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캐러 남산리로
봄이 오는 길목에 아침 최저 기온이 빙점 근처로 내려간 이월 하순 토요일이다. 어제 점심나절 넘었던 소목고개를 한 번 더 오르려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무작정 걸을 수 있는 행선지가 두 곳인데 소목고개와 용추계곡이다. 용추계곡은 며칠 전 연속 두 차례나 이른 봄 피어나는 노루귀를 완상하려고 찾았다. 소목고개는 야생화 탐방이 아닌 쑥을 캐려고 넘어가는 걸음이렷다.
어제는 사림동 단독주택 골목을 지나다 이즈음 피는 영춘화 구경을 잘했다. 담장 밖으로 드리운 여러 줄기에 핀 샛노란 영춘화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환해졌다. 길손은 그 집 주변의 정원에 피는 홍매와 청매에서는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이후 창원의 집을 둘러 사격장으로 올라 잔디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걷다가 볕 바른 자리에 핀 민들레꽃에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토요일 아침도 사림동 메타스퀘어 거리를 지나 사격장 잔디운동장을 한 바퀴 거닐었다.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 여좌천이나 경화역에 견줄 정도는 못 되어도 창원 도심에도 벚꽃 명소가 몇 군데 있다. 두대동 교육단지와 함께 사격장도 벚꽃이 피면 아름다웠다. 특히 벚꽃이 질 무렵 바람이라도 스쳐 불면 꽃잎은 꽃눈이 되어 분분히 날렸다. 부푸는 꽃망울에서 그 장면을 떠올려 봤다.
벚나무가 에워싼 사격장 잔디운동장에서 나와 소목고개로 향하는 등산로로 오르니 주말을 맞아 산행객들이 더러 보였다. 등산로 곁의 골짜기는 산림 당국에서 산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사방 사업을 해 놓았었다. 바깥 어디선가 바위 더미를 실어 날라 축대를 쌓아 여름철 집중호우가 발생해도 산기슭에는 토양 유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적 예방 조처였다.
텃밭의 매화에서 향기가 번지고 양봉업자가 벌통을 둔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 마시고 소목고개로 올라섰다. 십자형 갈림길에서 비스듬한 등산로를 따라 소목마을로 내려가니 근래 굴삭기를 동원해 묵정밭을 경작지로 일군 곳이 나왔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수색하는지 사냥개를 데리고 숲속을 누볐는데 산행객이 다니는 등산로여서 총기나 개로부터 안전이 담보되어야 할 듯했다.
소목마을을 지나니 남향 언덕엔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밑둥치에 왼새끼를 둘러친 모습에서 시월 상달이나 정초에 동신제를 지내는 신령스러운 나무인 듯했다.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을 기원하는 동신제 지내는 풍습은 점차 사라져가는 세태인데 여태 보존되고 있음이 대견했다. 동제를 지내는 절차나 축문을 기록해 놓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으면 싶었다.
마을 앞 저수지 둑으로 가니 가장자리에 놀던 오리들이 물살을 가르면서 내 앞에서 사라졌다. 볕이 바른 자리로 나가 쑥이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리고 찾아보니 한 아낙이 먼저 와 쑥을 캐고 있어 자리를 비켜 구부정한 농로를 따라 마을 밖으로 나갔다. 25호 국도가 2호선 국도로 연결되는 높다란 교각 밑에서 남해고속도로와 겹쳐 걸쳐진 굴다리에서 구룡산 기슭 남산리로 건너갔다.
마을 어귀 안내판에는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산의 남쪽이나 남산리로 불린다고 했다. 옛적부터 교육열이 높아 아이가 자라면 지게를 맞추어주지 않고 책상을 만들어준 마을이라면서 아세아레코드사 사장 최치수와 예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낸 최절로 시인의 마을이라 소개해 놓았다. 작고한 최치수는 나훈아와 배호를 길러낸 작사가로 가요계 유명 인사라고 했다.
근년에 남산마을 뒤는 북면 감계 신도시로 통하는 민자 건설 터널이 개통되면서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다. 산기슭이 잘려 나간 볕 바른 자리로 올라 시든 잡풀 틈새 움터 자라는 여린 쑥을 찾아 캐 모았다. 내가 그 쑥을 캐려고 소목고개를 넘어 구룡산 기슭 남산리까지 갔었더랬다. 한동안 캤던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려내고 배낭을 추슬러 마을을 빠져나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