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 기슭 방가지똥
새날이 밝아온 이월 하순 금요일이다. 아침 일찍 나서는 자연학교 등교를 미루니 집에서 할 일이 한 가지 기다렸다. 지난해 여름 고향에서 보내온 마늘이 있었는데 그간 까먹다 일부 남겨두었다. 그 마늘에서 싹이 나는 즈음이라 정리했는데 베란다 시렁에 두어도 여태 이만큼 보존됨이 어딘가 싶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통마늘을 쪼개 감싼 껍질을 까는데 두어 시간 걸렸다.
정오가 되기 전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반 학생이 되어 느긋하게 자연학교로 길을 나섰다. 퇴촌삼거리에서 사림동 주택지 골목을 지나며 내가 눈독을 들여둔 꽃을 살폈다. 남의 집 담장에 붙어 자라는 영춘화인데 그 집 주인장보다 내가 관심이 더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외벽에 가지를 드리운 영춘화가 골목에선 눈에 쉽게 띄지만 정작 집안에서는 잘 보이질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파트 실내에 화초라고는 돈나무 화분이 유일하다. 그 전부터 키우던 인삼고무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분갈이를 해 주지 않았더니 고사하고 말았다. 나는 유년기 고향 집에서 키웠던 멍멍이 말고 반려 동식물을 돌보질 않았고 그럴 여건도 못 되었다. 대신 집을 벗어나 근교로 나가면 내가 관리하는 텃밭의 경계는 한정이 없어 내 발걸음이 닿는 곳까지라 큰소리를 쳐 왔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퇴촌삼거리에서 앞서 언급한 사림동 주택지 골목으로 들었다. 내가 한 뼘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지 않아도 현관을 나서면 어디나 내 꽃밭이고 텃밭이기 마련이다. 사는 아파트가 낡기도 하고 어디에 그럴싸한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언제든 길을 나서면 어느 골목에서도 꽃을 볼 수 있고 들녘이나 산기슭에서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다.
봄이 오는 길목 창원의 집 순흥 안씨 고택으로 드는 단독주택 골목 영춘화는 활활 피었다. 그 꽃을 혼자 완상하기엔 호사였다. 영춘화는 우리 지역에서 삼월 중하순 피는 개나리를 연상하게 했다. 이월 하순 샛노란 꽃잎을 펼치고 나와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담장 너머로 가지를 드리운 영춘화가 만개한 골목에서 나는 발길을 멈추고 봄기운을 받아들였다.
영춘화가 피기까지 한 방울 땀이나 한 줌 거름을 보태지 않았기에 봄맞이 열차에 무임 승차한 기분이었다. 사림동 주택지 메타스퀘어 가로수길을 걸어 사격장으로 올라갔다. 잔디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걸으니 가장자리 고목 벚나무 가지 꽃눈은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남향 언덕에 겨울을 넘기면서 잎줄기를 방석처럼 펼친 민들레의 노란 꽃잎에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사격장에서 소목고개로 올라 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약수터 주변 텃밭은 매화가 피어 향기가 번졌다. 소목고개 십자 갈림길에서 마을로 내려서니 양봉장 농장주는 봄맞이 일손이 바쁜 듯했다. 당산목 느티나무를 지난 동네 어귀에서 여린 쑥을 몇 줌 캤다. 곁에는 좁쌀냉이가 가득 보였는데 캘까 말까 망설이다 캐질 않았다. 뿌리에 따라붙을 흙이 감당되지 않을 듯했다
소목마을에서 남해고속도로에 걸쳐진 교각 밑에서 용전리로 향해 갔다. 근년에 구룡산 산기슭으로 뚫린 민자 건설 지개리와 남산리 사이 터널 요금소 곁으로 갔다. 터널이 개통되기 전 봄날이면 그 산기슭은 내 남새밭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생태계 변화는 어쩔 수 없었다. 예전 단감과수원과 산허리 녹지는 여지없이 잘려 나가 지피식물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황톳빛 언덕이었다.
굴현고개 너머에 감계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심으로 접근의 편리를 좇아 신설 도로 필요성에 터널이 뚫렸다. 산기슭의 망가진 생태계는 몇 해 사이 이전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작년 가을에 싹을 틔워 자란 두해살이 방가지똥이 겨울을 넘겨 봄을 맞아 생기를 되찾았다. 나는 쑥을 캐던 문구용 칼로 방가지똥 밑동을 잘라 검불을 가려 나물거리로 챙겨왔다. 2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