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알로하
이 은 규
기억나, 우리 빗속에서 춤췄던 거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길가 푸드 트럭 전기구이 통닭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왜 돌아야 되는지도 모르고 무심코 홀리홀리, 라고 발음하고 뒤늦게 내가 놀라는 밤 파란색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통닭 사거리 신호 체계는 복잡하고 길다 나는 여기 선 채로 영원히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만같고 비에 녹을 것만 같고 언제까지 이 비가 계속 쏟아질까, 사계절 내내 쾌청할 것만 같은 하와이 바라보는 동안 어지러운 통닭이 천천히 작아져 하나의 점이 되어가고, 금세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언젠가 수화기 너머 너는 여기 하와이에서는 홀리홀리 치킨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었다 돌려돌려 뜻이야, 아 그렇구나 재밌다 웃었었지 신호등은 바뀔 줄 모르고 오늘밤 하와이를 지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통닭 점점 어서 집에 가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누구를 기다리는 거니, 말하는 것만 같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그곳에서는 여전히 머리에 플루메리아를 꽂은 사람들이 훌라춤을 추겠지 꽃목걸이 걸어줄게 언제든지 와, 라는 문장만 오래 다정하다 오늘 밤 나도 태양신에게 결실을 기원해볼까 무척 향기롭다는 플루메리아 꽃, 하와이 바닷바람을 떠올리는 동안 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는 중이다 난 참 많이도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와이키키 해변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이제는 정물이 된 결실이라니 알로하, 어떤 순간도 당신과 함께한다는 뜻이라는데 이제 우리는 춤을 나눌 수 없고 비 내리는 동안만 홀리홀리 훌라훌라
- 시집〈무해한 복숭아〉아침달 -
무해한 복숭아 - 예스24
계절을 따라 한없이 이어지는아름답고 달콤하고 기묘한 세계 이은규 시인의 시집 『무해한 복숭아』가 30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이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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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집 〈무해한 복숭아〉 아침달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