디작은 소읍에 이처럼 훌륭한 시설을 갖춘 영화관이 들어서서 마음껏 안복을 누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지금은 시간만 들이면 하시라도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 구경은 그 시절에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호사였다. 어쩌다 큰맘 먹지 않고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 영화관 출입이었으니, 해외나들이를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요즘 세상과 견주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극장 가는 날은 아침 댓바람부터 마냥 설렜다. 부모님 손을 잡고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넘으며 십여 리나 다리품을 팔아야 했지만 그 정도 수고쯤은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이 순간에도 풍선처럼 가슴 부풀었던 그 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
아무리 부침이 심한 것이 세태인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변하지 않고 살아남아 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 극장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들 울고 웃는 세상살이의 축소판으로 펼쳐지는 곳이 극장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관을 품고 있는 대가야문화누리가 반 천년 대가야국의 새로운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역민들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 줄 이 복합문화공간이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며 제몫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염원을 가슴에 담는다.
오월의 싱그러운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고령신문' 2016년 6월 8일>
* 저가 '아름다운 5060' 카페와 인연을 맺으면서 짧은 소개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 수필방에다 그동안 집필하였고 앞으로 지면에 발표할 이런저런 글들을 수시로 올려 회원님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그동안의 이력을 밝혀 놓으면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듯 하여 저의 삶의 자취를 몇 자 적습니다.
곽 흥 렬 약력 :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산과 들의 품에 안겨 자라다, 큰 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지론을 좇아 열다섯 살에 대처로 나와 줄곧 서른여섯 해를 살았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무 남은 해 동안 대구 심인고, 경상고 등에서 국어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오다 2008년 늦은 가을 고향의 흙냄새, 풀냄새가 그리워 낙향하였다.
1991년 《수필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가슴으로 주운 언어들』, 『빼빼장구의 자기위안』,『빛깔 연한 꽃이 향기가 짙다』, 『우시장의 오후』 등의 수필집과 산문집 『에세이로 풀어낸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 수필 선집 『여자와 함께 장 보는 남자』, 세태비평집 『사랑은 있어도 사랑이 없다』, 수필 쓰기 지침서 『곽흥렬의 명품 수필 쓰기를 위한 길라잡이』등을 내었다.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흑구문학상 젊은작가상, 한국동서문학 2012년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여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회 회원이다.
후학들을 기르는 데도 힘을 기울여, 경주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과 대구문화방송 부설 문화강좌, 육군3사관학교 그리고 경북 청도도서관 등에서 수필 창작 강의를 하면서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등의 신춘문예와 평사리문학대상, 신라문학대상, 시흥문학상, 천강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등의 유수한 공모전에 많은 제자들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대가야국의 도읍지였던 경상북도 고령에서 발간되는 <고령신문>의 사외 집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필생의 업으로 삼고 서른 해 넘게 수필 창작에 열정을 쏟고 있다.
* e-mail : kwak-pogok@hanmail.net
첫댓글 참 아쉽습니다
님을 제가 수필방에서 활동할 때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ㅠㅠ
이렇게 댓글이나마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다빈이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카페를 통하여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곽흥렬 그럴까요?
가르침 배우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신복희 수필가님이 한때 친했던 친구이라니 더욱 반갑습니다.
신 선생님과는 저도 한때 문학동인 활동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고령에 그런 곳이 있었군요.
상설 영화관인가봐요?
혹시 울산의 '반구대 산골영화제'를 아시는지요?
저지난주 행사가 끝났는데... 꽤 괜찮은 영화들이 사흘동안 상영되었답니다.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을 가본지도 꽤 오래군요.
저는 고향이 진주랍니다 ^^*
영화관뿐만이 아니고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물론 영화는 군민들을 위하여 무료로 상영하고 있습니다.
진주가 고향이시라니 진주는 저가 살고 있는 고령과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더욱 정이 갑니다.
무지 반갑습니다 ~~
야초도 고령이 고향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대구로 나왔습니다만 10여 년 전까지 어머니가 고령 우곡에 사셔서 ....
그리고 지금도 사촌형님이 농사짓고 있어 가끔 내려갑니다.
좋은 수필 기대합니다~~
야초 선생님 반갑습니다.
고령 우곡이 고향이시라니 동향이네요. 우곡 도진에 저의 연만하신 고모님이 시집을 가셔서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반갑습니다~선생님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나국화님
여건이 되는 대로 어쭙잖은 작품들을 올려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감사 드려요.
반갑습니다. 물향기님
때로는 수필도 올리고 때로는 칼럼도 올려서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