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병원 응급실을 통하여 입원한 친구.
적절한 스텐트 시술로 허혈성 관상동맥 혈류를 개선하여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낸다.
저녁을 낸다고 하여 우리 동네 전남광주의 이름난 한식당인 명선헌 서울 분점에서
두 부부가 식사를 함께 하였다. 나는 광주에서도 먹어 보았고
여기서는 처와 같이 여러 번 보리굴비와 게장 정식을 먹어 종업원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이 집은 보쌈김치가 유명한 곳으로 전번에는 식사 후 보쌈김치를 따로 사온 적도 있었다.
시술한 순환기 내과의 교수는 주례까지 내가 선 나의 애제자.
이 제자가 전공의 과정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보게 되었다.
환자는 아직도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용산 철도역 전기부에 직원이 작업 중 고압전기에 감전이 되어 일어난 사고.
그것도 전류의 주행이 가장 위험한 왼팔에서 오른 발의 경로는 흘러 간,
즉 이 경로에 심장이 위치하므로 즉각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내가 보직자로 응급실에 순시 차 들렀을 때
이 제자가 40분 넘어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를 올라타고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30분 정도하여 심박이 돌아오지 아니면 사망을 선언하는데.
“이제 사망 선언을 하지” 하였더니 “나이가 젊어서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다행히 환자는 심폐소생술을 한지 50여분만이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나중 충상의 사입구에 해당하는 왼팔이 비틀어져서 교정 수술도 받았으나
생명을 구한 것이 어디냐!
나중에 외래를 보는데 해군장교복을 입고 신부 감과 같이 들러 주례를 부탁하였다.
신부 감은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금융감독원에 변호사로 근무 중이었다.
교원공제조합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아직도 기억이 나는 주례사는
“두 사람은 낮은 각자 전문 분야에서 따로 일하고, 저녁에는 둘이 같이 좋은 일을 하라”
우리나라 맛집 소개를 처음으로 한 백파 홍성유는 서울법대를 나와서
소설가로 데뷰를 하였다.
쓰신 책 중 'D day의 병촌, 비극은 없다. 비극은 있다.' 등.
위의 두형이 나에게 와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 가셨고
이 분의 첫 부인은 여류 문인으로 이혼, 두 번째 재혼한 부인이 신부전으로 나에게 와서 돌아가셨다.
흑석동 나의 개인 연구실 서가에는 이분이 쓰신 소설책과
조선일보에 필명 백파로 쓰신 한국의 맛 시리즈도 꽂혀 있다.
한 이십년이 되었을까 한창 국내 여행을 다닐 때 이 분이 소개한 고창의 조양관에서 점심을 한상 만 7 천 원짜리를 시킨 적이 있었으나.
처가 못 먹은 음식이 삭힌 홍어회, 홍어찜과 홍어 애탕이었다.
미리 술 못 먹는 것을 양해해서 술은 화요 25도짜리를 시며 혼자 마신다.
남으면 가지고 가지 뭐.
결국 반병 정도는 남겨서 왔다.
왜냐하면 술은 대작을 하여야 하는데.
오디가 들어간 샐러드와 취나물 무침.
그리고 세 가지 전으로 시작한다.
그 중 하나는 약간 삭힌 홍어전도.
먼저 죽이 나온 건 못 찍었다.
이어 약간의 밥이 나오고
쇠고기 육 사시미, 이 동네에선 육회라 하지 않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이 집의 명물 보쌈김치,
아롱사태 편육.
귀한 한치 회이다.
’홍어회와 홍어 애 회, 남김없이 먹었다.
더덕구이도 맛있었고
마지막에 나온 정성들여 끓인 닭죽, 처는 대신 밥을 시켜 먹었다.
식사에 곁들여 나온 무김치.
맛있는 음식에, 좋은 분위기에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저녁이었다.
‘친구야, 저녁자리 고마웠어.’
첫댓글 예전에 1974년에 속초도립병원에 수련의 파견 6개월 했을 때, 그 때는 오징어회보다 한치회가 더 많습디다. 속초는...
보쌈김치는 본래 개성 음식인데,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보이는데, 맛은 그렇게 좋지 않습디다. 그런데, 여기 김치는
약간 수정된 보쌈김치인 것 같고, 보기에는 맛이 있어 보입니다.